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3
〈 163화 〉 가을, 신학기(6)
* * *
결투의 규칙은 단순했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잠정적 행동 불능 상태가 되면 결투는 끝이 난다. 혹은 감독관의 판단으로 인해 결투가 끝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 외에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살초를 써도 좋다.
급소를 노려도 좋으며, 독(?)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수단을 동원해도 좋다. 아무래도 좋으니 보일 수 있는 전부를 보여라.
그것이 전투 마학과의 결투였다.
그 파격적인 조건 탓에,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여태껏 결투에서 불상사가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능한 감독관의 존재 덕분이다.
“올해는 로셀 자네가 감독을 맡지 않는군.”
“그 정도면 오래 하지 않았나.”
“뭐, 그렇긴 하지.”
아론은 제 곁에 앉은 친우를 보았다.
로셀 반 트리아스. 이제껏 숱한 결투의 감독관을 맡았던 그가 지금은 팔짱을 낀 채 결투를 관람하고 있었다.
‘···하긴, 오랫동안 감독역을 맡아주긴 했지.’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격적인 조건의 결투. 그것이 성립될 수 있었던 건, 전부 이 노련한 마법사의 덕이 컸다.
대부분의 교수가 이론에는 강할지언정 실전에는 취약하다. 그들에게 있어 마법이란 지식이지, 무언가와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닌 탓이다. 교수들의 마법은 완벽을 추구한다. 그러나, 실전에서 요구되는 건 완벽한 마법이 아니다.
빠르고, 간결하며, 효과적인 것.
그러니까, 실용적인 것.
그리고 로셀은 실용을 추구하는 교수다. 다른 교수들과 달리 마탑에 발을 둔 마법사다. 그런 로셀의 마도(??)를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어느 마법사가 그 가치를 증명해낸 까닭이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잿빛 마법사를 길러낸 교육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내가 감독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군. 저 아이가 이쪽 방면으론 나보다 더 유능할 테니까.”
“···그 정도인가?”
로셀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췄을 텐데.
왕가의 주도하에 벌어진 마수 토벌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무려 고룡의 마법사에게 현인이란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런 로셀보다 스무살 먹은 저 아이가 더 유능하다니?
‘제자 사랑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꼭 팔불출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론이 미심쩍은 눈길로 로셀을 바라본다. 로셀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 시선에 답했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은 아이야.”
그리 단언하며 로셀이 관중 쪽을 흘겨본다.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유난히도 텅 비어있는 곳이 보인다. 그곳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그중 잿빛 머리칼의 소녀를 바라보며 로셀은 미소 지었다. 아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역시 팔불출이 맞군.’
하긴, 저런 아이를 양녀로 둔다면 팔불출이 될 만도 하다.
“쩝···.”
새삼 부러움을 느끼며 아론이 로셀을 흘겨보고 있자니, 로셀이 결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결투에 집중이나 하게.”
로셀이 결투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두 학생이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다. 한 명은 백색 마탑주의 수제자요, 다른 한쪽은 흑색 마탑주의 수제자다.
흑색과 백색은 언제나 서로를 라이벌 관계로 여겨왔다. 그러니, 이건 마냥 학생들 간의 싸움이 아니다. 마탑 간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기도 했다.
흑색과 백색.
수석과 차석.
슬럼가의 아이와 북부 대공의 아들.
대비되는 것들이많다. 많기에, 수많은 관중이 그들의 결투에 열광한다. 누가 승리할지를 두고 언쟁을 높이기도 한다.
“라크,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찢어버려요!”
“체통을 지켜라, 백색! 이 미친 노친네야!”
“노친네? 난 소녀거든요? 당신이나 입 다물어요!”
“그 나이를 처먹고 소녀라니, 그 무슨 양심 없는···!”
관중의 한편이 소란스럽다.
그 소란스러움이 절 호조에 다다랐을 무렵··· 부우우, 하고 나팔 소리가 콜로세움에 울려 퍼진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와아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을 배경삼아 흑과 백색이 서로에게 달려든다. 벨노아의 흑색 머리칼이 나부낀다. 단검의 궤적을 따라 그림자가 폭발하듯 이어진다. 그에 대응하듯 라크의 백발이 흔들리고, 도끼가 움직였다.
카앙! 그림자와 도끼가 맞부딪친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첫 돌격에서 뒤로 밀린 것은 언제나 라크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썩 다르지 않으리라 학생들은 예측했다.
카각, 카가가가각!
그 예측이 박살 난다.
모두의 예측을 깨고 라크의 도끼가 그림자를 찢어발긴다. 일격, 그림자를 찢는다. 이격, 그림자 단검을 박살 낸다.
“···!”
벨노아가 그림자를 짜낸다.
그림자가 스멀, 발밑에서 올라오는 순간이다. 라크의 움직임이 한순간 가속했다. 학생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벨노아의 눈에는 보인다.
‘···이거, 잠깐.’
지나친 가속에 당황하면서도 벨노아는 그림자로 도끼를 묶는다. 그러나, 라크는 그것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도끼를 손에서 놓아버린다.
라크가 탁, 땅을 박찬다.
도끼를 놓은 손으로벨노아의 머리를 움켜쥔다.
대응할 틈은 없다. 너무나도 빠른 움직임이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순간 벨노아의 대응이 늦어진다. 벨노아는 다가오는 라크의 무릎을 본다.
막을 방법은, 없다.
쩌억!
벨노아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황급히 그림자를 터뜨리며 벨노아는 뒷걸음질 친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벨노아가 고개를 숙였다.
투둑, 후두둑.
코피가 터졌다. 피가 떨어진다.
바닥에 붉은 점이 찍혔다. 그 모습에 콜로세움이 일순간 침묵에 휩싸인다. 관중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벨노아를 바라본다.
여태껏, 어떤 모의 대련에서도 일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벨노아다. 그런 벨노아가··· 피를 흘린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벨노아의 낯빛에 당혹이 스친다. 벨노아는 라크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 관중들 또한 결투장의 중앙에 선 라크를 본다.
“그러게, 말했지 않나.”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라크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옛날 그대로라면 금방 결판이 날 거라고.”
뒤늦게 경기장에 환호성이 쏟아졌다.
2.
와아아아아아!
울려 퍼지는 환호성 소리를 흘려듣는다. 벨노아는 코피를 훔치며 라크를 보았다. 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놀라움, 그리고 당황으로.
“···도대체 뭘 하고 온 거야?”
사람이 바뀌었다.
벨노아가 기억하는 라크의 수준이 아니다. 그 움직임이 차원이 다르다. 더 빨라졌고, 더 묵직하다. 아니, 비단 움직임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데.’
지금까지 봐왔던 라크와는 다르다.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그 형태가 명확히 그려지진 않으나··· 무언가 있음은 분명하다.
“특훈을 했다.”
벨노아의 혼잣말에 라크가 답했다.
라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벨노아를 향해 걸어온다. 투두둑, 그가 그림자에 묶인 도끼를 뽑아내 양손에 쥔다.
“······.”
벨노아가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뒷걸음질 치며 발밑에 깔아둔 그림자가 솟구친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오는 공격이다. 어느 그림자에서 어떤 가시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대응하기 까다롭다. 라크가 열에 아홉은 당하던 수다.
탁, 으적.
그러나 이번은 아니다.
열에 한 번이라는, 아주 우연한 확률이 운 좋게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라크는 도끼를 휘둘러 그림자를 쳐낸다. 한걸음 움직여 그림자를 피했다.
동작이 간결하다.
간결함에서 보이는 것은 확신이다.
어디서, 어떤 형태로 그림자가 튀어나올지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다. 성큼성큼 라크가 다가온다. 벨노아는 그림자로 단검을 직조한다. 라크가 땅을 박찬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카앙!
도끼가 단검을 후려친다. 단검이 날아가지만 벨노아도 그를 염두에 뒀다. 단검이 그림자로 흩어지고, 순식간에 벨노아의 손을 감싼다.
콱!
그림자를 두른 손으로 도끼를 움켜쥔 채 벨노아가 눈을 부릅뜬다.
그림자 폭발.
벨노아의 손을 덮은 장갑이 폭발한다. 그림자가 라크의 시야를 가린다. 그 틈에 바닥을 구르며 벨노아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림자 비수(Shadowneedle).
바닥에 깔아둔 그림자들이 출렁, 하고 파도친다. 파도치는 그림자에서 비수가 사출된다. 사방에서 쏘아진 공격이다. 그중에는 후방을 노린 것도 있다. 그림자 폭발에 시야가 가려진 라크는 오롯이 앞에서 쏘아지는 것들에만 집중한다.
콰직, 으적!
비수를 박살 내며 라크가 다가온다. 도끼를 휘두른다. 벨노아는 그림자를 두른 손으로 도끼를 붙잡는다. 찌르르, 하고 팔이 떨렸다.
‘무슨 힘이···.’
밀린다. 밀리는 게 느껴진다.
라크의 힘에 밀려 벨노아의 자세가 무너지려 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벨노아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는다. 라크의 등 뒤에서 짓쳐 드는 비수를 알고 있는 탓이다.
한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뒷골목에서의 싸움이란 갉아먹는 싸움이다. 벨노아는 자신보다 강한 이를 갉아먹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벨노아가 라크의 틈을 찌르려는 순간이다.
움찔.
벨노아는 또다시 위화감을 느낀다.
라크의 몸이 떨린다. 도끼를 잡고 있었기에 벨노아는 그 떨림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사냥을 앞둔 짐승이 제 근육을 수축하는 것과도 같다.
근육이 당겨진다.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인다.
라크가 도끼를 놓는다. 그가 고개를 휙, 돌린다. 덩달아 몸이 돌아간다. 시야의 사각에서 기척을 죽인 채 다가오던 그림자 비수, 그것의 궤적을 정확하게 읽어낸 라크가 손을 뻗는다.
강타(Smite).
한순간 발현된 주문이 비수를 꺾는다.
마치, 일전에 라니아가 했던 것처럼.
주문으로 주문을 요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궤도를 정확하게 읽어야만 가능하다. 예측에 가까운 계산을 마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라크가 해낸다.
전부 쳐내진 못했다. 주문이 놓친 것을 라크는 맨손으로 붙잡는다. 살갗이 스쳐 피가 흐르지만··· 주문에 직격당한 것에 비하면 가벼운 상처다.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벌어졌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등을 돌린 라크를 노려 벨노아는 손을 뻗고 있었다. 그것 또한 간파했다는 듯 라크가 고개를 휙 돌려 벨노아를 바라본다. 짐승과도 같은 붉은 눈동자가 한순간에 상황을 파악한다.
콱.
손목을 낚아챈다. 붙잡는다. 그리곤, 라크가 메치듯이 벨노아를 바닥에 메다꽂았다.
“커흑!”
등허리를 부딪쳐 신음을 흘리면서도, 벨노아는 반격을 잊지 않는다. 메쳐지며 바닥에 깔아둔 그림자가 폭발한다. 라크는 뒤로 물러섰다.
“큽···.”
벨노아는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추스른다.
그는 방금까지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는다. 명확한 형태로 그려지는 그것을 벨노아는 속으로 곱씹는다.
‘직감, 전투 감각.’
본래부터 라크의 특기였다.
그러나, 그 날카로움이 예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공기의 흐름.
미약한 마나.
시선의 처리.
그 아주 작은 단서와 단서를 모아 결과를 도출해낸다. 미래를 예측한다. 그 전부를 무의식중에 이루어낸다. 그것은 이미 직감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을 뭐라 부르는지 벨노아는 알고 있었다.
‘···초감각.’
초인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두각을 드러내는, 한없이 미래 예지에 가까운 무언가. 그것을 초인의 영역에 들지 않은 라크가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그것까진 알 수 없다.
벨노아는 설원에서 라크가 초인과 마주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라크가 자신의 벽을 마주했단 사실도, 초인의 일격을 튕겨내며 벽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단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본래 라크가 지닌 예리한 감각이 초감각의 영역에 가까워졌음을, 벨노아가 추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저 그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어이가 없어 벨노아는 그리 중얼거렸다.
“진짜, 말도 안 되네.”
“말도 안 되는 훈련을 했으니까.”
“도대체 뭘 했길래?”
“몇 번 죽을 뻔했다.”
여유롭게 대화를나누며 라크가 걸어온다. 벨노아 또한 헛웃음을 흘리며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 둘이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진 전초전에 불과하다.
벨노아도, 라크도 아직 제 전부를 보이지 않았다.
벨노아는 공양(Offering)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라크 또한 가열(Heating)을 걸지 않았다.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
“······.”
그리고, 지금. 전초전은 끝났다.
벨노아는 팔을 들어 올린다. 그 손가락은 이미 두 개가 꺾어져 있다. 두 개분의 제물이 장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가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보여준다.
어째서?
“지금부터 시작이란 뜻이군.”
그 의도를 이해한 라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라크는 가열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것이 꼭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나, 라고 묻는 듯 하여··· 벨노아는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만다.
“하여간.”
벨노아는 결투를 싫어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울려 퍼지는 환호성도, 쏟아지는 시선도 썩 즐겁지 않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하.”
입가를 비집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언제나 자신의 밑에 서 있던 이가, 자신을 추월하려 한다. 그 사실에 벨노아는 소리 내 웃었다.
그것은 벨노아가 처음 느껴본 감정이다.
벨노아에게 있어 추월당함이란, 언제나 죽음을 의미했다. 뒷골목에 자신보다 강한 이가 나타난다면 죽여야만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었다. 벨노아에게 있어, 자신보다 강한 이란 숨통을 조여오는 목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몇 번이고 자신과 맞부딪쳐 온 상대가 자신을 추월하려 하는 지금, 어째서 자신은 기쁨을 느끼는가? 이 결투가 즐겁게 느껴지려 하는가?
라이벌.
언젠가 라크가 입에 담았던 단어가 귓가에 맴돈다. 벨노아는 제게 도전장을 내민, 못 본 새에 너무나도 강해져 버린 제 라이벌을 본다.
“재밌네.”
벨노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가 제 감정을 드러낸다. 조소가 아닌, 가장된 웃음이 아닌··· 꾸미지 않은 웃음을 흘린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 있어?”
“자신이 없으면 도전장을 던지지도 않았다.”
“그래.”
벨노아가 손을 뻗어 제 손가락을 꺾었다.
두 개가 더 공양 된다. 벨노아의 주변에 그림자가 솟구친다. 벨노아의 몸을 감싼다.
“그럼 해봐.”
바닥에 깔린 그림자가 출렁인다.
그림자에서 솟구친 가시가 제자리에서 회전한다. 가시가 주변의 그림자를 빨아들이며 말뚝이 된다.
벨노아가 개발한 주문.
최소단위의 마나 만으로도 발현 가능한 주문.
그것이 막대한 양의 마나를 파먹는다. 수십 개의 말뚝이 대련장 위를 가득 메운다. 성장한 건 라크 뿐만이 아니다. 벨노아 또한 지난번 배교자 습격 사건을 통해 성장을 이루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다.
주문을 가다듬는 방법을 깨달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찬란한 주문을 보았다.
그날 벨노아는 완벽한 형태의 저울을 보았다. 저울에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재화가 올라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진리에 근접한 마법사가 펼치는 천칭은, 일견(一?)한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준다.
그 깨달음을 선보일 차례다.
그림자 말뚝(ShadowPile).
회전하는 말뚝이 라크를 겨냥한다.
그것에 겨냥된 라크가 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이러기만을 기대했다는 것처럼.
“좋군.”
위기를 앞두고 라크는 웃는다.
라크의 손가락이 제 심장을 건드린다.
가열(Heating).
두근, 심장이 크게 뛴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가열되기 시작한다.
3.
학생의 수준은 진작 넘었다.
전장에서 활동하는 현역 기사들을 데려와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탑주들 조차 감탄을 내뱉는다. 마탑주의 시선으로 보아도 몹시 수준이 높은 싸움이다.
캉, 카앙!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불똥이 튄다. 그림자가 흩어지고 모여든다. 한쪽이 밀려나는 듯 싶으면, 곧장 따라붙기를 반복한다.
호각이다.
호각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대부분의 관객은 그 싸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무언가 번뜩이고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둘의 움직임을 읽는 것 조차 벅차다.
얼마만큼의 주문이 사용됐는지.
무슨 주문이, 어떤 순간 작용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맞부딪치고 있는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그저 감탄을 뱉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그 모든 장면을 전부 눈에 담고 이해하는 이도 있는 법이다.
“······.”
라니아는 말없이 둘의 결투를 지켜본다.
어느 때라도 개입할 수 있도록 마나를 끌어올린 채, 그녀는 모든 장면을 눈에 담았다.
얼핏 보면 호각인 듯 싶지만, 실상은 라크가 조금 더 우세하다. 라크는 이미 초감각에 발을 담근 상태다. 한 수 앞을 보고 움직이는 전사를 상대하기란 지나치리 까다로운 법이다.
‘하지만, 조금 우세할 뿐이야.’
그렇다고 라크가 완전히 승기를 붙잡은 것은 또 아니다.
벨노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제 버릇을 최소한으로 숨긴다. 예측할 수 없도록 함정에 함정을 깐다. 마치, 노련한 사냥꾼과도 같다.
라크가 제 육체 능력과 초감각에 의지해 몰아붙인다면··· 벨노아는 쌓아온 대인 전의 경험으로 그를 극복해낸다. 그 격차가 좁혀져 가고 있다.
점점 호각에 가까워진다.
벨노아에겐 라크같은 초감각이 없지만, 그는 인간을 상대하는 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타고난 감각과 쌓아온 경험이 맞부딪친다.
“···아하.”
라니아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그녀는 즐거움을 느낀다.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학기 초에 비교해봤을 때··· 그들은 고작 반년 만에 놀라운 성장을 거쳤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사실이 라니아는 기껍다.
그녀가 순수한 기쁨에 웃음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그 웃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가 있다. 클로에는 경기를 보다 말고 흘끗, 라니아를 바라봤다.
움찔.
클로에가 어깨를 떨었다.
아름다운 미소이거늘, 클로에는 그 웃음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마치 지난 연구 성과를 남들 앞에서 선보이는··· 미친 마학자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으응, 아냐. 또 선입견.’
자신의 착각이리라.
착하고 예쁜, 그리고 친절한 교수님이 아닌가.
‘오해하면 안 돼.’
억측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법이다.
클로에는 고개를 가로젓고선 라니아가 준 막대 과자를 오독였다. 그녀의 귓가에 별이 절망을 노래함을 클로에는 알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