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56
〈 156화 〉 우연, 어쩌면 필연(4)
* * *
탁탁탁탁.
골목길에 구두 굽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꼭 무언가에서 도망치는듯한, 그러나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는 발걸음 소리다. 그 발걸음의 주인인 백발의 소녀는 슬쩍 뒤를 돌아본다.
“······.”
가게에서 제법 거리가 벌어졌다.
클로에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골목길의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곤 클로에는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어, 미쳤냐구······!’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어찌나 뜨거운지, 김이라도 피어오를 것 같다. 클로에의 귓가에는 라니아가 속삭인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내 수업을 듣고 싶어 했다니, 영광인걸.」
얼굴이 터질 것 같다. 정말로.
“···!”
클로에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제 고개를 연신 흔들어댔다. 본인의 앞에서 본인에 대해 신나게 떠든 꼴이었다. 우아한 수업이니 뭐니, 부끄러운 소리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저는 이분 수업을 들을 거예요. 교수님같이 난폭하신 분의 수업이 아니라!」
자신이 뱉은 말이 귓가를 맴돈다.
그 교수님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클로에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눈치도 없이 푸르렀다.
“하하.”
클로에는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안녕, 이상적인 학창 생활.’
첫 단추부터가 꼬였다.
잘 보이고 싶던 교수님께는 다른 의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버렸다. 아니, 애초에 그 교수님부터가 소문과는 조금 다른 인물 같긴 했지만···.
“나 어떡해···.”
어찌 됐든, 아카데미 생활이 꼬인 것은 분명하다.
클로에는 제 무릎에 고개를 푹 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혼잣말에 답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클로에가 고개를 들었다.
골목길에 등을 기대고 선 벨노아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클로에는 괜스레 벨노아를 째려봤다.
“···왜 늦었어?”
몹시 스산한 목소리다.
벨노아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평소의 나긋나긋한 클로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한 시간이나 늦었잖아.”
“그··· 미안하다.”
가게로 가던 길에 영감에게 붙잡혀 심부름을 갔다 오느라 늦었다느니, 어쩔 수 없었다느니··· 변명거리는 꽤 있었지만 벨노아는 침묵했다. 클로에가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엔 시간 잘 지킬게.”
그렇게 답하며 벨노아는 클로에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토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인데···.’
사건의 맥락을 알 턱이 없는 벨노아로선 그런 짐작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벨노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가게에서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좁다랗게 이어진 골목길.
제대로 된 순서를 맞춰 걷지 않으면 금방 길을 잃어버리는, 마치 미로와도 같은 곳. 벨노아가 유년기를 보낸 카르디 영감의 가게는 그런 골목길의 끝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이런 후미진 곳에 왜?’
골목길을 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벨노아는 제 미간을 좁혔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긴 하다. 라니아 교수님이 이곳에 들린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저번에도 들리셨지.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처음에는 흘려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두 번째는 아니다.
마냥 별종이라고만 생각하던 그 교수님의 정체를 깨닫게 된 가운데, 벨노아는 위화감을 느낀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 전설적인 마법사가 카르디 영감을 지인이라 말했다. 그것도, 무척 오래된 지인이라고. 벨노아는 미간을 좁힌 채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 하는 영감이야?”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었다.
2.
“네 말대로다. 라니엘.”
낡아 해진 가게.
“우리는, 그날 마왕을 죽였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내는 의자. 먼지가 잔뜩 쌓인 선반. 여기저기 널브러진 포션병. 빈말로도 깔끔하다곤 할 수 없는 가게.
“그곳에서, 그늘의 육신을 베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가게에서, 가장 찬란했던 역사가 읊어지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아왔으며, 모든 걸 기억하는 대현자에 의해서.
“거기까진 성공했지만···.”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우리는 결국 실패했지. 죽이지 못했으니까.”
“···죽이지 못했다고?”
“부족했다. 많은 것이.”
카르디가 눈을 감았다.
머나먼 과거를 떠올리는 듯 카르디는 잠시 침묵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금빛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예전에 그늘의 개념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을 테지.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지. 미치광이가 별의 반대되는 개념을 관측했고, 그것이 그늘이 되었다고.”
“그게 마왕과 관련됐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의 저주와 가니칼트의 검.’
통상적인 주문으로는 상대할 수 없으며, 별빛을 집어삼키는 구정물. 그리고, 내가 보았던 마왕이 바로 구정물 그 자체였다.
“마왕이 바로 그늘 그 자체다.”
카르디가 그렇게 단언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것이기에,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카르디 또한 그런 내 반응을 예상한 듯, 차분히 다음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착각했다.”
“착각?”
“그래, 착각. 그늘은 어리석은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한 피조물이다. 인간의 손에 빚어진 개념이다. 영겁의 세월 동안 이어지던 섭리에 끼어든 이물질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르디가 찻잔을 보았다. 찻잔에 고인 걸쭉한 액체를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건, 고작 그런 게 아니었다.”
빠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날.”
카르디가 나를 보았다.
“그곳에서 우리가 마주한 건 불완전한 개념이 아니었다. 관측되어 탄생한, 본래 존재해선 안 될 무언가가 아니었다.”
누런 금빛의 눈동자에 비춘 것은 후회다.
수백 년 전의 일이지만, 카르디는 바로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
“우리와 같은 필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
“아니고, 아니었으니···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그 존재에게 통할 리가 없지.”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듯, 카르디는 말을 이었다. 그가 헛웃음을 흘리며 내게 물었다.
“라니엘, 완벽한 존재를 뭐라 부르는지 알고 있나?”
“···별?”
카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언어로는, 글레리아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지. 섭리에 얽매이지 않는 무언가. 존재를 초월해 법칙이 되어버린 무언가.”
만마의 왕.
“우리가 상대해야 했던 건 그런 존재였다.”
초대의 용사들이 마주했던 것.
카르디의 말을 듣는 와중에도, 나는 그것의 모습을 감히 그려볼 수 없었다.
“열흘 밤낮으로 싸웠다.”
그걸 그려볼 수 있는 건.
“모두가 제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과 마주했던 그들 뿐이겠지.
카르디는 토해내듯 말했다.
“쓸 수 있는 건 전부 썼다. 벨리알은 제 육신을 포기했다. 용이 되어 그는 날뛰었지. 가니칼트는 제 긍지를 버렸다. 베기 위한 검이 아닌 찢어발기기 위한 검을 휘둘렀다. 글레리아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성법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사용했다. 나는 온갖 금술을 사용했다. 금기를 범해가면서까지.”
그런 싸움이었다, 그건.
그렇게 중얼거린 카르디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까지 했지만,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저항해야 했지.”
어째서 저항해야 했는가.
“우리뿐이었으니까.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아니면 안될 테니까. 그건 사명감이었고, 책임이었으며··· 용사의 이름을 건 이들의 의무였지.”
탁.
카르디가 손에 쥐고 흔들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열흘째 밤, 결판이 났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인간의 추악한 기원에서 태어난 존재였고, 그렇기에 인간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렸지.”
카르디가 손끝으로 찻잔을 건드렸다.
틱, 티딕. 찻잔에 금이 갔다.
“끝내 우리는 왕의 육신을 베었다.”
파삭, 하고 찻잔이 박살 났다.
“하지만 죽이진 못했지.”
걸쭉한 액체가 테이블 위로 흘렀다.
흐르고 흘러 액체는 내게까지 닿았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다. 아직 네가 두 번째 계약에 닿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주자면···.”
액체를 가리키며 카르디가 말했다.
“범람했다.”
“······.”
“범람하는 파도를, 한낱 인간의 손으로 틀어막기란 불가능하지.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했다.”
그의 입가에 쓴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실패의 대가는 잔혹했지.”
닿을 수 없는 것에 닿은 대가.
신에게 칼을 들이민 대가.
그 대가는, 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은 네가 아는 역사와 같다.”
용사는 타락했고, 그들은 재앙이 됐다.
재앙은 수많은 나라를 불태웠다. 그들이 모험에 나설 때 내걸었던 맹세를, 그들은 제 손으로 어겨야만 했다.
“···그렇게 재앙이 되었다, 그런 거야?”
“그런 셈이지.”
“지금의 마왕도 너희가 한번은 죽였지만··· 죽이지 못한 부산물 같은 거고?”
“부산물이란 표현은 틀리겠군. 하지만, 약화한 건 사실이다. 그렇기 위한 계약이었으니까.”
계약. 그놈의 계약.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뭔가 좀 많이 생략된 거 같은데.”
“아직은 알려줄 수 없는 거니까. 억지로나마 말을 해봤자 네 귀에는 들리지 않을 거다.”
카르디가 흘러내린 녹차를 닦으며 말했다.
“너는 셋의 계약 중 하나를 알았을 뿐이고, 네겐 더 알아야 할 게 많을 테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카르디가 내게 취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으니까. 나는 그 사실을 지적했다.
“···이제는 뭘 숨기려고 안 하네?”
“네가 들을 수 있는 것이 많아졌으니까. 자세한 건 들려주지 못해도··· 갈피 정도야 잡아줄 수 있지.”
“예전에는 그마저도 안 잡아주려 했으면서.”
“네가 진실에 닿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카르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에게 되물었다.
“···바라지 않았다고?”
“그래.”
“왜?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으니까 너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지만, 그게 너는 아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카르디의 말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그가 나를 보았다.
“···내가 아는 너는.”
카르디가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버리면,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계약에 닿아··· 네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너는 반드시 책임을 지려 할 거라 생각했다.”
“···책임?”
“더 파고들려 하겠지. 다른 진실을 전부 알아내서, 다시 한번 전장에 나서려 하겠지.”
나는 침묵했다.
침묵 속에서 카르디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이미 은퇴했다. 이미 많은 업적을 세웠고, 인류를 위해 네 삶을 바쳤다. 내 말이 틀리다곤 할 수 없을 거다.”
“···그건.”
“부정하지 마라. 그 누구도 네가 인류를 위해 희생했음을 부정하진 않을 테니.”
카르디가 손을 뻗었다.
그가 내 심장을 가리켰다. 아직도 내 몸을 좀먹고 있는 저주를, 혹은··· 이미 마모되어버린 내 영혼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은 망가졌다. 영혼은 마모되었다.”
그렇기에, 라고 카르디가 말했다.
“여생을 휴식 속에 보내기로 결정하지 않았나.”
“······.”
“네게는 휴식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당장 네가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너는 충분히 잘해주었다. 이 다음은···.”
“야.”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야, 카르디.”
나는 카르디의 말을 끊었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누가 그래?”
“···뭘 말이냐.”
“누가 여생을 휴식 속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냐고.”
내가 웃었다.
“나는 그럴 생각 없는데.”
3.
카르디가 말없이 나를 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듯한 눈치였기에, 나는 기꺼이 대답해주기로 했다.
“애초에 말야.”
나는 턱을 괸 채 말했다.
“지금 살아온 만큼은 더 살 수 있는데 여생이란 단어는 좀 그렇지. 그만한 시간을 휴식만 하면서 어떻게 살아? 지루해서 못 견딜걸.”
천년을 넘는 세월을 살아온 엘프.
그런 카르디의 시점에서, 내 삶은 한순간에 불과하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십여 년쯤이야 이 고대의 엘프에겐 눈 깜빡하면 지나갈 시간일 테니까.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나는 인간이었고, 내게 십여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미 나는 지난 5년으로 그것을 증명해낸 바가 있다.
“난 5년의 시간 동안 재앙 둘을 죽였어.”
“···둘?”
“어차피 스케발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아무튼 간, 5년도 안 돼서 둘을 죽였지. 심지어 남은 둘을 죽일 방법도 얼추 감이 잡혀.”
감은 잡았다.
가능성도 보았다.
내게 시간은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냥, 그놈으론 안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서 전선에서 은퇴했던 거고.”
그저, 카일이 답이 아니었을 뿐이다.
모든 문제에 답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다른 답을 찾으면 된다.
“그게 내가 포기했단 소리는 아니지.”
마법사는 언제나 답을 찾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뼛속까지 마법사였다.
“나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어.”
“···어째서?”
카르디가 내게 물었다.
“너는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도 아니다. 네게는 그럴 책임이 없을 텐데.”
그건 언젠가, 다른 형태로 답했던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책임이 생겨버렸으니까.”
“······.”
“여행을 하면서, 책임이 생겨버렸으니까. 짐을 짊어지게 됐으니까. 나는 그걸 모른 척하고 살아갈 만큼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눈을 감으면 목소리가 들린다.
「부탁한다, 라니엘.」
「다음은 맡긴다.」
우릴 위해 희생한 긍지 높은 검사의 목소리가.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손짓 한번에 사지로 향하던 기사들의 목소리가.
「돌격하라. 우리는 시간을 끈다.」
「돌격하라, 돌격하라!」
그들의 요란한 발소리가, 땅을 타고 울리던 진동이.
「···의미는 있었습니까.」
「아하, 그거 좋군요. 용사님의 앞길에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동료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하나···.」
죽어가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음에 안도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다음을.」
「···다음을 위하여.」
그런 수많고 수많은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소리가 곧 그들의 삶이었으니까.
“나는, 나만큼은 그들이 맡긴 삶을 책임져야 하니까.”
몇 번이고 죽을 뻔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으면 죽었을 것이다.
내 삶은 그들의 희생 위에 이어져가는 삶이다. 지난 5년간, 내 삶은 그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카일이 포기하고, 사라와 레미아가 책임에서 눈 돌리더라도··· 나까지 그래선 안될 테니까.”
나마저 포기해버리면.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지잖아.”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의 희생이 마땅한 의미를 가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난 포기해선 안 돼.”
“······.”
“너도 그랬던 거 아냐?”
나는 카르디를 보며 웃었다.
카르디도 나와 마찬가지였을 테지. 자신이 포기해 버리면, 재앙으로 변해버린 옛 동료의 삶이 무의미해질 테니까. 카르디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견딜 수가 없었으니, 포기할 수 없었던 거고.
“다 똑같은 거지, 뭐.”
내 말에카르디는 눈을 감더니, 마지못해 웃음을 흘렸다. 그건 한숨이 섞인 웃음이었다.
“···하여간.”
카르디가 웃음을 흘렸다.
“지랄 맞게도 닮았군.”
“칭찬이냐?”
“칭찬일 것 같나?”
“칭찬으로 받지, 뭐.”
나는 장난스레 말을 덧붙였다.
“그 대단한 초대 마탑주님하고 닮았다니, 너는 모르겠지만··· 이거 잿빛 마탑에서 굉장한 칭찬이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가게 안으로 노을이 새어 들어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새 해 질 녘이 됐다. 새어 들어오는 노을빛 아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 생각이냐?”
“더 나눌 말도 없고, 슬슬 돌아가야지. 네가 보낸 애들,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거 아냐?”
나는 슬쩍 눈짓했다. 가게의 구석에는 케이크 상자가 놓여 있었다. 벨노아가 가게로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
“파티라도 하려나 봐?”
“입학 축하 파티라 했던가. 저들끼리 하지, 꼭 나를 껴서 하겠다고 난리를 치더군.”
“걔네한텐 네가 부모 같은 것일 테니까.”
“···부모는 무슨.”
남의 집안 파티에 눈치 없이 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나는 카르디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뭐야?”
“누굴 말하는 거지.”
“클로에말고 더 있나? 배교자 닮은 그 애.”
내가 물었다.
“···걔한테도, 뭔가 있는 거야?”
아무리 봐도 우연인 것 같진 않았다.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이례적인 용사 후보. 그 소녀가 배교자와 닮았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뭐 아는 거 있어?”
나는 그렇게 물었고.
“글쎄.”
카르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나도 아는 게 없다. 별의 장난인지. 정말로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고 카르디가 말했다.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지.”
우연, 어쩌면 필연이라.
“뭐, 두고 보면 알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