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3
〈 183화 〉 전조(2)
* * *
빛이 있는 곳에는 그늘이 따른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드리우는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것은 당연한 섭리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다. 그러나 진리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
별.
사람들은 그것을 별이라 불렀다.
별은 아름답다. 찬란히 빛난다.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이기에, 별의 다른 이름은 신(?)이었다.
『우습지 않니?』
그 신을 비웃는 이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섭리를 거스르지 말 것을 강요하는 주제에, 정작 자신은 섭리에서 벗어나 있다니. 너희가 믿는 별은 모순된 존재야.』
별이 강요한 섭리.
어겨서는 안 될 규칙.
『완벽하지 않으며, 모순된 존재를 과연 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것을 거스르고, 짓밟아 배교자(?者)라 불리는 여인이 미소 지었다.
『하물며.』
한때는 인간이었을 구정물들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 그들의 머리를 밟으며 배교자는 걷는다. 그녀의 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그것이 있었다.
『이런 것까지 존재하는 마당에, 별이 과연 순수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을 배교자가 붙잡는다.
안개 속에서 끌어낸 그것은 인간이다. 눈과 입에서 검은 연기를 쏟아내는 존재를 인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것은 인간이었다.
『네게는 소중한 아이였을 테고.』
배교자가 그것의 머리칼을 붙잡은 채, 자신을 향해 무릎 꿇은 남자에게 들이밀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에 불길이 타올랐다.
『별에게는 사랑받는 아이였을 텐데.』
퍼석, 파스슥.
『애석하게도, 결말은 언제나 이런 식이지.』
남자의 눈앞에서 배교자가 미소 지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이.
『보았으니 이해했을 테고.』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고개를 기울이고, 몸을 기울여 그녀는 남자의 턱을 붙잡았다. 남자의 눈동자 너머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그녀가 속삭였다.
『이해하였으니, 너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품겠지. 어디 한번 맞춰볼까?』
광기와 광기가 서로를 마주한다.
광인은 자신과 같은 광인을 알아본다.
『별은 존재해선 안 된다고. 끌어내려서 진창에 처박아야 한다고. 한없이 아름답고 찬란한 것에게서, 아름다움도 찬란함도 빼앗아서 다만 무의미 한 것으로 영락시켜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끈적하게 늘어지는 목소리.
『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수백 년간을 광기 속에서 살아온 여인은, 새로운 광인의 탄생에 미소를 흘린다. 동족을 마주한 여인은 황홀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같이 말이야.』
그녀의 속삭임에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남자가 분노를 터뜨리고, 감정을 토해낸다. 그 모습에 배교자는 웃음을 흘릴 뿐이다.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가 말했다.
『그래. 넌 나와 닮았단다, 아이야.』
그 한마디의 말을 남자는 잊지 못한다.
귓가에 스며들었던 저주의 언어를 기억한다.
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
광인, 켈르할름이 눈을 뜬다.
창밖을 바라보면 아플리아의 전경이 보인다. 그 규모는 작지만, 과거 그가 관리하던 학술도시 아르티아를 떠올리게끔 하는 풍경이다.
학술도시 아르티아와 닮은 곳.
별의 축복을 받은 아이들이 모인 곳.
그리고, 셀레스티와 닮은 소녀.
그 모든 것이 켈르할름에겐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진다. 켈르할름은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찰그락, 찰그락 하는 사슬의 소리가 들린다. 오직 그에게만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켈르할름은 다만 기다릴 뿐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종막(??)을.
2.
『과거 아르티아가 그랬듯이.』
『이곳에도 그늘이 올 것이다.』
『너는 그것에 접근해선 안 된다.』
나는 그 석 줄의 문장을 곱씹었다.
켈르할름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요 며칠간 찾아가서 다시 묻고, 협박도 해보고, 재결투 신청도 하며 별의별 짓을 다 해봤는데 켈르할름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내가 더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그건 꼭 카르디와 같은 태도였으니까. 다른 무언가를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 짓거리도 하루 이틀이지.’
삼 일째 그 지랄을 하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 웬 이상한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저것 봐, 교수님이 또···!
아까부터 멱살을 잡고 막 흔들고 계셔, 아까전에는 막 협박을 한 것 같···.
결투라는 단어도 들은 것 같은데, 설마 다시 결투를 신청하는···.
···소문에는 틀린 정보만 한가득하였지만, 당장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찌 됐든 그 짓거리는 관뒀고,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늘이 온다.”
아플리아에, 그늘이 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접근해선 안 된다.”
나는 턱을 매만졌다.
내가 아는 한 그늘이란 별의 반대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마왕(?王).’
이제는 왕의 자격을 잃어, 그저 마(?)가 되어버린 존재. 그 존재를 카르디는 그늘이라 표현했다.
‘그늘이 아플리아에 온다.’
그것은 달리 말해, 마왕이 아플리아에 나타난다는 소리였다. 다만, 그렇게 해석하자면 석연찮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마왕이 온다고 말을 했겠지, 그럼.”
굳이 그늘이란 단어를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켈르할름이 말하는 그늘이란, 어느 존재라기보다는 현상을 가리키는 느낌이 강했다.
‘아르티아에도 찾아왔다고 했었지?’
나는 머릿속으로 아르티아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많지 않았다. 켈르할름은 제 입으로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학술도시, 아르티아.
배교자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재가 된 곳.
‘그래서, 켈르할름이 배교자를 증오하는 거고.’
그렇다면 배교자가 아플리아에 찾아온다는 걸까?
“그건 불가능할 텐데.”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몇 개월 전, 나는 밤의 도시에 발을 들인 배교자를 격퇴했다. 그 과정에서 배교자는 더는 왕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단 식으로 말했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쫓겨나는 듯한 모습.’
그녀는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심장에서 뽑혀 나온 한 줄기의 빛을 천칭이 거둬가는 모습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제약의 일종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거기서 확신하긴 했지.’
스케발을 제외한 재앙들.
그러니까, 과거에 용사였던 이들은 왕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무언가 제약으로 묶여있다. 그러니 그들은 용의선상에서 제외였다.
애초에, 이들같이 이름을 가진 존재들은 전부 용의선상에서 제외였다.
“현상.”
켈르할름이 표현한 그늘은 현상이다.
명확한 이름을 가진 존재가 아닌, 그늘으로 밖에 부를 수 없는 현상이다. 그 현상이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접근해선 안 되는 게 도대체 뭔데?’
알 수가 없었다.
“으으음···.”
나는 침음을 흘리다 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과거 아르티아가 그랬듯이.』
결국 그 말에 힌트가 있길 바랄 수밖에.
‘칼트가 잘 정리해뒀겠지.’
켈르할름이 아플리아에 방문 목적을 밝혔을 때부터, 칼트는 켈르할름에 대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었다. 그 자료를 좀 빌릴 생각이었다.
칼트.
칼트와 새로 교환한 편지에 글자를 새겼다.
머잖아 칼트가 답장했다.
예, 선배님.
켈르할름에 대해 정리한 자료, 그거 좀 볼 수 있겠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늘 보던 곳에서 한 시간쯤 뒤에 보면 되겠습니까?
어. 그렇게 하자.
저도 마침 선배님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 잘됐군요. 한 시간쯤 뒤에 보도록 하죠.
물어볼 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보면 알겠지, 뭐.”
3.
“아, 오셨습니까. 선배님?”
나무들 사이로 라니아의 모습을 확인하곤 칼트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털썩, 하고 칼트의 맞은편에 놓인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후우···.”
그리곤 대뜸 한숨을 내뱉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생각이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결투 때문에 꽁해 계신 건가.’
자존심 하난 강한 분이시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칼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말씀하신 건 정리해뒀습니다. 켈르할름에 대한 기밀문서란 문서는 다 털긴 했으니, 아마 놓친 건 없을 겁니다.”
“고맙다. 그래서, 물어볼 건?”
서류를 받아 서 들며 라니아가 되물었다.
칼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음, 그게 말입니다···.”
“뭔데. 빨리 말해.”
“마도구에 대해 물어볼 게 좀 있습니다. 선배님, 혹시 마도구가 하룻밤 사이에 증발하기도 합니까?”
“···증발?”
“예, 증발.”
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지하수로에서 부하 놈이 마도구를 하나 주워 왔는데, 도대체 용도를 모르겠지 뭡니까. 그래서 선배님께 물어보려고, 이 코트 자락에 잠시 넣어둔 채 감시 업무를 좀 나갔다 왔는데 말입니다.”
칼트가 자신이 입은 코트 자락을 펄럭였다.
확장 마법이 걸린 코트였다.
“그게, 그··· 잠깐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예. 흔적도 없습니다. 코트에 새긴 확장 주문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다른 물건은 전부 멀쩡하지 뭡니까.”
라니아가 턱을 매만졌다.
칼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칼트로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저도 실물을 들고 와 마도구에 관해 물으려고 했는데, 사라진 마도구가 찾아지질 않더군요.”
“···마도구가 증발하는 경우는 없을 텐데. 그래서 그게 어떻게 생긴 마도구였는데?”
“아, 그게 말입니다.”
칼트가손가락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혹시 이만한, 이렇게 동그란 수정구 같은 거 모르십니까? 딱 이만한 크긴데.”
“어디 수정구가 한두 개여야지. 마도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수정구인 거 몰라?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길래 그런데.”
“검은색이었습니다. 엄청 새까만 검은색. 그리고 안에는 텅텅 비어있는 게, 꼭 뭐를 담으려는 마도구 같기도 하고···.”
“···새까만 검은색?”
라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 검은색. 이만한 크기에···.”
“잠깐만.”
그녀가 칼트의 말을 끊었다. 짐짓 심각해진 목소리로, 라니아가 칼트의 코트를 가리켰다.
“너 그거 벗어서 줘 봐.”
“코트 말이십니까?”
“어. 빨리.”
칼트가 코트를 벗어 라니아에게 건넸다.
라니아는 코트의 끝자락, 확장 회로가 새겨진 부분을 제 가슴께에 가져다 댔다. 그 알 수 없는 행동에 칼트가 뭐 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려는 순간이다.
파직!
코트의 끝자락과 라니아의 가슴팍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뒤이어 치이익, 하고 타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씨발···.”
라니아가 제 가슴팍을 꾸욱,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주륵, 하고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칼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선,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놔봐.”
당황하는 칼트의 손을 밀어내며 라니아가 퉷, 하고 피를 뱉었다. 검붉은 핏덩이가 풀숲에 떨어졌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접근하지 말란 게, 이런 의미였나···.”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수정구가 들려있었다.
칼트가 일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리 수정구가 환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활성화된듯한 모습.’
주변의 무언가와 ‘반응’ 하여 ‘끌어당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라니아는 그 수정구를 바닥에 놓은 채, 제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후, 후윽···.”
그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
힘겹게 숨을 고른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아무래도, 상황이 좀 꼬인 것 같거든? 당장···.”
거기까지 말한 시점이다.
쿠웅, 하고 수정구가 진동했다. 덩달아 라니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가 제 가슴팍을 붙잡은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컥, 커흡!”
“선배님!”
그녀가 피를 토한다.
칼트는 황급히 마도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을 박살 내고자 칼트가 단검을 뽑아 든 순간이다.
“그거, 부수면 좆됀다. 부수지 말고···.”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라니아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조금만 있으면···.”
그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작아지던 말소리가 끝내 멎었다.
“선배님, 선배님!”
칼트가 라니아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라니아는 눈을 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