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1
〈 131화 〉 입이 거친 사람들(1)
* * *
백색 마탑주 셀리의 등장은 요란스러웠으나,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등장한 뒤로도 연회는 다만 연회였고, 전사들은 다만 전사였다.
“그래서 라니아 아가씨가 말야···.”
“어찌나 주먹질이 매콤하시던지, 맞을 때마다 눈앞이 번뜩이는 게 아주 그냥···.”
“말도 마. 관자놀이를 무릎으로 찍을 때는 기겁했다니까.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
전사들은 무용담을 떠든다.
그들에게 상처는 자랑이자 이야깃거리다. 물론, 손님과 전투를 벌일 영광을 모든 전사가 누리진 못했다. 기회를 놓친 이들은 입맛을 다시며 대공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녀를 자꾸만 흘겨봤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저기요?”
갑작스레 문을 열고 찾아온 인물에겐, 한 줌의 시선조차 가지 않았단 뜻이다.
“혹시 제 말 안 들려요?”
셀리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구던가? 무려 백색 마탑의 주인이요, 원소 마법학의 극(?)을 깨우친 위대한 마법사다.
‘이런 취급 받을 사람이 아니란 말야···!’
아무리 북부가 전사의 사회라고 한들, 이 취급은 잘못되었다. 셀리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어, 으음···.”
셀리의 등 뒤에 서 있던 오야칼이 눈동자를 굴렸다. 북부의 전사들은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신경 쓰는 건 전투뿐이다. 그러나, 오야칼은 아니다.
‘이거 까딱했다간···.’
북부 대공의 열세 전사.
높은 자리에 앉은 만큼 오야칼에겐 최소한의 눈치가 있다. 혹여 백색 마탑주가 제대로 삐진다면··· 굉장히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게 분명했다.
“크흠, 큼!”
오야칼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헛기침에 시선이 잠시나마 그에게로 쏠렸다. 그 시선에는 라크의 것도 포함되어 있다. 오야칼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 없이 외쳤다.
‘도련님, 빨리!’
오야칼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간절함이 닿은 걸까, 멀찍이 앉아있던 라크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아, 스승님 오셨습니까?”
“어머, 백탑주 님!”
라크의 말에 곁에 앉은 페일리아 부인이 놀랐다는 듯 입가를 가린다. 그제야 오야칼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페일리아 부인께서 어떻게든 해주실 거다.’
전사들에게 결여된 부드러운 강함을 가지신 분이다. 이런 상황은 능히 해결해 주시겠지. 오야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페일리아 부인···!”
셀리가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페일리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이가 깜빡한 모양이에요. 많이 추우셨죠? 이리 오셔서 모닥불이라도 같이 쐴까요?”
“당신이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당신은 입 다물고 있어요.”
“······.”
페일리아의 눈짓 한 번에 에랴흘이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실례도 실례가 없네요. 어쩜, 귀 빨개지신 것 좀 봐. 우선 이거라도 마시면서···.”
“감사해요, 페일리아 부인. 그런데, 제가 여기 옆에 있는···.”
“그런 사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저랑 같이 연회 좀 즐길까요? 늦게 도착하셨는데 남은 시간만큼은 즐겁게 보내셔야죠.”
페일리아가 셀리의 말을 부드럽게 끊어냈다. 그리곤 셀리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그 저기 할 말이···!”
“세상에, 저희 주방장이 심혈을 기울인 음식이 준비되었다네요. 어서 가볼까요, 저희?”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셀리는 질질 끌려간다. 그녀를 끌고 다른 테이블로 향하다 말고, 페일리아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입 모양으로 말하는 것이다.
‘편히 이야기들 나누세요.’
그 모습에 라니아는 혀를 내둘렀다.
‘저게··· 일류의 처세술?’
여러모로 북부의 안주인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2.
나는 북부의 대공에게 한가지 당부를 들었다. 사실 당부라 하기에도 뭣한 게, 이미 옛날 옛적부터 하고 있던 일이었다.
‘굴리면 굴리는 만큼 성장한다.’
그건 하나의 진리와도 같다.
검의 초인, 쿤텔 아저씨가 그리 말했고, 내 스승님이 그리 말씀하셨으며··· 얼마를 살아온 지 모를 고대의 엘프 카르디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럼 진리가 맞지.’
진리를 굳이 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허가를 받은 만큼 조금 더 굴리기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굳이 북부까지 나를 부를 이유가 되지 않았다.
‘편지로만 보내도 될 일이니까.’
북부의 대공이나 되는 사람이다.
그만한 인물이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북부로 불렀을 것 같진 않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 ‘부탁’은 뭔가요?”
하나의 부탁과 하나의 당부.
대공은 그렇게 말했다. 당부를 들었으니 남은 건 부탁이었다. 내 물음에 대공이 입을 열었다.
“교수. 백야성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나?”
“백야성을 손에 넣은 북부의 전설이라면 얼추 알고는 있습니다.”
고대의 유적, 백야성.
그와 관련된 전설이라면 연구한 적이 있었다.
‘잿빛 마탑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
잿더미가 되어버린 고대의 국가.
그 국가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연구했었다. 그중에는 백야성도 포함돼 있었다. 백야성도 고대의 국가가 남긴 유적이었으니까.
「사시사철 눈 폭풍이 몰아치던 설산. 어느 날, 위대한 전사는 눈 폭풍을 뚫고 산을 올랐다.」
「눈 폭풍을 헤치며 산을 오르자 성 하나가 전사의 눈앞에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도 새하얗게 빛나는 성에 전사가 발을 디딘 순간 폭풍이 걷혔다.」
「그 순간, 백야성은 그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북부에 새로운 주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대충 그런 식의 전설로 알고 있다.
기후를 임의로 조작하는 마도구가 있었다느니, 백야성 자체가 모종의 결계였다느니··· 여러 가설이 분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었다.
결국,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백야성의 전설은 수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였으니까.
‘지금 와서 연구하려 해도 다 훼손된 상태일 테니까. 회로란 게 다 그렇지 뭐.’
내가 백야성의 전설에 대해 떠올리고 있자니,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레이스 가(家)의 초대 당주께선 눈 폭풍을 뚫고 백야성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지만··· 그 이야기는 퇴색되지 않는 전설로서 남아있지.”
일종의 상징인 셈이지.
그렇게 말하며 대공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레이스의 이름을 잇는 이들에게 있어, 눈 폭풍이란 극복해야 할 시련이야. 넘어야 할 벽이지. 그리고, 내 아들 녀석 역시 그 벽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고.”
고기를 우물거리는 라크를 보며 피식, 대공이 웃음을 흘렸다. 그가 툭, 하고 라크의 머리를 건드리며 말했다.
“내가 데려가도 좋겠지만··· 앞으로 이 녀석을 가르칠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군.”
“예?”
“그레이스 가문 대대로 성인식을 치르는 장소를 이 녀석과 함께 보고 와달란 소리네.”
내가 눈을 깜빡이자니 대공이 설명을 계속했다.
“설산의 깊은 곳, 몰아치는 눈 폭풍의 중심에 얼어붙지 않은 샘이 하나 있다네. 선조께서 사용하시던 무기를 남겨둔 장소지.”
얼어붙지 않는 샘.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다만 확신하기엔 이르기에 나는 묵묵히 대공의 말을 들었다.
“눈 폭풍 속에서 한나절을 견디는 것. 그것이 그레이스가의 성인식이야. 다만,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있다네.”
“이상의 것이라면···.”
“샘의 중심. 그레이스 가문의 시초께서 자신의 애병(?兵)을 꽂아둔 장소.”
대공이 말했다.
“그곳에 라크가 발을 디디기를, 시초가 남긴 무기를 라크가 제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
라크가 숨을 죽였다.
대공은 쓰게 웃으며 어깨에 힘을 풀었다.
“물론 당장은 이른 일이야. 가문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 하지만, 가문의 누군가는 그곳에 닿게 되겠지. 나는 그것이 라크라고 생각하고.”
“···확신하시는 것 같네요.”
“하하.”
내 말에 대공이 소리 내 웃었다.
“확신할 수 밖에. 그대도 보았으니 알지 않나?”
“······.”
“이 녀석에겐 재능이 있어. 가문의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재능이 말야. 그리고···.”
잠깐의 뜸을 들인 대공이 입을 열었다.
“초인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 목소리에선 확신이 느껴졌다.
“말이 좀 새긴 했지만,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이 녀석과 함께 샘의 근처에 가서··· 눈 폭풍을 보고 함께 생각해보라는 걸세. 샘을 둘러싼 눈 폭풍을 뚫고, 샘의 중심에 다가갈 방법을 말야.”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플리아에선 많은 것을 배우게 될 테니, 그런 것 하나 정도 더 가르쳐도 되지 않겠나?”
“커리큘럼에는 없는 내용이겠네요.”
“그러니 부탁인 거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특강을 해달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의료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의료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학사의 커리큘럼에는 없지만··· 대공이 말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가르칠 생각이 있던 것이었으니까.
‘얼어붙지 않는 샘, 그리고 눈 폭풍이라.’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짐작 가는 게 뻔히 있는 까닭이었다.
‘어찌 보면, 이미 선행학습을 시킨 셈이네.’
우연하게도 라크는 비슷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것도 학기의 초, 반 배정 시험 당시에.
‘그거 마나의 샘이잖아.’
마나의 샘에서 버티는 방법.
마나의 폭풍 한가운데를 견디는 법.
‘그건 달리 말하자면···.’
마경(??)을 견디는 것과도같다. 결국에는 내가 가르쳐야 할 것 중 하나란 소리였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네요.”
“···호오.”
대공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흘렸다.
“제법 자신이 있는듯한 말투로군.”
“여행 중에 배운 게 좀 많은지라.”
“하하.”
대공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전사의 손이라 불릴만한 손이었다. 굳은살과 흉터가 가득한 손.
“잘 부탁하지, 교수.”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말이 잘 통하네, 이 사람.’
우린 서로를 마주 바라본 채 웃음을 흘렸다.
“으음···.”
라크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건 딱히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3.
「그러고 보니, 라크.」
「귀빈이 하나 백야성에 머무르고 있다.」
「이른 아침, 훈련장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한 번쯤은 대련을 요청하도록 해보아라. 제법 배울 게 많은 사내 같으니.」
연회가 끝난 이른 아침.
라크는 대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장서 걷는 라크의 뒤에는 라니아가 따라가고 있었다.
“교수님은 더 안 주무십니까?”
“아침만 되면 눈이 떠져서.”
“예?”
“그냥 버릇이야, 버릇. 할 것도 없는데 너 훈련하는 거 구경이나 하려고. 귀빈이란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교수님은 아침잠이 적으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라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전사들의 훈련장은 백야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챙!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백야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 설산의 한편에 마련된 훈련장에는 여러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흡!”
이른 아침의 설산.
서늘한 공기를 맞으면서 전사들은 무기를 휘두른다. 그들의 근육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다음.”
전사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음.”
목소리는 쇳소리와 함께 울린다.
캉, 하고 한 번의 쇳소리가 울릴 때마다 하나의 전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전사들 사이로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다음.”
정리하지 않아 거친 머리칼.
흉터가가득한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는 남자가 전장에서 살아옴을 알리는 듯 하다.
“더 없나?”
굵고 거친 선을 가진 중년의 남성.
그 남자의 손에는 칼집에서 뽑지도 않은 검이 들려있다. 그 칼집에 새겨진 문양을 보는 순간 라크는 깨달았다. 눈앞의 저 남자가 누구인지.
재가 된 영지의 문양.
이젠 한 명의 검사만을 가리키게 된 문양.
“검귀, 드라카···.”
라크가 무심코 그리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검귀가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라크를 향한다.
“흡···.”
라크는 숨을 헛삼켰다.
짐승의 눈동자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숨통이 턱, 하고 막히는 듯 하다.
“너.”
드라카가 팔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을 세워 라크를 가리켰다.
“누군데 그딴 식으로 나를 보는 거지?”
아니, 자신이 아니었다.
라크는 손끝이 향한 곳을 다시 보았다. 드라카의 손끝은 라크의 등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교수님?’
그곳에는 라니아 교수가 서 있다.
팔짱을 낀 그녀는 꼭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으로 드라카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경멸감마저 묻어 나온다.
“내게 불만이 있나?”
드라카가 질문했다.
그 질문에 흥, 하고 라니아가 비웃음을 흘렸다.
“아니, 뭐.”
그리곤 툭, 하고 내뱉었다.
“참 좆같이 생겼다 싶어서.”
라크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