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6
〈 186화 〉 전조(5)
* * *
초인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이되, 인간이다.
그들은 별에게 축복받지 않았다.
그들은 별에게 선택받지 않았다.
그들은 별에게 사랑받지 않았다.
그래도 좋다.
축복받지도, 선택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더라도 좋은 것이다. 그 어느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 없이 다만 인간인 채로 경지에 도달하리라.
당연하게도, 쉬운 길은 아니다.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무언가에 분노하며 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허물어트린다. 모든 초인은 망가진 채로 초인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대가라는 양.
여기, 세 명의 초인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
검귀, 드라카는 증오이자 집착이다.
그는 딸의 복수를 원했다.
지키지 못한 맹세, 사라져버린 영지, 딸아이의 끔찍한 죽음으로 하여금 그는 망가졌다. 배교자만을 쫓는 귀신이 되어 전장을 떠돌았다.
검의 초인, 쿤텔은 집념이다.
그는 죽음의 칼, 가니칼트를 꺾고자 하였다.
재앙의 앞에서 검을 들어 올리는 것 조차 불가능했던 과거. 그리하여 고향을 포기해야만 했던 과거가 쿤텔에게 검을 들게 했다. 쿤텔은 한 자루의 검을 쥔 채 한평생을 수련에 매진했다.
마지막으로, 광인은.
광인(?人), 켈르할름은.
백 년을 광기 속에서 살아온 마법사는.
「셀레스티아 폰 아르타님, 나의 제자.」
「아르티아, 나의 고국.」
「이날, 이자리에서 재가 된 모든 이들아.」
「나는 너희의 앞에 맹세하겠다.」
광기에 사로잡힌 채 초인이 된 인간.
「너희가 내게 준 불로의 삶을, 언제 끝날지 모를 이 기나긴 이 삶을, 오롯이 너희를 위해 살겠다.」
그는 하나의 맹세를 위해 광인의 삶을 견뎌왔다.
* * *
아플리아는 어둠에 휘감겼다.
검은 결계에 집어삼켜진 아플리아는 고요하다. 모든 이들은 결계 속에서 잠들었다. 그들은 깰 수 없는 악몽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찾아온 인위적인 정적 속에서 몇 번의 굉음이 울렸다.
콰아아아아아앙!
공중에서 연달아 폭발이 일어난다.
마나와 마나가 맞부딪치며 일어나는 폭풍이 연달아 아플리아를 뒤흔들었다.
『가소롭구나.』
폭발의 연기가 걷힌다.
걷힌 연기 속에서 드러난 것은 고대의 리치다.
『고작 백 년의 삶에 깨달음이 있을성싶으냐? 나는 수백 년에 이른 삶을 살아왔다.』
그가 뼈와 뼈가 엮인 팔을 들어 올린다.
그에 답하듯 수십 개의 회로가 공중을 가득 메웠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것은 마치 달빛과도 같다.
『보아라.』
달과 달이 합쳐진다.
거대한 네 개의 달이 떠오른다.
『너는 여전히 인간이지 않으냐?』
고대 리치가 손목을 까딱인다.
어둠 속에 빛나던 달이 땅 아래로 떨어졌다. 추락할 적 그것은 이미 회로가 아니다. 집채만 한 화염이요,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며 찢어지는 벼락이다.
“분열(Split).”
그에 대응하듯 광인이 손가락을 휘두른다.
장전해둔 수십 개의 회로가 일제히 쪼개졌다. 수십의 회로가 수백으로, 수백의 회로가 다시 수천으로 갈라진다.
분열된 회로가 빛난다.
수천으로 쪼개진 주문이 고대 리치가 발한 네 개의 주문을 뒤쫓는다. 화염의 핵심을 물줄기가 꿰뚫었다. 번개 다발을 돌무더기가 가로막는다. 하나로 안 된다면 수십 개가, 수십으로 안 된다면 수백이, 수백으로도 모자란다면 수천 개의 주문이 달려든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굉음이 메아리친다.
또 한 번 주문을 상쇄해낸 광인이 숨을 뱉었다.
『조잡한 방식이로군.』
그 모습에 고대 리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스케발이 보기에, 켈르할름의 주문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하나의 주문을 쪼갠다. 쪼개고 또 쪼개어서 수량으로 밀어붙인다.
『고작 그런 방식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건가?』
“글쎄.”
켈르할름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하나둘 제약이 풀려나감에 따라 그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만이 커질 뿐이다.
“그건 두고 보아야 알 테지.”
광인, 켈르할름.
마법사 계열의 초인.
휙.
그가 손가락을 휘둘렀다. 휘두름은 한 번이나, 완성된 회로는 수십에 이른다. 회로가 요란스레 허공에 펼쳐졌다.
차라라락!
한 자루의 검을 쥔 채, 상대와 좁은 간격 사이에서 생사를 넘어온 검의 초인들은 미래 예지에 가까운 초감각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마법사 계열의 초인인 자신이 가진 것은 무엇인가?
‘사고의 가속, 동시다발적인 연산.’
연산의 가속이다.
머릿속으로 회로를 짜 올리고, 주문의 식과 식을 연결한다. 검의 초인들이 지닌 초감각이 언제나 상대보다 한발 앞선다면, 자신이 지닌 연산의 속도는 모든 것에 대응을 가능케 한다.
그 감각이 지금 돌아오고 있다.
이성을 잡기 위해 묶어놨던 감각들을 하나씩 일깨우며 켈르할름은 입을 열었다.
“수백 년의 삶, 백 년의 삶. 영원에 가까운 삶.”
켈르할름이 손가락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펼쳐진 회로가 빛난다.
“백 년의 삶 동안 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수백 년의 삶을 산 너 또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
스케발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켈르할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렸다. 제약이 풀려나감에 따라,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쿵, 쿠웅!
주문과 주문이 충돌하며 굉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켈르할름은 말을 마저 잇는다.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상대적이기에.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은 의미가 없지.”
시간의 간극은 언제든 추월당할 수 있다.
저 고대 리치의 수백 년 또한, 누군가에겐 한순간에 불과하리라. 켈르할름은 그것이 자신이라 여기진 않는다. 그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런 마법사라면 하나 알고 있다.
‘고대 리치의 수백 년을 초월한 마법사.’
너무나도 유명해진 마법사.
“잿빛 마법사.”
그 이름을 말하며 켈르할름이 비웃었다.
“고작 스무 살 먹은 그 애송이에게 추월당한 수백 년이라. 거 참으로 의미 깊은 수백 년이겠군.”
꿈틀, 하고.
스케발의 안광이 흔들린다.
『그 말.』
뼈를 긁는듯한 목소리.
『후회하게 될 것이다.』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스케발이 두른 인두겁의 로브가 펄럭이며 구정물이 흘러내렸다. 쏟아지는 구정물은 흑골병이 되어 바닥을 꿈틀거린다.
“···후우.”
켈르할름은 짧게 숨을 토한다.
광기가 몸을 잠식함에 따라 이성이 멀어진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성을 완전히 잃기 전에.’
켈르할름이 고개를 들었다.
‘저것을 처리한다.’
그 시선은 고대 리치를 향하지 않는다. 그 너머, 연달아 충돌하고 있는 그늘과 별빛을 향하고 있었다.
2.
흑색 마탑주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아플리아가 있을 위치에 거대한 비틀림이 발생했다. 발생한 비틀림은 이윽고 검은 결계에 휘감겨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도대체, 무엇이지?’
잠깐,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
비틀림을 확인한 건 찰나에 불과했으나, 그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나의 충돌? 비틀림? 그림자···?’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의 형상이다.
“하나, 묻겠습니다.”
그렇게, 인지를 벗어난 현상에 예투알이 혼란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다.
“저 사태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십니까?”
칼트가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제 곁에 선 정체불명의 엘프를 보았다. 사람의 표정을 읽는 데는 도가 튼 칼트다. 칼트의 눈에 이 엘프는 저 상황을 ‘어디서 봤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고개를 돌린 카르디가 칼트를 보았다.
그는 잠시동안 침묵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하겐 모른다. 내 시대에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규모가 턱없이 작으니까. 하지만, 얼추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군.”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상황의 설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대응책이라면 어느 정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해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카르디가 말을 이었다.
“이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어디까지나 차악의 선택이다. 나는 이런 방법밖에 모른다.”
엘프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 눈동자에 깃든 건 서늘함이다. 또한, 언젠가 겪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는듯한 눈동자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만 한다.”
희생.
“누군가는 그릇이 되어야 된단 소리다.”
3.
제약이 풀린다. 광기가 찾아온다.
광증은 불길과도 같다. 이성을 불태우며 더욱 크게 번져간다. 켈르할름은 자신의 이성이 점차 마비되어 감을 느낀다.
촤라라라락.
그저 주문을 짜낼 뿐이다.
본능에 가까운 연산이 이어진다. 무의식중에 짜올리는 주문이 연달아 빛을 뿜는다.
‘이건 안된다.’
요격할 수 없는 주문이 쏟아진다.
켈르할름은 본능적으로 판단한다. 물러서며 요격하려던 주문을 전부 방어를 위한 주문으로 뒤바꾼다.
주문의 파도가 자신을 감싼다.
그것을 단단하게 굳히기 위한 주문을 발현하려는 순간, 회로에 이상이 생긴다.
『언제까지고 틀어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고대의 리치가 회로에 개입한다.
여태까진 잘게 주문을 쪼개어 쓰느라 한두 개의 주문이 강탈당한다고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다르다.
쩌적.
아직 굳혀지지 않은 주문들.
자신을 감싼 빙벽에 금이 간다. 토벽이 무너진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벽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주문을 짜내는 속도는 봐줄 만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군.』
스케발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검은 화염이 켈르할름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집채만 한 화염은 완성되지 않은 주문으론 막아낼 수 없다. 켈르할름은 이를 악문다.
화악!
화염구가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켈르할름이 세운 방벽이 증발하듯 사라진다. 켈르할름을 감싼 방어 주문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간다.
치이이이익!
물을 두른 채 켈르할름이 화염구를 벗어난다. 살갗은 그을리고, 몸에서는 진물이 떨어진다. 화염구를 튀어나오니, 흑골병들이 자신을 노리고 창칼을 내지른다. 창칼에 몸이 꿰뚫린다.
후두둑.
핏물이 떨어진다. 시야가 흔들린다.
그러나, 견뎌낸다.
충격파(Shock).
흑골병들을 밀쳐내고, 땅바닥을 발로 찍는다. 완성된 주문이 바닥을 타고 흐른다. 완성시킨 주문은 수십 개에 이르나, 그중 절반은 강탈당한다.
콰직!
회로를 그리던 검지가 주문의 반동으로 꺾인다. 고통 속에서도 켈르할름은 몸을 움직인다. 절반은 강탈당했지만, 절반은 남았다.
‘남은 것을 활용한다.’
땅이 뒤흔들린다. 뒤엎어진다.
흑골병들을 지면을 뒤엎어 매장시키고, 땅을 융기시켜 스케발이 쏘는 주문을 막아낸다.
『가련하구나.』
전부 막아내진 못한다.
상처는 늘어만 간다. 시야는 흐릿하고, 정신은 희미해져 간다. 그럼에도 켈르할름은 눈을 부릅뜬 채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분열(Split).
주문을 쪼갠다. 쪼개고 다시 쪼갠다.
하나하나의 주문의 위력도, 회로에 대한 이해도, 그 무엇도 상대가 전부 우위다. 그렇기에 켈르할름은 끊임없이 답을 갈구한다.
‘알고 있었다.’
고대 리치, 스케발.
그 존재는 마법사들에겐 악몽과도 같다. 수백 년을 살아온 고대의 마학자와 순수한 힘 대결에서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켈르할름은 이보다 더한 상대를 알고 있다.
그는 백 년 전을 떠올린다.
「우습지 않니?」
자신의 앞에서 웃음을 흘리던 여인.
그 가증스러운 소환사는, 눈앞의 리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에 비하면 눈앞의 흑골병들 따위야 우스울 수준이다.
본래 켈르할름의 예상대로라면 이 자리에서, 자신과 마주할 건 고대의 리치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을 건 그 배교자다.’
그 배교자를 염두에 두고 켈르할름은 스스로에게 제약을 부과하며 살아왔다. 그 소환사를 상대하기 위한 수단이야 당연히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
켈르할름은 그것을 고대의 리치 앞에 선보인다.
“해체.”
한마디.
그 한마디에 반응하듯 철컹, 하고 남겨둔 사슬의 태반이 떨어져 나간다. 백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광기와 함께 묶어둔 마나가 흘러나온다.
끽, 끼기긱.
켈르할름의 중심으로 공기가 일그러진다.
그 모습에 스케발의 안광이 가늘어진다.
‘다섯.’
남은 제약은 다섯이다.
손아귀의 형상으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던 제약이다. 그중 새끼손가락에 해당하는 제약이 바스러진다.
‘넷.’
마나가 담긴 심장을 묶은 제약.
그리고, 백 년 전 수명을 천칭에 올림으로서 망가져 버린 영혼을 속박하고 있던 제약.
‘셋.’
광기가 정신을 집어삼킨다.
이성이 무너진다. 그 자리를 광기가 대체한다.
‘둘.’
남은 제약은 하나다.
심장에 박힌 사슬. 그것을 풀 수는 없다. 이성을 잃더라도 목적을 잃어선 안 되는 법이니.
뿌득, 뿌드득.
풀려난 마나가 요동친다.
켈르할름이 눈을 부릅떴다.
‘아아.’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재앙뿐이 아니다.
재앙의 뒤편에 보이는 그늘과 별빛 또한, 켈르할름의 시야에 들어온다. 켈르할름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더.
과거, 학술의 도시 아르티아.
그곳에서도 켈르할름은 저것을 보았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셀레스티아의 몸에서 뻗쳐나온 빛줄기.
빛줄기의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가, 빛줄기를 타고 역류했다. 별빛을 집어삼키곤 다시 셀레스티아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셀레스티아는 더 이상 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게 됐다.
「스,승님.」
그녀의 눈과 귀와 입과 코로, 구멍이란 구멍에선 전부 검은 안개가 흘러내렸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다. 셀레스티아란 인간의 정신은 그릇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너트렸던 것일까.
「아, 아아. 아.」
셀레스티아는 무너졌다.
그녀의 영혼은 검은 안개 속에서 바스러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텅 빈 그릇. 한때는 별빛을 담았던 그릇을 그림자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오래가진 못했다.
그릇은 그림자를 담지 못했다.
그렇게 셀레스티아의 육신 또한 바스러졌다.
그것이 백 년 전의 일이다. 그때, 셀레스티아를 잃으며 켈르할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왔다.
불가해한 개념을 마주했다.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많았다.
불로의 삶. 100년의 세월. 그 수많은 시간을 켈르할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 보았던 그림자가 그늘이라 불리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또 알게 되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아아.”
자신은 지금 이곳에 서 있다.
그때와는 다르다.
상대 또한 다르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 할 일 또한 그때와는 다르다.
『너.』
스케발이 뼈를 뿌득, 하고 꺾는다.
순식간에 완성된 수백의 주문이 켈르할름의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것을 바라보며 켈르할름은 멈추어 섰다. 숨을 토했다.
끽, 끼긱.
풀려난마나가 요동친다.
정답으로 향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켈르할름은 백 년 간 갈고 또 갈았던 무기를 꺼내 든다.
휙.
켈르할름이 부러진 손가락을 휘두른다. 부러진 손가락이 그리는 궤적은 원을 그린다. 궤적을 따라 불길이 타올랐다. 그것을 본 스케발은 눈살을 찌푸린다.
‘보지 못한 주문.’
처음 보는 주문이기에, 이해할 수 없다. 스케발은 그것을 강탈하지 못한다. 그 대신, 수백의 주문으로 찍어누르기를 선택한다. 스케발이 손을 휘두른다.
수백의 주문이 켈르할름을 노리고 사출된다.
하늘에선 주문의 파도가 덮쳐든다. 땅에선 흑골병들이 켈르할름을 노리고 무기를 뻗는다. 그러나, 켈르할름은 원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화륵.
회전하는 불길 속에 하나의 점이 생긴다.
틱, 티디디딕.
하나의 점으로 불길이 빨려 들어간다.
불길이, 백 년 간 모았던 응축된 마나가, 그 모든 게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그렇게 하나의 주문이 완성된다. 켈르할름은 그것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일소(OneOff).”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이 담긴 주문이다.
인간이 재앙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한 주문이다.
일소(一?).
본래, 배교자를 상대하는데 염두에 둔 주문. 그렇기에, 그것은 거대한 영역을 ‘한순간’에 불태우는 데에 초점을 둔다.
번쩍!
켈르할름의 손끝에 맺힌 점이 한순간 섬광을 토해낸다. 섬광이 주변을 후려치고, 방대한 열기가 켈르할름을 향해 다가오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흑골병이 불타 사라진다.
스케발이 선보인 수백의 주문이 전부 불타 사라진다. 주변에 흩뿌려진 마나도, 그 무엇도 한순간에 소거되고 만다. 열기의 폭풍에 스케발의 육체 태반이 날아갔으나,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건방진!』
그러나, 뼈를 이어 붙이기 위해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켈르할름이 선보일 ‘다음’ 주문을 스케발은 경계했지만, 다음이 오질 않았다.
탁.
켈르할름은 달리고 있다.
그가 바닥을 후려쳐 돌기둥을 만든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그는 비스듬히 세운 돌기둥을 타고 달린다.
그 시선은 스케발을 향하지 않는다.
켈르할름의 시선은 조금 전, 주문을 읊을 때부터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과 그늘.’
빛과 그늘이 뒤섞이고 있는 곳.
그곳을 향해 켈르할름은 달린다.
쿵, 쿠웅!
연신 진동을 울리며 빛과 그늘은 충돌하고 있다. 아직 결판은 나지 않았으나, 그 결과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늘이 빛을 삼키리라.’
과거에 그랬듯이.
‘빛은 더 저항할 수 있음에도, 그늘을 찍어누를 수 있음에도 그리하지 않으리라.’
과거에, 별이 그러했듯이.
‘별은 또다시 포기하겠지. 그늘에게 삼켜지도록 내버려 두겠지.’
켈르할름의 눈에는 그 결과가 보인다.
실제로 별빛은 저항을 포기한 채, 자신이 선택한 아이를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세 갈래로 나누어진 별빛이 연결된 끝이 어디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별빛이 이어진 아이 중 하나를 켈르할름은 알고 있다.
‘셀레스티아를 닮은 아이.’
너무나도 닮은 그 아이.
보랏빛 머리칼과 보랏빛 눈동자. 그 목소리마저도 닮아서, 자신의 제약을 흔들었던 소녀. 그 소녀에게 켈르할름은 자신의 제자를 겹쳐보았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했었나.’
켈르할름은 현재에서 과거를 본다.
셀레스티아가 그늘에 집어삼켜졌을 때. 그때, 그곳에서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맹세를 지키기 위한 백 년 간의 발버둥. 그 끝에 한낱 인간은 답에 도달했다. 그 답을 켈르할름은 떠올린다.
‘내가,삼킨다.’
하나 남은 제약에 새겨진 문장.
「그늘을 삼켜라.」
켈르할름은 그 문장을 이행한다.
그렇게 켈르할름이 그늘에 손을 뻗는 순간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군.』
스케발이 비웃음을 흘렸다.
켈르할름은 비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는 그늘과 접촉한다.
꿀렁.
요동치는 그늘이 켈르할름을 집어삼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