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눈치
한립은 조금 심란한 상태였다. 만일 두 수도자 사이의 법력이 큰 차이가 났다면 천안술을 시전한 눈으로 상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의식을 잃게 하고 전투 중 적극적으로 싸울 수 없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이런 미혼술은 법력의 차이에 기초해 상대의 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드니 동훤아와 사내 둘이 시시덕거리는 것이 보였는데 그녀의 얼굴엔 아까 보았던 가련한 표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립은 한숨을 쉬고는 방으로 돌아가려 일어섰다. 그가 막 나무문을 밀려 할 때 객잔 밖에서 어떤 남자의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객잔 내의 수도자들은 잘 들으십시오! 내일 거행되는 보물대회는 장소를 분리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본국 수사분들은 연령보 서쪽의 산봉우리로 그리고 국외에서 와주신 수사분들은 동쪽의 산봉우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 정해진 시각까지 당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대회의 참가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오니 참고 하시어 늦으시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목소리는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서야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한립은 내용을 확인하고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국내외 수사들을 분리해 대회를 진행한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했지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수사들이 한 데 모여 시합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외부의 인물들을 경계하고 그들과 충돌하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였다.
* * *
그 시각 연령보 서쪽 산봉우리에서는 열댓 명의 귀령문의 녹색 장포를 입은 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산에 무언가를 묻고 있었는데 귀령문 소주와 그 호위인 결단기 수사 둘이 그 광경을 허공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임시로 만드는 음화대진(陰火大陳)의 효과가 너무 떨어지는 것이 아니더냐?”
귀령문 소주가 진법의 위력에 탐탁지 않은 듯 했다.
“소문주 안심하십시오! 비록 임시로 설치한 것이지만 저희 형제가 보조한다면 적을 가두는 효과는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진법 내에 축기기 후기의 수사나 특이한 능력을 가진 법기가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대부분은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되었다. 귀령십이위(鬼靈十二衛)를 데려왔으니 그물을 빠져 나온 성가신 물고기 몇 마리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귀령문 소주도 크게 근심하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이 씨 형제는 수사들의 혼백을 쓰지 않는다면 결단기 수사인 형제 둘만 나서도 축기기 수사들 몇을 죽이는 일이야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태악산맥의 황풍곡 밀실에서는 7명의 결단기 수사들이 모여 백발의 황풍곡 노인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는데 노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립의 사부 이화원, 홍불 서고 및 뢰만학도 그 중에 섞여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밀실에서 나서자 황풍곡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하늘 높이 말을 전달하는 부적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고 그 아래로는 수사들이 무질서하게 법기를 타고 이동했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서둘러 조직된 수사들의 무리가 그날 밤 당장 모처를 향해 출병했다. 이런 장면이 다른 여섯 개 문파에서도 똑같이 벌어졌고 문파 간에도 수신이 잇달아 오고 가니 하루 밤 사이에 월국 수도계는 무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월국의 크고 작은 수도 가문들도 이후 수 일 내로 칠대수도문파의 장문인이 공동으로 서명한 징집 명령을 전달받게 되었다.
그 징집령(徵集令)은 각 가문의 인재들을 차출해 명을 따르게 하라는 것으로 이에 대항하는 자 혹은 가문은 칠대선파의 집법대(執法隊)에 의해 피를 흘리고 멸문을 당하게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3일 후 동일한 내용의 징집령이 도착한 연가는 텅 비어 있어 아무도 그것을 전달 받을 수 없었다.
* * *
한립과 연령보 안의 수사들은 당연히 문파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 소식을 전달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수사들이 서둘러 서쪽의 작은 산봉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이미 거대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연가 복색을 한 중년인 둘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진법의 후면에 그리 높지 않은 둔덕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열댓 명의 연가 복장을 한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가 모인 이후에 대회를 시작하려는 모양새였다.
한립도 산봉우리에 올라 있었는데 동훤아와 함께는 아니었다. 그는 평소 습관대로 홀로 오는 와중에 우연히 거검문의 파 사형을 만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파 형, 이 진법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아십니까?”
“부끄럽게도 저 역시 진법에는 정통하지 못해서요. 아마 보호 금제류가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축기기 수사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 이런 제한이 꼭 필요하니 말입니다. 안 그랬다간 작은 산봉우리 하나쯤은 어찌 사라진 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파 사형이 턱을 쓰다듬으며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눈치로 말했다.
“예,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한립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히 차오르는 불안감은 오로지 직감에 의한 것이었다. 눈썹을 끌어 올린 그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도처에 수사들이 서른 명 가까이 모여 있었고 청허문 도사와 천궐보 방 사매 등도 저쪽에 모여 있었다.
“한 형제, 우리도 가서 인사를 나누지요. 무법자 등이 저쪽에 모여 있습니다.”
“파 형, 먼저 가보시지요. 소제는 잠시 이곳을 둘러보고자 합니다.”
이런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남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그런 것은 딱 질색이었다. 거검문 중년 수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립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어쨌든 이렇게 많은 다른 문파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립과 달리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들에게 가 합류했다.
한립은 제자리에 서서 습관적으로 구석진 곳을 찾아보았다. 그는 진법에서 제법 먼 곳으로 걸어가 차가운 시선으로 다른 수도자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서 동훤아와 봉 사형이 도착했고 그들은 오자마자 황풍곡 수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동훤아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니 그곳의 분위기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그녀에게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던 연우가 보이지 않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때 흙더미 위의 수사들이 모인 칠대선파 수사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소주, 아직 두 명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되었는데 더 기다려 볼까요?”
연가 제자 복색을 한 귀령문 수사가 귀령문 소문주에게 아뢰었다.
“그럴 것 없이 바로 진법을 발동하라 이르거라. 시간을 끌면 낌새를 알아챌 수도 있고 일만 키울 뿐이야. 그 두 명은 팔 호와 십이 호를 보내 추살하거라. 누구도 살아서 연령보를 떠나게 할 순 없지!”
거리낌 없는 소문주의 명에서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귀령문 소주의 옆에 서있던 수사가 명을 받들어 진법 중앙에 있는 이 씨 형제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잠시 후 수사가 다시 귀령문 소주를 향해 돌아섰다.
“소문주님, 장로님들이 세 명이 진법에서 너무 벗어나 있으니 그들을 유인해 안으로 끌어들여 달라 하십니다.”
그 소리에 귀령문 소주도 눈썹을 꿈틀거렸다. 거대한 범위의 금제를 벗어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소주 왕선은 시선을 금제 밖으로 돌렸다.
역시 진법의 밖에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그 중 두 명은 엄월종 수사들로 구석의 거목에 기대 귓속말을 속삭이고 있었고, 서쪽에는 평범하게 생긴 황풍곡 청년 한립이 산봉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저 세 명이로구나.’
왕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옆에 서있는 귀령문 수사에게 분부를 내렸다. 이어서 연가 복장을 한 귀령문 수사가 결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이쪽으로 와서 출석을 알리십시오. 인원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며 수도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들은 바로 몸을 움직여 더욱 진법과 가까운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로 부둥켜안고 시시덕거리던 엄월종 남녀도 아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광경에 왕선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을 때 그 웃음은 즉시 굳어버렸다.
한립은 뜻밖에도 꼼짝도 않고 팔짱을 끼고 한 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출석을 알릴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어느 문파더냐.”
“복장으로 보아 황풍곡 수사인 듯 합니다.”
왕선이 냉랭히 묻자 수하가 조심스레 답했다.
“장로들에게 일을 시작하라 이르거라. 난 저 황풍곡 제자를 데리고 몸을 좀 풀고 올 테니.”
담담한 어투였으나 왕선의 눈이 붉어지며 이미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예! 소주!”
수하가 그 한기에 조용히 몸을 떨며 공손히 답했다.
* * *
저 멀리 암석 위에 선 한립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대중을 살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 보면 그 웃음은 가짜이며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까지 맺혀있었다.
‘저 연가 복색의 수사는 귀령문 사람이야!’
방금 전 알아 챈 사실에 그는 번개라도 맞은 듯 놀랐다. 연가 제자가 나서서 출석을 알리라 할 때까지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바로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그 제자가 손을 뻗어 여러 수사들을 불러 모으는 순간 어두운 녹색의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빛깔의 손톱은 귀령문의 황발 괴인이 대결을 할 때 보았던 것이다.
그는 머리에 찬물을 부은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저런 녹색의 손톱은 보통 사람에게 나타날 수 없다. 설마…….’
자신조차 믿기 어려운 결론이 내려지자 한립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그가 얼굴에 웃음을 유지한 채로 눈동자만을 굴려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디 한 군데 이상한 점이 없었으며 더욱이 매복을 해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모든 것이 우연인 것인가? ’
우연이란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한립은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우연히 겹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정말 우연이라 해도 한립은 모험을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히 저 진법이 처음부터 줄곧 마음에 걸렸다. 결심을 한 그의 손에 바로 신풍주가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나른한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어린 나이에 눈치도 빠르구나. 이렇게 빨리 허점을 꿰뚫어 보고 달아나려 하다니. 설마 동문을 구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냐?”
흠칫 놀란 한립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발끝으로 땅을 박차고 사라졌다. 그는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몸을 멈추고는 이어 손바닥으로 자신의 몸을 내리쳐 붉은 색이 도는 방어막을 만들고 동시에 그 방어막 안에서 푸른빛이 몸을 감쌌다. 그러자 공중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한립의 재빠른 움직임과 한 번에 두개나 방어막을 만드는 기민함에 감탄한 듯 했다. 이제야 조금 안심을 한 한립도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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