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삼 대 철칙(三大鐵則)
“흠. 저도 피해자라 볼 수 있습니다.”
임자동은 한립의 동정심을 얻어 문 대인과의 관계를 덮어보려 시도했다.
“저도 원래는…….”
임자동은 자신의 내력과 일의 경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자신은 문 대인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악한 일에 가담한 피해자이고, 모든 책임은 이미 세상을 떠난 문 대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한립은 그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 대인이 적에게 공격당해 내공을 잃고, 임자동을 만나 그런 추악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임자동은 본래 수도자(修道者) 일족의 일원이었다. 그는 장춘공을 수련해 7성에 이르렀으나, 아무리 수련해도 한계에 부딪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장춘공의 수련을 끝마치지 못하면 정식으로 집안의 일원이 될 수 없었고, 기반이 닦이지 않은 자는 수도자의 한 사람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정식으로 선계(仙界)에 들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임자동은 은거하던 곳에서 나와 속세를 경험하고자 했다. 속세에서 마주치는 역경을 이겨내고 수련의 고비를 이겨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의 간절한 희망은 가능성이 적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으니, 자신의 고난도 어떻게든 해결되리라 믿고 싶었다.
도시는 화려하여 눈부셨고 어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래도 견고하지 못한 의지는 속세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타락시켰고, 결국엔 어느 권세가의 손님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빠지고 말았다. 당연히 선(仙)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난 그의 일가는 족보에서 그를 제해버렸다. 그 후로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된 임자동은 혹시나 그의 자손 중에 뛰어난 수행자가 나온다면 몰라도 다시 가문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었다.
* * *
몇 년 후 그는 약재상을 둘러보고 있을 때 희귀한 혈령초(血靈草)를 발견한 것이다.
이 혈령초는 약으로 만들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 무공을 수련하는 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영약이었다.
임자동은 잊어버렸던 선인에 대한 열망이 타올라 약초를 구입하려고 했으나, 이 혈령초를 알아본 다른 수행자가 있었다. 결국 은자가 더 많은 임자동이 혈령초를 차지했지만 그것을 탐내던 수행자는 포기하지 않고, 그 약초를 뺏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한밤중에 혈전이 벌어졌는데, 상대의 내력이 자신보다 훨씬 강해 혈령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였다.
그는 가까스로 집안의 보명부(保命符)를 발동했고, 바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으로 상대에게 달려들어 상대가 한 걸음 물러난 틈을 타 겨우 도망쳤다.
상대에게 중상을 입고 위기에 처한 임자동 앞에 역시 중상을 입어 내력을 잃은 문 대인이 나타난 것이다.
임자동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문 대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는 무의식중에 내공을 찾을 치료약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이 엄청난 화가 되어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이후 문 대인은 임자동에게 온갖 방법으로 약을 만들어주길 애원했지만, 이미 중상을 입어 자신도 내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문 대인은 크게 분노했고, 그 화는 곧 살의로 변하였다. 곧 자신도 해독제를 만들 수 없는 비술로 극독약을 만들어 임자동에게 독약을 쓰고 말았다.
본래도 중상을 입은 임자동은 독성이 발작하자,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이를 본 문 대인이 그의 품에서 혈령초를 꺼내려 했다.
그러자 이를 본 임자동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혈전음혼술(血箭陰魂術)’을 펼치고 만 것이다. 그의 혈액과 장기가 한 줌의 피 맺힌 저주로 변해 문 대인에게 뿜어졌다. 그 와중에 임자동의 원신(元神)은 자신의 몸을 서서히 빠져 나갔다.
임자동은 원신이 된 후에야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혼을 담을 만한 법기(法器)나 육체도 없이 일을 벌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가까이 있는 문 대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소멸될 위기를 피했다.
문 대인은 피범벅이 되어 크게 놀랐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자 마음을 놓았다.
그는 임자동의 몸에서 꺼낸 여러 환약과 혈령초의 힘으로 내력을 상당 부분 찾을 수 있었고, 장춘공의 구결을 얻어 더욱 흡족해했다.
그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원한을 풀고 다시 위풍당당하게 군림할 일만 남아 있었다.
* * *
문 대인의 좋은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혈전음혼술(血箭陰魂術)의 위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은 하루가 마치 1년처럼 흘러 급속히 노화가 진행 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을 막아 보려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만약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않아 절명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 때 임자동의 원신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임자동이 문대인의 몸속에 들어간 지 오랜 시간이 지나자 점차 동화(同化)현상이 나타났다.
이 동화라 함은 장기간 타인의 신체에 머무는 원신이, 무의식중에 본래 주인의 원신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것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점차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의 몸에는 하나의 의식만이 존재 할 수 있기에, 무서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를 깨달은 임자동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몸을 빼앗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그가 문 대인의 몸을 빼앗는 것을 이렇게 내켜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선인의 길을 걷는 이들 사이의 삼대철칙(三大鐵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수행자는 함부로 범인의 몸을 빼앗을 수 없었다. 이유는 범인의 몸이 견디지 못해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직 법력(法力)이 강한 자만이 법력이 약한 자의 몸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반격이 있을 터였다. 법력의 차이가 서로 클수록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셋째, 모든 수행자는 법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생에 단 한번만 몸을 빼앗는 술법을 행할 수 있었다. 만약 다시 시도하게 되면 수행자의 원신이 소멸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상의 세 가지 원칙은 무수히 많은 수행자들에 의해 이미 증명되었다.
법술을 이용해 풍파를 일으키는 악인이나, 이런 기이한 수법으로 계속 목숨을 이어나가려는 사람에게 제한을 걸어두는 것이었다.
하늘이 역천(逆天)의 술법을 사용해 천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와도 같았다.
이런 연유로 문 대인이 수행자이기만 했어도, 임자동의 계획은 쉽게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범인(凡人)이기에 법력이라고는 없는 육체의 소유자였다.
이런 상태로 몸을 빼앗으려는 법술을 행했다가는 채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몸이 버티지 못할 터였다.
거기다 다른 신체를 찾아 나서는 것도 문제였다. 임자동이 다른 신체에 깃든다 하여도, 역시 같은 문제로 곤란한 지경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그가 다시 한 번 육체를 빠져나가려면 또 엄청난 법력을 소진해야 했다. 아마 적합한 인물을 물색하기도 전에 법력이 다해서 사라질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문 대인의 몸 안에서 동화가 이뤄지는 것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원신이 된 후 자신의 법력을 채워줄 육체를 잃었기 때문에, 그가 지닌 법력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임자동 자신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임자동은 자신보다 법력은 낮지만, 수행자로서 몸을 빼앗는 법술을 견딜 수 있는 육체를 가진 이를 찾아야지만, 문 대인의 몸을 떠나는 모험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인의 몸이 자신이 건 저주에 죽어나가면 자신은 의지할 곳을 잃는 셈이었다.
이런 압박 속에서 생애 대한 집념이 강했던 임자동이 고민 끝에 상호간의 원한을 잠시 제쳐두고 함께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바로 이 모든 사정을 문 대인에게 알렸다.
문 대인이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는 분개했지만, 재빨리 이것이 그를 살려낼 기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주저할 것 없이 상대와 협력하기를 약속했다.
우선, 문 대인은 임자동이 알려준 방법대로 자신의 의식을 통제해 최선을 다해 상대의 원신(元神)과의 동화를 막았다.
그리고 임자동은 비술을 전수해, 문 대인의 노화 속도를 잠시 동안이라도 느리게 만들어주었다.
그 다음, 문 대인은 영적인 능력이 있는 아이를 찾아 장춘공을 전수하고, 그의 경지가 무르익었을 때 몸을 빼앗는 술법을 진행해 새로운 삶을 되찾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 대인은 임자동의 말을 의심해 자신이 직접 장춘공을 익혀보려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아무 소득이 없었기에 임자동의 비웃음만을 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는데 성공한 문 대인이 충분한 시간이 지나 몸을 회복한 후, 임자동에게 또 한 명의 적합한 육체를 가진 이를 찾아주어, 몸을 빼앗는 일을 도울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상의 조건들은 문 대인에게 비교적 유리한 듯 보였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임자동으로서는 문 대인의 의식에 동화가 되는 위기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이후의 일들은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게 없었다. 문 대인이 몇 년 동안이나 적합한 아이를 찾아 헤맸으나 찾을 수 없었고, 마음을 고쳐먹고 칠현문에 들어 한립을 제자로 맞게 된 것이다.
그가 장춘공을 수련하고부터는 문 대인이 말한 바와 거의 일맥상통하였고, 한립 본인이 겪은 일이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한립이 임자동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마음속에 줄곧 품고 있었던 의문들이 해결되었다.
“그런데 문 대인은 어찌 죽었는지, 왜 이야기하지 않소?”
“그건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문 대인이 귀하의 장춘공 성취를 잘못 파악해서 그리 된 것입니다. 법력이 당신에게 훨씬 못 미치니 당신을 삼키려다가 반대로 자신이 삼켜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처음 내 몸 안에 들어온 황색 구체가 바로 문 대인의 원신이고, 두 번째 녹색 광구가 바로 당신이로군요.”
한립이 담담히 언급했다.
“그…… 그것은, 당시 귀하와 문 대인이 동귀어진(同歸於盡, 같이 죽다) 한 줄 알고, 그런 것입니다. 비어버린 당신의 육체를 낭비할 수 없어서 제가 빌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흥! 일부러 동귀어진 하도록 계획한 것은 아니고? 임자동, 당신은 문 대인에게 몸을 빼앗는 대법을 알려 줄 때부터 이럴 마음이었던 겁니다. 일부러 대법의 성공이 법력의 고하와 상관있다는 점은 밝히지 않은 거예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문 대인이 칠귀서혼(七鬼噬魂) 대법과 내 4성의 장춘공의 법력이 비슷하겠지요. 이런 상태로 몸을 빼앗으려 하다가는 양쪽이 서로를 물어뜯어 죽을 것이고, 그 이후에 당신이 어부지리로 이 몸을 차지하려 한 겁니다. 내 추측이 틀립니까?”
그의 말을 들은 임자동이 한참 동안이나 조용했다. 하지만 한숨을 내뱉은 후에 슬픈 목소리로 반박을 시작했다.
“역시 귀하의 총명함은 진심으로 탄복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청출어람이라더니, 이미 문경인을 훨씬 뛰어넘으셨군요. 당신의 추측이 맞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제가 계획한 것이지요. 다만 귀하의 선인의 자질이 너무 뛰어나, 단시간 내에 장춘공 육성에 이르러 저와도 1성 차이밖에 나지 않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손쉽게 문 대인을 집어삼켰으니 저처럼 원기가 크게 상한 수행자의 원신이야 상대가 안 되지요.”
그러나 곧 그의 말투가 급변했다.
“문경인, 그 자는 겨우 범인 주제에 감히 우리 수행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서로 호형호제를 하려 했으니 가당키나 한일입니까? 비열한 수단으로 내 법신(法身)을 훼손하고도 선도(仙道)에 발을 들이려 하다니 정말 헛된 꿈을 꾼 것이지요!”
임자동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마음에 품고 있던 문 대인에 대한 원한을 이제야 거침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허나 당신은 다르지요. 귀하는 영적인 능력을 타고났고 자질도 남다르니, 속세에 머물기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입니다. 내게 적합한 육체만 찾아 준다면 당신을 도와 드리죠. 일족의 장로를 뵙고, 그의 제자가 되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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