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7
〈 187화 〉 각자의 무대(1)
* * *
「이야기에 앞서, 하나 경고하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는가,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 더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가. 그런 물음을 내게 던지지 마라.」
정체 모를 엘프의 말.
「물어도 답할 수 없다. 내가 말하는 게 곧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그가 전한 말을 떠올리며 칼트는 탁, 하고 지붕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건물의 옥상과 옥상을 오가며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전력으로 질주한다.
「지금의 이 상황을 유도한 이가 존재하고, 그가 짜 올렸을 계획에 대해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므로, 그 파훼법을 너희에게 설명하겠다.」
검은 코트가 펄럭인다.
펄럭이는 코트 자락의 안에는, 흑색 마탑주에게 지원받은 수많은 마도구가 걸려있다. 하나하나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마도구다.
「계획을 짠 존재에 대해선 짐작하고 있겠지.」
고대 리치 스케발.
「그래, 예상대로다. 저 결계는 녀석의 짓이지. 수백 년 전에 비교해서 변한 게 하나도 없긴 한 것 같지만, 아무튼 간··· 객관적으로는 성가신 상대겠군.」
마치 귀찮다는 듯 엘프는 설명을 이었다.
「세 가지 순서. 내가 지금부터 말할 세 가지 순서만 따른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칼트는 시계탑의 꼭대기에 매달렸다.
한번 숨을 고르고, 칼트는 미간을 좁혔다.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다. 숲의 너머에는 검은 결계에 휘감긴 아플리아 아카데미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칼트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잡힌 것은 작은 공 모양의 마도구다. 본래 결계를 찢기 위해 설계된 마도구이나··· 평범한 마도구로 고대 리치의 결계를 찢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으로 결계를 뚫고 진입해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는 평범한 마도구가 아니다. 영문 모를 엘프가 흑마탑주의 보조하에 개조한 마도구. 엘프는 마도구를 건네며 단언했다.
「너 한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거다.」
그 말을 칼트는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탁.
칼트가 시계탑을 박차고 크게 도약한다.
숲의 풍경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검은 결계가 코앞까지 다가온다. 그리고, 칼트는 손에 쥔 마도구의 핀을 잡아당겼다.
피잉!
파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는 마도구.
결계와 충돌하기 직전, 칼트는 그것을 결계를 향해 집어 던졌다. 검은 결계와 마도구가 맞닿는 순간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지직, 지지직.
폭발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 그러나, 그마저도 금세 닫히고 만다. 칼트는 닫혀가는 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들어갔으면, 찾아라.」
어둠에 잠긴 아플리아.
그곳에 칼트는 발을 디딘다.
「찾아야 할 것은, 별의 축복을 받은 아이들이다.」
칼트는 기척을 지운 채 마도구를 하나씩 활성화한다.
마기(??) 정화 장치가 달린 방독면.
육체를 강화하는 마도구.
온갖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한 도구들.
로얄 가드의 지급품, 흑색 마탑주가 개발한 마도구, 영문 모를 엘프의 손길을 거친 약물들. 수십 가지의 마도구가 칼트의 육체를 보조한다.
‘이곳은 고대 리치 스케발의 영역.’
이곳에 용사는 없다.
용사를 대체할 인물도 없다. 언제나 재앙을 상대해왔던, 그 잿빛 마법사 또한 없다. 이곳에 서 있는 것은 한낱 사냥개인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칼트는 허리춤에 손을 뻗는다.
손에 닿는 것은 로얄가드에서 개발 중에 있던 약물이다. 초인에게 보급할 것을 염두에 둔, 초인의 육체를 강화하기 위한 도핑제.
아직은 개발단계에 불과하다.
그 부작용은 알 수 없다.
하물며, 초인의 육체에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둔 약물이다. 초인이 아닌 자신이 사용했다간, 어떤 부작용을 받을지 알 수 없다.
“······.”
붉은색으로 찰랑이는 도핑제.
그것을 바라보며 칼트는 각오를 다진다.
‘쓸 수 있는 건 모두 쓴다.’
쓰게 될 것이다. 분명.
그때가 온다면 망설이지 않으리라.
탁.
어둠 속에서 사냥개(Hound)가 땅을 박찼다.
2.
그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켈르할름은 떠올린다.
떠올리는 것은 지난 백여 년간의 경험이다.
‘제약, 그리고 통제.’
그것이 켈르할름의 삶이다.
그는 제약을 통해 자신의 광기를 통제했다. 스스로에게 사슬을 걸어 행동을 제약하며 살아왔다. 그 백 년의 삶은 켈르할름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무언가를 자신의 안에 가둔다.
가둠으로써 통제한다.
그것은 그가 떠올린 답과 맞물렸을 때,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켈르할름은 기나긴 삶 동안 조금씩 구체화시켜 왔다.
‘물론, 확신하지 않는다.’
과신하지는 않는다.
과신의 대가가 얼마나 씁쓸한지, 얼마나 지독한지는 이미 백 년 전에 지나치리만치 맛보았으니까.
‘그렇기에.’
켈르할름은 수백 가지의 제약을 만들었다.
어떠한 제약이 가장 효과적인지 시험해 왔다. 수많은 제약이 있었고, 수많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찾고 또 찾아왔다.’
그 결과 켈르할름은 하나의 답을 찾았다.
이제는 정답을 맞추어 볼 시간이다. 부디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켈르할름은 그늘을 움켜쥐었다.
콱.
빛과 충돌하던 그늘이 켈르할름에 시선을 둔다.
물론, 켈르할름은 그늘을 담기에 충분한 그릇은 아니다. 그는 별에게 선택받지도, 사랑받지도, 축복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별빛을 담아본 적이라면 한번, 있다.
백 년 전 켈르할름은 자신의 수명을 전부 별에게 바쳤고, 별은 켈르할름의 영혼에 막대한 양의 별빛을 허락했다.
‘그때의 경험.’
그 경험을 떠올리며 켈르할름은 그늘을 삼킨다.
빛과 충돌하던 그늘이 켈르할름의 팔을 휘감으며 켈르할름의 심장으로 향한다. 꿀렁이는 구정물이 켈르할름을 집어삼켰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군.』
그 순간 어느 속삭임이 켈르할름의 귀에 닿는다.
그러나, 그것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다.
“제약을 건다.”
그늘에 휘감긴 켈르할름은 제약을 걸기 시작한다.
이성과 광기의 틈새를 더듬으며 그는 찾아낸 답을 필사적으로 떠올린다.
‘그늘은 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지금 자신이 삼키는 것이 그 편린에 불과할지라도, 진리에 맞닿은 개념임은 변함이 없다. 그것을 삼킴에 있어 자신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성. 정신. 영혼.
그를 비롯한 켈르할름이란 인간의 모든 것.
그렇게 자신을 완전히 빈 그릇으로 만든다. 정해진 행동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든다. 설령 자신이란 존재가 소멸해도 좋은 것이다.
「너희가 내게 준 불로의 삶을, 언제 끝날지 모를 이 기나긴 삶을, 오롯이 너희를 위해 살겠다.」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한 삶이었다.
그날과 닮은 현재에서, 켈르할름은 과거를 추억한다. 똑같은 현장에 자신은 서 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그늘을 담은 켈르할름의 영혼을, 하나의 제약이 관통하려는 순간이다.
『한낱 범인이.』
그늘 너머로 목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버려야만 초월에 도달할 수 있는 범인(凡人) 따위가 그늘을 담을 수 있을성싶으냐.』
고대 리치 스케발.
『불가능하다.』
그가 비웃는다.
마치, 이미 같은 일을 해봤다는 듯이.
『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켈르할름은 느낀다.
몸 안에 담은 그늘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사슬에 그늘은 속박되지 않는다.
『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선택받지 못했기에.
축복받지 못했기에.
사랑받지 못했기에.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고대의 리치는 그렇게 비웃는다.
비웃음 속에서 켈르할름의 입가가 뒤틀렸다.
“그럴지도 모르지.”
켈르할름은.
“허나.”
한낱 인간은.
“그 또한 예상한 바이다.”
스스로를 과신하지 않는다.
과신하지 않기에, 실패를 염두에 둔다.
실패를 염두에 뒀기에, 다음을 생각한다.
“별이여.”
별을 증오하는 인간이 별을 부른다.
“거래한다.”
천칭(Balance).
세상이 일순간 정지한다.
모든 것이 멈춰선 세상 속에서 별과 그늘만이 출렁인다. 눈앞에 떠오른 천칭에는 금이 가 있다. 백 년 전 박살 난 천칭은 허름하다.
켈르할름이 별과 거래한다.
별은 거래에 응한다.
이루어진 건 간단하기 짝이 없는 거래다.
“나를 유폐하라.”
측정된 대가가 지불된다.
멈춰선 시간이 흐른다. 켈르할름의 눈앞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그것은 이계(??)로 향하는 통로다. 그곳을 향해 켈르할름은 걸음을 옮긴다.
『어찌?』
스케발의 안광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보며 켈르할름이 비웃음을 흘린다.
“네 뜻대로 되게 두진 않는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끊어진다.
광기에 사로잡힌 켈르할름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한다. 다만, 본능적으로 그늘을 붙잡은 채 그는 눈앞의 구멍을 향해 뛰어든다.
쩌억!
구멍이 켈르할름을 집어삼켰다.
3.
흑색 마탑의 최상층.
카르디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는 검은 결계에 못 박혀 있다. 그러나, 그가 보는 것은 결계의 너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카르디는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빛과 그늘의 충돌.
그로 인한 비틀림.
떠올리는 것은 수백 년 전의 일이다. 그날도 카르디는 비틀림을 보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비틀림을.
‘대륙의 절반을 집어삼킨 비틀림.’
그것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을 벌여야만 했던가.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그 자리에서 선보였다.
‘그러나, 쓸모는 없었다.’
모든 게 실패했다.
모든 건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끌고 끌은 끝에 찾아낸 답이라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답뿐이었다.
“···차악의 선택.”
최악만을 간신히 면한 차악의 선택.
그러나,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하리라.
“······.”
카르디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과거와 같은 상황에서, 카르디는 같은 방법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그는 최선을 찾지 못한다. 언제나 차악의 방법만을 떠올릴 뿐이다.
‘지랄 같군.’
천년을 쌓아 올린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천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음에는 다른 선택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거늘···.”
“뭘 알아야 선택을 하던 말든 하지.”
그때였다.
뒤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너.”
카르디가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도, 알고 있는 게, 많은 모양인데.”
침상에 누워있던 소녀.
조금 전까진 눈을 뜰 기색조차 보이지 않던 소녀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그녀의 턱선을 따라 땀방울이 흐른다.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기어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야, 카르디.”
침상에 걸터앉은 소녀.
그녀가 흘러내린 잿빛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머리칼 너머로 드러난 눈동자는 결연하다.
“설명해.”
그녀가 손을 뻗는다. 뻗어서, 카르디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코앞까지 끌고 온다.
“전부.”
카르디는 코앞에서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푸른색이다. 푸르게 번들거리는 소녀의 눈동자는, 답을 듣기 전까진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답은, 내가 찾는다.”
그녀가 말한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언제나 답을 찾아온 마법사는, 이번에도 답을 찾기 위해 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