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201)
레이븐, 나이젤, 그리고 황제의 말을 듣고 있던 조사단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프로스트 스타를…?’
프로스트 스타.
엘리멘탈 소드 중 하나이자, 물과 냉기의 속성을 지닌 검이었다.
엘프들에게 전해진 이 검은 사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샤미르 베르샤엘 후작이 보관하고 있었다.
크라니드의 대침공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나이젤이 물었다.
-그렇다고 들었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초룡 타이베른의 혼이 서린 절대무구를 이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초룡 타이베른.
타이베른 행성의 모티브가 된, 유렌시아 제국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서사에서는 항상 등장하곤 하던 에이션트 엘더 드래곤이었으니까.
이 드래곤은 자신의 드래곤 하트와 여러 속성의 드래곤들로부터 드래곤 하트를 얻어 4가지 속성을 띤 절대적인 무구, ‘엘리멘탈 소드’를 만들어냈다.
이후 인간으로 분하여 ‘타이베른 유렌시아’라는 이름으로 이 검과 함께 세상을 모험하고 주유하며 유렌시아 제국을 일궈냈다고 전해졌다.
즉, 현 유렌시아 제국의 황실은 드래곤의 후손인 셈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동료였던 인간, 드워프, 오크, 엘프들에게 엘리멘탈 소드를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져왔던 것이었다.
비스마르크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물과 얼음을 다루는 전설의 검. 짐은 대침공 초장기 때 여기 베르샤엘 후작이 프로스트 스타로 ‘블리자드’를 펼쳤을 때를 기억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북방의 추위가 펼쳐지는 모습을. 정말 장관이었지. 베르샤엘 후작도 기억하는가?
“…예. 기억합니다.”
-허허. 당사자이니 모를 수가 없겠지. 그래서 그때 품었던 마음이 있다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쯤은 프로스트 스타를 사용해보고 싶다고 말이지. 근데 이게 웬걸. 모두가 알듯이 프로스트 스타는 사라졌다네. 그 이유는 웬 멍청한 드래곤이 프로스트 스타를 지닌 채로 죽어버렸기 때문이지.
멸종해버린 드래곤들 보고 서슴없이 멍청하다고 얘기하는 비스마르크 황제.
하지만, 표현은 격했어도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대침공 초창기만 해도 코어 원정대가 있었다.
던전의 코어를 파괴해 몬스터들을 생산해내는 던전 코어를 없애려 했던 이들.
모든 종족이 규합된 이 원정대에는 당연히 지상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들도 있었다.
그리고, 프로스트 스타를 잃어버렸을 당시에 샤미르는 엘프 종족의 신물이나 다름없었던 프로스트 스타를 화이트 드래곤에게 빌려주게 되었다.
‘전 인류를 위해서였지.’
샤미르 베르샤엘 후작은 속이 쓰리는 걸 느꼈다.
당시에는 신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 인류의 생사가 달린 문제.
한때는 조화의 종족이라 불렸지만, 편협한 안목과 아집 때문에 다른 종족들과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엘프들이었음에도, 이 거대한 명제 앞에서는 한발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냉기속성의 마법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화이트 드래곤이 프로스트 스타를 가지고 나선 것이었다.
‘그걸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몰랐다.’
하나, 코어가 파괴되면서 등장하는 파수꾼.
그때 등장한 극강의 파수꾼에 의해 원정대의 드래곤들과 영웅들이 궤멸하면서 프로스트 스타는 결계 바깥 저 멀리 남겨지게 되었다.
무려 수십 년의 세월을.
이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짐은 항상 생각해왔네. 만약, 나에게 여유가 생긴다면 사라진 프로스트 스타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말이야.
“그러셨구료….”
레이븐이 가만히 맞장구쳤다.
이러한 사실들은 레이븐도 알고 있었다.
이건 그가 지구에 떨어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프로스트 스타를 가져오라… 흠.’
그랬기에 레이븐은 황제가 내린 명령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잘 알았다.
전 종족에서 모인 수십 명의 영웅들이 힘을 합쳤던 원정대로도 실패했던 일을 고작 일개 영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말이었으니.
즉,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는 황제의 명령은 일종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하나, 레이븐은 속으로 씨익 웃었다.
‘해볼 만하지.’
그는 진정으로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자신에게는 제자, 상우가 있었으니까.
‘제자가 가진 분신의 힘이라면 인명 피해는 걱정 없다.’
원정이 되든 안 되든, 분신으로 계속 레이드와 공략을 시도한다면?
지금도 계속 성장 중인 상우와 분신들이 계속 트라이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프로스트 스타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레이븐 영지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황제의 뻔한 의도를 성공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레이븐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물론 표정은 굳은 상태로 연기 중이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황제에게 뻣뻣하게 응하는 레이븐.
비스마르크 황제 역시 자신이 편하게 하라고 했음에도 그 뻣뻣한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 들려오자 환하게 웃었다.
-정말인가? 허허허.
“정말이오. 황제의 명을 누가 거절하겠소. 반드시 가져오겠소.”
-기대하지. 레이븐.
“기대해도 좋소. 하지만 말미를 주시오.”
-그래. 얼마나 필요한가.
“준비 기간도 있을 테니, 적어도 일 년은 필요하오.”
-흠… 일 년은 너무 길군. 천하의 레이븐 공작가의 힘이라면 한 달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레이븐 공작.
황제가 레이븐이 아닌 나이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앞선 레이븐의 결정에 살짝 벙찐 상태로 어버버하고 있었던 나이젤.
레이븐이 없는 동안 레이븐 공작가를 이끌어왔던 그 역시 현 공작이기 때문일까.
‘형님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아마도 그건 정상우일 터.
어느 정도 판단이 선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계산을 마친 뒤 대답했다.
“원정을 떠나기 위한 보급 물자를 모으는 시간과 프로스트 스타가 떨어진 지점에 대한 정보 수집, 원정에 대한 계획 수립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습니다. 한 달의 기한은 너무 촉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흐음…. 하긴 한 달은 짧긴 짧지. 알았네. 그럼 삼 개월로 하지.
“삼 개월도 너무 짧습니다. 폐하. 적어도 오 개월은 되어야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논리 정연한 나이젤의 말에 수긍하는 황제.
그 역시 말도 안 되게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미 레이븐 공작가가 프로스트 스타를 되찾아오는 명령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게임은 끝났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냥 던져본 걸 덥썩 물 줄이야. 레이븐도 한물갔군.’
하나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겐 아직 남은 카드가 한 장 더 있었으니까.
-알겠네. 그럼 더 지원해주지.
“어떤 지원입니까?”
-여기 베르샤엘 후작, 그의 힘을 빌려주겠네.
비스마르크 황제의 말에 베르샤엘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무슨… 이러려고 나를 조사단에 포함시킨 것인가!’
베르샤엘 후작은 내심 조사단에 가는 것도 께름칙하게 여겼었다.
그랬었는데 결국 비스마르크 황제의 암수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베르샤엘 후작은 침착하게 대응하려 했다.
“폐하, 저희는 황도 내에 기반이 있음으로 결계 바깥에 대한 정보력과 지원 능력이 부족하옵니다.”
-허허, 베르샤엘 후작. 굉장히 겸손하군. 수천 년의 세월을 숲을 지배해오던 엘프들이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제국의 암적으로 자리 잡은 모든 정보길드들은 쥐구멍에 숨어야겠구만. 허허허. 그리고 대침공 당시 최고의 정찰력을 갖춘 인재들은 항상 엘프쪽에서 나왔지. 너무 겸손해하지 말게.
“…….”
겸손해하지 말라는 황제의 말.
더 이상 빼지 말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이런….’
베르샤엘 후작의 안색이 창백해져갔다.
상대는 반란을 통해 황제의 지위에 오른 인물.
황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숙청도 불사할 인물이었다.
-대답이 없군. 싫은가.
다시 한번 전해지는 압박.
통신구를 통해 보이는 영상일 뿐이었지만, 그 음성에는 알게 모르게 살기가 은은히 전해져왔다.
베르샤엘 후작은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 대답에 비스마르크 황제가 환하게 웃었다.
-좋군. 내 베르샤엘 후작만 믿겠네.
그 모습을 보면서 접객실 내에서 황제의 전언을 듣고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엘프도 망했군.’
레이븐과 나이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흡족하게 협상을 이끌어간 비스마르크 황제.
-자, 레이븐 공작.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된 것 같군. 이제 삼 개월이면 되겠는가.
“…가능할 거 같습니다. 폐하.”
-가능할 거 같다라. 영 자신이 없군. 레이븐 공작가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구려.”
“송구하옵니다. 폐하.”
고개를 조아리는 나이젤.
황제의 비꼼에도 고개를 숙일 뿐인 나이젤이었다.
비스마르크 황제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송구할 일은 아니네. 그냥 그랬다는 것뿐이니.
“…….”
-아무튼 이렇게 결정이 된 것 같군. 삼 개월의 기간 동안 베르샤엘 후작가와 힘을 합쳐 프로스트 스타를 가져오게. 그러면 내, 하르딘 황자를 숨겨준 일에 대해서는 넘어가주지.
“…알겠습니다. 폐하.”
-왠지 짐이 무거운 일을 맡긴 거 같아 마음이 그리 좋지 않군. 혹여 필요한 게 있으면 황실에 요청하게. 자세한 내용은 여기 베르샤엘 후작이랑 얘기해보고.
“예.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얘기는 끝난 거 같군. 언제 한 번 황궁으로 올라오게. 곧 즉위식도 거행할 예정이니. 그때가 좋겠구만. 황도로 오면 앞으로의 시국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군.
“예. 폐하.”
그렇게 협상이 일단락 되고.
그렇게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간 이후 통신은 끊겼다.
정적이 맴도는 접객실.
베르샤엘 후작이 통신구를 품으로 수습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황제 페하의 전언은 끝났소.”
“그렇군요.”
눈빛이 교환되는 두 사람.
나이젤이 입을 열었다.
“그럼 조사단의 역할은 끝난 것입니까?”
“그렇소. 하르딘 황자를 숨겨줬는지 조사하고자 했지만, 이미 황제 폐하께서는 모든 증거를 확보하고 계셨구려. 허허.”
어두운 표정으로 베르샤엘 후작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허탈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는 하르딘 황자를 레이븐 영지가 숨겨줬다는 것에 대한 정보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던 상태였다.
그런데 웬걸.
황제는 이미 이에 대한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엘프가 최고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건가.’
사실 방금 전 황제가 띄워줬던 것처럼 유렌시아 제국에 편입된 이후로 엘프들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인간에 비해 몇 배나 가볍고 빠른 민첩함과, 정령의 힘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르샤엘 후작의 판단으로는 황제는 이미 마법의 힘으로 제국의 이곳저곳을 실시간으로 감시 중인 듯했다.
‘무서운 남자구나… 정말로….’
한때는 비스마르크 공작가와의 연계로 지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빠르게 성장해 나갔던 그들.
하지만, 친구로 여겼던 비스마르크 공작가는 황제가 되어 자신들마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베르샤엘 후작은 그렇게 무기력함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 그런 게 드러났던 것일까.
나이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베르샤엘 후작님. 그럼 여기서 자리를 마무리하시죠. 긴 얘기가 될 거 같으니까요.”
똑같이 사형선고를 받은 나이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젤의 불안한 얼굴에는 일말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 표정을 보자 베르샤엘 후작 역시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어깨에는 전 엘프들의 운명이 달려 있었으니까.
“알겠소. 조사단원들에게 숙소를 안내해 줄 수 있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귀족들로 구성된 조사단 인력을 숙소로 안내한 이후.
베르샤엘 후작은 나이젤과 레이븐을 따라서 레이븐 공작가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남자가 이미 자리한 상태였다.
이쪽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타이트한 검은색 슈트를 입고 편하게 소파에 누워 있던 남자.
그가 기척을 느꼈는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어, 끝났어요?
바로 상우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