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2
〈 162화 〉 가을, 신학기(5)
* * *
개학식을 코앞에 둔 아플리아의 아침은 소란스럽다. 학사 내를 돌아다니는 조교들은 무언가를 붙이고, 설치하는 등, 무언갈 준비하기에 바쁘다. 개학식의 준비를 하는 건 아니었다. 개학식은 예정된 일정이었으므로 한참 전부터 준비를 해놓은 참이다.
개학에 앞서 강의실의 청소도 마쳤다. 수업에 필요한 물품은 전부 새것으로 채워뒀다. 교재도 마학회에서 미리 수령해놨으며··· 잡다한 준비도 방학 기간 내에 전부 끝마쳐 둔 것이다.
조교들에게 방학은, 준비기간에 불과하다.
방학이라 하여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렇기에, 개학을 며칠 앞둔 지금··· 본래대로라면 조교들은 여유로운 일상을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일감은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전투 마학과 수석 쟁탈전」
개학을 앞두고 일감이 던져졌다.
수석 쟁탈전, 그러니까 결투.
올해에야 조금 뜸하지만, 작년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한 달에도 몇 번이고 결투가 치러졌다. 그렇기에 조교들은 결투에 관한 공지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규모가 다르다.
이례적인 경우다.
“올해 첫 번째로 벌어지는 결투로군.”
“하긴, 벨노아 그 아이가 워낙 독보적이라 다른 학생들이 도전할 엄두를 못 내긴 했지. 모의 대련만 보아도 얼추 수준은 잡혔고···.”
“그나마 라크 학생이 비벼볼 만 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하지만, 아직까진 벨노아가 우세한 추세지. 그래서 이번에 결판을 내려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기대가 돼.”
교수들이 관심을 가진다.
그들이 벌어질 결투에 흥미를 느낀다. 교수들을 따라 그것은 총학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한 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벌어지는 결투.”
아론 총학장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뜨겁구먼. 역시 젊은이들은 이래야지. 젊음이 부럽구만, 부러워. 서로 부닥치고 경쟁하며 성장한다.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야.”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시기도 적절하군. 아예 행사처럼 계획해 보는 건 어떤가? 방학 동안 느슨해진 학생들에게 자극도 줄 겸··· 썩 나쁘지 않은 생각이로군.”
그리고 선고가 내려졌다.
“우리 한번 크게 계획해 봅세. 내 기대하겠네.”
까라면 까야지 뭐 어쩌겠는가.
조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행사를 준비한다. 고작 며칠 만에 행사는 그럴듯한 형태를 띤다. 결투 당일의 아침, 조교들은 자신들이 완성한 결과물을 본다.
결투를 위해 지어진 대련장이나, 지난 한 학기 동안 결투가 치러지지 않아 먼지가 쌓인 대련장을 깔끔하게 청소했다. 결투를 보러올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을 위해 의자에 반질반질하게 광을 냈다.
고대 검투사들의 결투장을 본떠 만든 콜로세움.
관객을 받을 준비를 마칠 그곳을 바라보며··· 조교들은 감격에 겨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웃음을 흘리는 그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왔다.
“오.”
이제는 아플리아에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담당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는 결투장을 쓱 둘러보곤 입을 헤, 벌리며 감탄을 뱉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교들을 향해 심심찮은 위로의 말을 던지며, 그녀는 관객석의 한자리를 잡고 앉았다.
“흥, 흐응.”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좌석에 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들고 있지만··· 그녀가 단순히 관광차 들린 것은 아니다. 오늘 행사에 있어서, 어쩌면 그녀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력이었다.
벨노아와 라크는 학생의 수준을 넘었다. 어지간한 교수들과 비교해보아도··· 이론에서 밀릴지언정 실전에서 밀리지는 않는다. 그만한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맞부딪친다.
싸움이 과열된다.
과열되다 보면, 불상사가 반드시 일어난다.
배움의 땅에서 피가 튀기고···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렇다고 손대중을 두며 결투를 하자니 김이 팍 식는다. 적당한 선에서 결투를 감독해줄 인물이 필요하단 뜻이다.
그것이 바로 라니아 반 트리아스다.
그녀에겐 일전의 반 배정 시험에서 둘을 중재한 전적이 있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증명돼 있다. 그렇기에 이리 부탁한 것이지만···.
“오오.”
마냥 해맑게 결투장을 둘러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없던 걱정도 다 생길 마당이다. 조교들은 부디 별일 없기를 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아침은 밝아온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대련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열기와 흥분 속에서 결투는 막이 오른다.
2.
“결투, 오늘이었지?”
“베이커리에서 과자 나눠준다는데 받아서 가자.”
“누가 이길 것 같아?”
“교수님들은 학장님 몰래 그거 가지고 베팅한다는데?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주나 몰라.”
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대련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개학을 코앞에 둔 지금,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행사에 학생들도 기대를 거는 참이다.
“대련장이 으음···.”
그리고, 그 행렬에는 이제 막 아플리아에 입학한 소녀 또한 섞여 있다. 클로에는 중앙학관의 메이드에게 받은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포기하고선 학생들의 행렬을 따라 걷고 있었다.
‘따라가다 보면 나오겠지!’
그렇게 그녀가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학생들의 시선이 클로에에게 쏠렸다. 그들은 클로에를 흘겨보며 쑥덕이곤 한다.
쟤가 그 편입생···.
듣기로는 흑색 마탑주님의 제자 중 하나라는데?
이미 벨노아가 있지 않아?
벨노아랑도 친한 것 같아.
학기 도중 편입한 학생.
그리고, 그 벨노아와 인연이 있는 소녀다. 그녀가 벨노아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걸 본 학생들이 많다. 단순히 친구 사이 같지만은 않다는 소문이 돈다.
딱딱하고, 차가우며··· 감정표현의 희박한 벨노아다. 그런 벨노아가 저 소녀의 앞에서만큼은 제 감정을 드러낸다. 웃고 떠든다.
‘뭔가 있다!’
한창 연애담에 관심을 가질 시기의 학생들이다. 그들의 안에선 이미 반쯤은 벨노아와 저 소녀는 각별한 사이의 연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소문이 마냥 틀리지만은 않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벨노아가 그럴 만 하네.
응, 예쁘긴 해.
뭔가 좀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소녀의 화사한 외모도 맞물려, 클로에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른 채 학생들의 꽁무니를 따라 걸을 뿐이다.
“아, 여기구나.”
클로에는 중얼거리며 콜로세움의 안으로 들어섰다. 원형의 경기장, 계단식으로 배치된 관객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객석을 빼곡하게 채운 관중의 수에 클로에는 내심 감탄을 뱉는다.
‘다 벨노아 보려고 모인 거구나.’
벨노아는 참 인기가 많구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클로에는 빈자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다 보니, 유난히도 사람이 비어있는 라인이 클로에의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객석이 붐비는 마당에, 그곳만은 구멍이라도 뻥 뚫린 것처럼 자리가 비어있다. 딱히 객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곳에 앉아있는 인물이었다.
와작.
텅텅 빈 라인의 중심.
그곳에 앉은 한 인물이 있다. 그녀는 막대 과자를 오물거리며 결투장의 중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흔들렸다.
“라니아 교수님?”
“응?”
부름에 답하듯 그녀가 옆을 돌아본다.
클로에를 알아본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안녕, 클로에.”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왜 혼자 앉아 계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여기로 잘 안 오더라. 자리가 뭔가 안 좋나?”
와작, 과자를 오물거리며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앉을래?”
라니아가 툭, 하고 제 옆자리를 두들겼다.
클로에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는 총총걸음으로 그녀의 곁에 가서 앉았다.
···헉!
누가 쟤 좀 말려봐···!
편입생, 편입생이라 모르는구나···!
그리고, 그 순간이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라니아 교수와 거리를 두고 앉은 학생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클로에를 바라본다.
···라니아의 옆자리가 비어있던 이유야 간단하다.
물론, 라니아가 상당한 미인이며, 흔하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인물임에는 학생들도 긍정한다. 그러나, 그 모든 건 하나의 전제조건 하에 성립되는 미사여구다.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멀리서 보아야만, 아름답다.
다가가면 피를 볼 것이다. 학생들은 지난 한 학기 동안 그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러나, 클로에는 아니다. 이제 막 아플리아에 입학한 순수한 소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
그 무지함에 학생들은 애도를 표한다.
라니아 교수의 앞에서, 클로에에게 경고를 전할 용기 있는 학생은 그곳에 없었다. 말을 붙이진 못하고, 멀찍이서 웅성거릴 뿐이다. 클로에는 주변이 소란스러워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작.
주변이 조금 더 소란스러워지든 말든, 라니아는 여전히 막대 과자를 오물거렸다. 클로에는 그녀가 오물거리는 과자를 흘겨봤다. 그러고 보니, 베이커리에서 과자를 나눠준다고 했었던가?
‘베이커리 들렀다 올걸···.’
클로에가 그런 후회를 하던 찰나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라니아가 넌지시 물었다.
“너도 먹을래?”
클로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막대 과자를 받아들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참 좋은 교수님이시다.
“감사합니다!”
클로에는 해맑게 웃었다.
3.
[벨노아 학생, 준비해주세요.]대기실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흘려듣는다.
벨노아는 제 손에 들린 단검을 보았다. 그림자로 직조해낸 단검이다. 그 형태는 옛날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골목길을 기며 살아갈 때와 같다.
왜 단검의 형태인가.
숨기기 좋았기 때문이다. 숨기고, 기습하기에 단검이란 무기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단검은 그리 좋은 무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벨노아의 손에는 이미 단검이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무기란 게 으레 그래하듯이.
손에 들린 단검이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벨노아는 고개를 들어 대기실의 바깥을 보았다. 빛이 새어 들어온다. 쨍하니 내리쬐는 햇빛 너머로 대련장의 모습이 보인다.
“······.”
관객이 많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선이 많다.
그것이, 벨노아에게는 낯설었다.
그가 싸워온 곳은 언제나 어둠 속이다. 어둠에 몸을 숨겨 기습했다. 조잡한 수를 썼다. 필요에 따라선 독을 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벨노아가 살아온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작금의 상황은 낯설다.
낯설어서,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벨노아는 이런 대련을 좋아하지 않았다. 실전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싸움이란 불시에, 만전이 아닌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만들어진 결투에 무슨 의미가 있지?
“···후우.”
벨노아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상대가 상대인만큼 마음을 달리 먹으려고 노력했건만··· 좀처럼 되질 않는다. 한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벨노아가 힘을 빼고 일어서려는 순간이다.
터벅.
누군가 맞은편 대기실에서 걸어 나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쏟아진다. 그가 한걸음 옮길 때마다 관객들이 소리를 지른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소란 속에서 그가 대련장의 중앙에 선다.
새하얀 머리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양손에 한 자루씩 쥔 손도끼.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릴 뿐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
그가 도끼를 천천히 들어 올려, 이쪽을 가리킨다.
“벨노아.”
라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손도끼를 까딱, 하고 당긴다.
“어서 나와라.”
그 모습에, 벨노아는 그만 피식 읏음을 흘렸다.
“그래.”
벨노아가 제 무릎을 짚으며 일어선다. 대기실을 나와 라크를 향해 걷는다. 환호성이 쏟아진다. 쏟아지는 환호성 사이로 벨노아가 결투장에 바로 섰다.
“자신은 있고?”
“예전과는 다를 거다.”
“나도 좀 다를 텐데.”
“좋군.”
라크가 가볍게 팔을 털었다.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와 변한 게 없다면, 너무 쉽게 결판이 나버렸을 테니까.”
“자신감이 넘치네.”
“특훈을 했다. 훈련은 언제나 전사를 강하게 만들지.”
선을 사이에 두고 둘은 제 무기를 들어 올린다.
라크는 도끼를, 벨노아는 그림자 단검을.
부우우우우우.
그리고,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기 개시의 신호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