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혈령대법
수십 여장 높이에 은색 가면을 쓴 녹색 장포가 거대한 작살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작살은 전체가 청록색에 은은한 검은 기운이 감돌고 있어서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를 확인한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귀령문 소문주!”
“하하. 날 알아보다니 따로 소개할 일도 없겠구나. 제 발로 진법 안으로 들어가 조금이라도 목숨을 연명하겠느냐 아니면 내 손에 당장 혼을 뽑히겠느냐!”
왕선의 두 눈에 깃든 핏빛은 이미 몇 배나 짙어져 있었다. 온통 붉은 색을 띠는 눈동자에서는 짐승 같은 기운이 맴돌았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상대가 어떤 기이한 비밀 공법을 익혔는지 알 수 없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가 진법을 언급하자 슬쩍 수사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쪽 상황을 확인하자 얼굴빛이 더 안 좋아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묵색의 광막이 백 여리 범위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그 빛의 장막 안에는 짙은 묵색 안개가 가득해서 안의 모습은커녕 소리조차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파악한 한립이 다시 귀령문 소주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분명 겉으로는 축기기 중기의 모습이었으나 분명 엄청난 적수일 터였다. 조금만 경계심을 늦추었다가는 영원히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한립은 바로 손을 뻗어 하얀 빛을 쏘아냈다. 그 백광은 바람을 타고는 순식간에 용의 비닐방패로 변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풍주를 뒤 쪽 공간으로 보내 떠있게 했다.
한립의 계획대로라면 어서 신풍주를 타고 달아나야 했다. 이곳에서 소문주와 싸움을 벌이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 소문주를 이길 수도 없었고 혹시나 천재일우의 기회로 상대를 꺾어도 수많은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몇 십 명을 상대해 이길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당장 몸을 빼 황풍곡에 연가와 귀령문이 작당한 일을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신의를 다하는 것이었다.
왕선은 한립이 하는 냥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웃어대는지 상대가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망가려느냐? 감히 내 앞에서 도망이라니, 당장 죽여주마!”
귀령문 소주가 돌연 밟고 있던 작살을 위에서 회전하니 선홍색 안개가 그의 몸에서 분출되었다.
그 안개들이 뭉쳐 금세 십여 장에 이르는 핏빛 구름이 되어 흉흉한 기세로 한립을 덮치려 했다. 한립은 지체 없이 신풍주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을 갈랐다.
“하하하하! 내 혈령대법의 속도 앞에서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왕선의 광소가 한립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만은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혈령대법의 속도가 신풍주가 완전히 능력을 개방한 것보다도 빠른 것 같아 그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한 줄기 빛이 된 한립과 그 뒤를 따르는 핏빛 구름이 순식간에 백여 리를 날아왔지만 둘 사이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한립은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그를 뒤쫓는 왕선은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 혈령대법(血靈大法)의 속도는 마도육종(魔道六宗) 중 최고라 할 수는 없었지만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그러니 평범한 최상급 법기보다는 훨씬 빨랐다.
그런데 그가 전속력으로 쫓는데도 상대의 작은 나룻배를 따라 잡지 못하니 놀라운 동시에 상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짙어졌다.
한립은 이대로 미친 듯이 달아나기만 해서는 금세 상대에게 붙잡힐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했다.
저물대를 뒤진 그는 잇달아 화구를 쏟아 내는 초급 부적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 중 여러 장을 뒤 쪽으로 뿌리니 곧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결과를 확인했다. 그 결과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던 핏빛 구름의 앞이 조금 희미해져 소문주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의외에 성과에 기분이 나아진 한립은 바로 남은 부적들을 던지려는데 혈운(血云) 안에 있던 소문주의 손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 나왔다. 뜻밖에도 소문주가 아까 타고 있던 작살형 법기가 한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부적의 목표를 바꿔 그 작살을 향해 뿌렸다. 스무 번 정도 연이은 화구의 폭발이 부딪쳐 오니 검은 기운을 두른 작살은 한립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렇게 찰나의 시간 동안 소문주의 핏빛 구름은 벌써 원래 모습을 되찾아버렸다.
그 순간 왕선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핏빛 구름이 커지며 허공을 엎어버렸다. 동시에 속도 역시 몇 배나 빨라져 신풍주의 전방에서 길을 막고는 붉은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신풍주가 핏빛 구름과 충돌하기 직전 겨우 멈춰선 한립은 서둘러 저물대에서 짐승의 발톱 모양의 검은 법기를 꺼냈다.
“가거라!”
그의 뒤에서 소리 없이 습격해 오던 녹색 작살을 향해 시선을 준 한립이 그것을 뒤쪽으로 쏘아 보냈다.
일단 그의 손을 떠난 법기는 바로 몸집을 키워 녹색 작살을 할퀴려 했다. 그러나 바로 녹색 작살에서 검은 기운들이 방출되어 거대한 발톱을 휘감으니 옴짝달싹 할 수 없어져 버렸다.
이를 확인한 한립이 수결을 맺자 이번에는 발톱에서 검은 빛이 방출돼 작살의 검은 기운들을 서걱서걱 잘라냈다.
“역시 평범한 최상급 법기가 아니었구나! 벽음차(碧陰叉)의 망령들을 죽일 정도라니 내가 직접 나선 것이 헛되지 않겠어.”
핏빛 구름이 술렁이더니, 어금니를 드러내며 발톱을 휘두르는 대형 핏빛 괴물 두 마리가 뛰쳐나왔다. 이 괴물들은 짧은 뿔이 달려 있었고 뒤로는 날카로운 꼬리를 세우고 있었으며 두 눈이 온통 붉은 것이 소문주와 같은 모습이었다.
“저건?”
요물들을 보자마자 이야기로만 듣던 악귀를 떠올리며 소름이 돋은 한립은 당장 오룡탈을 보내 그것들을 산산조각 냈다. 귀물들은 핏빛 구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생각 보다 상대하기 쉽잖아? ’
한립이 막 안심을 하려는데 왕선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너무 일찍 좋아하지 말거라. 내 혈령대법의 혈귀(血鬼)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없앨 수 없으니 말이야.”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다짜고짜 법기를 혈운으로 쏘아 보내 오룡탈이 그것을 뚫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공격이 성공한 줄 알고 기뻐하던 한립이 거대한 발톱이 그곳에 붙잡혀 서서히 통제력을 잃자 서둘러 법력을 쏟아 부어 오룡탈을 불러들였다.
“오! 영혈(靈血)에 오염되지 않고 버티다니 그 법기가 제법 탐나기 시작하는 구나!”
잠시 놀라던 왕선도 탐욕을 드러냈다. 왕선의 말과 함께 사방의 핏빛 구름이 들끓기 시작하며 혈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이 앞다퉈 한립을 향해 달려든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안색이 조금 굳어있긴 했으나 한립도 오룡탈을 이용해 물 샐 틈 없는 방어에 나섰다. 혈귀들이 몰려들 때마다 거대한 발톱에 의해서 산산조각 났고 본래의 붉은 안개로 돌아갔다.
그러나 백 마리가 넘는 혈귀를 죽이는 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괴물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귀령문 소주는 그의 법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저물대를 뒤진 한립이 초급 중하계 부적더미를 꺼내 들었는데 그 부적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흔 장은 넘어 보였다.
이어서 단숨에 그것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니 화구, 얼음 창 같은 법술들이 하늘을 뒤 덮으며 쏘아져 나갔다.
게다가 한립이 순식간에 생성한 화염들 역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아까 연이은 화구에 핏빛 구름이 희미해 졌던 것을 기억해둔 그였다. 이 정도 무차별 난사면 분명히 그가 도망갈 구멍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꿈도 꾸지 말거라!”
왕선이 서늘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사실 그도 상대가 저렇게 많은 부적을 들고 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축기기 선사에게 초급 부적들이란 상계를 제외하고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의외였다.
그러나 아무리 오만 방자한 귀령문의 소문주라도 저 무차별 폭격을 핏빛 구름이 맞게 할 수는 없었다.
왕선이 법술을 외자 검은 해골들이 구름 속에서 등장했다. 그들은 바로 입을 벌려 검은 기운을 분출했고 그 몇 줄기의 검은 기운이 한립의 부적 공격들을 거의 다 막아내 잠시 동안의 폭발음이 귀를 울린 후에도 핏빛 구름은 멀쩡한 모습을 유지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한립이 자기도 모르게 그 해골들에게 시선을 주는데 또 다시 왕선의 목소리와 함께 혈운에서 혈귀들이 뛰쳐나왔다.
“아직도 살아 도망갈 생각이더냐? 얌전히 내 혈귀들의 밥이 되거라! 네가 피범벅이 되어 뜯어 먹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구나! 하하핫!”
귀령문 소문주는 웃음과 함께 광기를 드러냈다.
“미친 놈!”
한립은 오룡탈을 조종해 혈귀들을 상대하는 한편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대책을 궁리했다. 그는 이미 한 손에 중계 영석을 쥐고 법력을 보충하는 중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혈귀를 모두 잡아 죽이는 것은 축기기 초기의 수사라도 결국엔 법력이 고갈되고 말 일이었다.
‘펑!’
그러던 중 갑자기 푸른 안개가 생겨나며 한립이 그 안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점차 세력을 넓혀 혈귀들 역시 가두어 버렸고 핏빛 구름과도 뒤섞이기 시작했다.
잠시 가슴이 철렁했던 왕선이 자신의 혈운이 그 푸른 안개를 흡수해 버리자 다시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흡수를 당해도 푸른 안개는 옅어질 기미가 없어 그 안에서 한립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 *
여전히 푸른 안개는 몽글몽글 피어올라 그 안에서 어떤 형상이나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혈귀(血鬼)들은 그 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가 산산조각 나곤 했다.
이제 왕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수결을 맺으니 핏빛 구름 속을 떠돌던 해골들이 입을 벌리며 수십 개의 검은 광선을 분출했다. 목표는 한립이 있을 거라 여겨지는 푸른 안개의 정중앙이었다.
‘퍼퍼펑!’
안개 속에서 하얀 빛이 비추더니 다가오는 검은 광선과 격돌했다. 귀령문 소문주는 그 휘황찬란한 빛에 당황하는 듯 했으나 한립이 처음에 꺼내 들었던 새하얀 비늘 방패를 떠올렸다.
“손에 넣을 최상급 법기들을 생각해서 피를 좀 봐야겠구나. 네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일이니까.’
왕선은 오른손 식지를 입으로 가져가 깨물었고 빛깔이 짙은 핏방울이 맺히자 그것을 혈운에 떨어뜨렸다. 그 후 두 손으로 핏빛 구름을 휘저으며 법력을 불어넣었다. 혈귀들은 자연스럽게 그 붉은 구름 속으로 흡수되었다.
푸른색과 붉은 색이 섞여 들어가며 핏빛 구름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때 한립이 있는 곳에서는 거대한 흰색 빛의 방어막이 생겨났다. 그 중심에는 하얀 비늘 방패가 있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한립은 그 가운데서 두 손으로 놀랄 만한 황색 빛을 뿜어내는 작은 도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반짝이는 부적을 들어 공격을 개시할 기세였다. 게다가 그의 옆에 푸른색과 붉은 색을 띠는 원들이 떠서 계속 운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이 모든 것이 왕선의 눈에 들어왔다.
“너…….”
그러나 귀령문 소문주는 비웃었다. 몇 마디 조롱이라도 던질 태세였는데 첫 글자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한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도는 수 장에 이르는 눈부신 황색 빛으로 변해 왕선을 행해 뿜어졌고 또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부적은 공중에서 맹렬한 화염들로 이루어진 화룡(火龍)이 되어 기습해 왔다.
“법기는 내 혈령대법에는 소용이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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