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원신 소멸
임자동은 자신의 제안에 자신이 있었다. 신선(神仙)이 되는 길을 마다할 이가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누가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당초 문 대인 역시 이런 말로 합작을 이루어 내지 않았던가.
이 놈 역시 달콤한 말에 넘어가 곧 자신의 통제 하에 들어올 것이었다.
하지만 임자동은 곧 실망했다. 한립의 표정이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이런 이야기가 상대에게는 전혀 흥밋거리가 안 되는 듯했다.
“서로 돕는 일은 내 다시 고려를 해봐야겠어요. 아직 의문점이 남았는데, 당신이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한립이 맑고 투명한 눈빛으로 자신의 눈앞에 떠있는 광구(光球)를 응시했다.
“그 의문을 풀어주면 나와 같이 하겠습니까?”
“그건 당신의 대답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럼 좋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임자동이 시원스레 답했다. 한립은 바로 입을 열지 않고 석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찌 말해야할지 따져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에 임자동은 가슴이 뛰었다.
“내가 문 대인의 원신과 당신 원신 일부분을 삼켜버린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요? 어째서 깨어난 이후 머리가 아프고 내 머리 속에 잡다한 것이 가득한 데, 뭐가 잘못 된 거죠?”
한립은 깨어난 이후 줄곧 걱정하던 바를 물었다.
“하하!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에요. 머릿속에 주입된 것들은 일, 이년 내로 천천히 사라질 테니 말입니다.”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니 믿을 수 없군요!”
한립이 불신의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거의 남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에게 의심을 살까 두려워 임자동이 급히 해명을 덧붙였다.
“그 안에 있는 기억, 경험, 정서와 같은 것들은 건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것을 취하려 한다면 가볍게는 백치가 되거나, 인격이 분할 될 것이고, 심하게는 두뇌에 과부하가 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의 원신을 삼키거나 잠시 머릿속에 따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헛된 생각입니다. 안 그랬다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원신을 취함으로써, 바로 그 사람의 경험과 기억, 법력 등을 차지해버리고, 천하는 대혼란에 빠졌겠지요. 삼킨 원신 중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본원지력(本源之力)뿐 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자신의 원신을 조금이나마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며칠 못 가서 사라지게 되고 말지요.”
이런 해명을 듣자니 한립도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임자동은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립을 보고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우님, 이제 앞으로의 합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수행자와의 합작이라니 고대해 오던 바입니다.”
한립이 활짝 웃으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지요.”
바로 대답하는 한립의 목소리가 매우 낭랑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띤 채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 들고는, 친근한 어투로 임자동에게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기왕 우리가 합작하기로 하였으니 구체적인 것을 상의하기 전에 해볼 것이 있습니다.”
임자동이 어리둥절해 하며 한립의 손에 든 원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익은 것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요, 바로 독극물입니다!”
한립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엄지로 원통을 눌러 그것을 발동시켰다. 바로 검은 액체가 분출되어 악취를 뿌리며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으악!”
광구에서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검은 액체로 뒤덮인 광구는 녹색 빛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뭐야? 날 독으로 기습해?”
임자동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도 날카롭게 외쳤다. 한립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상복부의 숨겨진 요대에서, 빛나는 보검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 보검은 손가락만한 굵기에 한 자(尺) 반 정도의 길이에 검신이, 유연하면서도 강한 ‘옥대단검(玉帶短劍)’이었다.
이게 바로 한립이 대장간에서 거금을 들여 만든 마지막 단검으로 가장 비싼 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기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꺼내게 된 것이다. 한립이 단검을 꺼내 드니 그 표정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조금 전의 웃음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덜덜 떨고 있는 임자동의 원신을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려 그것을 가르려 하였다. 연검(軟劍)을 마치 장작 패는 도끼처럼 사용한 것이다.
* * *
임자동의 원신이 날개를 꺾인 파리처럼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가 이리저리 도망을 치려해도, 검은 액체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제는 검광까지 그를 쫓고 있었다. 그 섬뜩한 빛에 몸을 베일 때마다 광구는 조금씩 빛을 잃고 있었다.
그는 절망했다. 상대가 날카로운 검으로 자신을 찍어대는 탓에, 그의 원신은 너무나 약해져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법력조차 야금야금 소모되고 있었는데, 더욱 치명적인 점은 자신이 법술을 펼치지 못하게, 검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날 죽이려는 것이냐…….”
한립을 보며 임자동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립은 칼을 휘두르는 속도를 높여 그 물음에 대신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자동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져 결국에는 윙윙거리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움직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립은 멈추지 않고, 촛불 정도로 약해진 원신을 향해 십여 번 더 칼질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단검을 휘둘러도 마지막 남은 녹색 광은 꺼트릴 수가 없었다. 그는 연검을 다시 몸에 정리하고 나서야 차갑게 대답을 했다.
“난 부모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는 놈하고는 함께할 마음 따위 없다. 너처럼 간사한 자의 말을 믿으라니, 문 대인과 같은 꼴이 되란 말이냐?”
차가운 시선으로 임자동을 바라본 한립은 주저함 없이 석실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눈부신 햇빛이 임자동의 원신에 쏟아졌다.
그러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광이 소멸되고 푸른 연기가 되어 나부끼다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제 임자동은 흔적조차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원신이 햇빛에 약할지 모른다는 것은 문 대인의 행동으로 추측해낸 것이었다.
아마 이 추측이 맞지 않았다면, 칼과 독으로도 죽이지 못한 임자동의 존재에 항상 불안했을 터였다.
이렇게 단시간 만에 원신이 사라지고 만 것은 바로 한립의 칠독수(七毒水) 때문이었다.
통 안에 든 독은 문 대인에게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독약에, 토고화(土菇花)를 첨가한 것이었다. 이 독초는 범인(凡人)뿐만 아니라, 수행자에게도 영향을 미쳤기에 임자동이 법술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소멸 당한 것이었다.
* * *
이제야 그는 목에 칼이 드리워진 채 언제 목숨을 잃을 지 전전긍긍하던 삶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석실로 돌아온 한립은 그곳에서 고요히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자 별안간 거센 소리로 땅을 박차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고함에서는 절절한 기쁨이 전해졌다.
“난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난…….”
우렁차게 울리던 한립의 환호성이 잘려나간 것처럼 사라졌다. 석실 밖에 서 있는 철노라는 거한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거한의 존재를 깨닫자 한립의 심정은 참혹해 졌다.
아직도 그에게 눌린 어깨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거한은 석실 내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르지 석실 밖에서 문 대인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립은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거한은 매우 아둔한 인간임에는 분명했다. 죽어라 명령만을 따를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립에게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다.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단 혈투가 시작되면 자신은 그의 적수가 못 되었다. 유일하게 그를 상대할 만한 칠독수(七毒水)가 들어있던 통도 이제는 텅텅 비어있었다.
한립이 석실을 돌며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상대를 제압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후 한립의 시선이 문 대인의 시체에 닿자 머리가 번뜩였다.
‘시신을 이용하면 거한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한립은 고개를 돌려 문 밖의 거한을 살핀 다음, 문 대인의 시신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놀랍게도 문대인의 몸에는 잡다한 각종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그 중 대다수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가진 것들이었다.
독을 발라 닿기만 해도 죽는 암기인 수전(袖箭), 뱀독이 스며있는 모래, 십여 개의 예리한 회선 표창…….
물건들이 쌓여 갈수록 문 대인과 대결에서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자신을 생포할 계획만 없었다면, 벌써 황천길을 열두 번도 더 다녀왔을 터였다.
모든 물건을 꺼내놓고 의심스러운 물건부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약 병은 냄새가 고약한 것이 무슨 해독제 종류 같고.”
“이 이상한 병기는 바퀴같이 생겼는데, 거한을 통제할 물건으로는 안보이니까 일단 치워두고.”
“이 향낭은…….”
이리 저리 물건을 치우며 한창 흥미롭게 물품들을 살피는데, 비단에 꽃을 수놓은 향낭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사람이 이런 향낭을 지니는 것이야 문제 될 것 없지만, 문 대인이 지니기에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향낭을 만져보니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다. 재빨리 향낭을 열어보니 종이 몇 장이 드러났다.
자세히 보니 문 대인의 필적이었는데 그것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남긴 유서였다.
한립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훑어 내려갔고, 서신의 내용을 모두 읽자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인이 비록 임자동과 일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항상 경계해왔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술법을 행함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해를 입힐까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 실행했고, 간사하기 짝이 없는 임자동에게 배신당할 것을 우려해 최후의 수단으로 이 유서를 한립에게 남긴 것이다.
한립은 등 뒤로 손을 모은 채 석실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극히 어두웠는데 열이 올랐다가 창백해졌다가 하며 복잡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려비우가 봤다면 박장대소를 하며 땅바닥을 굴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 대인이 그에게 남긴 것은 시충환에 관한 것이었다. 시충환의 해독제에는 독이 들어 있었는데, 그 희귀한 음독은 그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난양보옥(暖陽寶玉)으로만 해독할 수 있었다.
이것 말고는 어떤 영약이라고 해도 결코 그 음독을 낫게 할 수는 없었다. 한립에게 그 음독을 쓴 것은,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문 대인은 자신이 실패할 경우, 자신의 후인들을 돌보기 위해 한립과의 거래를 준비하고 간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문 대인이 신선이 된다는 단꿈에 빠져 눈이 먼 탓이 컸다. 문 대인이 제시한 거래는 간단했다. 한립이 1년 안에, 늦어도 2년 안에는 자신의 집안을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몸 안의 음독이 2년이 지나면 발작을 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고, 다음으로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처와 딸 그리고 엄청난 가산 때문이었다.
문 대인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대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그의 처와 딸을 노리거나, 가산을 탐내 접근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한립이 처자식을 보호하고, 그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문 대인은 한립에게 도와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혼인하도록 해주었다. 그 혼사의 혼수로 가산의 절반과 난양보옥(暖陽寶玉)을 그에게 넘기려는 처사였다.
문 대인은 집을 떠나오기 전에 처에게 보옥(寶玉)을 맞기며, 딸이 출가를 할 때 혼수로 쓰라고 당부해 두었다.
한립이 목숨을 보전하려면 내키지 않더라도 문 대인의 딸과 반드시 혼인을 해야 했다.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