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2
〈 182화 〉 전조(1)
* * *
결투가 끝났다.
결투는 끝났지만,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두의 앞에서 치러진 결투가 워낙에 충격적인 탓이다.
『배틀 메이지의 정수.』
『위자드의 정석.』
교수들은 결투를 그렇게 평가한다.
수많은 마법사들 간의 결투를 봐온 그들에게조차 이번 결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젊은 마법사가 보여준 결투에 교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극한에 다다른 회로의 활용. 상황에 맞춰 회로를 변화시켜 대응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위자드.』
위자드의 이상적인 전투법이다.
교수들 또한 이론상으로는 그런 대응법이 있음은 알고 있으나,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그렇기에 이상이라 불리는 것이지만···.
『기초 주문으로만 선보인, 활용의 극한.』
르티아 교수는 그것을 현실로 끌고 왔다.
이상을 현실에서 증명해냈다는 뜻이다.
그 사실에 교수들은 그에게 존경을 표현다.
『전투 마학의 기본(??)에 충실한 전투였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이름 또한 다시 한번 교수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가 뛰어난 위자드(Wizard)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나, 배틀 메이지 클래스에조차 조예가 깊으리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간격을 좁힌다. 상대를 몰아붙인다. 궁지로 밀어 넣는다. 언제나 주도권을 가져오는 배틀 메이지 전투법의 정수다.』
그녀의 실력을 알고 있던 전투 마학과의 맥하트 교수만이 ‘당연한 결과다’라고 평가하는 가운데, 교수들은 그녀의 또 다른 일면에 혀를 내두른다.
‘하나의 클래스를 숙달하는 것도 어렵거늘···.’
갓 스물을 넘긴, 고작 스물 한 살밖에 안되는 저 소녀는 두 개의 클래스를 다룬다. 한가지 클래스에 한평생을 바친 자신들보다 더욱 능숙하게.
‘매번 놀라울 뿐이군.’
질투 같은 시답잖은 감정이 들진 않는다.
매번 놀라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교수들은 감탄을 뱉을 뿐이다.
“너도 결투 다 봤지?”
“응, 보긴 다 봤지. 나 전투 마학과잖아. 원소 마학과 애들이랑 내기했으니까···.”
“그래서 그 결과가···.”
그렇게 교수들이 결투의 과정에 주목하는가 하면, 학생들은 결투의 결과에 주목한다. 물론, 그 과정 또한 놀랍고, 배울 것이 많기는 했으나··· 어찌 됐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결투다.
『위자드와 배틀 메이지간의 결투.』
원소 마학과와전투 마학과.
두 학과 사이에 대립 구도가 세워진 와중 벌어진 결투다. 학생들이 승패에 주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라니아 교수님이 이기긴··· 했지.”
“이기긴 했는데···.”
“일단은 라니아 교수님이 이기긴 했지···.”
‘일단은.’
그런 단어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뭔가, 뭔가 조금···.”
판정상으로의 승자는 라니아 교수다.
그러나, 라니아 교수님이 완벽하게 승리했나?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럼 내기는 전투 마학과가 이긴 거야?”
“아니, 그냥 없던 걸로 하기로 했어···.”
“어? 왜?”
“봤으면 알잖아. 마지막에 그거···.”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라니아 교수님이 이겼다. 이기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이겼다고 말하긴 어려운 승리였다.
「아, 이것 좀 놔봐! 내가, 내가 기권할 거야! 차라리 내가 기권하겠다고!」
차분히, 그리고 깔끔하게 결투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결투장에서 내려오던 르티아 교수와는 달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
「내가 졌어! 내가 진 거야! 내가 졌다고!」
그건 끝끝내 승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소리를 질러대던 추한 승자의 모습이었다.
「쏴봐! 쏴보라고! 누가 맞아준대? 기권 안 했어도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아, 쫌 갑시다! 가자고요! 제발! 사회자! 빨리 결과 안 부르고 뭐합니까!」
결국 결투장에 난입한 하운드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질질 끌려가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하나의 감상을 공유하게끔 했다.
‘추하다. 너무나도···!’
패자가 아닌 승자가 이다지도 추하게 비춰 보일 수 있음을,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강제로 깨달아야만 했다.
“결투만 따놓고 보면 진짜 멋지셨어.”
“응, 막 머리칼 휘날리고, 공중에서 강타를 막 꽂아대고··· 정말 멋지셨어.”
“머리를 묶은 모습도 예쁘셨고.”
“응··· 정말로···.”
결투에 승리한 것은 배틀 메이지다.
그러나, 정작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결투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한다. 지나치리만치 추한 결과에서 눈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라니아 교수는 이겼지만 졌다.
르티아 교수는 졌지만 이겼다.
어느쪽이 진정한 승자일지는 말해봐야 제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추한 승자와, 멋진 패자를 낳은 결투 사건이 일단락되는 가운데······.
“···내가 이겼어.”
추한 승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같은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이긴 거야.”
“예, 결국 이기셨더군요. 정말로 추하고 부끄럽게.”
“아니, 내가 그냥 이긴 거라니까? 위자드보다 우월함을 증명했으니, 이건 추한 게 아니라···.”
“선배님, 정말로 대단하시지 뭡니까?”
라니아의 헛소리를 듣던 칼트가 짝짝 박수를 쳤다.
“결투를 본 하운드들이 의심을 거뒀습니다. 선배님의 정체를 의심하길 그만뒀다는 겁니다. 정작 선배님께선 초인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셨는데, 왜 하운드들이 의심을 거뒀는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칼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추해서입니다. 추해서. 저런 가볍고, 애송이 같은 마법사가 그 ‘현자’ 라니엘 님일리가 없다고. 그렇게 의심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그렇게 하운드들이 떠들더군요.”
라니아는 침묵했다.
칼트는 턱을 괸 채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혹시 노리신 겁니까?”
“······.”
“그렇죠. 양심이 있으면 노리셨다곤 말 못하시겠지요. 제가 선배님 때문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정말로요.”
상처만이 남은 승리다.
라니아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서 일이나 하십쇼.”
“응···.”
부하가 상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몹시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는 가운데··· 라니아는 터덜터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패자만도 못한 추한 승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다.
2.
결투에서 이겼다.
상처뿐인 승리긴 하지만 이겼다.
이겼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김으로써 근본을 쟁탈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래, 나는 승리했···.’
의미 없는 승리.
상처뿐인 승리.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생각했던 연출은 실패했으며, 본래 내가 되어야 할 ‘멋진 패자’의 역할은 켈르할름이 가져갔다. 결투에 앞서 세워둔 계획은 전부 망가진 셈이다.
···그래도, 상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승리니 패배니, 그런 부차적인 거 말고 원래 목적.’
켈르할름의 제약을 읽는 것.
본래 결투의 목적이었던 그것만큼은 완벽하게 달성했다. 나는 결투 도중, 켈르할름이 제 몸에 걸어둔 제약을 틈틈이 읽어냈다.
“남은 건, 답을 맞추는 거겠지.”
내가 걸음을 멈췄다.
“그렇지? 켈르할름.”
아플리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
나와 칼트가 자주 쓰는 숲의 공터. 그곳에 먼저 도착한 손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게 본 목적이었군.”
광인, 켈르할름.
그는 예상했다는 듯 짧게 숨을 뱉었다. 나무에 기대어 서 있던 켈르할름이 나무에서 등을 땠다.
“대뜸 결투를 걸어올 때부터 얼추 예상은 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잿빛 마법사와 같은 일을 벌이는군. 그 방법은 누가 알려줬지? 잿빛 마법사가 직접 알려줬나?”
“그렇다면?”
“그렇게 말한다면 나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겠지. 내게서 제약의 사슬을 읽는 방법까지 비밀에 부친다는 조건은 계약에 넣지 않았으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썩 믿는듯한 말투는 아닌데.”
“그럴 수밖에.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니.”
켈르할름이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동자였다.
“특징적인 색(色)만을 빼닮은 외견에서 유사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문적 특징. 마나의 흐름. 행동거지. 주문을 다루는 실력. 그런 요소들을 생각해보자면··· 나로서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군.”
나는 침묵했다. 초인으로서의 감각이 봉인되어 있다고 한들, 켈르할름 또한 초인이다. 애당초 그에게서 정체를 오랫동안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아하면 켈르할름 안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을 테지.
“내가 잿빛 마법사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확신하지는 않는다.”
켈르할름이 답했다.
“성별의 반전. 육체의 변환. 영혼의 변질. 그것은 섭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이런 추측도 하지 않겠지만···.”
그가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사슬의 제약이 걸려있을 목덜미. 그곳에는 불가능에 손을 뻗은 대가로 얻게 된 광기를 다스리기 위한 사슬이 채워져 있다. 그것을 매만지며 켈르할름이 말했다.
“섭리를 정면에서 거스르는 것들과 가장 가까이서 싸워온 잿빛 마법사다. 불가능하다고만은 말할 수는 없겠지.”
“그럼···.”
“그러니 나는 추측한다.”
턱, 하고 그가 내게 다가왔다.
“네가 잿빛 마법사 본인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잿빛 마법사와 실질적인 교류를 하고 있으며,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마법사라고.”
“확신하지는 않네?”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으니.”
그답다면 그 다운 발언이었다.
“사실, 어느 쪽이던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부터 네게 말할 것은 경고이니까.”
경고.
“봤을 테지. 내 제약.”
“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켈르할름이 스스로에게 건 제약의 중심,본래 그곳에 자리할 것은 세 개의 문장이었다.
『별을 떨어트려라.』
『광기를 다스려라.』
『배교자를 살해해라.』
그것이 내가 전장에 있을 적 보았던 켈르할름의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 하나의 문장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을 추적하라.』
사슬과 사슬 너머로 감춰진 문장.
사슬이 모두 풀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두 글자.
“추적해라.”
나는 그것이 적힌 문장을 발음했다.
“뒤쫓아라. 예측해라. 그리고···.”
그것의 곁에 함께 놓인 자잘한 제약들을 하나씩, 하나씩 입에 담았다.그 마지막에 놓인 것은 하나의 단어였다.
“삼켜라.”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삼켜라, 나는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뭘?”
그렇기에 켈르할름에게 질문했지만.
“거기까지 읽었다면 말이 더 빠르겠군.”
켈르할름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경고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에 접근하지 마라.”
대답 대신, 그는 내게 경고했다.
“그것은 반드시 온다. 이곳은 ‘선택’되었다. 별이 모인 곳에 그것은 ‘반드시’ 나타난다. 머지않아 그것은 별이 집중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잿빛 눈동자 속에 불길이 드리웠다.
“과거, 아르티아가 그러했듯이.”
불타 사라진 학술의 도시.
“그것이 왔을 때, 내가 앞으로 나섰을 때···.”
켈르할름이 나를 가리켰다.
“너는 아플리아를 벗어나라. 네가 잿빛 마법사가 아니라 한들,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에 접근해선 안 된다. 만약 네가 잿빛 마법사 본인이라면··· 더더욱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내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게 뭔지 알아야 피하든지 말든지 하지.”
“···이것의 발언은 제약으로 묶여있다. 권한을 얻지 못했다면,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건 카르디에게 들었던 말이며, 과거의 기록을 접하며 나도 가지게 된 제약이었다. 내가 어디 말해보라는 양 턱짓했고, 켈르할름이 짧게 한숨을 뱉었다.
“한 번만 말하겠다. 들리지 않더라도 다시 묻지 마라.”
그가 숨을 고르고는, 무언가를 발음했다.
“■■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
■■.
단어 자체에 마나가 깃들어서, 자격이 없는 자는 들을 수조차 없는 것. 나는 눈살을 찌푸렸고 켈르할름은 한숨을 뱉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가 한숨을 쉬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나타나면,알기 싫어도 알게 될 거다. 빛이 전부 사라질 테니까. 그때가 되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그편이 이롭다.”
그 말을 남기고 켈르할름이 떠났다.
숲에 홀로 남은 나는 짧게 한마디를 뱉었다.
“■■.”
켈르할름이 조금 전 발음한 단어.
자격이 없는 자에겐 들리지 않기에, 그는 내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건 켈르할름의 착각이었다.
두 글자의 단어.
나는 그 단어의 뜻을 알기에 눈살을 찌푸린 것이다.
“그늘.”
그늘이 이곳에 나타난다.
켈르할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3.
“선배님, 이것 좀 봐주십시오.”
“뭔데?”
“지난번, 지하수로에서 ‘제단’이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뒤로 꾸준히 지하수로를 감시하고 있는데··· 어젯밤 이게 발견됐습니다.”
달그락.
“무언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안에 무언가 차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텅 비어있습니다. 뭔가 이상하더군요.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구슬? 마법구?”
“마법구같긴 합니다.”
“검은 구슬이네. 마도구 같긴 한데.”
“마탑에 정밀 검사를 맡겨볼까요?”
“아니, 됐다. 내가 따로 알아보도록 하지. 가봐. 지하수로는 꾸준히 감시하고.”
“예, 알겠습니다.”
부하가 떠났다. 집무실에 혼자가 된 칼트는 눈앞에 놓인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길래?”
불길한 검은색의 수정구였다.
마치, 무언가를 가두기 위한 도구 같아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