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천성성과 성궁
한립은 자신이 엄청난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것도 모른 채 밤낮으로 쉼 없이 동북쪽 방향으로 향했다.
이왕 수배령이 내려졌으니 서남 해역에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고 다른 해역으로 가려면 난성해 전역을 표기한 지도가 필요했다.
단지 서남 해역 지도만을 지닌 한립은 어느 섬에 내려섰다.
이 섬은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서남해역과 다른 해역의 경계에 위치해 드나드는 인구가 많아 번성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 한립은 곡혼과 모종의 비술로 용모를 가리고는 삿갓을 썼다.
이렇게 하면 수행이 곡혼과 동일한 수사라 해도 모호한 붉은 빛만을 보게 될 것이다.
반나절 동안 그들은 대량의 원료와 난성해 관련 서적 및 해역 지도를 구매하느라 엄청난 영석을 지출했다. 필요한 물건을 모은 한립은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즉시 섬을 떠났다.
신풍주에 앉은 한립은 옥으로 된 서책을 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거둔 한립이 서책을 저물대로 넣고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정리하니 난성해의 상황을 대략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성해는 굉장히 넓었다. 그러나 얼마나 넓은지 아는 이가 없었고 그 크기를 측량하겠다 나선 우둔한 이도 없었다.
해역 지도라 칭하는 것들도 난성해의 일부분만 표시된 것이란 것을 이곳의 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미 탐색이 된 지역을 통상 내성해(內星海)라 불렀고 그 외곽을 외성해(外星海)라 불렀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난성해라 부르는 것은 결국이 내성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외성해의 다른 이름은 바로 요괴의 바다라는 뜻의 요해(妖海)였다. 이 해역엔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수들이 서식해서 원영기 수사라 해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했다.
상고시대에는 내성해이든 외성해이든 요수의 천하였다고 한다. 그 시절엔 수도자들이나 범인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그저 몇 개의 작은 섬에 불과했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난성해의 선조들이 강대한 요수를 물리치며 지금의 내성해를 개척해 낸 것이다.
지금 난성해 전체는 성궁(星宮)이라 불리는 거대한 세력의 관할 하에 있었다.
성궁은 너무 오래된 세력이라 경전에 조차 그 시작을 분명히 기재하고 있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초 요수를 물리치고 내성해의 기반을 닦은 선조들이 만든 조직이라는 설도 있었고 또 어느 1인자가 난성해 전역을 통일하고 세운 세력이라는 설도 있었다.
성궁은 내성해 중심부의 초대형 도시인 천성성(天星城)에 위치하고 있었고 천성쌍성(天星雙聖)이라 불리는 두 명의 성주가 조직 전체를 통치했다.
이들의 행적은 아주 신비해서 천성성에서 절대 나오지도 외부에 얼굴을 노출하지도 않아 그들의 진면목을 아는 자가 없었다.
난성해 수사들의 말로는 두 성주는 원영(元嬰) 후기의 수사이거나 전설 속에서나 듣던 화신(化神)의 경지에 이른 수사라 했다.
어쨌든 그들이 이름을 날린 지 거의 천 년이 다되어가니 보통의 수사라면 어찌 그리 긴 세월을 살아왔겠는가?
또한 성궁은 천성성 외에도 내성해 외곽의 여덟 개 구역과 중부의 네 개 구역에 각각 가장 큰 섬 세 개씩을 차지해 직할 분섬으로 삼고 있었다.
이런 분섬들을 외곽 24개 성도(星島), 내곽 12개 성도라 불리며 천성성의 세력을 뒷받침했다.
한립이 지내던 괴성도 역시 직할 성도의 관할 하에 있는 외섬 중 하나였다.
이렇게 성도뿐 아니라 그곳에 소속된 수많은 섬들까지 생각하면 성궁이 명실상부한 난성해의 관방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성궁은 직할 섬인 성도의 도주를 임명할 때 두 가지 방식을 이용했다.
내곽 12개 성도의 도주는 두 명의 성주 대인이 조직 내에서 각각 6명의 인사를 선출해 임명했으나 외곽 24개 성도의 도주는 100년 마다 천성성에서 공개적으로 모집해 선발하니 도전자 중 최후의 승자가 도주가 되어 막대한 권력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100년에 한번 천성성에서 치러지는 선발전을 수사들은 하늘의 별을 딴다는 뜻의 적성대회(摘星大會)라 불렀다.
이 대회가 치러질 때마다 난성해 전역의 고계 수사들은 전부 모인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정말 도주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들도 있었고 일부는 그저 세상 구경을 하며 다른 동급의 수사들과 교류를 하러 모이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재료나 단약, 심지어 공법 등을 거래하려는 수사들까지 모이니 정말 천성성 전체가 수사들로 득실거릴 시기였다.
그러나 적성대회 기간이 아니라도 천성성은 번화하고 번잡한 도시였고 온갖 수사들이 섞여있는 곳이다.
어떤 성취를 지닌 수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성 내에서 다툼을 벌이지 않고 장기 거주 시 일정 영석만 납부한다면 성궁의 수사들도 다른 일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큰 규모의 상가들이야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선호해서 성내에 점포를 내고 영석을 쓸어 담으며 다양한 상품을 매매 했다.
이렇게 되니 매년 난성해 각처에서 천성성으로 흘러 드는 진귀한 물건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 외에도 천성성에 수사들이 몰려드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성 내엔 천성궁 수사들이 설치한 외성해로 통하는 전송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분한 영석만 지불한다면 전송진을 통해 외성해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요수섬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이런 섬들은 이미 다른 수사들이 개척해 영기가 흐른다고 알려진 무인도들이었다.
수사들은 요수섬 인근의 해수면에서 각종 요수를 처리하고 내단을 구해와 천성성에서 매매할 수 있었다.
요단(妖丹)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 오급 요수의 내단이 영석 천 개에 이르렀고 육급 요수의 내단을 얻으면 축기기 수사가 평생 걱정 없이 생활할 만큼의 영석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니 매년 천성성을 찾는 수사들 중 절반 이상은 전송진을 이용하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어쨌든 전송진을 이용하지 않고 외성해로 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뿐 아니라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한립은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천성성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안전할 뿐 아니라 요수를 죽여 내단을 얻을 기회까지 있으니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당연히 난성해에는 성궁이란 초대형 세력을 제외하고도 다른 크고 작은 세력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야룡도(夜龍島), 사대상맹(四大商盟), 매마종(魅魔宗), 삼선문(三仙門) 등이 대표적이었고 극음도와 여섯 전각 역시 꽤 규모가 있는 세력 중 하나였다.
한립은 알아낸 정보들을 정리하며 난성해 전역 지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잠시 후, 신풍주가 방향을 틀어 한 줄기 빛으로 화했다.
* * *
수개월 뒤 어느 해역 상공에 오랜 여정으로 지쳐 보이는 한립이 나타났다. 사실 긴 여정이 한립에겐 좋은 기회였다.
법기를 타고 가면서 강대한 의식을 이용해 대연결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신풍주를 타고 대연결을 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간단히 분신을 이용해 꼭두각시들을 움직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의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으로 두 가지 술법을 펼치다 보니 실수도 많았다.
신풍주는 꼬불꼬불 제 갈 길을 찾지 못했고 대연결 역시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일이 며칠간 반복됐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실패와 의식을 나누는 방법을 겸용해 이제 신풍주에 앉아서도 꼼짝 않고 대연결을 수련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립은 지금 수련을 하지 않고 그저 신풍주에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반 년 동안 지나온 무인도들을 생각해보면 이제는 천성도 부근에 다다랐어야 했다.
그는 조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앞에 무언가 거대한 검은 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한립은 고민할 필요 없이 신풍주의 속도를 높여 질주했다.
……
잠시 후 검은 점 같은 것이 점차 크게 보이더니 거대한 윤곽을 드러냈다. 아직 분명히 보이진 않았으나 하늘을 떠 받들고 있는 기둥처럼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건 섬 전체를 차지한 엄청난 크기의 도시였다. 더욱 한립을 놀라게 한 것은 이 도시의 중심부였다.
그건 다른 도시와는 전혀 다르게 평지가 아니라 섬의 한가운데 있는 고산을 중심으로 그 위에 여러 건축물들이 빙 돌아 지어져 있었다.
높은 산 아래쪽부터 이어진 다양한 건축물들은 섬의 외곽까지 이어져 전혀 낭비되는 공간이 없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이곳이 바로 난성해 제일의 도시인 천성성임이 분명했다.
한립은 높은 하늘 위에서 빽빽하게 지어진 건물을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신풍주가 섬에서 수십 리에 이르러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줄였다.
한립 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천성성으로 날아가는 여러 빛줄기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천성성의 명성답게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곳으로 향하는 수도자들을 대거 마주한 것이다.
십여 리를 날아가자 상공의 다채로운 빛들이 더욱 많아졌고 해수면의 거대한 선박들 역시 천성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법기가 아니라 나룻배나 영수 등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바로 속도를 높였고 잠시 후 드디어 천성성 외곽에 도달했다. 가까이 가니 성 전체를 해안가를 따라 수십 장에 달하는 석벽이 감싸고 있었다.
그 높은 석벽 아래에는 크기가 제 각각인 출입구가 나있었다.
어떤 출입구는 범인들의 선박이 댈 수 있는 부두였고 또 어떤 것은 각종 영수가 쉴 수 있게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수사가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성문이었다.
한립도 바로 그 중 하나로 향했다.
다른 출입구에 비해 비교적 작다는 것이지 직접 그 앞에 내려서니 거의 칠, 팔 장에 달하는 거대한 성문이었다.
그의 앞에는 용모가 단정한 청색 의복을 입은 여인이 있었는데 축기 중기처럼 보였다.
그녀는 성문 아래의 백의 수사들과 고상하게 몇 마디를 나누더니 영석 몇 개를 주고 남색 반지를 받아 손가락에 꼈다. 그리곤 사뿐 사뿐히 성문을 지나갔다.
한립도 곡혼과 함께 차분하게 그들에게 다가섰다.
“두 분은 잠시 멈춰주십쇼. 본 성에 장기 거주하시려면…….”
백의 수사 중 하나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수백 수천 번 중얼거린 상투적 대사를 하려 하는데 그 옆에 있던 수사가 곡혼의 수행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동료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엇! 선배님이셨군요. 본 성의 규정에 따르면 결단기 선배님들은 장기 거주 비용이 면제입니다. 신분을 증명하는 반지이니 잘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백의 수사가 공손히 품에서 붉은색 반지를 꺼내었다. 조금 쉰 목소리로 곡혼이 입을 열었다.
“천성성엔 처음 방문하는 것인데 이 반지는 무엇에 쓰는 거지?”
“이것은 신분을 증명하는 영기의 반지, 영환(靈環)이라 합니다. 임시로 본 성에 머무는 수사들은 영석 3개를 납부하고 푸른색 영환을 교부 받습니다. 붉은색 영환은 영구 거주자임을 증명하는 표식으로 보통 수사들은 영석 800개를 납부하고서야 영환을 교부 받을 수 있지요.
그래서 푸른색 반지는 7일이 지나면 빛을 잃으니 반지의 주인은 그 전에 천성성을 떠나거나 성문에서 다른 반지로 교환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붉은색 반지는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데다 피를 떨구어 주인을 인식하게 해야 비로소 빛을 뿜어내니 다른 이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지요.”
곡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지를 받아 들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떨구고는 손에 반지를 착용했다.
“선사, 저도 홍색 반지로 하나 주시지요. 귀 성에서 장기 거주할 예정이라서요.”
미소를 머금은 한립이 저물대에서 중계 영석 800개를 꺼내 백의 수사들 중 하나에게 건넸다.
둘은 조금 의외라는 듯 한립을 보았지만 다른 말없이 영석을 받고는 붉은 반지를 내주었다. 그는 곧바로 반지를 끼고 성문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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