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3
〈 133화 〉 입이 거친 사람들(3)
* * *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별일 없었다.”
부하의 물음에 드라카는 짧게 답했다.
길게 말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드라카의 눈치를 읽은 부하는 길게 묻지 않았다.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했다.’
말 그대로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저 무시하면 될 일이거늘, 어째서 반응했는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한마디를 날리고 싶은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그러고 보니 잿빛도 그랬지.’
그 싹수없는 마법사도 그랬다.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긁어댔다. 드라카의 과거를 알고도, 감히 드라카 앞에서 가문과 출신을 운운하는 인물은 잿빛 마법사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 명이 더 추가됐다.
영지도 잃고, 가문도 잃고, 나라도 잃은 부랑자 새끼가 품위를 운운해봐야 뭐······.
제 얼굴에 침 뱉는 노릇 아닌가?
망발을 지껄이던, 당돌한 소녀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드라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트리아스 가문에서 양녀를 들였다 했나.”
“예, 올해 봄에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본래 제자로 키우다가··· 잿빛 마법사의 은퇴 소식에 맞춰 양녀로 들인 듯 합니다.”
“이름은?”
“라니아. 라니아 반 트리아스 입니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이름을 드라카는 곱씹었다.
“다른 정보는?”
“현재 아플리아의 교수직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더 알아봐야 나올 것 같습니다.”
“조사해봐.”
드라카의 말에 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라카는 본래 건조한 인물이다. 그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드물었다.
“관심 있으신 분이십니까?”
“뭔가 있다.”
“···예?”
“아무리 그 싹수없는 놈과 같은 가문이라 해도··· 내가 칼을 뽑았는데 눈 한번 깜빡하지 않더군. 이상하지 않나?”
벨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겁을 줄 생각으로 칼을 뽑았다.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 이들은, 자신이 칼을 뽑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어떠했는가.
할 수 있음 해보던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겁먹긴 커녕 도발을 날렸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한판 붙어보자는 듯 자세를 잡았다.
“오히려 내게 싸움을 걸어왔지. 웃음만 나오더군. 그게 정상이라고 보나?”
“···이상하군요.”
“그래, 이상하다.”
이상하기에 실력을 보고자 했다.
결국 끼어든 방해꾼 탓에 실력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확실히 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
허세는 아니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만이 가지는 여유가 묻어나오는 눈동자였다.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실력, 성격, 어쩌면 삶까지도.
드라카는 소녀의 눈을 엿보았고, 엿봄으로써 얼추 감을 잡았다. 평범한 소녀는 아니었다. 절대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계획의 성사를 위해서는 변수를 쳐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드라카는 부하에게 지시했다.
“뒤를 파봐라. 방해될 수도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부하가 물었다.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긴.”
드라카가 툭, 칼자루를 건드렸다.
“죽여야지.”
“···잿빛 마법사와 마찰이 커질 텐데요.”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지.
그리 답한 드라카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북부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성당이다. 그곳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까.
“델로힘 교단에선 뭐라 답했지?”
“협조한다더군요. 추기경께서 델로힘의 창과 방패, 그리고 수호 기사의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마 지금쯤 도착해 계시겠군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드라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삶의 태반을 바쳤다. 델로힘 교단에선 그보다 더한 시간을 바쳤겠지. 수백 년 전부터 그들은 꾸준히 그것을 찾아 헤매왔으니까.”
그의 발자국이 눈밭 위로 길게 찍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낡고 허름한 교회가 시선에 잡혔다. 허름한 교회의 앞에는 빛나는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도열해 있다. 드라카를 확인한 그들이 길을 텄다
“···무엇을 말입니까?”
부하가 물었다.
그 물음에 드라카는 답했다.
“섭리를 벗어난 기적을 일으킬 성유물.”
말을 멈추지 않은 채 드라카가 교회의 문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수백 년 전 사라진 고대의 성배. 신의 힘을 담을 그릇이자, 신께 바치는 제물.”
끼이익, 하고 열리는 문 너머에는 누군가 서 있다. 새하얀 법의를 차려입은 노인. 그 노인이 드라카를 돌아본다.
“모든 기적을 가능케 하는 최초의 성유물을··· 그들 또한 놓치고 싶진 않을 테니까.”
부하에게 하는 말이었다. 허나, 드라카는 구태여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눈앞의 노인에게 들으라는 듯 드라카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렇지 않나, 추기경?”
낡은 교회에 드라카의 목소리가 울렸다. 드라카에게 지목당한 노인은 뒷짐을 진 채 입을 열었다.
“하하, 그 또한 사실이긴 합니다만···.”
델로힘의 추기경, 베르딕트.
초로의 노인은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저, 델로힘의 신실한 신자이신 드라카공께서 바라는 걸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여러모로 델로힘을 위해 봉사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언갈 바라고 봉사를 해선 안 될 일이지만··· 델로힘께서도 드라카공을 어여삐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기적을 허락하신 거겠지요.”
“···기적이라.”
“예에, 정말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베르딕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초의 성녀님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내셨으니 말입니다.”
그가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제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뱀과 같은 눈동자가 드라카를 향한다.
최소한, 추기경이란 이름과 어울리는 눈동자는 아니었다. 드라카는 짧게 숨을 뱉었다.
“일단 앉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이번에야말로 끝을 본다.
그렇기 위해선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건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것이 설령, 속을 알 수 없는 교단의 늙은이라 하더라도.
2.
“시발, 더럽게 찝찝하네.”
나는 로브에 쑤셔 넣어둔 목함을 꺼내 테이블에 내팽개쳤다. 몇 겹으로 봉인을 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찝찝한 건 찝찝한 거다.
‘꼭 썩은 시체를 끌고 다니는 느낌이야.’
목함에 담긴 것.
배교자의 검은 팔을 떠올리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카르디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니 들고 다니는 거긴 하지만··· 정말 어지간하면 몸에서 떼어놓고 싶은 물건이었다.
“이게 델로힘의 팔이라고?”
카르디가 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 델로힘은··· 교단에서 별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그들은 별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직역하면 별의 팔이 된다는 건데.’
나는 목함을 슬쩍 열어봤다.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은데.”
차라리 마왕의 팔이 더 어울리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목함을 도로 닫았다. 그리 오랫동안 보고 있긴 싫었으니까.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개를 젖히면, 방의 천장이 보인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꽤 넓었다. 전사들이 특별히 준비해 준 방이라던가. 백야성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로 좋은 방이라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천장 참 더럽게 하얗네.’
백야성이라 그런지, 모든 게 백(白)이 아니면 못 참는 걸까? 반짝거리는 천장을 보며 나는 짧게 숨을 쉬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기분이 더러우니 별게 다 신경 쓰였다. 북부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는데 말야.
‘기분이 더러운 원인.’
그 원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귀, 드라카.’
사람 흉내를 내는 짐승 새끼.
그 면상을 생각하니 괜스레 열이 뻗쳤다.
‘거기서 한대 후렸어야 했는데.’
명분을 만들었다.
상대가 먼저 검을 뽑게 만들었다. 내게 일종의 정당방위가 생긴 것이다.
‘최고의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눈치라곤 밥 말아 먹은 누가 끼어드는 바람에, 기껏 날린 도발이 다 헛것이 됐다. 도발이란 언제나 싱싱해야 한다. 한번 쓴 도발이 다시 먹힐 것 같진 않았다.
‘다음엔 어떻게 성깔을 긁어야 하지.’
새로운 도발.
흘려 넘길 수 없는 언어.
한마디 한마디로 상대의 감정을 지배할 방법.
머릿속으로 그것을 그려보았지만, 쉽게 그려지진 않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짚은 채 신음했다.
‘···입담 한번 걸쭉한 사람이 필요한데.’
가르침을 청할 인물이 필요했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다.
머릿속에 번뜩, 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나는 로브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뒤적이다 보니 손에 편지지가 잡혔다.
입담이 걸쭉한 사람.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와 같은 인물.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르뤼엘 왕녀.’
나는 편지지에 한 줄을 적었다. 혹, 시간이 괜찮냐는 내용이었고, 답장은 곧장 도착했다.
「하루하루 바삐 사는지라 썩 여유롭진 않군. 다만, 교수 그대에게라면 조금의 시간 정도야 못 내줄 것도 없다. 용건이 뭐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편지를 적었다.
상대가 흘려 못 넘길 언어, 한마디 한마디로 성깔을 확 긁을 언어를 어떻게 짜내야 할까요?
이번에는 곧장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르뤼엘 왕녀라 한들··· 이 질문은 너무 뜬금이 없었던 걸까? 내가 그렇게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편지지 위로 드러나는 글자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명분을 만들기 위한 도발이 필요한 모양이군. 잘 들어라, 교수. 도발을 날릴 때는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두 가지?
「하나.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말하라.」
「그렇게 상대에게 의문을 가지게 해라. 무심코 반박의 말을 꺼내게 해라.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저열한 존재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뽐내려 하는 욕구를 내재한 존재란 소리다.」
「그 욕구를 긁어라. 반응을 유도해라.」
「그렇게 반응을 유도해내기 시작했다면 절반은 끝난 것이다. 상대는 이미 그대의 말에 휘말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오···.”
「둘. 사실과 거짓을 섞어라.」
「첫 번째 조언과 연계하면 더 좋겠군. 사실 위에 당연하지 않은 거짓을 섞어라. 그렇게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내라. 가장된 그럴싸함은 상대로 하여금 반박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흘려넘기면 그만이지만, 사실이 섞인 말은 흘려넘기기 어려운 법이니까.」
과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것 외에도 상대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도발이 쉬워지긴 하지. 허나, 그런 기본적인 건 그대도 알고 있을 테니 구태여 언급하진 않겠다.」
「위 두 조언을 활용해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이런 식이 되겠군.」
출력되던 글자가 잠시 멈췄다.
이윽고 장문의 줄글이 떠올랐다.
「그대는 본인을 정상인이라 생각하나, 사실 그것은 망상이다. 그대는 비정상이다. 나와 같은 미친년이지. 더 나아가자면 본인이 정상이라 믿는 정신병자다.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에게 본녀는 깊은 조의를 표한다.」
「진실이 섞인 헛소리다. 어떠한가?」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뭔 개소리야?’
나는 곧장 답장을 적었다.
거짓뿐인데요?
「봐라. 성능 확실하지 않나.」
아니, 거짓뿐이잖아요. 그냥 헛소리 아니에요?
「찔리는 구석이 있나 보군.」
아니, 이 왕녀님이 뭐라는 거야.
「아무튼 조언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
「이만 줄이겠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지.」
내가 무어라 반박을 덧붙이기도 전에, 르뤼엘 왕녀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몹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편지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진짜 아닌데.”
일단 예시는 잘못된 것 같았다.
그러나, 조언은 어딘가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필요한 것만을 끄집어낸 채 난 편지지를 덮었다.
“으음···.”
예시가 좀 그렇긴 하지만, 도움이 되긴 됐다. 속이 조금 후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일이나 마저 해야지.”
나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전에, 먼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있었다. 무려, 학부모가 직접 부탁한 특강이 말야.
‘라크 방이 어디더라?’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복도에서 나왔다.
3.
“······헙!”
벌떡.
라크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등골이 쭈뼛하고 서는 감각이다. 무언가 큰 위기가 자신을 덮칠듯한 직감이 든다. 근래 들어 자주 느끼는 감각이었다.
‘시련이 다가온다!’
그것이 무엇인진 알 수 없다.
라크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내며.
탁.
구두 굽이 울리는 경쾌한 소리.
일정한 폭을 두고 울리는 걸음 소리에 라크는 귀 기울였다.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 발걸음소리는······.’
라크가 이 소리의 주인을 머릿속으로 그리려는 찰나다. 똑똑, 하고 다가온 시련이 라크의 방문을 두들겼다.
라크, 있어?
시련이 자신을 부른다.
잠깐 좀 나와볼래?
라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죽였다.
대답을 해선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한다. 그러나, 세상은 라크의 편을 들어주질 않았다.
음? 라크 도련님이라면 안에 계십니다.
방문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곁을 지키던 집사의 목소리다.
‘세바스!’
라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뭐야, 안에 있어요?
들켰다. 들켰을 때는 빠른 대처가 생명이다.
라크는 헐레벌떡 방을 뛰쳐나왔다.
“방, 방금 일어났습니다!”
“아, 그래?”
“그··· 무슨 일이십니까?”
라크의 물음에 라니아가 답했다.
“뭐, 별건 아니고.”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나랑 등산 좀 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