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석전과 지도
불신의 기색으로 걸음을 멈춘 그녀는 바로 두 눈을 감고 기감을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그 결과, 분지 주변에는 엄월종 무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다만 석전 내부로 의식을 돌리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차단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오히려 기쁨이 차올라 소녀가 웃음을 지었다.
한 눈에도 석전에 금제가 걸려있는 것을 알아챘기에 놀라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곳을 돌며 요수를 소탕할 때도 때때로 이런 금제의 법술이 걸려있는 것을 지나왔지만 별 것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의 기감을 막아 설 정도로 강력한 금제가 걸려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소녀는 더 이상 누가 있는지 없는지 따질 마음이 없어졌다.
다른 문파 제자 한 둘이 부근에 숨어있다 한들 이렇게나 많은 엄월종 제자들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다. 소녀는 바로 제자들을 이끌고 석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한립은 석전 내의 대청 안에서 발을 동동 거리고 있었다. 원래 미련없이 이곳을 떠나려 했었다.
그저 떠나기 전 습관적으로 의식을 퍼트려 사방을 살펴보았고 바로 한 무리의 수도자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 도착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놀라 온 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 같은 기분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석전 내로 도망쳐 들어왔다. 방금 자신이 느낀 무리가 어느 문파의 제자들이든 간에 일단 들키면 어떤 꼴을 당할 지는 분명했다.
사실 지난 이틀 동안 엄청나게 몸을 혹사시키지만 않았어도 전 속력을 내 수도자들을 떨구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체력으로는 그런 쾌속의 신법은 몇 번 밖에는 사용할 수도 없었고 결코 멀리 도망갈 자신도 없었다.
이제 석전 내로 숨어들어 잠시는 안전하겠으나 수도자들 무리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도망갈 길이 막막했다. 게다가 석전의 구조가 너무 단순했다. 구불구불한 회랑을 따라 쭉 걸어오면 바로 이 대청이었는데 이 광활한 면적의 대청에 숨을 곳은 하나도 없었다.
밖에 있는 수도자들의 이동방향으로 볼 때 분명 이 석전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숨을 곳이 전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대청의 정 중앙엔 옥으로 만든 난간에 어두컴컴한 지하통로가 뚫려있었는데 그 입구부터 계단이 시작되어 끝없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 뜨뜻한 습한 바람이 파도처럼 들락거려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멀쩡한 곳으로 연결돼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위험천만한 곳일 것이란 예상에 한립은 내려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석전에 이 지하통로 말고는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여러 사람들의 걸음소리가 석전의 입구에서 들려왔다. 보아하니 아까 본 무리가 석전에 진입해 잠시 후면 이 대청에 들이닥칠 것이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이를 악물고 난간을 넘어 지하통로로 들어갔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저물대를 뒤적여 월광적을 꺼내고서야 겨우 주위가 밝아졌다.
전체가 석회암을 깎아 만든 듯한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손을 통로의 석벽에 가져다 대니 축축하고 미끄러운 느낌이 전해졌다. 뒤에서 수도자들이 쫓아 내려올까 봐 지체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다 보니 수백 개의 층계를 지날 때쯤 협소했던 통로가 점차 넓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둘이 나란히 걸어 내려와도 넉넉했다.
그러나 그 뜨거운 공기는 점차 열기를 더해 순식간에 한립의 몸을 땀범벅으로 만들었다. 다시 층계를 더 내려가자 그제야 석회암 통로가 사라지며 출구 밖으로 습지가 드러났다.
이 지하세계는 높이는 삼십 여 장 밖에 안 되었지만 넓이는 굉장히 넓었다. 한립이 고개를 두리번거려 보니 곳곳에 검은 수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늪이 보였다.
무더운 공기는 이 지하의 상층부에서 형성되어 한립이 나온 통로를 따라 빠르게 빠져 나갔다가 비교적 시원한 공기를 끌고 들어와 대류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습지 곳곳에는 흙더미가 쌓여있었고 그중 한 곳에 수십 포기의 다채로운 색의 기이한 꽃과 영기를 뿜어내는 약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 중에는 한립도 꼭 필요로 하는 영초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수량도 넉넉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립의 시선을 끄는 것은 습지의 중앙에 위치한 하얀 옥으로 만든 정자였다.
놀랍게도 공중에 금색의 거대한 궤짝이 둥둥 떠 있었는데 길이는 일 장 정도에 폭은 반장 정도였고 금빛이 요동을 치는 것이 척 보기에도 범상치가 않았다.
곧바로 한립의 눈길이 궤짝에서 떨어졌다. 금색 궤짝보다는 당장 숨을 곳을 찾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다음에 보물을 품고 있고 말고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한립은 숨을 죽이고 모습을 감추는 술법을 시행해 멀리 떨어진 흙더미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곳의 흙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한립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에서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담담히 지하의 풍경을 훑어보더니 옥으로 만든 정자의 궤짝에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리고는 항상 태연자약하던 얼굴에 동요가 일며 두 눈에서 뜨거운 열정이 번뜩였다.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 금색 궤짝에 대해 이미 듣고 온 그녀였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소녀가 계단을 벗어나 고운 자태로 입구에 서자 그 뒤를 이어 엄월종의 남녀 제자들이 우르르 내려와 그녀의 뒤에 열을 맞추어 섰다. 멀리서 그 모습을 살펴보던 한립은 소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곳은 흑린망(黑麟蟒)이라는 검은 줄무늬 이무기가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위엄이 어려 있었다.
“사조께 아룁니다. 이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이무기는 상자를 노리고 들어온 각 문파 제자 십여 명을 잡아먹어 악명이 높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금지(禁地) 중의 금지로 불리고 있지요. 게다가 다른 최상급 요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하니 사조께서도 부디 조심하십시오.”
여 제자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흥! 내가 일급 요수 한 마리 어찌 못할 것 같더냐?”
소녀의 보드라운 얼굴이 굳으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자, 백의의 여 제자가 놀라 그것이 아니라며 변명했다.
“넌 그만 물러나거라! 모두 원래의 계획대로 한다. 저 이무기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너희의 음양견인술의 적수가 될 수는 없는 법! 기껏 해봐야 일급 요수가 아니더냐!”
이견을 용납 않겠다는 단호한 분부에 제자들이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제자들에게 엄히 명을 내린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습지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그건 저 상자 안에 있겠구나! 괜히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쓰레기만 담아왔어.”
그녀의 중얼거림은 너무 작아서 그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은 목전의 대전을 앞두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엄월종 제자들은 소녀의 명에 따라 수련 반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그리고 아주 능숙한 모습으로 서로의 한 손을 쥐었다.
잠시 마주 잡은 손에서 남색과 홍색의 기이한 빛이 생겨나더니 그들의 팔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 들어갔다.
총 여섯 쌍의 엄월종 남녀 중 사내들은 붉은빛을 발산해 보호막을 생성했고 여인들은 푸른빛을 발산했다.
다만 여인 둘과 사내 하나는 이미 각각의 반려를 잃었는지 각자 법기 등을 꺼내 일반적인 대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흙더미에 숨어있는 한립이 중얼거리는 소녀의 음성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녀를 부르는 제자들이 사조란 칭호는 귀에 똑똑히 전해졌다. 그녀의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너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월종 사조가 어떤 의미인지는 한립과 같이 수도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애송이라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본문의 이 사조처럼 결단기에 이른 고수란 뜻이었다. 그런데 축기기 이상의 수사도 들어올 수 없는 금지에 어떻게 저런 고수가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제자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앳된 소녀가 만족스러운 듯 행동에 나섰다.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그녀의 법보인 고리 형태의 주작환(朱雀環)이 입 속에서 흘러나왔다. 주작환은 공중에서 유유자적하게 회전을 시작하더니 금세 웬만한 방만큼 크기를 키웠다.
이어 소녀가 수결을 맺으며 무어라 중얼거리자 손에서 붉은 빛이 둥근 고리 속으로 뿜어져 나갔다.
둥근 고리의 색깔이 급변해 분홍색에서 타오르는 화염의 빛깔을 내기 시작하더니 고리 내부에서 불똥이 튀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크고 밝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백 개의 불꽃이 생겨나 지하의 온도 역시 덩달아 높아졌다.
가만히 엎드려서 보고 있던 한립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려 보이기만 하는 소녀가 법보를 다루는 것을 보니 결단기 수사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떻게 금지에 들어왔는지 또 어찌 몸에 법력인 그저 연기기 최고봉 수준에 불과한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직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습지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습지의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진흙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 범위가 지속적으로 넓어지며 점차 솟아올랐다.
그 기세가 엄청나 소녀의 얼굴에도 잠시 의혹이 스쳤다. 사실 그녀의 기억 속의 이무기는 이렇게까지 힘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요수가 몸을 드러내려 하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는 마치 꽃을 피우는 듯한 손동작으로 법술에 박차를 가했다. 이미 거대할 대로 거대해진 주작환이 공중에서 고속으로 회전해 윤곽이 흐릿해졌고 그 안의 수 백 개의 화구와 하나가 되어 붉은 바다를 이루었다.
“거(去)!”
수결을 맺던 손이 돌연 멈추었다. 동시에 주작환 역시 회전을 멈추며, 그 붉은 바다의 중심이 화염기둥으로 변해 흉흉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목표는 요동을 치고 있던 습지였다! 그 화염기둥이 그곳에 이르기도 전에 진흙 가운데서도 검은 물기둥이 솟아 올라 화염을 향해 쏘아졌다. 다만 그 물기둥의 굵기는 고작 큰 사발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촤르륵’
잠시 후 화염과 물이 만나며 거대한 수증기를 뿜어냈다. 사방이 짙은 안개가 낀 듯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흑린망이 아니야!”
의혹에 불과했던 것이 이 칠흑 같은 물줄기가 등장하고는 확신으로 변했다.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고 하는 듯 날카로운 짐승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뜨거운 공기가 몰아치며 주변을 뒤덮은 수증기가 날아가 버렸고 요수가 진짜 실체를 드러냈다.
온 몸을 검은 갑옷으로 감싼 뱀 같은 요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뱀처럼 보이되 뱀이 아닌 요수로 몸집은 겨우 세, 네 장에 불과해 거대하지 않았으나 온몸을 뒤덮은 희미한 검은 안개가 요사스러웠다.
게다가 생김새로 보기에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검은 이무기와 차이가 없었지만 온몸을 새까만 비늘 갑옷으로 덮은 점이 예외였다.
“검은 교룡!”
요수를 확인한 소녀가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과 함께 흥분의 기색이 동시에 느껴졌다.
뒤에 서있던 제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어찌 이무기를 잡으러 왔는데 교룡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의문을 해결해 줄 틈이 없었다. 이미 지면에서 떠오른 요수가 자신을 방해한 죄인들을 발견하고 머리 양 켠에 붙은 녹색 눈을 번뜩였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입이 벌어지며 또 다시 흑색의 물기둥이 엄월종 제자들을 향해 분출되었다.
“짐승 주제에 감히!”
교룡은 아직 어려 보였으니 이 요수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소녀는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서둘러 공중의 주작환을 이용해 앞을 막았고 그 가운데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생성된 화염이 교룡의 물줄기를 상대했다.
“수속구금쇄(收速拘禁鎖)!”
그녀의 손이 만월의 모양을 만들며 엄숙한 표정으로 외쳤다. 거대한 주작환은 다섯 글자가 울려 퍼지자 공중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며 소실되었다. 이에 교룡조차 그 작은 녹색 눈을 깜빡 거리며 그 종적을 쫓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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