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1
〈 181화 〉 서명하시오, 배틀 메이지!(7)
* * *
몇 번의 공방에서 상대의 기량을 읽는다.
물론, 라니아는 라니엘로서 켈르할름과 마주한 적이 있어 상대의 기량을 알고 있다. 그러나 켈르할름은 아니다. 그는 처음으로 마법을 주고받으며 눈앞의 소녀에게 놀라움을 느낀다.
‘···놀랍군.’
스톡(Stock)이라는, 변칙적인 전투법에만 기대지 않는다. 저 소녀에게 있어 스톡이란 검집이다. 형태도, 크기도 정해지지 않은 검집.
‘무엇이 뽑혀 나오는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성가시다.
스톡은 어디까지나 무기를 제공해줄 뿐, 그것을 휘두르는 건 소녀의 몫이다. 그리고, 소녀는 능숙하게 주문을 다룬다.그것은 이론이 아닌 실전에서 갈고 닦을 수 있는 영역이다.
켈르할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그 눈동자에 의심이 깃든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초인으로서의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코앞에서 맞붙다 보니 의심은 커진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
원치 않은 결투에 흥미가 생겼다.
결투에 임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후.”
켈르할름이 짧게 숨을 뱉었다.
그에 답하듯 소녀가 몸을 움직인다. 처음으로 둘 사이의 위치에 변화가 생긴다.
쾅!
소녀가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한순간에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소녀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녀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확실히.’
켈르할름은 팔을 뻗는다.
‘성가시긴 하군.’
손가락을 휘둘러 회로를 짜낸다. 일류의 경지에 오른 그가 그리는 회로는 빠르고 정교하다.
화악!
순식간에 완성된 회로가 빛을 뿜는다.
우선은 저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완성된 주문이 바닥을 후려친다. 결투장의 바닥이 이리저리 돌출되며, 소녀의 걸음을 막아선다.
이는 마법사가 전사를 상대하는 방법이다.
발 디딜 곳을 지워가며 기세를 죽이는 가장 단순한 전술. 켈르할름은 애당초 상대를 자신과 같은 마법사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배틀 메이지(Battlemage).’
마법사이면서, 전사의 특성을 지닌 클래스.
거리가 좁혀지면 무력해진다는 마법사의 약점을, 마치 전사처럼 물어뜯는 클래스다. 그렇기에, 그 상대법 또한 전사와 같다.
접근을 막는다.
거리를 벌리며 위력적인 주문으로 요격한다.
켈르할름은 머릿속에 입력해둔 상대 요령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이미 정교한 기계와도 같다. 켈르할름의 주문이 연신 빛을 뿜는다.
돌벽이 솟아올라 길을 막는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불길이 접근을 차단한다.
일반적인 전사라면, 평범한 배틀 메이지라면 이쯤에서 주춤하게 된다. 접근을 가로막히니 원거리에서 주문의 요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유리한 건 위자드(Wizard)다.
쿠웅.
그러나, 상대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특출난 부분이 있는 소녀이며, 무엇보다도 그 잿빛 마법사와 닮은 소녀다.
쿵, 쿠우우웅!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전사와 마법사,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채··· 두 가지 장점을 모두 다루는 마법사.
쿵.
요컨대, 그를 닮은 소녀를 통상적인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돌벽들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켈르할름이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지형에, 돌기둥이 하나 솟구쳐 있다. 돌벽들을 박살 내며 솟아오른 돌기둥은 켈르할름이 소환한 게 아니다.
바위벽(StoneWall).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가 비스듬히 솟아오른 돌기둥을 밟으며 뛰어오른다. 허공에서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나부낀다. 공중에 뜬 채로 그녀가 입가를 틀어 올렸다.
“이걸로 되겠냐?”
움켜쥔 주먹.
손가락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다. 여럿의 기초 주문이 중첩돼 있다. 어느새 그만한 주문을? 그런 의문을 던질 필요는 없다.
‘스톡(Stock).’
마법사의 근간을 뒤흔든 전투법.
정면에서 마주하자니, 이만큼이나 까다로운 것이 또 없다. 켈르할름은 완성을 앞둔 회로를 역으로 회전시킨다.
공격과 방어의 전환.
형태와 방향이 순식간에 변한다. 라니아가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켈르할름의 회로가 빛을 뿜는 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주문 가속(SpellBoost).
주문 강화(SpellReinforce).
강타(Smite).
화살처럼 쏘아진 한줄기의 섬선(??).
그에 대응하고자 켈르할름이 꺼내 든 것은 그의 주특기이자, 그가 극한의 영역까지 단련한 원소 계열의 기초 주문이다.
물보라(Spray).
대량의 물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 난데없이 솟구치는 물줄기와 섬선이 맞부딪친다.
촤아아아아악!
사방으로 물줄기가 흩어지며, 본격적으로 결투가 막을 올린다. 켈르할름도 더 이상 제자리에 서 있지만은 않는다. 켈르할름이 움직인다. 라니아가 그를 뒤쫓는다. 주문과 주문이 얽히고설킨다.
마법사와 마법사 간의 결투.
수많은 학생들의 앞에서,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투가 벌어진다.
2.
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 결투를 바라본다.
여태까지와는 다르다.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결투는 그 양상을 달리했다. 지금부터가 진짜란 느낌이다.
쿵, 쿠웅!
연신 결투장 위가 울려댄다. 주문과 주문이 충돌한다. 매초, 매 순간 새로운 주문이 빛을 발한다.
물보라(Spray).
화염구(FireBall).
상성인 주문을 동시에 다루는 르티아 교수를 바라보며, 그의 수업을 듣는 원소 마학과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 그 경지가 높으리라고 예상은 했으나, 이건 상상 이상이다.
‘더블 캐스팅, 주문의 깔끔함···.’
쫓기는 상황에서도 그 주문은 흔들림이 없다. 회로의 마무리는 깔끔하며, 정확히 계량된 마나가 회로를 타고 흐른다. 모든 과정이 매끄럽다.
마치, 마법사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주문을 극한까지 활용해라.』
원소 마학과 학생들은 특강의 내용을 떠올린다. 수업에서 르티아 교수가 선보이던 다양한 회로의 활용을 떠 올리며··· 결투를 지켜본다.
『활용이야말로, 극한으로 향하는 길이다.』
기초 주문이 저렇게까지 다양할 수가 있던가?
매번, 매 순간, 매초 형태가 뒤바뀐다. 사용된 건 하나의 주문이나, 학생들의 눈에는 르티아 교수가 수십 가지의 주문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염구가 쪼개진다. 솟구친다. 갈라진다.
물보라가 튀어 오르고, 흐르고, 떨어진다.
형태의 변환이 부드러우니, 주문의 용도 또한 매 순간 매 순간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곳에 위자드(Wizard)가 추구해야 할 실용이 있다.
화륵! 촤아아악!
그에 비해 라니아 교수는 어떠한가. 불줄기는 강타로 터뜨려 흐트러트린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가볍게 발을 굴러 땅을 융기시킴으로써 파훼한다. 최소한의 주문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낸다.
주문을 주문으로 요격한다.
모든 것을 정면으로 뚫어내며 접근한다.
그녀의 돌진은 기세가 줄지를 않는다.
전투 마학과의 학생들은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핀다. 그들은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스톡을 활용한 전투법의 최대장점은, 언제나 상대보다 한 수 늦게 행동해도 된다는 점입니다.』
라니아 교수가 강조한 대목이다.
『위자드(Wizard)는 상대의 수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깔아두는 주문을 많이 활용해야 하죠. 상대의 수를 예측하며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르티아 교수가 바닥에 함정을 깐다.
불덩어리를 집어 던지고, 물보라를 일으켜 상대의 시야를 가리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저희에겐 이미 모든 무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대가 어떠한 수를 쓰던, 그것을 보고 나서 어떤 무기를 뽑을지 선택해도 늦지 않습니다.』
전부 눈에 담고 나서야, 라니아 교수는 움직인다.
『끝까지 보십시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확실히 보고, 확실히 행동하십시오.』
불의 방향을 읽는다. 물보라의 흐름을 읽는다.
그러고 나서, 최소한의 주문으로 그것을 요격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움직임은 일견 여유롭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아붙이십시오.』
상대의 모든 수를 보고 나서야 행동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앞서 있다. 그것이 배틀 메이지의 장점이다. 마치 그렇게 말하려는 듯 하다.
‘···굳이, 상대보다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그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눈에 힘을 준 채 라니아 교수의 움직임을 쫓았다. 지난 수업 동안 배웠던 배틀 메이지의 정수가 저곳에 있었다.
콰직!
학생들이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는 와중에도, 싸움은 가열되어간다. 결투장 위는 이미 난장판이다.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치솟아 있고, 그을음이 가득하다.
발 디딜 곳조차 여의찮은 곳.
작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경기장.
멀리서 보면 한 뼘에 불과한 경기장에서 두 명의 마법사가 쫓고, 쫓기고를 반복한다. 그 과정은 복잡하나 두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거리를 벌린다.’
위자드는 거리를 벌려야 하며.
‘거리를 좁힌다.’
배틀 메이지는 거리를 좁혀야 한다.
결국, 그런 싸움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간격을 의식한다. 그 간격을 메꾸기 위한 주문과, 벌리기 위한 주문이 오간다. 주문과 주문이 뒤섞이며 요란한 굉음을 울려댄다.
그리고, 서서히 끝이 다가온다.
사냥감이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문자 그대로 궁지에 몰린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사냥꾼이 달려든다. 그러나, 사냥감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아껴두고 아껴놨던 것들.
뒷걸음질 치며 비축한 힘.
화아아아앗!
그것을 한순간에 토해낸다. 르티아 교수의 등 뒤로 수십 개의 회로가 동시에 떠오른다. 궁지에 몰린 그가 벽을 등진 채 팔을 휘둘렀다. 회로가 빛을 뿜는다. 완성된 주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사냥꾼은.
“하!”
웃음을 터뜨리며 발을 구른다.
쿵, 소리를 내며 결투장이 뒤흔들린다. 피차간의 거리는 고작 다섯 걸음에 불과하다.
앞으로 다섯 걸음.
다섯 걸음 안에 승패가 갈린다.
3.
나는 눈을 부릅떴다.
켈르할름의 등 뒤에 떠오른 수십 개의 회로가 차례로 빛을 뿜었다. 어림잡아 보아도 열댓 개는 족히 넘어가는 주문이다.
‘분쇄(Smash)를 쓴다면 한 번에 지울 수 있겠지만···.’
강타로는 무리다.
다섯 걸음 정도를 남긴 지금, 벽에 몰린 켈르할름 또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겠지.
‘열셋, 열넷···.’
대략 14개의 주문.
‘이걸로 시간을 벌고, 내가 거리를 좁히면 마지막으로 준비한 주문을 쏠 생각이겠지.’
거기에 하나를 더해, 열다섯.
그 안에 승부가 갈린다. 결투의 끝을 코앞에 둔 채 나는 이번 결투를 회고했다. 본래 결투의 목적이었던 켈르할름의 제약을 읽어내는 것은 진작에 끝이 났다.
‘본래 목적은 달성.’
덤으로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지기만 하면 돼.’
멋지게, 아깝다는 느낌이 들게, 정말 아슬아슬하게 패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지기 싫지만 칼트와 약속한 내용이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쩝,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폼나게 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며 나는 움직였다.
쿵!
발을 굴러 둘의 주문을 찢어발긴다.
손을 휘둘러 화염구를 터뜨리고, 쏘아지는 돌무더기를 주먹으로 쳐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앞으로 네 걸음.’
물보라와 화염구가 충돌한다. 수증기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지만, 수증기 너머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추 대응이 된다.
‘앞으로 셋.’
다시 앞으로 한걸음.
‘둘.’
두 걸음 정도가 남았을 때, 날아오는 네 개의 주문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을 마쳤다. 가장 멋지게 지는 법은,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에 패배하는 것이다.
‘한 걸음만 더 갔다면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길 정도로만.
그러니, 앞으로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뎌보자.
투확!
셋의 주문을 찢었다. 일부러 하나의 주문을 남겨두었다. 남긴 것은, 시야의 사각에서 쏘아진 돌덩어리다. 시야가 좁아졌다는 핑계도 댈 수 있으니, 정말로 안성맞춤이다.
‘물론, 마나의 흐름으로 다 보이지만.’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며 나는 움직였다.
탁.
그렇게 여유롭게 한 걸음 내디뎠다. 솟구친 돌덩어리가 내 턱을 후려쳤다. 퍼석, 하는 충격음과 함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이제 쓰러지기만 하면 되는데.’
안 아픈데.
턱이 얼얼하긴 한데, 아프진 않은데.
‘쓰러져야···.’
그냥 눈 감고 픽 쓰러지면 되는데.
“···아.”
그렇게 고개가 젖혀진 상황이다.
패배를 코앞에 두고, 관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투 마학과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주먹을 꾹 쥔 채, 정말로 ‘손에 땀을 쥔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몹시도 반짝거리는 것 같다.
정말로 나의 승리를 바라는 것 같다.
‘···져야, 하는데.’
···한 걸음만 더 갈까?
나는 살짝 시선을 앞으로 내렸다. 내가 주문을 뚫고 거리를 좁히는 동안, 켈르할름이 짜낸 회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나를 노리고 있다.
‘이대로 쓰러지지 않으면, 저걸 쏘겠지···?’
최후의 일격.
말 그대로 최후의 일격.
‘진짜, 딱 한 걸음만.’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눈을 부릅뜨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켈르할름과 나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진다. 코앞에서 켈르할름의 회로가 빛났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다.
“···후.”
숨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주변을 가득 채웠던 마나가 일거에 걷혔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섰다.
‘뭐야 시발.’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켈르할름을 노려봤다.
빨리 뭐라도 쏘라고, 그래야 쓰러질 거 아니냐고 눈빛을 보내보지만··· 켈르할름이 입을 열고 발음한 건 주문 언어가 아니었다.
“내가 진 거로 하지.”
켈르할름이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 그가 회로를 흐트러 트리며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뭐?”
“내가 진 거로 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니.
“뭐, 라고?”
“내가 졌다. 네가 승리했다. 축하한다.”
아니, 잠깐만.
“심판. 결투는 끝이 난 것 같군.”
[어, 어어···.]중계진이 당황하는 가운데, 켈르할름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켈르할름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가 이상할 것 없다는 듯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좋은 승부였다.”
마치, 선심 쓰는듯한 말투로.
승자는 자신이지만 더했다간 내가 다칠 것 같으니까, 자신이 기권해주겠다는 듯한 말투로. 그러니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크나큰 굴욕을 느끼게 하는 말투로···.
“실력이 좋더군.”
켈르할름이 말했다.
‘아니, 시발.’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하. 야, 잠깐만. 야.”
어깨가 떨렸다.
이건, 이건 패배만도 못한 승리였다.
“쏴봐. 쏴보라고! 내가 시발, 넌 줄 알아? 그런 거 맞고 누가···!”
내가 켈르할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려는 순간이다. 누군가 턱, 하고 내 팔을 붙잡았다. 그 누군가가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배님 이제 그만···.”
“아니, 놔봐. 이거 놔보라고 시발···!”
“선배님, 제발···.”
칼트가 내 팔을 질질 잡아끌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켈르할름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어째서인지 칼트가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그건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야! 놔보라고!”
이런 승리는, 이따위 승리는 내가 인정 못 한다.
“선배님···.”
“아, 좀 놓으라고!”
“좀, 갑시다 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