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2
〈 132화 〉 입이 거친 사람들(2)
* * *
검귀(??), 드라카.
언젠가 쿤텔 아저씨가 드라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기억하기를, 아마 내가 드라카와 만나기 전에 들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위험한 인물이지.」
위험하다.
「그는가장 쉬우나, 가장 해선 안 될 방법으로 벽을 허물고 초인이 됐어.」
제대로 된 길을 걷지 않았다.
「검의 협곡이 건재했다면··· 드라카는 갈라트릭의 집행자들에게 처형당했을 거다. 갈라트릭에선 드라카 같은 인물의 탄생을 언제나 경계해 왔으니까.」
검의 협곡이 남아있었더라면.
세상이 말세가 아니었더라면, 드라카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다. 마지막 검의 순례자는 검귀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었다.
사실, 쿤텔 아저씨도 드라카를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당장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니 내버려 둔다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뭐, 그것과는 별개로 불쌍한 인물이긴 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카 정도면 곱게 미쳤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칼을 휘두르는 목적은 분명하니까.」
‘곱게 미쳤다, 라.’
나는 쿤텔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곱게 미치긴 개뿔.’
차라리 내 눈에는 대놓고 광인(?人)이라 불리는 켈르할름이 더 정상으로 느껴졌다.
‘최소한 켈르할름은 민간인 학살은 안 해.’
나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허름한 거지새끼 마냥 옷을 입고, 피비린내가 몸에서 진동하는 남자였다.
“···쯧.”
나는 짧게 혀를 찼다.
그 면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토할 듯이 속이 매스꺼웠다.
‘짜증 나네.’
기억이 떠오른다.
잊지 못한 기억이 속을 자꾸만 긁어댔다.
「아, 왔나.」
「네가 그 유명한 용사 카일이로군. 그쪽은 잿빛 마법사인가? 그리고 신궁과··· 아아, 델로힘 교단의 성녀님께서도 계셨군.」
목소리.
「아, 이것 말인가?」
검귀 특유의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내게는 끔찍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목소리였다.
「별건 아니다.」
타들어가는 마을.
타죽은 마수와 뒤섞인 인간의 시체.
목책을 넘으려던 마을 주민들의 목 베인 시체.
‘마수가 저토록 깔끔하게 죽일 리가 없다.’
‘마수가 목책 따위를 세울 리가 없다.’
‘마수가, 불을 지를 리는 더더욱 없다.’
그건,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벌인 짓이었다. 마지막까지 살고자 발버둥 친 인간의 시체는 끔찍했다. 시체들의 끝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귀, 드라카.
한 손에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그는 말했다. 그 목소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미끼로 썼다.」
미끼로 썼다고.
별것 아닌 일이라고.
「적어도 사람으로 죽게 해 주었다.」
「모두가 누리진 못하는 행운이지.」
「델로힘 교단에서도 이런 방식을 장려한다. 인간이 아닌 것으로 추하게 살아남을 바에, 인간으로서 죽는 게 더 아름다운 법이지.」
그곳에서 내가 드라카를 죽이지 않은 건, 내 곁에 서 있던 칼트와 카일이 나를 뜯어말린 덕분이었다.
‘···배교자를 추적하는데, 그 동향을 읽는데 드라카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필요에 의해 살려둔 존재.
내게 있어 드라카란 단지 그뿐인 존재였다.
“···뭐라 했지?”
“귀먹었냐?”
그러니, 말이 곱게 나갈 수가 없다.
나는 사람이 아닌 것에게 사람의 언어를 들려줄 생각은 없었다.
“좆같게 생겼다고.”
나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왔다.
무얼, 나는 제법 솔직한 사람이었다.
2.
검귀, 드라카.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미간을 좁혔다. 숱한 전장을 넘어온 그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누구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그럴 것이다.
‘···좆같다고?’
대뜸 그런 말을 들었다.
그것도 처음보는 소녀한테 들은 말이다.
‘이게 뭔······.’
드라카는 눈앞의 소녀를 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역겨운 걸 봤다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다. 거짓으로 뱉은 말은 아닌 듯 싶었다.
‘본래 자신이었다면 뭐라 말할 것인가?’
드라카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음의 답은 간단했다. 아마도, 너도 좆같이 생겼다고 맞불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는 너도···.”
말을 하려다 말고 드라카는 입을 다물었다.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는 소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외모를 까 내리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
“···너는 품위가 느껴지지 않는군.”
결국 드라카는 노선을 틀었다.
“보아하니 어디 귀족가의 자제나 돼 보이는데, 가정교육을 개좆으로 받았나? 초면인 상대의 외모를 까 내리는 걸 보아하니 가문의 수준을 퍽 알만하군.”
외모를 까 내리지 않더라도 욕할 건 많다.
‘살아온 밀도가 다르다.’
건너온 수라장이 다르단 뜻이다.
명문가의 자제들 중, 눈앞의 저 소녀처럼 가문만 믿고 나대는 인물들이 꼭 한둘씩 존재한다.
‘가문에 대한 자긍심만 높은 애새끼들.’
그리고, 그런 애송이들을 상대하는 법을 드라카는 잘 알고 있었다.
“품위가 없다. 말투가 저렴하다. 제 딸아이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는 아비의 얼굴이 참 궁금하군.”
유효타다.
드라카는 비웃음을 흘리며 소녀를 바라봤다. 보나 마나 씩씩거리며 격한 반응을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드라카의 예상과는 달랐다.
“하.”
소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토할 뿐이었다.
그녀가 팔짱을 낀 채 툭, 내뱉었다.
“가문도 없는 부랑자 새끼가 말은 참.”
“······뭐?”
드라카의 눈썹이 씰룩였다.
“영지도 잃고, 가문도 잃고, 나라도 잃은 부랑자 새끼가 품위를 운운해봐야 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 얼굴에 침 뱉는 노릇 아닌가?”
뿌득, 드라카의 이가 갈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아나?”
“좆같이 생긴 면상 보니까 알겠던데.”
“아는데 말을 그따위로 한다? 어지간히도 잘난 가문의 자제인가 보군. 그런데, 네 부모한테 이건 못 배운 모양이지?”
드라카가 자신의 칼자루를 툭, 건들며 말했다.
“내 앞에서 내 영지에 대해 언급 한다면···.”
“그건 모르겠고, 일단 만나면 쌍욕을 갈기라던데.”
“···어떤 정신나간 놈이 그따위 말을 했지?”
소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잿빛 마법사가.”
드라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잿빛 마법사?’
그는 소녀의 모습을 다시 살핀다.
다시 보니 그 싹수없는 마법사와 닮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그 상징적인 눈동자와 머리칼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트리아스 가(家)에서 새 양녀를 들였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너, 트리아스 가문인가?”
소녀가 고개를 까딱인다.
드라카는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잿빛 마법사가 속한 트리아스 가문이라면··· 자신에게 대뜸 욕을 갈기는 게 이해가 간다.
‘제 오라비를 퍽 닮았군.’
험한 입과 더러운 성깔마저도 닮았다.
트리아스 가문은 상대를 긁는 언어부터 가르치는 것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드라카는 칼자루를 매만졌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게 그럼 안될 텐데.”
키잉, 하고 칼날이 울렸다.
칼집 사이로 살짝 빠져나온 칼날은 붉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했나보군.”
“왜, 베기라도 하게?”
소녀가 팔을 들어 올렸다.
장갑을 쭈욱, 끌어내린다. 끌어내린 장갑 아래로 마나가 흘러나왔다.
“내가 못 할 것 같나?”
드라카가 무표정이 말했다.
“할 수 있음 해보던가.”
소녀는 도발하듯 답했다.
키잉.
칼집 사이로 빠져나온 칼날이 울린다.
틱, 티딕하고 장갑 위로 불똥이 튀어 오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피가 마른다.
꿀꺽.
둘 사이에 감도는 기류는 거칠다. 맹수와 맹수가 서로를 마주한 듯 하다. 둘을 지켜보는 전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사들은 직감한다.
‘말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둘 사이에 껴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저 사이에 껴들 수 있는 건 두 가지 부류밖에 없다.
‘저들 사이에 껴들 만큼 강자던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눈치도 못 읽는 얼간이던가.’
전사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그러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전사들이 갈등하는 순간이다.
“찾았다!”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전사들의 고개가 팍, 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무슨 아침부터 이런 곳을···! 진짜, 얼굴 한 번 보기 더럽게 힘드네요, 당신!”
백색 마탑주, 셀리 드벨라.
그녀가 소녀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있었다.
최소한의 눈치도 못 읽는 얼간이가.
“뭐에요? 다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백색 마탑주님.”
“감사? 뭐가요?”
“그냥, 그냥 감사합니다. 어서 라니아 아가씨를 데리고 가주시면 조금 더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니, 뭐 말 안 해도 그럴 거지마는······.”
셀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3.
별궁의 접견실.
자신이 직접 꾸며두었고, 전사들에게 사정사정해 아직 치우지 않은 그 방에서 셀리는 드디어 소녀와 마주했다.
‘뭔가 감격스러워···.’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셀리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제가 당신을 만나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제가 이렇게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어눌했다.
괜히 코를 훌쩍, 삼키며 셀리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시간은 소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니까!”
“아, 예에······.”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셀리와 달리, 라니아의 표정은 심드렁하다. 그러나 셀리는 그에 개의치 않는다. 셀리는 라니아에게 다과를 내밀었다.
“유명 베이커리에서 준비해온 다과에요. 들면서 이야기할까요, 우리?”
“배부릅니다.”
“···아침 아직 안 먹지 않았어요?”
“배가 부를 예정이라서, 별로 안 당기네요.”
배가 부를 예정은 또 뭔가.
‘기껏 준비해온 다과인데··· 맛있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셀리는 내색하지 않는다. 셀리는 곧장 주제를 꺼냈다.
“만남을 주선한 건 별다른 일은 아니고.”
그녀가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백색 마탑의 문양이 새겨진 편지였다.
“북방에 왔으면, 백색 마탑에 한 번쯤은 들려봐야 하지 않겠어요?”
툭, 하고 셀리가 초대장을 가리켰다.
“물론, 그냥 들리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 초대장만 있다면 그냥 통과랍니다? 바로 저랑 만날 수 있는 초대장이에요, 이거.”
엄청난 가치를 지닌 초대장이에요.
그리 말하며 셀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북부는 거친 땅이죠. 전사들의 땅이라 불리는 북부는 마법사의 사회와는 조금 달라요. 백야성에서 지내다 보면 여러모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닐걸요?”
원소 마법을 연구하기엔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마법사가 살기에는 빈말로도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마탑에 들지 않은 마법사는 더더욱.
“그런 북부에서 마법 재료나, 마광석을 취급하는 것은 백색 마탑이 유일하죠.”
셀리가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한번 들려요.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거 엄청난 특혜랍니다?”
특혜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러나 라니아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하다.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듯한 얼굴이었다.
‘기대한 반응은 이게 아닌데.’
셀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제가 집필한 마법 서적도 볼 수 있어요.”
라니아의 얼굴에 흥미가 조금 더 식었다.
“북부 특산물 광석도···.”
라니아가 시계를 보았다.
“식사 시간이군요. 그럼 이만···.”
“그···!”
그녀가 자리를 끝내려는 듯 입을 열려는 찰나다. 셀리가 황급히 말을 붙였다.
“방한용품! 포션! 로브! 또, 또··· 아, 그래! 설산 오를 때 쓰는 로프도 취급해요!”
···이게 다 뭐 하는 짓이람?
어째 잡상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셀리는 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로프?”
그러나, 소녀는 관심을 보였다.
셀리가 전혀 상상치 못한 부분에.
‘미끼를 물었다!’
그리고 셀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네, 설산을 조사할 일이 종종 있어서 등산용품을 좀 취급 중이랍니다? 품질이 나름 좋아요. 백색 마탑의 이름에 걸맞은 물건만을 취급하거든요. 사소한 것 하나에도 품위가 깃드는 법이니까!”
“오···.”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탐나네요.”
드디어 흥미를 보였다.
셀리는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등산용품에 관심을 가진다고···?’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소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