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ward Walker Canceller RAW novel - Chapter 59
59화
“후우…….”
“준비됐어?”
“응. 봐주지 말고 시작해줘.”
“좋아.”
가볍게 대답하는 카넬의 목소리를 들으며 손에 들린 라이온 하트의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는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카넬의 모습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앙!
카넬이 덤벼드는 순간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전투상태로 판정이 되자 자동으로 순발력 보정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카넬의 움직임이 신경가속 상태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빠르다는 것이다.
까앙-!
“큭!”
어깨를 노리고 내려찍어오는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자 뼛속까지 윙윙 울리는 게 느껴진다. 물리공격에 면역인 내가 이만한 타격을 받는다는 건 그녀의 공격이 단순 물리공격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추가적인 마나의 소모와 동시에 번개처럼 반대쪽으로 검을 휘두르던 카넬의 움직임이 눈으로 충분히 보고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려진다.
‘와 말도 안 돼. 뭐가 이렇게 빨라?’
5배속으로 느려져도 눈으로 확인이 힘들 정도라니 그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심지어 15배속까지 시간을 돌렸음에도 카넬의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검을 휘둘러 들어오는 그녀는 무려 15배속의 신경가속 상태에서도 보통 사람보다 약간 느린 정도에 불과하다.
‘쾌속의 검사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군!’
투덜거리며 영력을 움직인다. 만들어내는 것은 운동화 형태의 신발. 동시에 영력을 다리로 내려 보낸다. 카엘 투격술의 기술 중 하나인 였다.
파앙!
순식간에 2미터 가깝게 전진해 내 머리를 내리 찍어오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카넬의 품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라이온 하트를 들어 가로로 휘두른다. 아, 물론 죽이면 안 되기 때문에 검면으로 후려친다.
쩌엉!
그러나 그 순간 카넬의 표정이 싸늘해지나 싶더니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고속으로 당겨져 라이온 하트를 후려친다. 15배속 가속 상태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우득!
“큭!?”
믿을 수 없게도 강체술로 강화된 어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내 몸이 허공으로 붕- 하고 떠서 10여 미터 가깝게 날아갔다.
텅!
그러나 15배속의 가속이 호락호락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나무에 충돌하는 대신 두 다리로 착지하듯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오, 대단하다. 엄청 빠르잖아?”
“헤에. 순간적으로 카넬이 진심이 됐을 정도야.”
구경하고 있던 레나와 알리시아가 놀랍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단 몸부터 푼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지만 이래봬도 생명력 99포인트에 강체술 스킬이 초월자에 들어선 나였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거……. 카넬 녀석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강하잖아?’
싸우기 전의 나는 비교적 쉽게 그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검술 스킬의 수준은 완성자 5레벨에서 8레벨 사이로 초월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카엘 투격술 스킬이 이제 간신히 전문가 2레벨에 불과한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스킬들. 그러니까 과 . 그리고 과 은 무려 초월자의 경지에 올라 사기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버프를 나에게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해.’
그러나 막상 마주한 카넬의 강함은 생각 이상이다. 물론 내 움직임이 예상 외였던 건 카넬 역시 마찬가지인 듯 서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로안.”
“응? 아 미안. 다시 시작…….”
“죽을래?”
“어……?”
싸늘하게 깔리는 살기에 깜짝 놀라 카넬을 바라본다. 180센티미터라는 여자 치고는 상당히 훤칠한 키를 가진 그녀는 H컵의 놀랍도록 풍만한 가슴과 둥그스름한 엉덩이 때문에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하기 보다는 무슨 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도 섬나라 성인 망가에서나 나올 것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냥 척 봐도 색기가 줄줄 흐른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렇게 마주 서 바라보니 느낌이 좀 다르다. 그녀는 불꽃처럼 활활 불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나선형으로 뒤틀려 솟구쳐 있는 뿔이 상당히 위압적. 내 키가 186센티로 그녀보다 미묘하게 큰 건 사실이지만 사실 뿔까지 치면 그녀의 키가 2미터를 넘어서기 때문에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이 전해진다.
“후, 후후후후. 로안, 방금 최후의 순간에 검을 틀어서 검면으로 나를 치려고 했지?”
“에, 그게. 안 그러면 다치잖아?”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 카넬의 눈이 가늘어진다.
“후, 후후후후후! 그러니까! 네가! 나를! 봐주려고 했다고?!”
우우우우—-!!
기세가 폭발한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주변 공기가 훅하고 밀려난다.
“저, 저기 카넬?”
“끓어라! 나의 피여…..!!!”
고오오오—-!!!
카넬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검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세가 하늘까지 솟구친다. 그리고 0.1초도 안되어 내리찍어온다!
15배속의 시간으로 들어섰지만 검격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세상에! 무려 15배속의 시간에서도 신속의 부츠를 쓸 시간도 없다!
쩌엉-!
우드득!
무지막지한 힘과 함께 들어 올린 라이온 하트가 튕겨나간다. 경악스럽게도 오른팔이 부러진 것만 같다. 이어 주변 공기가 푸확-하고 밀려오더니 예리한 기세가 밀려온다. 마치 거인이 전신주를 휘두르는 것처럼 가로로 넓게 깔리는 공격이라 피할 수가 없다. 점프를 뛰면 되겠지만 일단 점프해 움직임이 한정되면 추가타를 맞게 되리라.
쩌억-!
몸을 가로로 갈라버릴 것만 같은 기세로 뿜어지는 무형의 검을 몸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그러자 67400테라의 마나 중 3000테라의 마나가 날아가며 텍스트가 떠오른다.
떠오르는 텍스트를 보고 기겁한다. 공격 한방에 3만 테라의 마나를 담았다고? 내 최대 마나가 7만 테라가 안 되는데?
‘우와 신혈각성 능력이 없다면 몇 방 버티지도 못하는 공격이잖아?’
물론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패시브 스킬. 충격흡수가 일정량의 데미지를 마나로 환산해 주었지만 500마나에 불과하다. EX급 스킬인 신혈각성이 없었다면 벌써 패배가 확정되고 말았으리라.
“말도 안 돼! 파산격(破山擊)을 맨몸으로 받아낸다고!?”
“그럼 날 두 동강 내려고 했단 말이야? 에라이!”
나 역시 발끈할 수밖에 없던 상황인 만큼 신속의 부츠를 발동시켜 단숨에 파고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배운 으로 크게 베고 올라간다!
“흥.”
그러나 카넬은 검 끝을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내 공격을 흩어 버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애초에 검 실력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어? 그렇다는 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금강초인과 신혈각성이 있으니 내가 질 리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잖아?’
나에게 마땅한 ‘공격 스킬’이 없다는 것을.
쩌엉!
검과 검이 충돌하고 다시 간격을 벌린다. 내 한쪽 팔은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꺾였었지만 지금 보니 가뿐할 정도로 멀쩡하다. 초월자에 이른 강체술에 높은 생명력과 재생력.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버프까지 겹쳐 지금의 난 사실상 불사신에 가까운 것이다.
“뭐야 너. 검술은 여전히 초보인데……. 왜 내 공격이 안 먹히는 거지?”
“그냥 좀 타고난 게 있어서.”
“혈통의 강함이라는 건가……. 뭐 블랙야크인 나도 혈통에서 오는 이득을 안 봤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상당히 사기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피식 웃으며 라이온 하트를 살짝 늘어트렸지만 고민이 많다. 나는 무려 4개나 되는 스킬을 초월자의 경지에 이르게 했지만……. 그럼에도 본신의 능력이 떨어진다. 고유스킬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성격이 강해서 자체적인 공격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광익을 펼쳐서 기동성을 늘려볼까? 아니야. 당장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느낌인데 기동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럼 다시 간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도 없이 카넬의 검이 측면을 노리고 파고든다. 당연히 나는 라이온 하트를 휘둘러 그것을 쳐냈지만 검과 검이 충돌하는 손간 그녀의 몸이 빙글- 하고 반전되더니 삽시간에 참격이 내 목을 후려쳤다.
떠오르는 텍스트에 기겁한다.
‘13000테라가 소모된다고!?’
강체술이 초월자의 경지에 이르면서 검기에 이르지 못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이 된 나지만 소드 마스터인 카넬은 공격 하나하나에 검기가 실려 있다. 마나의 유형화라는 검기는 유지하는 데만도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다는데 이렇게 막 날리는 게 가능하다니.
‘대체 보유 마나가 얼마나 되는 거야?’
기겁하면서도 검을 휘둘렀지만 안타깝게도 검술 면에서 나는 그녀의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15배속의 신경가속 상태에서 검을 휘두르는데도 그녀는 마치 검도의 고수가 초등학생을 상대하듯 그 모든 공격을 단 한 번의 움직임을 끊어내고 내가 파악할 수도 없는 현묘한 움직임으로 내 검을 흘려낸다. 그나마 내가 검을 놓치지 않는 건 내 손목 힘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큭……!”
마나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깎여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내 마력 회복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럼에도 깎여나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크리티컬만 아니라면 몇 시간동안 맞아도 괜찮을 텐데 내 움직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거의 십 초에 한 번씩 크리티컬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쩌정! 쩡!
“흥! 뻔히 보이는 움직임이야.”
거의 농락당하듯 얻어맞고 있다. 15배속의 신경가속으로 그녀의 동작을 눈으로 볼 수 있음에도 막지를 못하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변화하는 그녀의 검격은 내 이해를 아득히 초월한 수준의 것이었다.
‘제길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어! 어디로 오는 거지? 왼쪽? 오른쪽?’
일단 검이 뻗어오면 나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적게는 이지선다나 사지선다부터 많게는 팔지선다까지. 마치 야구 선수가 공을 쳐 낼 때 상대방의 성격이나 구질을 보고 휘두르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그 움직임을 찍어내야 하는 것이다.
‘큭! 또 틀렸어!’
카넬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가 없다. 그녀는 소드 마스터. 내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검의 고수였다. 마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었다.
‘그, 레나가 가르쳐 줄 때 뭐라고 했더라.’
분명 그녀는 움직임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상대의 눈을 봐야 한다고 했다. 눈은 마음의 창으로 인간 의지의 발동은 우선 눈에서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개 초보자들은 머리를 치고 싶을 때는 머리를 보고, 손목을 치고 싶을 때는 손목을 보게 된다. 시선을 일정한 부위에 고정시켜 타격 의지를 낱낱이 눈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쩌엉!
‘이런 제길 안 되잖아!’
그러나 상대는 소드마스터. 검의 오의를 깨달은 자다. 눈을 봐도 나는 그 어떤 정보도 읽어낼 수 없는 상태. 다른 가르침을 떠올려 그녀의 팔이나 칼끝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하나도 읽어내지 못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력이 딸리는 것이다.
“아 좀 봐주면서 해! 이러다 죽겠다!”
“난 네가 그렇게 시시한 남자가 아닐 거라고 믿어!”
“믿지 마!”
소리쳤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까 검면으로 때리려던 게 제대로 심기를 건드린 모양. 하지만 어떻게 하지? 카넬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없는 이상 마음을 읽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어? 아니 잠깐.’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와 함께 손가락을 튕긴다.
따악-!
시간이 뒤로 돌아간다. 내 목을 후려쳤던 검격이 거꾸로 돌아가며 무효화된다. 그리고 검이 내 목을 치려는 그 순간, 나는 신속의 부츠를 이용해 1미터 물러섰다.
훙!
“웃!? 피하다니–!”
공격이 빗나가자 당황하는 카넬을 향해 냅다 검을 찔러 넣는다.
까앙!
그러나 막힌다.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 당황하는 것과는 별개로 차분하게 검을 흔들어 내 공격을 무위로 돌린 것. 그러나 상관없다!
따악-!
시간을 돌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측면으로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카넬은 간단하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따악-!
‘될 때까지 한다!’
시간을 한 번 돌릴 때마다 소모되는 마나는 100테라에서 1000테라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1000%버프를 받고 있는 집마력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수십 번의 공격을 가한다. 한정된 타이밍을 두고 같은 공격을 계속 하자 그녀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한다. 과연 소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어울리게도 그녀의 철통같은 방어에는 빈틈이 없었지만-
‘빈틈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까앙!
낮게 깔려 올라오던 카넬의 검을 로우킥으로 걷어찬다. 물론 내 다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충돌했지만 금강초인을 발동한 상태이기에 뎅겅 잘려나가지는 않는 상황.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빈틈으로 참격을 날린다!
퍼억!
그러나 내 다리가 그녀의 검에 잘리지 않은 것처럼 내 검 역시 그녀의 몸에 박히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마나로 보호하는 강철의 갑주를 익히고 있지 않던가? 물론 그녀의 방어능력이 아무리 강해봤자 초월자에 오른 내 강체술 수준은 아니겠지만 검기도 이루지 못한 내 검의 위력은 굳이 초월자급 방어력이 아니어도 견뎌내기에 충분하다.
“아오 빨리 소드 마스터가 되던지 해야지 서러워서 못 살겠다!”
“헹! 아직 멀었으니 꿈도 꾸지 마시지!”
카넬은 가당찮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양수검. 클레이모어(Claymore)를 휘둘렀다. 강대한 기파를 뿌리는 클레이모어는 마치 냇가의 물고기처럼. 그 커다란 크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허공을 갈랐다.
따악-!
따악-!
따악-!
17회의 시도 만에 피해낼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은 현묘했지만 같은 동작을 신중하게 계속 살피면서 경험하다 보니 못 피할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내 움직임도 그녀에 비해 크게 느린 편은 아니니 공격을 완전히 이해하면 피해낼 수 있다.
“와. 카넬의 공격을 점점 피하고 있잖아?”
“가르칠 때는 그렇게도 못 배우던 녀석이……. 실전에 강한 타입인가?”
구경꾼이라고 할 수 있는 알리시아와 레나는 놀랍다는 듯 그 모습을 보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평소 내가 보이던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체술적성 99포인트로 모든 동작이 저장되며 보정이 붙는데도 저런 평가라니……..
‘내가 재능이 없나?’
하긴 뭐 살면서 내가 무술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는 하다. 강현 형이 권투를 할 때마다 칭찬을 하곤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동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사고를 ‘알면서’당해온 나의 정신은 이미 거기에 무뎌져 버려서 다치는 게 두렵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에도 눈을 감지 않으며 얻어맞으면서도 냉철하게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오죽할까? 물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미치는 대신 익숙해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내가 좀 특이한 성격이긴 하지만.
쩡쩡! 쩡!
더 이상 크리티컬 공격을 얻어맞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맞을 때마다 시간을 뒤로 돌린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카넬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느낀다.
“후욱……. 제법 빨리 느는데? 후…….”
거친 호흡에도 즐겁다는 듯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다. 전투를 시작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렇게 지쳐 보이다니? 가혹한(?)섹스도 몇 시간이건 할 수 있는 그녀라는 걸 생각하면 체력이 부족해서 지친 건 절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마나가 떨어져가는군.’
신혈각성에 의해 90%감소 효과를 받음에도 몇 만이나 깎인 마나를 떠올린다. 물론 그렇게나 많이 깎인 건 크리티컬로 금강초인의 효과가 줄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가 어마어마한 마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마나가 거의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카넬의 선택은 뻔하다.
“끓어라. 나의 피여…….!”
오오오오—–!
산처럼 묵직한 기세가 사방을 짓누른다. 180센티미터의 카넬이 170센티의 클레이모어를 위로 들어 올리자 그 위압이 장난이 아니다. 파고들려고 했지만 그 순간 목이 잘려나갈 것만 같은 압력이다.
“최후의 한 방인 거야?”
“어지간한 공격을 다 버텨낼 수 있다면…… 그 방어를 뚫어버려야겠지.”
“하지만 피하면 그만인데?”
“피하겠다고?”
피식 웃는 그녀의 표정은 자신만만하다. 뭔가 보이지 않은 비기가 있다는 뜻. 그러나 나도 웃었다.
“좋아. 나도 이번으로 끝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늘어트린다. 그녀가 검을 내리칠 때 마주 올려치기라도 할 법한 자세다.
“간다–!”
번쩍–!
들어 올렸던 카넬의 클레이모어가 빛살처럼 떨어진다. 과연 피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할 만큼 그 공격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무려 15배속의 신경가속 상태에서도 엇? 하는 순간 이미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나와 알리시아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인다.
“다, 단천세(斷天勢)?! 야 이 미친년아 무슨 짓…….!”
“그만 둬!”
지금까지 계속 태연하던 그녀들이 당황하는 걸 보니 보통의 기술이 아닌 모양이었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은 방어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쾌속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라이온 하트를 올려치는 대신 이마로 검격을 받아냈다.
“뭐?”
순간 공격을 날린 카넬까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당연하게도 자살을 하려는 건 아니다. 계정값이 100만원이 넘는데 죽어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때문에 나는 순순히 죽는 대신 검이 내 이마를 때리는 그 순간, 액티브 형태의 보조스킬을 발동시켰다.
콰득!
모든 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내 머리를 후려친 클레이모어에 담긴 모든 힘은 오히려 그 방향을 뒤집어 검의 손잡이를 타고 카넬의 팔을 지나 어깨로 흘러간다. 검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그녀의 양손이 그대로 박살나 버린다.
“꺄악…….!”
비명소리와 함께 떠오른 카넬의 몸이 십 수 미터 이상 날아가 커다란 나무와 충돌한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수십 년 이상 살았음이 확실한 거목이 우직. 하고 부러져 버린다. 그나마 모든 파괴력이 집중된 그녀의 검격과 다르게 반사된 기운은 범위로 뿜어져 나갔기에 목숨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에이. 역시 안 되나.’
[대결]시스템으로 스킬 경험치를 얻으려면 어디까지나 상대와 같은 계열의 스킬만을 사용해야 한다.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목표라면 고위 마법사가 온갖 마법으로 검사를 쓰러트려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도 가능하기에 만들어진 법칙이다.‘패시브 스킬들은 다 상관없다고 했었고 금강초인하고 신경가속은 무투 관련스킬이니 괜찮지. 문제는 무지개 반사인가?’
은 술법 관련 스킬이기 때문에 마법을 쓸 때야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무투 스킬 사용 시에는 쓰면 안 된다. 흡기나 충격흡수야 기본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지만 본격적인 액티브 스킬인 무지개반사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무지개 반사가 아니면 타격을 주는 게 불가능한 상대였으니.’
투덜거리며 카넬에게 다가간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
“뭐, 뭐였지 방금?”
“비장의 기술. 될지 안 될지 불안했는데 다행히 잘 되었네.”
사실을 말하자면 보조스킬들은 몇 번씩 실험을 해 봤기 때문에 불안한 건 없었다. 다만 소유 마나가 부족하면 어쩔까 했지만 15000마나로 반사할 수 있었다.
‘진짜 신혈각성 스킬 만세네.’
보조스킬의 사용 마나를 90%감소시켜주는 신혈각성의 버프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시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초월자 스킬은 물론 하나하나가 사기에 가까운 기술들이지만 스킬을 익힌 대상의 마나가 많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어서 잡아먹는 마나가 엄청난 것이다.
‘내 마나는 6만 포인트도 안 되는데 말이야.’
투덜거리는데 나무에 기대고 있던 카넬이 한숨 쉬듯 말한다.
“으…….쳇. 솔직히 완전 무시하고 있었는데. 싸움 중에 내 움직임에 반응하게 될 줄이야.”
“운이 좋았지 뭐.”
“운은 물론이고 타고난 힘이나 재능도 다 실력이야. 내가졌어. 로안.”
카넬의 말과 함께 특이한 텍스트가 떠오른다.
전문가 6Level>
‘호오……. 정면 대결에서 이기는 게 카넬의 호감도 락 해제 조건이었구나.’
마음속으로 나이스. 하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를 제외한 모든 가디언들의 호감도는 락이 풀려 100을 찍은 상태다.
‘다만 호감도 100이 되어도 성격이 그대로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호감도가 100이라고 그 대상한테 완전히 복종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사랑이 빠진다고 정신이 제압당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들도 자의식을 가진 존재인 만큼 호감도 100이 된 상태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다만 확실한 건 호감도 100상태에서는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주게 되고 여러 가지 스킬에 보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상이 생겼으니 매혹의 마안 수련도 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묻는다.
“됐어 언제 한번 다시 겨뤄보기로 하고……. 그나저나 괜찮아?”
“으, 으응. 물론이지.”
항상 터프하던 카넬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졌던 그녀의 팔뼈가 원래의 형태로 돌아온다. 드래곤이 만들어낸 키메라종족인 블랙 야크족의 초회복 능력이었다.
“대충 해 이 멍청아. 로안이 죽을 뻔 했잖아?”
“하여간 피가 몰리면 뒤를 생각하질 않으니……”
“어쨌든 무사하니 됐잖아? 게다가 내가졌다고!”
“진 게 뭐가 자랑이라고 떠벌린데.”
“뭐라고! 결투다!”
레나와 카넬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다가 알리시아를 돌아본다.
“너도 한번 대련 해 볼래?”
“마법 말이야?”
“응. 요새 연습을 좀 했거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한울의 권능은 술법계열 스킬이니 술법전에서는 무지개 반사를 마음껏 쓸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신경가속과 금강초인을 쓸 수 없다는 것. 만약 금강초인을 쓸 수 있다면 탱커법사(?)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조합이 나올 텐데 말이다.
‘뭐 스킬 랭크에 목메지 않으면 쓸 수 있긴 하지.’
정색하고 승리에만 집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조합이니 몬스터를 잡는 데에는 쓸 수 있으리라.
“음. 미안하지만 당장은 힘들어.”
“응? 일이라도 있는 거야?”
“응. 다만 내가 아니라 네가.”
그녀의 말은 전혀 뜻밖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가 할 일은 하나도 없다. 나는 매일 수련하고 여인들을 안는 매일을 보내는 백수(?)인 것이다.
“무슨 말이야? 난 별다른 일정이 없는데.”
“그, 우리가 모시는 분이 너를 만나길 원해.”
============================ 작품 후기 ============================
버프는 초월적이지만 자체적인 능력이 후달리죠. 스텟으로 찍을 수 있는 스킬은 주공격 스킬을 안 주거든요. 그나마 초월자에 이르면 공격 비슷한 스킬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만;;; 포인트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초월자가 쌓이고 싸이면 버프가 심각해질 정도로 강해지니 이정도 버프라면 등급을 한 두 단계쯤 뛰어넘는게 가능하긴 합니다;;;
실제로 지금 로안도 이기진 못하지만 지지도 않죠. 검기도 버티는 금강초인에 신혈각성으로 90%사용 마나 감소 버프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