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200)
그런 레이븐의 태도에 비스마르크 황제는 살짝 당황한 듯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레이븐, 이 새끼가.’
하지만, 노회한 정치인이자 대마법사인 비스마르크.
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허허. 정말 편하게 얘기하는군.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네, 그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소? 본인은 잘 모르겠소만.”
-기억 안나는가. 자네가 사라지기 전 제국의 수호검으로 명성을 떨칠 때를.
왠일인지 레이븐을 띄워주는 비스마르크 황제.
하지만, 불편한 자리에서 적대적인 사람이 칭찬을 하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법이다.
레이븐 역시 마음이 불편해졌지만, 황제의 말에 대답했다.
“…기억하오.”
-정말 기억하는가? 표정을 보고 자네가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영광이군. 이미 제국 제일의 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자네와는 다르게, 그 당시에 나는 궁정마법사셨던 아버지에 밑에서 수학하던 마법사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허허.
씨익 웃는 비스마르크 황제.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일세. 당시에 고작 소공자에 불과했던 내가 이렇게 황제가 되었네. 신기하지 않는가. 제국을 호령하던 제국의 수호검은 이렇게 변방에 머무르고 있고, 일개 마법사였던 나는 황제가 되었으니 말이야. 세월이 참 무상하다고 느껴지는군. 하하하.
능글맞게 웃는 비스마르크 황제.
사실 마법명가인 비스마르크 공작가의 소공자였다는 신분과, 그 당시에도 7클래스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던 비스마르크 황제였기에 일개 마법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검의 1인자이자 제국의 수호검이라 불렸던 레이븐과의 위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
그런 상황이 역전되어 지금은 황제와 그를 따라야 하는 신하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비스마르크 황제는 지금의 위상 차이를 대놓고 콕 집어서 레이븐의 속을 긁고 있었다.
이미 그의 머리에는 레이븐 영지와 될 수 있으면 최대한의 무력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계산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랜드 마스터? 좋다. 덤벼들어봐라. 개인의 무력에 한계가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마.’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었다.
일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초인이라도 인간은 인간.
결국 지치게 마련이다.
수천만, 수억 명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제국에서 인해전술을 펼친다면 그런 초인조차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온 사방이 적인 상태에서 쉴 수도 없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없게 되니까.
때문에 제국에 반역을 일으켜 역적이 되었던 대부분의 영웅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스마르크 황제 역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도발할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도 잘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황제라…. 아이작, 많이 컸구나.’
레이븐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황제 앞에서 뻣뻣하게 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황제의 힘으로 제국의 힘을 동원하여 우리를 억누르려 하겠지.’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초인들은 결국 무릎을 꿇거나,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이븐에게는 그의 제자, 상우가 있었다.
‘여차하면 맞붙거나, 지구로 도피해도 된다.’
그는 몇 안 되는 상우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미 30기를 넘어가는 상우의 분신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힘과 맞먹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뛰어난 게 분신들이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힘을 지닌 전력이 30기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게다가, 이 분신들은 7시간마다 재충전되었다!
전력을 다하면 쓰러져버리는 인간들과 달리, 계속 재충전할 수 있다는 것.
상우만 무사하다면 무한히 싸울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아공간을 활용하면 지구로 도망가는 것도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레이븐은 해볼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계산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나간 대답은 반대였다.
“그렇소. 그건 그만큼 황제께서 뛰어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일개 검쟁이인 소인과는 다르게 말이오.”
도전적인 어투와는 다르게, 그의 말에 담긴 내용은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그 말에 비스마르크 황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허허. 그런가. 본인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니 이거 영 쑥스럽군.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황제.
그는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에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와 반면에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는 레이븐.
레이븐은 왜 황제에 밑에 수그리고 들어간 걸까.
‘…제자가 살육을 벌일 리가 없지.’
그렇다.
전력상으로는 제국과 해볼만하다고 판단한 레이븐.
하지만, 지구에서 자란 자신의 제자의 성정은 이곳 타이베른과 달랐다.
살생을 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오던 소시민이었던 것.
때문에 만약 벌어질지 모를 수천만을 살해해야 하는 전쟁의 구렁텅이에 제자를 몰아세울 수 없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말이야.’
스승이라는 이유로, 제자에게 전투를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레이븐 영지에 닥친 상황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하는 레이븐이었다.
게다가 동생인 나이젤과 상의해본 바에 의하면 황제가 이렇게 조사단의 명목을 띤 사신단을 보내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큰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 거라 여겼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이미 해코지를 하려했으면 하르딘 황자가 레이븐 영지에 도착한 시점에 군대가 몰려왔을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레이븐의 판단은 옳았다.
-오랜만에 자네와 얘기하니 재미있군.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야. 허허.
하나 즐거워하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비스마르크 황제는 날카롭게 레이븐을 훑어보고 있었다.
비스마르크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공사가 다망하니 얘기를 서둘러야겠군. 흠흠, 내가 이렇게 조사단을 파견한 이유는 짐작할 거라 생각하네.
“하르딘 황자 때문이오?‘
-정확하네. 다만, ‘황자’가 아니라 반란 분자인 하르딘 유렌시아 때문이라고 해두지.
“…….”
말 꼬투리를 잡는 비스마르크 황제.
레이븐은 침묵을 지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는 말을 계속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하르딘 유렌시아는 이곳 레이븐 영지로 도주했네. 그리고 자네, 아니, 레이븐 영지는 하르딘을 잡으려던 비스마르크 기사단을 몰살시켰고 말이야. 그 증거는 이미 확보되어 있네. 베르샤엘 후작, 보여주게.
황제의 말에 통신구를 계속 들고 가만히 있던 베르샤엘 후작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아공간이 열리며 영상구 하나가 스르륵 튀어나왔다.
그리고 재생되는 영상구.
영상은 비스마르크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제르미의 시점으로 보였다.
하르딘 황자를 쇼크 마법으로 제압하고, 그 뒤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바레인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제르미.
그때,
스스슥-
서걱-
단 한순간에 목이 베어졌는지 시야가 마구 흔들리더니 반전하며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의 등을 비췄다.
그 검은 슈트의 남성은 제르미가 놓쳐서 쓰러지는 하르딘 황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보다시피 영상은 레이븐 영지의 내성 입구 앞에서 녹화된 것이라네. 그리고 마지막에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보이지. 그런데 이 친구가 자네의 제자라는 게 마탑의 분석이었네. 맞는가.
영상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얼마 전 황궁의 제전에서 신하들 앞에서 황제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한 것과 다르게 이미 증거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레이븐을 옭아맬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현재 한국의 국정원이나 미국의 CIA와 비슷한 역할을 유렌시아 제국에서는 마탑이 담당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비스마르크 공작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해오던 것으로, 루카스를 통해 지구의 문물을 접하게 된 비스마르크 황제가 정보부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마탑을 근간으로 정보부를 만들었다.
때문에 제국 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나통신 마법기기의 힘으로 실시간으로 모든 시각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마법기기의 소유자가 한번 몸격한 장면은 절대 놓치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이런 증거 장면을 확보하게 된 것.
그렇기에 비스마르크 황제는 확신을 담아 레이븐에게 물을 수 있었고.
증거 영상이 있을 거라 예상치 못했던 레이븐은 별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맞소.”
-역시 그렇군. 그렇다면 이게 반역의 죄를 물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그래. 카.이.젤. 레.이.븐.
비스마르크 황제가 레이븐의 이름을 힘주어 불렀다.
사실상 체크메이트나 다름없었다.
반역을 도왔다는 건 사실이었고, 이게 증거로 남아 있었으니까.
이제 황제의 판결에 따라 레이븐 영지의 운명이 결정될 터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모두가 겁에 질리게 마련.
하나, 레이븐도, 비스마르크 황제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황권을 강화하고 지지기반을 확립해야 하는 황제가 무리하게 전쟁을 벌이거나 토벌을 할리는 없으니까.
역사상 최단기간 동안 부임한 황제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때문에 무리한 요구로 무력충돌이 벌어질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그건 옛 황제에 대한 예우였을 뿐. 그를 도운 건 아닙니다.”
나이젤이 레이븐을 대신해 입을 열어, 하르딘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어필했다.
그 말에 비스마르크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군.
매섭게 노려보는 비스마르크 황제.
레이븐은 무표정하게 황제를 바라보았다.
-때문에 선처를 하기 어렵네. 반역의 죄는 일벌백계해야 두 번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선처를 베푸소서….”
나이젤이 고개를 숙였다.
레이븐 역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선처를 베푸소서….”
레이븐도 조용히 읊조렸다.
비스마르크 황제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졌다.
‘적당히 해라, 아이작.’
레이븐은 굴욕감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지금은 황제의 장단에 놀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연극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수백 년의 세월을 제국을 위해 헌신해왔던 레이븐 공작가에게 이런 사소한 일로 반역의 죄를 묻는다면 너무 매정한 처사라고 생각되는군. 그래서 반역의 죄는 묻지 않기로 하겠네.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비스마르크 황제.
“황공하옵니다. 폐하.”
나이젤이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고.
“훌륭하신 결정이옵니다. 폐하.”
베르샤엘 후작이 기꺼운 표정으로 황제의 결정에 옹호했다.
그렇게 대화는 정해진 수순을 향해 나아갔다.
어차피 그들이 둘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었으니.
하지만, 끝은 레이븐과 나이젤의 예상과는 살짝 달랐다.
-다만
비스마르크 황제의 말에 꼬투리가 달라붙었다.
왠지 불안해지는 레이븐.
그 불안은 적중했다.
-그냥 공짜로 죄를 묻지 않는 건 좀 그렇지 않는가? 나도 백성들과 귀족들에게 말할 명분이 필요하고 말이야.
결국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
레이븐과 나이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비스마르크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일세. 자네들에게 본인들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네.
“…그게 무엇이오?”
레이븐이 살짝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하나 그런 으르렁거림조차도 비스마르크 황제의 미소만 짙게 만들 뿐이었다.
-간단하네. 반역의 죄를 씻을 만한 공을 세우면 되지 않겠는가.
“…….”
목숨이 오고가는 반역의 죄.
그와 비견될 공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일들일 터.
레이븐의 표정이 썩어갔다.
-하하하. 이거 너무 질질 끌었나. 지루한 표정이군. 그럼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그리고 비스마르크 황제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정말 그에 준하는 일이었다.
-내가 갖고 싶은 게 있다네.
“뭡니까.”
-프로스트 스타를 가져오게.
황제가 하얗게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