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재회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지지 않고 따졌다.
“흥! 들키면 또 어떻다고 그러나. 우리 둘이 연합해서 싸우다 기껏해야 귀무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전면전으로 원영기 선사를 이길 수는 없어도 달아나는 수단만은 우리 귀도공법(鬼道功法)만큼 신묘한 것이 없으니 말이야.”
현골 상인이 차갑게 반박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여기 있는 원영기 선사 중 최소한 세, 넷은 귀도공법에 극성인 법보나 수단을 지녔을 것이다. 죽고 싶으면 혼자 죽고 나는 끌어들이지 말라는 소리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너를 멸해도 약조를 지키지 않았다 탓하지 말거라.”
어린 소년 선사는 당연히 현골 상인이었다.
“현골 아우, 뭘 그리 화를 내는가? 노부가 조용히 하고 있으면 그만인 것을. 다만 적합한 육체를 찾아 주겠단 약속은 꼭 지켜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널 귀무로 만들어 놓을 게야.”
그는 현골이 정말 화를 낼까 꺼리면서도 약조를 지킬 것을 당부했다.
“걱정마라! 어차피 극음 놈을 처리하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니 당연히 알맞은 육체를 찾아주지 않겠더냐? 게다가 동병상련이라고 나 역시 귀도의 길을 걸었으니 스스로가 한 약조쯤은 지킬 것이다.”
“헤헤! 그럼 안심이네.”
이 말을 끝으로 현골 상인의 머리에서 굵은 목소리가 사라졌다. 한숨을 내쉰 현골 상인이 작은 과실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귀무에서 빠져 나오는 이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러나 상태가 심해 몇 명은 원기를 크게 상한 것이 몇 년간 요양을 하지 않으면 원래 수행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어쨌든 귀무를 통과하며 제 일관을 넘은 셈이니 외부 세계에서 구하기 어려운 영초를 약간은 얻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인 이들이 6, 70명쯤 되자 귀무를 빠져 나오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반나절 동안 겨우 몇 명만 걸어 나왔을 뿐이었다.
그 중엔 처음 자령 선자와 함께 있던 젊은 사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의복이 단정치 못하고 안색도 회백색이 된 것이 고생 꽤나 한 것이 틀림없었다.
젊은 사내가 화원에 들자마자 곳곳을 살피더니 자령 선자가 없음을 깨닫고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때 극음과 현골 역시 한립이 나타나지 않아 불안해지고 있었다. 현골 상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겉으론 전혀 불안한 기색이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극음 사조는 가끔씩 참지 못하고 음산한 눈으로 귀무를 훑어보곤 했다.
사실 그처럼 음험한 성격에 이런 감정 표출이 드물긴 했으나 한립이 지닌 것이 이번 원행의 핵심이 될 만한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행동을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으나 바로 옆에 있던 학사차림 노인만은 눈치 채고 있었다.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아직 오지 못한 이들 중에 신경 쓰이는 이가 있나 봅니다?”
극음을 쳐다보는 노인의 눈에 의혹이 어려 있었다. 극음이 평정을 유지하고는 자연스럽게 답했다.
“신경이 쓰인다기 보다는, 일면식이 있는 완배 녀석이 한 명 있는데 조금 흥미로운 자라서요.”
“흥미로운 완배라? 그럼 노부에게도 소개를 시켜주시지요. 항상 후학을 양성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말에 극음 사조는 속으로 울분을 터트렸다.
‘늙은 여우가 의심도 많구나!’
하지만 겉으로야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 답했다. 한립이 나타나지 않아 정말 신경이 쓰였기에 상대와 입씨름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극음은 아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같은 시각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현골 상인의 머릿속에 다시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엔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현골, 말하던 그 자는 아직 인가? 요귀에게 이미 잡아먹힌 것 아닌가? 이렇게 늦게 올 정도로 약한 자라면 무슨 쓸모가 있겠나.”
현골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의 성격으로 보아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계속 입을 놀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정말 상대를 멸하기에는 앞으로 쓸모가 큰 자였다.
게다가 이쪽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짧게 몇 마디 하는 것으로는 탈로 나지 않을 듯했다.
마음을 정한 현골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말투로 설명했다.
“무언가 한 수가 있는 자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결단 초기이니 웬만한 요귀에겐 당하지 않을 것이야. 아마 네가 그를 마주한다 해도 혼백이 흩어지거나 귀무 속으로 달아났을 자이니 얕보지 말거라.”
“결단 초기? 현골,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그 정도면 내겐 한입 거리도 안 된단 말이네.”
“금뢰죽으로 제련한 내 멸마전(滅魔箭)에도 된통 당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금뢰죽으로 만든 비검을 상대할 방법이 있을 리가.”
굵은 목소리가 잠시 침묵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로 다시 물었다.
“금뢰죽으로 된 비검이라니 농이 지나치네. 유일한 금뢰죽은 현골 아우의 활을 제련하는데 쓰지 않았나. 어찌 또 금뢰죽으로 된 법보가 있단 말인가!”
“헤헤! 믿든 말든 조금만 지나면 직접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우기지나 말거라. 금뢰죽 법보 외에도 강력한 수법이 수두룩한 자이니 나 현골이 연합을 하자 청한 것 아니겠더냐.”
말을 마친 현골이 다시 굵은 목소리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다시 수 시진이 지나고 현골 상인이 무슨 일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할 때쯤 귀무가 갈라지며 세 선사가 나란히 걸어 나왔다.
한립과 자령 그리고 원요였다.
이때 원요는 원래대로 복면과 법술을 통해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온 것을 보고는 한립은 조금 의외인 듯 했으나 그저 빈자리를 물색해 그쪽으로 걸어갔다.
자령 선자와 원요도 마음이 통한 듯 서로를 바라보더니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때 청삼을 걸친 준수한 청년이 자령 선자를 향해 달려왔다.
“정말 다행이오, 자령!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하고 있었소.”
말을 마치고 한 걸음 더 다가와 여인의 몸에 부상은 없는지 훑어보는 것이 아끼는 마음이 드러났다.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춘 그녀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이 형, 저는 별 일 없었습니다.”
원요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둘을 보고는 홀로 의복을 날리며 가던 길을 갔다. 빈자리를 찾아 홀로 서있던 한립이 자신을 따라오는 원요를 보고는 조금 뜻밖이라 여겼다.
그는 눈썹을 슬쩍 찌푸리며 말했다.
“원 소저, 이미 귀무를 벗어났는데 더 용무가 있으십니까?”
절색미인에 마음이 끌리지 않은 것은 아니나 모르는 이와 동행할 계획은 전혀 없었기에 선을 그은 것이다.
원요는 그의 말에 화를 내기보단 한숨을 내쉬었다.
“한 선사를 따라온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입니다. 아시다시피 귀왕과의 일전으로 이미 법보가 크게 상했는데 허천전엔 위험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아는 이가 오직 한 선사뿐이니 이렇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요. 설마 소녀가 이곳에서 죽어나가게 두고 보시지만은 않겠지요!”
흑의 소녀의 두 눈이 약간 붉어지며 눈물이 맺히려는 모습이 한립의 얼굴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원 소저, 기왕 말이 나왔으니 몇 가지 묻겠습니다. 저는 무슨 성인군자가 아니니 누군가에게 사정도 모르고 이용당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녀는 한립이 전혀 동요하지 않자 조금 울분이 차올랐지만 이번 원행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있어 마음을 다독였다.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기밀에 해당하는 사실만 아니라면 답을 드리겠습니다.”
한립이 뒷짐을 지고 연달아 질문을 쏟아 놓으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간단합니다. 원 선사의 정확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몇 관까지 가시려 합니까? 처음 저를 보았을 때 당황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숨겨놓은 사정 때문에 저까지 그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원요는 처음 두 가지 질문에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이미 충분히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물음에는 얼굴이 굳더니 당황하며 거짓 웃음으로 그 기색을 가리려 했다.
“숨겨 놓은 사정이라니요. 제가 처음에 당황했던 것은…….”
한립이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을 저었다.
“원 소저가 사실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됐습니다.”
“당신!”
냉정한 언사에 결국 그녀가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걸음을 돌려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한립은 지극히 담담할 뿐이었다.
이어서 그는 멀리에 있는 자령 선자 쪽도 살펴보았다.
자령 선자가 침착한 얼굴로 청년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립의 시선을 느끼곤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청년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시선을 거둔 그가 무언가 생각에 잠기려는데 귓가에 현골 상인의 전음이 울렸다. 소년의 목소리에는 조금 불만이 어려 있었다.
“너무 굼뜨질 않더냐! 본 상인은 네가 겨우 악귀에 잡혀 먹은 줄 알았다. 설마 귀왕이라도 만난 게냐?”
한립은 멀리 보이는 귀무를 바라보며 전음으로 답했다.
“오는 도중 강력한 요귀를 만나 물리쳤는데 그 후 또 한 무리의 혼을 빼먹는 귀신들을 만나 시간을 좀 허비했습니다.”
“한 무리를?”
현골 상인이 조금 놀란 듯하자 한립이 상대를 탐색하며 반문했다.
“선배께선 귀도를 익히신 줄 아는데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십니까?”
“본 상인이 어찌 그런 것에 겁먹겠더냐. 다만 너희 세 사람이 무슨 조화를 부려 그것들을 처리했는지가 궁금할 뿐이지.”
한립은 속으로 냉소를 하며 여전히 간략하게 답했다.
“운이 좋았겠지요.”
현골 상인은 속으로 ‘여우같은 놈’이라며 수도 없이 욕했다.
“말하기 싫다면 됐다! 다음 번 전송 때는 둘이 함께 움직이자꾸나. 일단 구곡영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이니 이후 힘을 보태어 노부가 극음 역도를 처리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러지요! 구곡영삼만 넘겨주신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전혀 주저하지 않고 즉답하는 것이 이 부분에 대해선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물론 이런 태도에 현골 상인은 상당히 흡족했다.
현골 상인은 가볍게 웃고는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마친 한립의 입 꼬리가 올라가며 멀리 있는 상대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주었다는 것은 몰랐다.
돌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 한립이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보았다. 역시 극음이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으나 쓴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상황이었다. 보아 하니 자신이 극음 사조를 어찌 할 생각이 없더라도 자신을 놓아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정말 무엇 때문에 저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극음 사조도 자신만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 대청에서부터 자신을 통제하려 들었을 것이다.
울적한 마음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한립은 가부좌를 했다. 귀무 속에서 허비한 많은 법력을 회복해 두어야 이후의 사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의 여인 원요는 저 멀리 서서 달갑지 않는 눈빛으로 한립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열 받은 기색도 있었지만 호기심 역시 담겨 있었다.
자령 선자도 상대 청년의 진심 어린 배려에 빠져 나오지는 못했으나 무의식중에 한립을 살피며 신경 쓰고 있었다.
한립은 둘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또 하루가 지났다.
많은 선사들이 참다못해 중앙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빛이 나는 석판 위에 어느 순간 눈부신 광채가 올라오며 선사들의 주의를 끌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 겪은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는 이는 없었다. 역시 하얀 빛이 지나자 이전과 동일한 모양의 전송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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