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02
〈 102화 〉 한 여름밤의 악몽(3)
* * *
조별 과제란 무엇인가.
나는 교수실의 소파에 걸터앉아 조별 과제란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스승님이 짜주신 커리큘럼에 조별 과제가 있길래, 일단 공지를 올려두긴 했지만···.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물론, 조별 과제 하면 떠오르는 게 없지는 않다.
당장내가 지난 5년간 죽어라 해왔던 것이 바로 조별 과제였을 테니까.
크게는 마왕을 사냥하는 것.
작게는 넷의 재앙을 사냥하는 것.
혼자선 할 수 없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인간은 타인과 협력한다. 결탁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것, 그것이 곧 조별 과제의 의의였다.
‘말로 하면 근사하지만······.’
나는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쓰레기가 존재한다. 일류들을 모아둔 곳에서도 폐급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곤 한다.
기밀을 뿌리며 탈주하는 기사들.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변절자.
그리고······.
‘뇌가 하반신에 지배당한 용사 새끼.’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정예의 정예만 뽑아 만든 용사 파티에서조차 쓰레기가 존재했다.
무려 넷 중에 셋이 쓰레기였다.
비율로 따지면 75%다. 남은 25%에 속했던 나로선, 조별 과제란 단어를 들으면 치가 떨릴 뿐이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스승님.”
“무어냐, 라니아.”
“조별 과제 이거, 꼭 필요한 걸까요?”
진지하게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스승님께 질문했다.
“그냥 혼자 잘하면 되지 않나요? 조별 과제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유가 왜 없더냐.”
“예?”
스승님께선 탁, 하고 서류의 모서리를 맞춰 정리하며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누구보다 라니아, 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더냐?”
“제가 안다고요?”
“그래. 네가 지난 5년간 해왔던 게 곧 조별 과제이지. 5년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없느냐?”
5년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믿을 건 나뿐이라는 것?”
“······그것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지만, 다른 건 또 없느냐?”
“여럿이 모이면 반드시 쓰레기가 나와요.”
“······.”
“아, 그리고 쓰레기는 꼭 하나란 법이 없어요. 하나가 쓰레기가 되면, 높은 확률로 남은 사람도 쓰레기가 되더라고요.”
실시간으로 용사가 쓰레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깨달은 것이다. 폐급이 무서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태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놀고 처먹는걸 보면 배알 꼴리잖아. 왜 나만 열심히 해야 하나 싶고.’
그런 생각이 한번 들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게 망가진 파티를 나는 여럿 봤다. 비단 우리 파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용사 파티는 이런 식으로 망가지곤 했으니까.
‘차이점이라면, 망가지기 전에 전장에서 죽었다는 점이겠지만.’
카일은 망가져도 유능하긴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용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망가짐이 겉으로 드러난 시점에서, 이미 명을 달리하고 있었으니까.
‘뭐, 아무튼 간···.’
나는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해 발음했다.
“그러니까, 쓰레기가 나오면 바로바로 족쳐야 해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패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힘든 세월을 겪었다는 건 잘 이해했다, 라니아.”
스승님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으셨다.
“그래도, 네가 말한 것 중에 조별 과제를 학생들에게 시키는 의의가 있단다. 무엇인지 알겠느냐?”
“어··· 글쎄요?”
“어찌 됐든, 삶을 살다 보면 남과 부대낄 일이 많지 않겠느냐.”
내가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스승님께서 차근차근 설명을 계속하셨다.
“조별 과제는 그 자체가 경험이다. 사람은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이 라니아, 너처럼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스승님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좋은 방면에서의 깨달음도 분명 있겠지.”
“좋은 방면이요···?”
“···타인과 협력이 강요되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학기에 한 번 정도는 경험해 보는 것이 옳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경험보다는 좆같은 경험 쪽에 가깝지 않을까?
“으음···.”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스승님께서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셨다.
“라니아, 너부터가 5년간의 경험 덕에 인내심이 놀라울 정도로 늘지 않았더냐.”
“그건··· 그렇네요.”
“힘든 경험이 될지도 모르지만, 강요된 협력 속에서 얻는 것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것만으로도 조별 과제를 진행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겠느냐?”
“오···.”
듣다 보니 뭔가 그럴싸했다.
“그럼 조별 과제는 어떤 식으로 내는 게 좋을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오겠지.”
스승님이 그 말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똑똑, 하고 누군가 교수실의 문을 두들겼다.
로셀 교수님, 계십니까.
그 부름에 스승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잠깐 나갔다 오도록 하마.”
스승님이 자리를 뜨고 홀로 남은 교수실에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스승님이 남기고 간 말씀을 곱씹었다.
‘조별 과제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그것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혼자선 달성하기 힘든 목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협력.
그것이 조별 과제의 의의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이다. 불현듯 무언가 뇌리에 번뜩였다.
“아.”
나는 그 전제조건 자체에 주목했다.
협력이 강요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것이 조별 과제의 조건이었다.
사락.
나는 종이를 꺼내왔다. 머릿속으로 어떤 과제를 내주어야 할지 얼추 개요가 그려졌다. 그것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적었다.
툭, 나는 깃펜을 놓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거면 충분하겠다.”
강제된 협력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건 목적에 충실한 과제였다.
‘협력하지 않으면 수행이 불가능한 과제.’
나는 완성된 종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날이 기대될 만큼, 완성도가 높은 과제였다.
2.
“저항석을 사겠다고 했는가?”
“네, 한 스무 개 정도?”
흑색 마탑주, 예투알은 눈을 깜빡였다.
그 시선은 눈앞의 소녀에게 고정되어 있다. 예투알과 독대할 수 있는 인물은 극히 소수다.
그리고, 눈앞의 소녀는 그 ‘소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잿빛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
단아한 인상의 소녀는 예투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신의 말에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냐는 듯한 눈치다.
‘···진심인가?’
예투알은 소녀의 저의를 가늠한다.
‘저항석을 스무 개나 사가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항석이 무엇인가? 태생적으로 마나를 거부하는 성질을 지닌 희귀한 광석이다. 결계석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만큼 그 값이 꽤 나가는 편이다.
‘주먹만한 최하급 저항석만해도, 어지간한 마법 서적으로 책장 한칸을 채울 만큼의 값어치가 나가거늘···.’
소녀가 요구한 것은 중상급 저항석이다.
중상급 저항석 정도가 되면 그것을 취급하는 장소도 한정적이다.
‘혹시,분말을 요구하는 것인가?’
그거라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예투알은 조심스레 소녀에게 질문했다.
“그, 크기는 어느 정도···?”
“음,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소녀가 주먹을 쥐어 보인다.
희고 작은 손이다. 작은 손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말과는 거리가 먼 크기다.
‘저만한 크기의 중상급 저항석이 스무 개.’
예투알은 속으로 값을 매겨봤다.
“그, 값이 꽤 나갈 텐데?”
“얼마나요?”
“그, 한 이 정도쯤···.”
종이에 적힌 액수를 소녀가 확인한다.
그녀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물건은 언제까지 주실 수 있나요?’
“음, 지금 당장 제공할 수도 있다마는···.”
“그럼 지금 구매할게요.”
그녀가 카드를 꺼내 금화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당장 구매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뭔가?’
예투알은 촤르륵, 테이블 위에 금화를 쏟아내는 소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 양이 심상치 않았다.
“···그, 라니아 교수?”
“네?”
“도대체 이만한 저항석들을 다 어디에 쓸 생각인 건가?”
결국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그 질문에 대한 소녀의 답은 간단했다.
“과제로 쓰려고요.”
“···과제?”
“네.”
과제로 쓰겠다고?
중상급 저항석을, 고작 아카데미의 과제로?
‘저번에 회로 기록지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예투알은 눈앞의 소녀를 흘겨봤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소녀다.
어째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서로 알아가긴커녕, 정체에 대한 의문만이 커지는 것 같다.
“···알겠네, 곧 아플리아로 배송해 주도록 하겠네.”
“네, 감사합니다.”
3.
소란스러웠던 아플리아의 상황도 얼추 정리되고,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는 여름날의 오후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학생들은 다음 수업으로 향했다.
‘다음 수업이···.’
다음 수업을 확인한 학생들의 낯빛에 그늘이 드리운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학생들은 제 사물함을 뒤졌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과제』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
과제를 엮어둔 파일의 두께가 심상치 않다.
두툼한 파일 안에 가득 엮인 종잇장의 무게만큼이나, 학생들의 발걸음도 느려진다.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업 자체만 따지고 보면, 마나의 거래학 기초는 훌륭한 수업이다. 수업 때마다 학생들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제대로 된 배움을 얻는다.
‘문제는······.’
수업이 끝난 후, 이 파일에 엮이게 될 과제의 양이다. 그 악랄한 교수가 어떤 과제를 준비했을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릴 지경이다.
터벅.
강의실의 앞에 학생들이 차례로 도착한다.
학생 하나가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선객이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잿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푸르른 눈동자가 문을 연 학생을 바라본다. 교탁에 몸을 기대고 선 그녀가 미소 지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단아하고, 수려한 외모와 맞물려 꽤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저 미소의 뒷면에 숨은 악몽을 알고 있기에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며 착석한다.
그렇게, 하나둘 제 자리에 앉다 보니···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응?”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강의실의 배치가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교탁을 중심으로 빈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빈 공간에는 상자 한 개가 놓여있다.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왜 벌써 와 계시지?’
본래 정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들어오시던 라니아 교수님이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수업 이전부터 강의실에 들어와 있다.
그 사실에 학생들이 의문을 느끼는 찰나다.
짝, 하고 그녀가 박수를 쳤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강의실 중심에 놓인 상자가 열렸다. 상자 속에는 옥빛으로 빛나는 광석이 가득하다. 광석들이 하나둘씩 공중으로 떠올랐다.
옥빛으로 빛나는 광석들.
그 광석들을 뒤로하고 그녀가 칠판에 무언갈 적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도착하는 학생들은, 제자리에 앉으며 칠판을 흘겨봤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거래 개념을 포함한 주문의 효율 향상.』
거기까진 로셀 교수의 수업에서 다룬 주제다.
조금 기다리니, 이번에는 그 아래 새로운 단어가 적힌다.
『주제 : 기초 주문의 극한.』
기초 주문의 극한.
그것을 마지막으로 판서를 마친 라니아 교수가 쓱, 학생들을 둘러본다.
“다 도착한 것 같군요.”
댕, 대엥, 하고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울리는 종소리 사이로 그녀가 말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척이나 들뜬듯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서 학생들은 영문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