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돌변
작은 토끼는 바로 본체가 산삼 모양을 한 구곡영삼의 화신이었다. 한립은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하얀 토끼를 지켜보았다.
대연결을 전력으로 운행하고 있어 토끼에게서 보이는 맑은 영기의 기운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정말 천지조화로 태어난 생물이 맞는 듯한데!’
조금 마음이 들뜨긴 했으나 그는 벌써 법결을 맺어 준비하고 있었다.
토끼는 진법 바깥에서 한참 코를 킁킁거리더니 붉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분명 멀리서 냄새만 맡는 것이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구곡영삼은 달아나는데 일가견이 있어 조금만 방심해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토끼는 진법 곳곳을 훑어보며 귀를 쫑긋거렸다. 분명 주변의 영기의 파동을 감지하고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를 본 한립은 조금 조급해졌다. 구곡영삼이 함정을 눈치 채기 전에 금실로 된 그물을 쳐서 포획을 해야 할까 고민한 것이다. 그러나 경거망동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가 주저하는 사이 하얀 토끼의 몸이 번쩍하더니 깡충 뛰어 주변의 초목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휘익.
한립이 멍하게 있는 사이 초목의 다른 쪽에서 하얀 그림자가 번뜩이더니 잔영을 남기며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옥함 앞에 당도했다.
연달아 일어난 일에 조금 당황했지만 어찌 저런 단순한 계책에 걸려 구곡영삼을 놓칠 수 있겠는가!
노란빛이 화살처럼 나무에서 뛰어내려 토끼의 도주로를 막아섰다. 그러자 크게 놀란 토끼가 맹렬히 몸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그러나 토끼가 달아나기 전에 곳곳에 노란색 결계가 생겨나며 그것을 완전히 가둬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토끼는 하얀 빛을 내뿜으며 주먹만 한 칠색의 구체로 변하더니 바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이어 노란 빛이 비치자 땅속으로 파고든 구체가 다시 튕겨 올라왔다.
이제 손쓸 방법이 없어진 칠색의 구체는 이곳저곳을 치고 박으며 난동을 부렸다. 이때 금색 실 같은 것이 나무에서 떨어지며 다시 튀어 오르려는 구체를 가두었다.
하얀 토끼는 그물에 걸려도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다.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지만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금실 그물이 토끼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며 토끼를 잘 가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림자가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현골이 주고 간 금실로 된 그물이 들려 있었다.
한립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
토끼를 관찰한 그는 허리춤에 찬 그물채로 그것을 챙겨 결계 한가운데로 갔다. 그는 결계를 해체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현골이 구곡영삼의 본체를 캐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립은 저물대에서 최근에 얻은 대나무 바구니 고보를 꺼내두었다.
이어 두 개의 영수대에서 서금충을 풀어 자신의 머리 위를 선회하게 만들었다. 금은색의 거대한 빛이 내리자 한립은 평온한 얼굴로 두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이 모든 준비는 현골이 딴 꿍꿍이를 포기하고 약속대로 구곡영삼을 자신에게 넘기기를 바라서였다.
상대가 자신의 실력을 높게 보아야만 이 동맹이 계속 갈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상대가 살의를 보인다면 과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구곡영삼이 원영을 하는데 효험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라 해도 꼭 차지해야 할 물건이었다. 그 명성이 있으니 원영까진 아니어도 분명 기막힌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뜬 그가 구곡영삼의 화신을 내려 보았다. 그때 한립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토끼가 방금까지의 활력을 잃고 겨우 숨만 붙어있는 듯 늘어진 것이다. 분명 현골 상인이 본체를 캐내었기에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문득 그의 시선이 수풀 밖 상공으로 향했다.
상공에는 현골 상인이 변한 검은 구름이 날아와 결계의 상공에서 멈춰 섰다. 그는 검은 구름을 흩어 얼굴을 드러내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한립 역시 무표정하게 몸을 일으키며 하늘을 응시했다. 그러자 한참 후 구름 속에서 현골의 서늘한 음성이 전해졌다.
“엄청난 준비를 해두었구나. 무슨 의미더냐?”
“별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수행이 낮은 저로서는 선배님이 돌변하여 공격을 할까 항시 걱정이 될 뿐이지요.”
현골이 마치 화를 억누른다는 듯 말했다.
“흥! 네게 이 영물을 넘길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겠느냐. 게다가 역도를 처리하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었더냐?”
한립이 돌연 눈에서 한기를 내뿜으며 칼날 같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말을 아시겠지요. 아마 허천전에서 처음 저를 보았을 때는 말씀대로 제 도움이 필요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조력자가 생긴 마당에 저를 필요로 하실 지는 확언할 수가 없군요.”
현골의 음성은 더 차가워졌고 은은히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냐!”
눈썹을 꿈틀한 한립이 결국엔 직설적으로 말했다.
“모르는 척 마시고 다른 분도 나오시지요. 이미 실체로 변해 영물을 찾아다니신 것을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이 말에 구름 속의 현골도 침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날 발견하다니 어찌한 것이냐?”
한립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취미는 없어서요. 현골 상인께 서로 싸워 양패구상(兩敗俱傷)한 뒤 극음만 좋은 일을 시켜줄 것인지나 물어주십시오.”
“양패구상? 스스로를 너무 높게 보는 구나! 널 죽이는데 힘은 좀 써야겠으나 노부가 못할 것이라 여기지 말거라.”
말을 마치며 검은 구름에서 노란 광채가 분출돼 결계의 보호막을 내려쳤다.
쾅!
그러자 보호막의 색이 변하며 노란 색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어 진법의 중심부에서부터 열기가 일더니 화로 속에 들어온 것처럼 온도가 급상승했다.
한립은 안색이 크게 변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손을 내저어 푸른색 법결이 보호막을 때리자 노란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나타나며 보호막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열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내 진법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무슨 짓은 당신이 해두었겠지요.”
“흥, 좋다. 그럼 내가 준 다른 물건은 어떻더냐?”
“……설마!”
한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금색 그물을 멀리 던져버렸다.
하지만 현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빛 그물이 칠흑 같은 검은색 기운으로 변해 빠르게 한립을 감쌌다.
원래 그 안에 있던 토끼는 한쪽에 버려졌는데 아직도 꼼짝 않는 것이 기절한 것 같았다.
돌연 상대의 수에 놀아나게 생겼으니 평정을 유지하던 한립도 얼굴색이 좋지 못했다. 검은 구름 안에서 현골의 거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아, 음혼사(陰魂絲) 맛이 어떻느냐! 체내의 법력을 조금이라도 운용할 수 있겠느냐?”
한립이 그 말에 놀라 서둘러 법력을 끌어올려보다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한립은 체내의 법력이 모두 굳기라도 한 듯 조금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분명 음혼사라는 것의 금제가 작용하는 것일 터였다.
당황한 그는 검은 실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실은 조밀하게 교차돼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검은 윤기가 흐르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닌 듯 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처음 금빛 그물을 받았을 때도 의심스러워 여러 차례 확인해 보았는데 분명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게다가 다른 순금 법기도 지니고 있지 않아 구곡영삼의 화신을 잡는데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금빛 그물이 화신을 포획하는데 성공하자 모든 의심이 풀리고 만 것이다.
상대가 이 그물로 암습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립의 곤혹스러운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그는 결계의 보호 안에 있었기에 상대가 직접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 판단한 것이다.
휙.
이런 생각에 한립이 서금충들을 부르려는데 등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미미한 느낌이라 한립이 의식을 완전히 개방해 놓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웽웽웽웽웽…….
가슴이 서늘해진 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피했고 동시에 서금충 떼가 그의 등 뒤를 향해 돌격했다.
쾅.
큰 소리가 울리고 한립의 얼굴이 굳었다. 서금충들이 청록색 그림자를 막고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자의 얼굴은 모호했지만 온 몸에 귀기가 흘렀으며 두 팔이 청록색 구렁이처럼 변해 공중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팔을 휘저어 서금충들을 후려치니 서금충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못했다.
하지만 불가사의 한 것은 분명 결계가 멀쩡한 데 요귀가 어찌 안으로 들어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록색 그림자가 소리쳤다.
“내 무형의 법체를 씹어 삼키는 벌레가 있다니!”
현골과 같이 있던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는데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그제야 한립은 서금충들이 몸통으로 접근은 못해도 그가 휘두른 팔을 야금야금 뜯어먹어 녹색 광채를 뱃속에 넣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상대가 기함할 만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검은 구름 속에 있던 자가 돌연 자신의 뒤에서 암습을 하다니 온갖 가정을 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상대와 한가하게 얘기를 나눌 때가 아니기에 바로 소리를 질렀다.
“와라!”
동시에 서금충 일부가 상대에게서 멀어져 그의 몸을 감싸고 검은 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법력을 쓸 수 없으니 그냥 목청을 높여 서금충을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서금충과 해결할 대책을 강구하기 전에 음혼사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서금충들이 귀무 속에서 귀곡성에 원기가 크게 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만일 상대도 그런 수법이 있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콰쾅.
이때 사방을 둘러싼 보호막이 무언가에 부딪친 듯 깜박거렸다.
한립은 차가운 눈길로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현골이 결계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구름 안에서 뿜어져 나온 일장 길이의 거대한 검은 구체가 맹렬히 결계를 들이받으니 진법이 얼마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눈을 빛낸 한립이 놀랍게도 현골의 하는 짓거리를 개의치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무표정한 시선으로 십여 장 밖의 청록색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다.
그를 결박하는 음혼사는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져 있었고 이미 몸 안에 진원 법력이 용솟음 치고 있었다. 법력만 쓸 수 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흐압!”
이때 청록색 그림자가 낮게 소리치더니 돌연 급속도로 회전해 팽이처럼 벌레를 뚫고 수장을 벗어나 버렸다. 한립과 훨씬 가까워진 것이다.
딱정벌레들 중 일부는 그의 회전에 떨어져 나갔으나 만 마리나 되는 서금충들이 끊임없이 달려드니 그의 회전 속도도 점차 감소했다.
그러자 더 많은 서금충들이 달라붙었다.
잠시 후 청록색 그림자의 전신에 금색과 은색의 딱정벌레들이 달라붙어 완전히 회전을 멈추었고 눈에 띄게 몸을 뜯어 먹히고 있었다.
한립은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청록색 그림자가 당하는 모습에 기쁘기 보다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벌어진 일들이 그의 나쁜 예감을 입증해 주었다.
서금충들에게 전신이 둘러싸인 그림자가 한 호흡 만에 맹렬히 팽창하더니 큰 구슬 같은 모습이 되어 눈부신 청록색 빛을 뿜어냈다
‘안 돼!’
이상을 감지한 그가 서둘러 서금충들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팡!
터져나갈 듯 부풀어 오르던 구슬이 결국엔 귀를 울리는 거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한 것이다. 음산한 기운이 모든 딱정벌레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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