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대나이령과 고대 전송진
눈을 깜빡이던 한립이 재빨리 옥으로 만든 서책을 꺼내 전송진의 양식과 문양 등을 복사했다. 이것을 고칠 수 있을 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한립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다시 거대한 동굴을 살피며 빼먹은 것이 없나 점검했다. 그 결과 거대한 돌기둥 뒤편에서 투명한 알을 두 개나 발견했다. 주먹만 한 알들을 보자마자 한립은 뛸 듯이 기뻤다. 그것은 저 거미 괴물의 알이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 요수의 무서움을 느낀 그가 이런 기회를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그는 저물대에서 영수를 담는 가죽 주머니를 꺼내 거미의 알을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리고 더욱 세심하게 나머지 공간을 살폈으나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거미 요수의 시체를 싹둑싹둑 잘라 부위별로 저물대에 담고는 선악과 려천몽 등 수사들의 시신을 화구로 태워 묻었다.
이어서 해골을 태우려 했으나 화염이 지나간 후에 해골에게서 일고여덟 개의 오색찬란한 작은 구슬이 응결되어 나왔다.
이제 이곳을 떠날 일만 남았으나 누군가 여길 발견하고 다시 전송진을 망가뜨릴 수 있었기에 입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제 밖에서는 동굴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은밀한 표시를 해두어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한참을 가고서야 겨우 종유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립은 아직 마도인들이 이곳을 돌아다닐까 염려되어 지체 없이 신풍주를 타고 태악산맥으로 달아났다.
그 후로는 조용한 나날이었다. 7일 만에 황풍곡에 돌아온 그는 일단 문내의 당직을 맡은 관사에게 그가 겪은 일을 보고한 후 거처로 돌아왔다.
이미 두 번째 대전이 시작된 후였다. 게다가 아직 초반이지만 다른 국가에서 보내준 원군으로 인해 마도육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풍곡 분위기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첫 번째 대전처럼 비관적이지 않았다.
돌아와 거처가 이전과 같은 모습임을 확인한 그는 일단 숨을 돌렸다. 사실 다시 징병 당해 어디론가 보내질 수 있어 지금 문내로 돌아오는 것이 현명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칠대선파는 전투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숨는 자를 엄하게 벌하고 있었다.
그의 예상에 따르면 마도와 정도가 동시에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기에 천남 지역 어디라도 평화로울 수 없었다.
아직은 영향권에 속하지 않았지만 전란에 휘말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왕 그럴 바에야 월국에 있는 것이 나았다.
한립은 거처로 돌아와 제일 먼저 거미 알을 영기의 샘 안에 담가놓았다. 그곳에서 서서히 영기를 빨아들여 부화를 도우려는 것이다.
이어서 바로 이틀간 폐관수련에 들어가 대연결 제 일성을 연성하는데 성공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한참 동안이나 애를 먹이던 청원검결 역시 진척이 있어 오성에 이르며 한립은 명실상부 축기기 중기 수사가 되었다.
경사였다. 어쨌든 그의 수행이 높아질수록 살아남을 가능성도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문파로 복귀한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어떤 임무도 주어지지 않아 그를 은근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으면 늘 성가시거나 위험한 일이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미 마도와 전쟁을 시작한 시점에 안전한 임무는 없었다. 영석 광산을 지키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로는 어떤 임무든 개의치 않았다.
이 같은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도 이내 차분해졌다. 이왕 시간이 주어졌으니 대나이령이 어떤 물건인지 정체를 밝혀 보기로 했다.
일단은 사부 이화원과 홍불 쪽에 동훤하의 일을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결단기 수사인 그들도 임무를 부여 받아 문내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풍곡 내의 천지각(天知閣)을 찾아가 이틀 간 찾아본 끝에 라는 서적에서 대나이령(大挪移令)이 기록된 문서를 발견했다.
서책에 따르면 이 남색의 반짝이는 영패는 놀랍게도 고대의 수사들이 거리를 이동할 때 필수적으로 구비해놓았던 법기라고 했다.
대나이령만 있으면 엄청난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하고도 시공간의 차이에서 만들어지는 압력에 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송 거리가 짧으면 그 압력도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기에 겨우 악록전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송진에서는 한 번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전송진은 겨우 백여 리를 가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고대 전송진은 천 리 혹은 만 리를 갔다 하니 그 성능을 비교해볼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전송진은 가치가 높아 일가 혹은 문파에 기껏해야 세, 네 개를 보유할 뿐이었다.
한립은 대나이령의 용도를 알고 나니 그 동굴에 숨겨두고 온 것이 고대의 전송진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이 추측에 그의 가슴이 뛰었다.
만일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대나이령과 그 고대의 전송진을 이용해 최소한 천 리 밖까지 이동할 수 있다.
그러면 칠대선파와 마도육종이 다투는 이 혼돈의 나날을 끝내고 완전히 새로운 지역으로 가 수련을 쌓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고대 전송진과 관련된 서적을 뒤지며 그것을 고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며칠 동안 찾아보아도 고대 전송진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한립의 머릿속에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그가 떠올린 이는 제운소였다. 제운소의 진법사(陣法師) 친구는 전도오행진(顚倒五行陣)에 정통한 것으로 보아 진법에 조예가 깊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전송진도 결국에는 일종의 진법이니 그 친구가 이를 수리해 낼 수도 있다.
거처로 돌아오니 거미의 알이 커져 있었다. 영안의 샘이 부화를 촉진시킨 것이다. 이에 한립은 요수의 알이나 새끼를 통제하는 진법을 그려 그곳에 피를 몇 방울 떨어트렸다.
그러자 진법이 발동되며 핏방울들이 알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다시 알을 영안의 샘으로 돌려놓는데 부적이 날아들어 의사전으로 모이라는 명을 전했다. 새로운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 * *
치열한 전투가 한창인 차기국(車騎國) 국경 금고원(金鼓原)의 돌무지에서 한립의 오룡탈 한 쌍이 화사한 묵빛과 금부자모인의 칼날을 이용해 축기기 초기 귀령문 제자 하나를 미친 듯 공격하고 있었다.
비록 상대는 살기가 감도는 짙은 흑빛으로 몸을 감싸고 해골들을 다루고 있었지만 한립의 폭풍 같은 공격에 곧 여러 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는 익숙하게 상대의 저물대를 손에 넣은 그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이미 수확도 있었고 날도 저물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보통 마도와 선파의 결단기 수사들이 활동할 시간이었다.
괜히 그들의 싸움에 걸려 들었다가는 죽은 목숨이었다. 한립은 자신이 목격했던 결단기 수사들의 일전을 떠올리고 몸을 떨었다.
1년 전, 그는 명을 받들어 이곳으로 영석을 운송해왔고 그 뒤로 쭉 한곳에 머물며 칠대문파의 고급 화살받이로 활동하고 있었다.
몇 차례나 수천 명 이상 규모의 전투에 징집되었고 방금 전처럼 금고원에 흩어져 있는 적들과 격투를 벌이는 일도 허다했다.
마도육종과 칠대선파의 두 번째 전면전이 무승부로 끝난 후 금고원을 중심에 두고 매월 큰 싸움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작은 싸움을 하는 이상한 상황으로 변해갔다.
큰 싸움은 아무리 격렬해도 사상자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정말 목숨을 내건 자가 아니면 위급할 때 결계 속으로 숨을 수 있었다.
작은 싸움에서는 결단기 수사와 축기기 수사의 실력 차가 너무 컸기에 새벽녘부터 저녁 무렵까지만 축기기 수사들이 서로를 죽고 죽였고 밤이 되면 결단기 수사들이 나와 싸움을 벌였다.
결단기 수사들이 일대일로 싸우면 상대를 이기거나 심지어 중상을 입히는 것은 가능했지만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어쨌든 결단기까지 이르렀다면 전력을 다해 달아나면 속도가 엄청 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니 지난 1년간 서로 축기기 수사를 수백이나 잃었으나 결단기 수사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연기기 수사들은 법력이 낮은 탓에 보조 활동을 할 뿐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년 넘게 쉼 없이 기습과 전투가 이어지니 더 이상은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모두 기를 쓰고 상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최대한 자신의 역량을 보전하려 노력했는데 최후의 결전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한립은 일단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방문을 굳게 닫고 소금원진(小禁元陣)을 칠 수 있는 깃발들을 이용해 결계를 쳤다. 이제 오늘 얻은 수확을 살펴볼 차례였다.
“또 해골이랑 깃발만 잔뜩 있네! 귀령문 놈들이 아니면 이런 이상한 걸 누가 쓴다고. 오, 이 검은 좀 괜찮은 걸? 또…….”
잡다한 물건들을 뒤적거리던 그는 순식간에 쓸 만한 법기나 물건들은 남겨두고 값어치가 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은 따로 한 저물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저물대를 챙겨서는 결계를 풀고 거처를 나섰다.
그는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가서 수많은 방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 나무집은 면적이 일흔 장 가량 되었으며 집 전체를 황금색 도료로 칠해놓아 노을빛을 받으며 반짝일 때는 순금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수십 명의 수사들이 노점을 차리고 거래를 하고 있었고 물건을 구경을 하거나 흥정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립이 능숙하게 몇몇 점포로 가 저물대 안의 물건들을 교환하니 곧 거의 백 개나 되는 영석이 손에 들어왔다.
그는 다시 이 안에서 가장 큰 노점으로 향했다. 이곳은 다른 곳의 세, 네 배 되는 규모로 후덕한 체격의 축기기 수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한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석이 든 저물대를 뚱뚱한 수사에게 건넸다.
“진 형, 영석 오백 개니 이제 룡음초(龍吟草)초로 바꿀 수 있겠죠?”
“하하! 한 사제구만. 이렇게나 빨리 영석을 모아 오다니 정말 대단해!”
그가 한립을 보고는 미소를 띠고 저물대를 받아 정신을 집중해 영석의 수량을 확인했다.
“자, 룡음초 잘 챙겨가시게!”
진 형이 활짝 웃으며 옥함을 건넸다. 옥함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한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부탁했던 약방에 관한 소식은 없고요? 약방이기만 하면 가격은 잘 쳐줄게요.”
“사제, 약방은 원래 귀한 데다 축기기 수사가 가지고 있다면 보물이나 다름 없는데 그걸 누가 팔겠어. 게다가 축기기에도 효과가 있는 단약 약방이라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네만 소득이 없었네.”
뚱보 진 형이 난색을 표하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실망한 한립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진 형이 이미 두 장이나 팔아준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거야 거의 쓸모없는 것이어서 나도 몇 년간 버리지 못해 가지고 다니던 것이니 그랬지. 사제가 그걸 사고 싶다고 했을 땐 정말 놀랐다고! 아무리 약방을 개량하려 한다지만 그러려면 시간이나 정성이 너무 들지 않나! 거의 몇 대에 걸쳐 연구해도 겨우 성공할까 말까인데.”
한립의 말에 진 형은 대단하다는 눈치였다.
이곳에 머물면서 진영 내에 임시 거래소가 있다는 소식에 한립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원료, 약초, 법기, 공법 등의 희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이곳에서 그동안 찾아 헤매던 약방의 나머지 재료를 모두 모았다. 이제 돌아가 약초를 숙성시켜 단약만 만든다면 다시 한 번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뚱보 사내의 점포에서는 거의 천 개에 달하는 영석을 소비해 오매불망하던 약방을 두 장이나 구했으니 엄청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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