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05
〈 105화 〉 조별 과제의 탈주자(2)
* * *
초여름의 햇살은 따뜻하기보다는 뜨겁다. 쨍하니 내리쬐는 햇살에 벨노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익숙지 않았다.
한평생을 뒷골목에서 살아왔다. 양지에 발을 디딘 채 살아가는 건··· 2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충분하다면 충분한 시간이지만, 벨노아는 아직 이런 햇빛이 익숙지 않았다.
그가 인상이 날카롭고,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실상은 별것 없다.
‘눈부셔.’
눈이 부셔서 눈을 가늘게 뜨고 다녔을 뿐이다. 그걸 주변에서 멋대로 오해한 것뿐이다. 벨노아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벨노아는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벤치의 등받이에 목이 살짝 걸렸다.
왕도의 광장.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광장의 벤치에 벨노아는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락.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자니, 대뜸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눈을 떠보니 흘러내린 새하얀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또 눈살 찌푸리고 있다.”
“네가 늦었잖아.”
“그치만 빵 굽는 냄새가 너무 좋았는걸? 자, 벨노아. 네 것도 사 왔어.”
그러고는 대뜸 입안에 빵을 밀어 넣는다. 벨노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턱을 움직였다. 한입에 들어가게 찢어놓은 빵이었다.
“날이 덥긴 하다. 그치?”
소녀가 새하얀 원피스의 끝단을 정리하며 벨노아의 곁에 앉았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털자 새하얀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새하얀 백색의 머리칼.
둥근 눈매와, 반짝이는 녹빛의 눈동자.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행인 중에서도, 당연코 돋보이는 소녀다. 우중충하고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벨노아의 곁에 앉아 있자니, 소녀의 특징이 조금 더 강조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벨노아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왔냐? 클로에.”
“응. 벨노아는 왜 그렇게 죽상이야?”
클로에.
벨노아와 함께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소녀.
“왜 죽상이긴. 날씨가 너무 밝잖아.”
“좋기만 한걸? 벨노아, 너는 사람이 좀 음침하니까 눈살 찌푸리고 다니면 안 돼.”
그녀가 벨노아의 입꼬리를 쭉 잡아당겼다.
“아프아.”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아프지. 이렇게 평소에 좀 웃고 다녀.”
벨노아는 얼얼한 입꼬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 건데?”
“오면서 봐둔 가게가 있지롱. 빨리 가자. 너 오늘 약속 있어서 오래 못 있는다며?”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어서 가자구.”
클로에가 벨노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벨노아는 반쯤 끌려가다시피 벤치에서 일어섰다.
“흥, 흐응.”
흥얼거리며 클로에는 앞장서 걷는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벨노아는 시간을 확인했다. 조별 과제 회의로 모이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좀 있었다.
원래 이렇게 빡빡하게 일정을 짜진 않지만···.
‘클로에가 시간이 없으니까.’
자신이 시간이 없던 옛날과는 다르다.
지금은 클로에가 자신보다 더 바빴다.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고된 일이라, 이렇게 한 번씩 만나는 시간이 벨노아에게는 귀중했다.
‘그러니, 일정을 좀 빡빡하게 짠 거고.’
옛날에는 매일 붙어 다녔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벨노아는 클로에의 뒤를 따라 걸었다. 클로에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표정이 짐짓 심각하다.
“큰일 났어, 벨노아.”
“왜?”
“가고 싶은 가게가 세 개나 있는데,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나를 정해야 하는데···.”
피식, 벨노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빨리 가기나 해. 가면서 고르면 되잖아.”
하여간, 낯선 일들뿐이다.
슬럼가를 굴러다니며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어디서 잘지를 매일같이 고민하던 나날이 바로 어젯밤 같이 느껴지거늘··· 지금은 이런 평화로운 주제로 고민하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도.
이런 평화로운 고민도.
벨노아에겐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2.
“저항석은 잘 쓴 모양이군.”
“네, 이번에도 고맙습니다.”
나는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중상급 저항석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차기 마탑주 시절이면 몰라도······.’
중상급 정도 되는 저항석은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취급하는 곳이 드물다. 색(色)을 가진 마탑 정도는 돼야 구할 수 있었겠지.
“덕분에 과제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 같아요.”
“그만한 저항석을 과제에 쓴다니, 나로서는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뭐.”
흑색 마탑주, 예투알.
나는 맞은편에 앉은 그를 바라봤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것 같네.’
그가 벨노아의 스승이고, 내가 아플리아의 교수라는 연결점이 있기는 하나···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나는 아플리아의 교수다.
그리고, 예투알은 흑색 마탑의 마탑주다.
나와 그 사이 간의 사회적 직위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아플리아의 명성이 높다고 한들, 마탑주에 비할 바는 못될 테니까.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주시네요.”
“응?”
문득 든 생각에 나는 질문했다.
“저번 회로 기록지도 그렇고, 이렇게 독대해 주시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굉장히 배려해주신다 싶어서요.”
사실이 그랬다.
내가 라니엘이었던 시절에 마주했던 흑색 마탑주와, 라니아로서 마주한 흑색은 너무나도 달랐다.
‘좀 음험한 노인네였던 거 같은데.’
이렇게 마주하고 있자니··· 내가 알던 그 예투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글쎄, 편의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군. 줄을 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어.”
내 질문에 예투알은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줄···이요?”
“대개 마탑주들이 그러하겠지만,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보면 느는 것이라곤 사람을 보는 눈뿐이지 않겠는가.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보다 정확하겐, 내 몸에 스톡(Stock)된 주문을.
“잿빛 마법사에게 선수를 빼앗기긴 했지만, 나 또한 오랜 기간 회로의 각인(Engrave)에 대해 연구해 왔다네.”
“······.”
“전대의 전대부터, 흑색 마탑이 세워진 초창기부터 흑색은 언제나 회로의 각인을 연구해왔지. 비록 그 결실을 본 건 흑색이 아니지만··· 그 연구 기록이 어디로 날아가는 건 아니지.”
예투알이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그 결실로, 나는 보았다네. 다른 마탑주들이 보지 못한 것을.”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입학식에서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자네의 진가를 보았다네.”
“···진가요?”
“그래. 다른 마탑주들은 마나가 약하다느니, 통제력이 어쩐다느니의 소리만 주워섬겼지만··· 내 눈에만큼은 보였거든.”
무엇이 보였는가.
내가 그것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예투알은 헛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이 집무실에 각인된 회로는 120개이지.”
“128개 아닙니까?”
“···120개가 넘어가지. 아무튼 간, 이 집무실은 흑색 마탑의 최고 걸작일세. 흑색의 자랑이었지. 하지만··· 자네를 보고 있자니, 이 집무실마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더군.”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의 몸에 스톡된 회로를 나는 다 읽을 수 없다네. 그저, 아득해질 정도로 많은 회로를 새기고 다님을 유추할 뿐이지.”
“······.”
“아플리아의 교수가, 아직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마법사가··· 그만한 양의 회로를 몸에 새기고 걸어 다님을 목격했다고 생각해 보게.”
예투알이 쓰게 웃었다.
“속된 말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흑색 마탑에 끌어들여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특정 마탑에 속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보이니 이리 말하는 게 아니겠나.”
너스레를 떠는 예투알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내 몸에 스톡된 회로를 알아보는 마왕군은 손에 꼽았다. 기껏 해봐야, 가니칼트나 글레투스··· 그리고 스케발 정도였다.
‘그래서 숨길 생각을 안 했는데.’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알아봤다면, 저런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주문의 각인에 관해 연구했던 흑색 마탑주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테니까.
“이제는 왜 내가 줄을 댄다는 지 알겠는가?”
“어느 정도는요.”
“그래. 그리고, 조만간 아플리아에 입학시킬 아이가 하나 더 있으니 잘 보여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계산이 선 탓이지.”
···입학생?
‘그러고 보니까······.’
나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칼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분명, 흑색 마탑주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아, 선배님 새로운 용사가 탄생했다는 걸 아십니까? 전장에도 소식이 갔던 것 같긴 한데.
듣긴 했는데, 나왔다는 소식밖에 못 들었는데?
그건 좀 이상하군요. 선배님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가 갈 거라 생각했는데··· 시기가 안 맞았나?
주기적으로 탄생하는 용사.
용사의 수는 언제나 ‘넷’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우리 파티가 활약하는 동안에도 용사들은 꾸준히 교체됐다.
‘길어야 1~2년이지.’
우리 파티가 좀 특출났던 거지, 대체로 용사들은 전장에서 1, 2년을 견디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용사하면 대표 되는 게 카일이기도 했고.
아무튼, 용사가 죽고 새로운 용사가 태어나는 건 그닥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별 관심을 안 가졌기도 하고.’
그렇게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내게, 칼트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었다.
그게, 이번 용사는 조금 다릅니다.
달라 봐야 뭐 얼마나? 이번에는 성검 말고 성창(??)이라도 쓰냐?
아뇨, 성류(??)입니다.
······뭐?
이번 용사는 검사가 아닙니다. 백병전에 능하지도 않습니다. 대표되는 무기도 없습니다.
칼트가 말했다.
그 대신, 이번 용사의 몸에는 별빛이 흐릅니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예, 이번 용사는 마법사입니다.
별의 축복을 지닌 마법사.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예투알을 바라봤다. 용사의 스승으로 발탁된 게 눈앞의 마탑주였으니까.
“흥미롭다는 눈치로군.”
“···이미 제자로 벨노아를 키우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아이가 내 대표되는 제자이긴 하지. 지금 마탑에서 가르치고 있는 아이는, 제자라기보단··· 후견인에 가까운 위치기도 하고.”
자세히 밝히기는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예투알은 빙빙 돌려가며 말했다.
“아무튼 간, 그 아이는 내가 가르치기 힘든 입장이야. 천칭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아는 마법사만이 가르칠 수 있는 아이이니 말일세.”
“···그렇습니까?”
몸에 별빛이 흐르는 마법사.
그 정체가 용사인걸 감안하면··· 예투알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마나 자체가 별빛이라면, 거래 조건 자체도 뒤지게 까다로울 테니까.’
통상의 방법으로는 별과 거래할 수가 없을 게 분명했다. 주문의 발현 과정도 무척이나 복잡하겠지.
“내년 정도에 입학한다는 것 외에는 발설하기 힘든 정보들뿐이라···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겠군.”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에 입학한다, 라.’
아무래도, 호기심이 동하긴 했다.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아이가 용사가 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용사는 별과 관련된 무기를 얻는다.’
그것의 종류는 용사별로 가지각색이다.
기본적인 형태가 성검이긴 하나, 창과 둔기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몸에 흐르는 마나 자체가 별빛인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처음은 아닌가?’
고대 왕국의 역사서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잿빛 마탑의 금서고에 박혀있는 역사서이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정확하진 않았다.
‘최초의 성녀.’
그녀가 쓰는 모든 마법에 별빛이 깃들었다는 표현이 있기는 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극점을 표현한 거라 생각했지만······.
‘가능성은 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최초의 성녀에 대한 기록은 거의 다 말소된 상태인 데다가, 금서고의 책들도 찢어져 있었으니까.
‘그건 그거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흑색 마탑주가 차를 홀짝이고 있다. 당장, 내가 알고 있다는 티를 낼 수는 없지만··· 경고를 해두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든 까닭이다.
“들어보니, 제자분께서 굉장히 특이한 체질을 가진 것 같군요.”
“···특이하긴 하지.”
“그럼,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특이한 체질을 가진 마법사는 노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마나 자체가 별빛이라는 것.
그 말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무척이나 불경하고, 끔찍한 생각이었지만··· 나로서는 그 가능성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특이 체질의 마법사.
그들은 언제나 최상의 재료가 된다.
배교(?)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재료로 삼기에는··· 그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것도 없을 테니까.
내 경고에 흑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의하겠네.”
3.
“찾았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드디어 찾았어.”
그녀의 미소는 이질적이다. 입가를 틀어 올리며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겁에 질려있다.
“저, 저저저, 것 말씀이세요?”
그녀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저절로 움직이며 대답을 입에 담는다.
“응.”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하는 괴이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녀의 목덜미를 자세히 바라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목덜미에 심어진 것은 기생충이다.
기생충이 뻗은 촉수가 그녀의 입을 멋대로 움직인다. 그녀의 몸을 조종한다.
“서큐버스 퀸, 레페.”
기생충의 주인이 명령을 내린다.
“저것을 잡아.”
그 명령에 몸의 주인은 겁에 질린 채 답한다.
“알, 알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레페는 주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글레투스 님.”
배교자(?者), 글레투스.
골목길 깊은 곳에서부터 그림자가 출렁였다. 출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검붉은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