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 〉 초대받지 않은 손님(2)
* * *
고룡의 마법사라 불리는 이가 있다.
그 마법사가 언제, 어느 시대부터 존재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고대라 불리는 시절보다 더 이전, 아르카디아가 세워지기도 훨씬 이전인··· 아득한 과거부터 그 마법사는 세상에 존재했다.
누군가는 고룡의 마법사를 이렇게 부른다.
태초의 마법사.
별과 계약을 맺은 최초의 인간.
그는 인간의 육신으로 영생에 닿았으며, 용의 친우였고, 별과 동등한 존재가 된 초월자다.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회로에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그가 짜 올린 삼백여 개의 회로다.
그렇기에.
무릇 마학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있어, 고룡의 마법사란 살아 숨 쉬는 신적인 존재와도 같다.
“노망난 도마뱀 새끼가 이곳에는 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신을 모독하는 인물이 있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나?”
흑색 마탑주와 잿빛의 (전)차기 마탑주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 가운데, 카르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마저 이었다.
“사건이 터져도 방관. 신봉하는 건 불변함. 그런 주제에 수만 년을 살고도 여자나 밝혀대는 인간을··· 아니, 인간도 아니지. 그 피의 절반은 용혈이니.”
카르디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걸 노망난 도마뱀 새끼라 부르지, 달리 뭐라 불러야 하지? 나는 잘 모르겠군.”
“···말이 심하군.”
참다 못한 흑색 마탑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의 마학적 지식이나, 연금술에 대한 실력은 높게 인정하나···.”
“자네가 아니라 당신. 나보다 최소 천삼백 년은 어린놈이 어딜 건방지게···.”
쓰읍, 하고 카르디가 혀를 찼다.
예투알은 제 미간을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꼰대 엘프 같으니라고.’
속으로 꼰대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예투알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마학적 성취가 높음은 알고 있소. 하지만, 그렇다 하여 고룡의 마법사 님을 모욕하는 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 않겠소?”
무려 고룡의 마법사다.
그 전설적인 인물을 마법사들의 앞에서 모욕하는 것은,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듣는이가 없어서 망정이지···.”
예투알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카르디. 말이 심하긴 했어.”
예투알의 옆에 선 라니엘도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녀 또한 예투알과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만나봤는데 그렇게 욕먹으실 분은 아니던데? 좀 독특한 사람이긴 한데···.”
“그건 네가 남자일 시절의 이야기 아닌가?”
“···그야 그렇지? 근데 그건 왜?”
라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고룡의 마법사와 마주한 것은 두 번 정도였는데, 한번은 차기 마탑주 시절··· 두 번째는 흑룡의 토벌 직후였다.
“그 몸으로 만나본 적은 없단 소리지 않나.”
“없긴 하지.”
“이번 기회에 만나서 확인해 봐라. 그럼.”
카르디가 썩어들어가는 눈동자로 라니엘을 흘겨봤다. 마치, 옛 기억을 떠올리는듯한 눈동자였다.
“내가 파버린 눈깔은 잘 있을지 모르겠군.”
“뭐?”
“그 도마뱀의 눈가에 상처가 있지 않았나? 이쪽 부근일 텐데. 아마 이렇게 그슬린듯한···.”
카르디가 자신의 왼 눈을 툭툭 건드렸다.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을 더듬다 말고 그녀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반응으로 보아하니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군.”
“아니, 잠깐만···.”
라니엘이 당황하는 가운데, 카르디는 고개를 돌려 예투알을 바라봤다. 둘의 대화를 따라잡지 못한 예투알은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흑색 마탑주.”
“뭐, 뭔가.”
“네겐 빚진 게 있으니 하나 조언하자면, 도마뱀이 방문했을 때 클로에의 정체는 숨기는 게 좋을 거다.”
“···어째서?”
카르디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도마뱀이 말하길, 제 첫사랑과 닮았다더군. 수백 년 동안 첫사랑이 바뀌지 않았다면 또 추파를 던지려 할 거다.”
“뭐, 뭣?”
그 점잖으신 분께서 추파를 던져?
그것도 자기보다 수만 년은 어린 소녀를 상대로?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그런 엽기적인 상황을 예투알은 감히 머릿속에 그려볼 수가 없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경한 일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
그러나, 어째서일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눈앞의 엘프가 자신을 바라보며 짓고 있는 딱하다는 표정이, 너무나도 현실감 넘치는 것은.
“아무쪼록 주의해라. 그 도마뱀은 너희가 상상하는 것처럼 고결한 존재는 아니니.”
“하물며.”
카르디가 고개를 돌리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신앙을 보낼 이는 더더욱 아니지. 인세에 펼쳐진 지옥을 외면하고, 방관할 뿐인 신은 무가치할 뿐이다. 가치 없는 것에 신앙을 보내지 마라.”
더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는 듯 카르디는 시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연금술을 계속하겠다는 태도였다.
“···조언은 참고하겠네.”
더 말해봐야 의미가 없으리란 걸 깨달은 예투알은 실험실을 나갔다. 방안에 남아있던 라니엘은 자리를 뜨기 전에 카르디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몸으로 만나면 어떻게 되길래 그래?”
“직접 경험해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랄 맞음이니.”
“아니, 대체 뭐길래···?”
도대체 어떤 모습을 봤길래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카르디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2.
마법사들의 밤이 개최된다.
그것도, 고룡의 마법사의 방문에 맞춰서.
내가 그 소식을 접한 지 사흘째 되는 밤이다. 저택의 거실에 자리를 깔고 앉아 소일거리를 하고 있자니, 스승님께서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라니엘. 청색 마탑주를 기억하고 있느냐?”
“음, 으음···.”
청색은 지랄 맞다.
그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뒤늦게 청색 마탑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짝, 하고 박수를 치며 스승님의 질문에 답했다.
“허리 굽은 꼰대?”
“···허리가 굽었긴 하지. 하여튼 청색 마탑주의 모습은 기억하고 있는듯싶구나.”
“마탑 정기회의 때마다 시비를 걸어대서 기억하고 있긴 하죠.”
청색 마탑주.
나보고 나이가 어리니, 겸손을 모르느니··· 온갖 시답잖은 말들을 늘어놨던 마탑주로 기억하고 있다.
‘회의에서 한번 허리를 접어버린 뒤로 더 지랄하진 않긴 했지만···.’
사사건건 귀찮게 굴었던 노친네였다.
“근데, 청색 마탑주가 왜요?”
“그자가 편지를 보내왔더구나.”
스승님이 건넨 편지를 받아 펼쳐보았다. 정갈한 필체와, 그렇지 못한 내용이 실린 편지였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미뤄둔 결투에 응하라. 그대가 마법사라면,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재결투다. 잿빛.」
···재결투?
내가 눈을 깜빡거리며 스승님을 바라봤다.
스승님은 일단 끝까지 읽어보라는 듯, 가볍게 손짓하셨다.
「그대가 ‘비겁’하고 ‘치졸한’ 수를 써 청색 마탑의 마도구 사업을 망쳐놨음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대에게 따져 물으려 갔던 그날 그대는 이렇게 말했지.」
“아.”
맞다.
「꼬우면 실력으로 증명하시던지요. 제가 당신보다 잘난 걸 뭐 어쩌겠습니까?」
딱히 비겁하지도, 치졸하지도 않았지만 저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긴 하다.
‘아마 청색 마탑 마도구 사업을 조져놨을 때 일인 것 같긴 한데.’
색을 가진 마탑에는 저마다 메인으로 삼는 연구 분야가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그 연구가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로 간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 게 마탑 간의 예의라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속된말로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잿빛은 고대 왕국의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지어진 마탑인 만큼, 메인으로 삼는 연구 분야가 없었다. 요컨대, 마도구 제작도 하고, 연금술도 하고, 주문 각인도 하고··· 이것저것 다한단 소리다.
그래서, 마도구 제작에도 손대봤었다.
“그냥 블루 오션이길래 뛰어든 거였는데.”
정말로 별것 없었다.
마도구 시장은 청색 마탑이 독점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암만 봐도 내가 저것보단 잘 만들 것 같단 생각이 들길래···.
‘연구를 했고.’
성공 해서 대량 생산했고.
‘그대로 시장에 뿌렸지?’
청색 마탑보다 싼값으로.
그 결과 독과점으로 달달하게 골드를 빨아먹던 청색 마탑이 큰 타격을 입었다곤 하는데, 그건 까놓고 말해서 청색 마탑의 책임이 아니었을까?
“꼬우면 더 잘 만들던지.”
안일한 청색 마탑이 죄였다.
마도구 시장을 지들 철밥통이라 생각한 그놈들이 멍청한 게 아니겠는가?
‘그때 뭐라 말했더라.’
그 답이 편지에 나와 있었다.
「그렇게 분하시면 마학연회에서 증명하십시오. 마법사들의 사회는 경쟁 사회 아닙니까? 제가 마음에 안 드시고, 잿빛 마탑이 잘나가는 게 그렇게 아니꼬우시면 모두의 앞에서 증명하시면 될 것 아닙니까.」
그것도, 무척이나 꾹꾹 눌러쓴 필체로.
「청색 마탑의 마도구가, 잿빛 마탑의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 그것만 증명하면 끝날 문제 아닙니까? 혹시 후달리십니까?」
···내가 저렇게싸가지 없게 말했었나?
“제가 저랬나요?”
“저것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았다.”
“오···.”
근데 청색 마탑에는 저래도 될 것 같긴 해.
과거의 내 인성에 감탄하며 나는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렸다.
「그대는 말했다. 마학연회에서 증명하라고. 기간은 언제든지 좋으니, 승부를 걸면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그대는 말했을 터다.」
말하긴 했지.
6년은 더 된 일인 것 같긴 한데.
「지난 세월동안 그대는 전장에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대는 은퇴했다. 그렇다면, 나와의 재결투에 응하라.」
그 뒤로도 편지는 몇 줄이 더 이어져 있었는데, 그닥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요약하자면, 결투에 응하지 않으면 마법사의 명예가 어쩌고 저쩌고···.’
솔직히 말해서 응할 이유가 있는 결투는 아니었다. 편지를 내려놓으며 내가 스승님을 바라봤다.
“되게 뜬금없네요.”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걸로 보이긴 하는구나.”
스승님께서 한숨을 내쉬셨다.
“이렇게 불러내도 ‘라니엘’인 네가 나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으니까 일을 벌이는 거겠지. 아마 마학연회에선 너를 지목할 생각이 아닐까 싶구나.”
“저를요?”
“그래. 트리아스 가문의 명예란 표현이 편지에 적혀 있지 않더냐. 라니엘이 없으니, 너라도 이어받으라는 식으로 말할 생각이겠지. 사실 거절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결투긴 하다.”
내가 봐도 그랬다.
나는 이미 잿빛 마탑에서 은퇴했고, 저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서 내 평판에 딱히 흠이 갈 것 같진 않다.
“억지를 부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결투다.”
“그렇네요.”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느냐?”
“으음.”
딸칵. 달그락.
“스승님.”
나는 아까부터 조립하고 있던 ‘무언가’를 스승님께 건넸다. 스승님은 의아해하며 내게 물건을 받아들더니··· 이윽고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이건?”
스승님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
그것은 얼마 전 아르카디아에서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주워온 마도구들이다. 보다 정확하겐, 그 마도구들을 참고하여 내가 현대식으로 개량한 물건.
“이, 이런 걸 어디서 가져온 거냐? 라니엘?”
“친구가 줬어요?”
“···친구?”
“네. 성격은 좀 이상하지만 착한 친구.”
고대 왕국 아르카디아.
그곳에서 만들어낸, 현재의 기술력으론 재현할 수 없는 고대의 마공학 기술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도구.
달그락.
사방에 널린 마도구들을 끌어모은 채 내가 스승님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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