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04)
이쯤 되면 눈치 고자라도 알 수 있을 터.
상우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누나가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김선아의 상기된 얼굴을 보니 상우의 추측이 맞는 거 같았다.
상우는 고민에 빠졌다.
‘··· 갈까? 근데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
상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잠깐이었지만 열정에 불타서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상우와 접점이 없었던 사람들.
수정이라는 여자를 제외하고는 같은 헌터업계에 종사하면서 동료로 일했던 여자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만약 얼마 전까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상우의 마인드였다면 당연히 갔을 터.
하지만, 지금은 심경이 복잡했다.
‘그래. 혹시라도 나중에 사이가 틀어져서 얼굴 붉히기 애매하니까. 괜히 깊은 관계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상우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렸고, 돌려서 얘기했다.
“누나, 나도 누나가 끓여주는 라면 꼭 먹고 싶긴 한데, 아직 집까지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 그렇구나.”
급격하게 시무룩해진 김선아.
어두워진 표정의 그녀를 보면서 상우는 마음이 좀 약해졌다.
“흠··· 진짜 라면만 먹을 거면 가도 되고.”
“진짜? 좋아. 가자가자.”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밝게 웃는 김선아.
‘뭐지, 이 우두루급 태세 전환은? 연기였나?’
김선아의 태도에 당황하는 상우를 보며,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저기, 택시!”
술을 마셨기 때문에 택시를 잡아 탄 그들은(상우의 차는 아공간에 주차했다) 선아의 집으로 향했다.
김선아의 집은 꽤 고층의 오피스텔이었는데, 현관부터 복도까지 꽤 길어보이는 게 공간이 상당해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선 김선아의 집은 거실부터 방까지 여자 혼자 살기엔 꽤나 넓어보였다.
다만, 거실에는 운동기구와 널부러진 옷가지들로 너저분했고, 부엌 역시 인스턴트 식품 용기들과 쓰레기들로 꽤나 지저분했다.
“자, 잠깐만 여기 앉아서 기다려. 금방 치울게!”
상우를 부엌 식탁에 앉힌 채 김선아는 청소를 시작했다.
욜로길드의 딜러 겸 서포터인 김선아답게 몸에 버프마법을 걸어 재빠르게 움직이며 치워나갔다.
몬스터를 잡을 때가 아닌 청소할 때도 스킬을 쓰는 게 꽤 가성비가 안 좋아(?) 보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순식간에 정리(라 쓰고 한 곳에 처박았다 읽는다)를 마친 김선아.
“됐다. 상우야, 라면 몇 개 끓일까?”
“음, 난 3개만 먹을게.”
“오케이. 다섯 개 끓여야겠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라면을 끓여냈다.
금세 집 안에 맛있는 라면 냄새가 퍼져나갔다.
“짜잔, 여기.”
김선아가 커다란 냄비를 식탁에 대령했다.
라면의 면발이 꼬들꼬들해보이게 잘 끓여진 상태였다.
거기에 반숙으로 된 노른자까지. “오, 라면 잘 끓이네. 누나.”
“먹어보지도 않고 잘 끓인대.”
“척 보면 알지. 암튼 잘 먹을게.”
“응, 맛있게 먹어~”
이후 폭풍 먹방을 시작한 두 사람.
상우도 김선아도 그렇게 먹었음에도 꽤나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치웠다.
“와, 진짜 맛있다. 역시 술 먹으면 라면이지.”
“맞아. 헤헤.”
“그나저나 누나.”
“응?”
“솔직히 말해봐. 누나 나 좋아하지?”
갑자기 훅 들어온 상우의 핵직구.
빙글빙글 웃는 상우의 물음에 당황해하던 김선아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으, 응···. 어떻게 알았어?”
김선아는 너무 쉽게 수긍하였다.
“진짜로? 그냥 넘겨짚은 건데.”
“뭐? 아···.”
당황했는지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김선아였다.
그녀는 상우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사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초대하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지.”
“··· 내가 너무 급했나. 헤헤.”
“응. 너무 급했다. 푸하하하하.”
“야, 웃지 마. 나 진짜 엄청 용기내서 얘기한 거거든?”
“아, 미안미안. 나도 처음 고백 받아보는 거라 신기하고 어색해서 그래. 흠흠. 갑자기 왜 이렇게 덥지.”
상우가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에이, 농담하지 마. 너 엄청 인기 많잖아.”
“내가? 전혀. 진짜로 누나한테 고백 처음 받아봤어.”
“진짜로?”
“응, 진짜로. 하늘에 맹세한다.”
“음··· 그렇다니까 알았어, 봐줄게. 그럼 그건 그거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넌··· 나 어떻게 생각해?”
선아는 조심스레 상우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상우는 역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누나는 예쁘고, 매력적이고, 능력도 좋아. 정말 좋은 사람 같아.”
긍정적인 대답에 김선아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런데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단 둘이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고. 솔직히 말하면 난 누나한테 아직 아무런 감정도 없어.”
“아··· 그렇겠지.”
김선아는 상우의 부정적인 대답에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금세 다시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좀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너 여자친구 없잖아.”
“큭··· 아픈 곳을 찌르네. 맞아. 없지.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라는 말.
‘상우가 만약 자신에게 호감이 있었다면 좀 더 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겠지.’
무언의 부정이었다.
김선아는 자신이 차였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잘 모르겠다라··· 알았어. 하하, 그럼 나 차였구나.”
김선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웃음이 왠지 슬퍼보여서 상우는 마음이 아팠지만, 애써 밝게 얘기했다.
“하하. 그런가. 내가 찬 건가···. 근데 누나 엄청 아무렇지도 않아보인다?”
“무슨 소리야. 나 지금 웃고 있어도 속은 되게 쓰라리거든?”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그 말에 째려보는 김선아였다.
상우도 피식 웃었다.
“하하, 알았어. 안할게. 근데 왜 나 같은 걸 좋아하게 된 거야.”
“그때··· 프랑스 갔을 때였어.”
상우가 김선아를 맨 처음 본 건, 김선아가 경국대 스트롱짐 헬스장을 방문했을 때 스치듯이 본 게 다였다.
그때 상우는 완전히 흔하디 흔한 대학생1이었고, 김선아는 어딜 가든 주목받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이후, 상우는 성장을 거듭한 끝에 프랑스 파리 카타콤 원정 사냥을 갔을 때 거기서 욜로길드 측 헌터로 김선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 카타콤?”
“응. 그때 카타콤 무너지고 있는데 네가 나 넘어졌을 때 구해줬잖아. 넘어지는 순간,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너무 무서웠는데 너는 되돌아와서 나를 업고 달렸어.”
“그랬지.”
“사실 당시에는 죽을까봐 너무 무서워서 아무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우리 결국 매몰되서 땅속에 파묻혔잖아. 근데 넌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땅을 파내서 나랑 너 모두를 구했지. 그렇게 나오고 나서 널 보는데 심장이 두근두근하더라구. 그때 느꼈어. 네가 정말 멋있다
는 걸. 그리고··· 내가 널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김선아의 담담한 고백.
무너지는 카타콤에서 탈출할 때, 상우가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친절이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되어 다가갔던 것이다.
“나 정말 그냥 본능적으로 구한 건데···. 동료라서 그랬던 거야. 큰 의미 부여하지 마.”
“그게 더 멋있는 거야.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하니까 그랬겠지. 우리 욜로 길드 사람들도 다 나 버리고 갔는데, 같은 길드 사람도 아니었던 너만 날 챙겨줬으니까. 뭐, 그렇다고 우리 길드 사람 원망하는 건 아니야. 나라도 그때 그 상황이면 그랬을 거니까.”
“누나···.”
상우는 담담한 김선아의 말 속에 그녀의 감정이 전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도 있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와 동시에 김선아에 대한 호감이 생겨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심인 걸 알기에, 진정성 있는 걸 알기에 충동적인 판단에 맡겨 그녀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하고 나니까 나도 좀 누나가 좋아 보이는 거 같아. 여기 분위기도 아늑하고 좋아서 더 예뻐 보이는 거 같고.”
“그치? 나만한 여자 어디 가도 별로 없다?”
“푸하하하. 그건 아니거든요?”
“아니라는 사람이 아직도 여자친구도 없냐.”
“정곡을 찌르시네. 하하. 아무튼 누나 마음 못 받아줘서 미안해. 그래도 너무 상처받지는 말고. 살다보면 마음이 싹터서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누나가 나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는 말어.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근데 너 되게 어른스럽게 말한다. 꼰대인줄.”
“뭐? 죽는다. 이렇게 어린 꼰대 봤냐.”
“헤헤. 아니. 근데 상우야. 잠깐만.”
식탁에서 상우의 앞에 앉아있던 김선아가 불쑥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뭉클-
그리곤 상우의 등 뒤에서 포근히 그를 감싸 안았다.
상우의 목을 끌어안은, 그리고 상우의 등에 닿은 김선아의 몸으로부터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 누나?”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자.”
물기 섞인 선아의 목소리.
상우는 멈칫했다.
그리고 김선아의 얼굴이 파묻힌 상우의 어깨가 촉촉이 젖어들어갔다.
김선아가 흘린 눈물.
“흑흑···.”
상우는 그저, 자신의 목을 감싼 김선아의 팔을 가만히 토닥이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아직 잘 몰라, 불꽃 튀듯 운명적인 사람을 찾고 있는 상우.
그리고 매력적이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것 같은 김선아 역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데는 서툴렀다. 그렇게 서툰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은 채.
초여름의 밤은 깊어갔다.
* * *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새벽.
슬퍼하는 김선아를 다독이느라 꼬박 밤을 보낸 상우는 아공간을 넘어 집에 돌아왔다.
결혼식을 가느라 차려입었던 가벼운 정장을 벗어던진 상우는, 방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에 가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꺼내들었다.
모두 잠들었는지 집은 고요와 적막만이 가득했다.
‘하, 베란다가 없냐. 베란다가 그립다.’
현재 상우의 집은 지하라 몬스터 침입에 굉장히 안전한 편이었지만, 창문이 없다는 사실이 이럴 때 안 좋았다.
365일 아파트에 내설된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기 때문에 공기는 청정했지만.
결국 베란다에서 달밤을 보며 술 한 잔 마시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 싶어도 지금 집에선 이룰 수 없었다.
밖에 나가거나 해야 될 상황.
‘귀찮게. 그냥 방에서 마시자. 이거, 집을 빨리 완공해야지 원참.’
한남동에 짓고 있는 앞으로 살 보금자리에 꼭 베란다, 아니 멋진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상우.
그렇게 대충 안주거리를 챙겨들고 캔맥주 하나 들고 방으로 향하는데, 문득 사이에 있던 게스트룸이 보였다.
‘맞다. 우현이.’
피로연에서 대충 게스트룸으로 던져놨는데 생각보다 녀석의 주량이 너무 약해서 상태가 좀 걱정되었다.
‘다 토해놓지는 않았겠지.’
그러면 청소하기 짜증나니까.
상우는 걱정된 마음에 게스트룸에 들어섰다.
원래 침대와 옷장, 안마의자만 있던 단촐했던 손님방이, 김우현이 자주 머물게 되면서 우현이 가져온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대부분 독성술 제작을 할 때 필요한 몇 가지 도구와 게임기 정도였다.
게임기는 상우가 같이 하려고 게스트룸에 둔 거긴 하지만.
‘으휴, 옷이나 갈아입고 자지.’
그리고 상우는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우현을 발견했다.
방이 어둑어둑했지만, 이미 동체시력 스킬 레벨이 상당히 오른 상우에게 이 정도 어둠은 대낮처럼 볼 수 있었다.
김우현은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결혼식 때 입었던 바지 정장에 블라우스 차림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덥나.’
날씨가 초여름에다가 방에 에어컨도 안 틀어져 있어서, 김우현은 더웠는지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주무시는(?) 중이었다.
땀에 젖은 단발머리가 목덜미에 뭉쳐져 너저분했다.
상우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야, 일어나. 옷 갈아입고 자.”
그 말을 하며 상우는 김우현을 깨우려고 엉덩이를 찰싹 두드리려 했다.
그러다 김우현의 봉긋 솟은 엉덩이를 보고 멈칫했다.
입고 있는 옷이 달라져서일까.
평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볼륨감이다.
‘맞아, 얘···.’
김우현은 전부터 남자치고는 왜소했다.
거기에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남자치고는 왠지 가녀린 음성이었던 목소리.
장난칠 때마다 만져봤던 몸은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랑거렸고.
원래는 남자처럼 짧았던 머리도 어느새 단발 정도로 기른 상태였다.
‘그냥 좀 여성스러운 취향인 남자앤 줄 알았는데.’
왜 있지 않는가.
남자지만, 왠지 모르게 제스처나 행동, 취미나 사고관이 여성스러운 남자들. 그렇지만 성정체성은 확고한 남자인 사람들 말이다.
상우도 그런 남자애들을 몇몇 알았기에, 김우현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내가 착각했던 거라면?’
오늘 김우현이 정장차림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부터 느꼈다.
완전한 여성용 정장차림.
거기에 맨날 쓰는 군모에 가려져 있어서 몰랐지만, 어느새 기른 단발머리.
그리고 주변에서 너도나도 여자로 알아보는 모습.
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 야, 자냐?”
김우현은 미동도 없이 눈을 감은 채 색색 가는 숨을 쉬며 잠을 자고 있었다.
상우는 그 얼굴 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반응이 전혀 없었다.
‘흠, 그렇다면···.’
상우의 손이 김우현의 등 뒤로 향했다.
우현이 입고 있는 검은색 블라우스.
만약 그 안에 그가 생각하는 그게 있다면···?
그리고 상우의 손이 김우현의 목덜미 아래쪽 등에 닿았다.
블라우스의 천 너머로 부드러운 살이 만져졌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살살 쓸어내리자, 살과는 다른 무언가가 만져졌다.
‘탄탄한 재질. 무언가를 꽉 잡아주고 있는 듯한 이것은···.’
상우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을 때, 상우는 무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어느새 잠에서 깬 듯한 김우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