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요괴로 변하다
이어서 소왕야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짙어지더니 바람처럼 허공을 박차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달아다는데 가만히 있을 한립이 아니었다. 몸이 번뜩이더니 어느새 소왕야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립은 손을 뻗어 푸른빛의 거대한 검을 방출했다.
그것을 본 소왕야는 조용히 웃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살기는 법기들을 오염시켜 무력화시켰기에 어떤 법기도 두렵지 않았다.
이번 공격을 기회로 최대한 멀리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한립의 머리를 뛰어넘어가려 했다.
“막지 말고 도망치거라!”
한립에게 붙들려 있던 왕 총관이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소리쳤다. 어떻게든 소왕야를 도우려 한 것 같았지만 너무 늦은 충고였다.
이 말을 들은 소왕야가 무의식중에 방향을 틀어 푸른 검을 피하려 했으나 거검이 돌연 방향을 틀어 그의 다리를 스쳤다. 놀랍게도 그가 믿던 살기(煞氣)는 검의 날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소왕야는 정신을 잃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기절해 버린 것이다.
한립은 그가 쓰러지자 자신이 실수로 상대를 죽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다만 그가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소왕야와 왕 총관을 데리고 몽산사우에게로 날아갔다.
대승을 거둔 그는 지금 아주 유쾌하면서도 얼떨떨했다.
분명 소왕야와 왕 총관을 보았을 때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데 이렇게 쉽게 꺾을 상대였다면 자신의 감각이 틀렸다는 것 아닌가!
한립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제 멀리서 이곳 정황을 엿보던 흑의인들 마저 도망가고 있었다. 어차피 몽산사우처럼 외부제자에 불과하니 쫓을 가치도 없었다.
몽산사우 앞에 도착한 한립은 그들에게 사로잡은 두 명을 던져주었다.
“알아낼 것이 있으니 지혈을 해두거라.”
청년과 노인이 바로 나서 한립의 명을 받았다.
그들은 겉으로만 예의바르게 구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한립을 경외하고 있었다. 방금 그가 보여준 능력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터였다.
“선배님의 현묘한 공법에 새로운 세상을 본 듯합니다.”
노인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새로운 세상은 무슨, 잔재주에 불과하다.”
몽산사우의 존경스럽다는 눈빛에 흡족한 한립이었지만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 척 했다.
‘댕! 땡!’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려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 퍼져 한립의 주의를 끌었다. 몽산사우도 서둘러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겼고, 중년여인이 다시 한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서 보셔야겠습니다! 법기가!”
이미 그 쪽을 살피던 한립은 빛 덩이 거한을 가둬둔 차천종(遮天鐘)의 이상을 발견했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차천종의 표면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니 벌써 종의 형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동종의 노란 빛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머리 거한이 당장이라도 법기를 탈출할 기세였다.
한립도 몹시 놀랐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차천종이 더 이상 상대를 가둬둘 수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결정을 내린 그는 머리 위를 맴돌던 열한 개의 법기를 모두 거두고 열두 개의 꼭두각시 야수를 풀어놓았다. 그것들은 나란히 서서 한립과 몽산사우의 앞을 막아섰다.
‘쩡!’
준비를 마치자마자 차천종 법기가 박살나며 안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저게 뭐죠?”
중년여인이 대경실색해 신음했다. 그녀 옆의 다른 세 사람도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립조차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드러냈다. 종에서 탈출한 대머리 거한은 체형이나 얼굴이 완전 요괴처럼 변해있었다.
두 장은 될 듯한 키에 날카로운 송곳니는 물론이고 머리엔 검은 뿔까지 솟아 있었다. 그 뒤로 철갑으로 된 긴 꼬리가 늘어져 있었으며 온몸의 대부분이 검붉은 문양으로 덮여 흉악한 기운을 뿜어냈다.
얼굴에선 거한의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지만 눈에서 요사스런 녹광이 흘러나오며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 한립을 음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요괴가 화살처럼 튀어 올랐다.
몽산사우가 혼비백산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한립의 목소리가 울렸다
“법기를 발동하거라!”
이어 그들 앞에 늘어선 꼭두각시들이 입을 벌려 빛 기둥을 발사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리 대처하지 못한 요괴의 몸이 충격에 거꾸러졌다.
이를 확인한 몽산사우는 바로 자신들의 법기를 꺼내 거한을 공격해 들어갔다. 한시라도 바삐 저 끔찍한 괴물을 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헛된 꿈은 금방 깨졌고 하늘을 찌를 듯한 흉흉한 기운을 방출하며 요괴가 다시 일어났다. 그 위로 날아들던 몽산사우의 법기들은 요괴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요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더니 풍차처럼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열손가락에 법기들이 고철이 되어 찢겨나갔다!
요괴로 변한 거한의 눈에서 녹색 빛이 짙어졌고 몸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한립 등이 모여 있는 방어막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었다.
‘푸학!’
노인이 기민하게 한립이 준 방패를 발동해 요괴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방패 표면에 선명하게 생긴 다섯 줄기의 상처가 생겼고 노인이 안색은 창백해 졌다. 법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거한이 교활한 웃음을 흘리더니 다른 손으로 방패를 재차 공격했다. 그러나 곧 두 손을 가로질러 십자(十字)를 만들며 맹렬히 몸을 뒤로 뺐다.
꼭두각시들이 두 번째 빛 기둥을 쏘아 보낸 것이다.
첫 번째와는 달리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요괴는 강력한 공격에도 십수 장 밖으로 밀려났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위기에 처해있던 노인으로서는 겨우 한 시름 놓은 셈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 노인이 나머지 셋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상대가 너무 강하니 내 법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모두 함께 방패를 구동한다.”
큰 형님의 말에 몽산사우가 주저 없이 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들의 영력이 서서히 노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검은 얼굴의 노인이 겨우 안색을 회복했다.
요괴로 변한 거한은 두 번이나 공격이 실패하자 분노했고 꼭두각시의 빛기둥이 끊기자마자 발톱을 들이밀며 공격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방패에 막혀 주춤한 틈에 빛기둥이 시작되어 원래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한립이 눈썹을 꿈틀했다.
저 괴물이 차천종을 부수고 꼭두각시 야수들의 빛기둥까지 막아내는 걸로 보아 웬만한 최상급 법기로는 처리할 수 없고 부보(符寶)를 이용해야 할 듯 했다.
생각을 정리한 한립은 즉시 몽산사우에게 분부를 내렸다.
“법술을 준비할 동안 너희가 잠시 꼭두각시들과 저 요괴를 막아줘야겠다.”
한립은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휘황찬란한 푸른빛을 발산하며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한립의 의도를 알아차린 몽산사우는 이구동성으로 명을 받들었다. 이어 요괴의 공격이 대여섯 번 더 반복되었지만 노인을 위시로 한 네 명의 영력을 받아 강력한 공격을 번번이 막아내고 있었다.
꼭두각시들이 마구 쏘아대는 빛기둥 때문에 요괴 거한도 연속해서 공격을 하지 못해 네 사람이 숨 돌릴 틈을 주었다.
한립의 부보의 구동은 연기기 수사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었다. 한립의 손에서 푸른 부적이 청옥색 자로 변했고 수촌 길이의 자는 아주 정교했다.
이제 몽산사우의 법력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거한의 발톱을 휘드르자 방패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네 사람의 얼굴에 흙빛이 돌았다.
“선배님!”
노인이 한립을 보고 재촉했다.
한립은 노인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꼭두각시들의 공격에 거한이 물러난 틈을 타 청옥색 자에 전신의 영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손바닥 위에 떠오른 자가 눈부신 푸른 광을 뿜어내더니 한 개가 두 개로, 두 개가 네 개로, 또 네 개가 여덟 개로 늘어나며 수백 개의 동일한 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웅웅거리며 한립의 주위를 쉼 없이 맴돌고 있었다.
이 놀라운 광경에 몽산사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치 환술에라도 당해 환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보가 제 모습을 찾자 주저 없이 요괴로 변한 거한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거한은 요괴로 변한 후 의식이 또렷하지 못한 듯했지만 한립의 부보 공격에는 두려운 표정을 드러냈고 돌연 물러서서 미친 듯이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결코 신풍주에 뒤지지 않았다.
의외의 반응에 한립이 순간 멈칫하는 사이 상대는 이미 백여 장 밖으로 달아나 있었다. 한립은 멀리서 사라져 가는 그자의 뒷모습을 끝까지 주시했다.
한숨을 내쉰 그는 상대를 쫓지 않는 대신 손을 휘저어 청옥색 부보를 불러들였다. 수백 개의 자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 푸른빛을 띠는 부적으로 그의 손에 돌아왔다.
당장 그를 쫓아가 후환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부보의 남은 위력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자와의 추격전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없을 바에야 이미 확보한 인질들로 만족하는 것이 나았다.
몽산사우는 거한이 한립의 법술에 놀라 도망간 것을 보고는 서로를 부축해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이 정말 안 좋아 보여 한립은 저물대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한 알씩 먹으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
그는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이번 싸움에서 상당히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고 자신이 후한 사람이란 것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역시 몽산사우가 감격한 듯 눈을 빛냈고 노인이 공손히 약병을 받아 환약 네 알을 꺼냈다. 눈알만한 붉은 환약들의 향이 코를 찔렀다
노인은 나이가 있는 만큼 바로 귀한 것임을 알아보고 연달아 한립에게 감사를 표했다.
모두 냉큼 환약을 삼키니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지쳐 있던 몸이 가뿐해졌고 얼굴에 금세 활력과 기쁨이 흘러 넘쳤다.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니 이동한다. 흑살교의 원병이 오면 일이 커질 테니.”
한립은 소왕야와 왕 총관을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신풍주에 올라 바람처럼 그곳을 벗어났다.
무사히 진가저택에 도착한 일행은 거처의 뜰에 내려섰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잠시 몸을 추스른 한립은 바로 흑살교인들에 대한 심문을 시작했다.
그는 일단 소왕야의 입을 열게 하는데 주력했고 왕 총관은 몽산사우에게 넘겨주었다. 노인이 있으니 작으나마 만족할 만한 소식을 물어 오리라 기대해 본 것이다.
수도자가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미혼술이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 등에 정통한 한립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대상이 자신과 법력 차이가 크게 나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쉬웠다.
소왕야는 당연히 입을 꾹 다물려 했으나 한립이 억지로 약을 탄 물을 마시게 하니 그 후엔 환상 속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이어 지극히 평범한 미혼술인 환색안(幻色眼)을 걸자 이미 소왕야는 한립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립이 묻는 말엔 어떤 것이든 고분고분 아는 것을 털어놨다.
그가 털어놓는 바를 들을수록 한립의 얼굴이 묘하게 변해갔다. 냉랭하고 진지하던 얼굴이 놀라움으로 바뀌고 곧 난감함과 울적함으로 바뀌었다.
소왕야가 알고 있던 정보와 비밀들을 모두 들은 후에는 미리 준비해 놓은 검은 환약을 먹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단혼단(斷魂丹)을 먹였으니 환각에 빠진 채 조용히 숨이 멎을 것이다.
반항도 하지 못하는 이를 독살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았으나 마공을 수련하며 이미 열댓 명을 제물로 바친 점을 고려하면 억울할 것 같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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