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5
〈 235화 〉 초대받지 않은 손님(3)
* * *
마법사의 밤이 다가온다.
최대 규모의 행사가 개최될 때까진 대략 한 달 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었고, 나는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정리할 생각이었다.
‘우선 처리해야 할 건 이거겠지.’
내가 손가락 사이로 포션병을 굴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은 로열 가드의 집무실이었는데, 이미 초대를 받았기에 집무실에 들어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끼이이익.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살아 숨 쉬는 좀비였다. 존재 자체가 모순된 좀비를 향해 내가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냐? 칼트.”
서류 더미가 산을 이루고 강을 이룬 책상.
그 책상에 엎어져 있던 좀비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퀭한 눈동자를 두어 번 깜빡인 칼트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그래 보이네.”
내가 쓰게 웃으며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책상에 널브러진 서류 중, 손에 잡히는 것 하나를 들고 읽어봤는데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다.
“불법 연구시설? 아직도 이걸 수도에 대놓고 짓는 놈들이 있어?”
“최근 단속을 제대로 안 했더니 지하 수로에만 무더기로 생겼지 뭡니까. 그거 청소하고 다니느라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근데 그건 늘 하던 거 아니야?”
예로부터 불법 연구시설의 청소나, 규정을 거스른 마법사의 척살은 로얄 가드들이 떠맡곤 했다.
요컨대, 일상적인 업무란 소리다. 그런 업무에 칼트가 죽어가는 소리를 낼 것 같진 않았다.
“확실히, 좀 번거롭긴 하지만 이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발로 뛰면 되는 거니까요. 진짜 문제는 말입니다···.”
칼트가 서류에 파묻인 훈장을 꺼내 들었다.
“이겁니다. 이거.”
가더(Guarder).
훈장에 각인된 글자를 보며 내가 눈을 깜빡였다.
“가더? 처음 보는 직책인데?”
“로얄 가드의 수장에게 쥐여주는 직책이라더군요. 수장이 없는 게 로얄 가드의 전통이었는데, 그 전통이 이번에 깨진 모양입니다.”
깨진 이유를 짐작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가 너무 독보적이었구나?”
로얄 가드 중에서도 칼트의 존재는 이질적이다.
전장 출신의 기사이며, 로얄 가드가 되기 전부터 숱한 공을 쌓아둔 인물.
‘그런 인물을 단순한 ‘로얄 가드’로 남겨두기에는 모양새가 좀 그렇긴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가 업적이 좀 많긴 했지.”
“그것도 그건데 말입니다. 심지어 최근 아플리아에서 터진 사건들이랑, 선배님과 함께 겪은 사건들 있잖습니까?”
칼트가 하나씩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봄즈음에 있었던 스케발 격퇴전.”
“레스티랑 얽힌 거였네.”
“그리고, 여름쯤에 배교자 격퇴전.”
“그건 벨노아랑 클로에였나. 고생하긴 했지.”
“···또, 최근에 있었던 스케발 격퇴전.”
“아, 그땐 진짜 위험했지. 해골바가지가 별 지랄 맞은 수정구를 들고와서···.”
내가 지나간 사건들을 회상하며 중얼거리고 있자니, 칼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선배님이랑 엮이면 일이 많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야, 내가 사건이 터지는 데를 찾아가니까.”
나 말고 맡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튼, 일 년 동안 세 번입니다. 재앙을 격퇴한 게 세 번인데, 이만한 공을 쌓았으니 궁중 수뇌부 쪽에서도 절 조금 어려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려워해?”
“예. 한 명의 기사가 쌓기에는 너무 과분한 업적이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직책을 올리기로 결정한 모양입니다. 좀 이것저것 얽히기 했는데···.”
칼트의 말을 들어보니 근래 있었던 제 1 왕자의 실종과 로얄 가드의 권력 체계의 재개편 등등, 좀 복잡한 일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그 끝에 칼트에게 주어진 것이···.
“그 결과가 네가 로얄 가드의 수장이 됐다?”
가더(Guarder)라는 직책.
“예. 썩 반갑지는 않지만요.”
정작 본인은 달갑지 않아 보이는 눈치지만, 어찌 됐던 명예로운 직책인 건 확실했다.
“하는 일 자체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평소처럼 현장 좀 뛰고, 업무 좀 처리하는 건데···.”
칼트가 말꼬리를 흐렸다.
흐리던 말꼬리가 한숨으로 바뀌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후우우우···.”
연초가 마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칼트가 퀭한 눈동자로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 양이 곱절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
종이로 쌓아올린 탑을 바라보는 칼트의 눈동자는 이미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서류가··· 서류가 줄어들질 않습니다···.”
“원래 조직 개편 한번 하고 나면 업무량이 말도 안 되긴 해. 좀 지나면 괜찮아 질 거다.”
나는 쓰게 웃으며 칼트의 어깨를 두들겼다.
“어쨌든 승진한 거네?”
“그렇긴 하죠.”
“그럼, 옛날 선배로서 선물을 줘야겠지.”
콱.
내가 손을 뻗어 칼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뭡니까? 왜 머리를 잡으십니까?”
“가만히 있어봐.”
“아니. 사람 머리를 왜···.”
“아 움직이지 말아봐 쫌.”
칼트의 머리를 붙잡은 채 내가 손가락으로 굴리고 있던 포션병을 마도구에 끼워 넣었다.
효과 증대 각인이 새겨진 주사용 마도구.
거기에 끼운 포션은 카르디가 직접 개발한 수복용 포션이다. 초인의 자가 치유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보조하는 종류의 포션.
“쓰읍. 가만히 있어.”
나는 주사기의 끝을 칼트의 왼눈으로 향했다. 칼트의 하나 남은 오른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그 잠깐···.”
“어허. 가만히. 이거 더럽게 비싼 포션이야. 만드는데 마탑 반년 치 예산은 태웠거든? 이거 만드느라 내가 재룟값으로만 몇 골드 태운 줄 알아?”
“몇, 몇 골드길래···.”
내가 칼트의 귀에 정확한 금액을 속삭여줬다.
“공이 여덟, 아홉, 열···? 허어억···.”
칼트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인 듯, 칼트가 숨을 헛삼켰다. 내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장에 찍힌 숫자 네 번째 자리가 바뀌긴 했지.”
“···네 번째? 선배님,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신 겁니까?”
“저번에 말했잖아. 마탑 한 다섯 채 정도는 지을 돈 있다고. 아무튼 비싼 거니까 가만히 있어봐.”
그렇게 말하며 내가 칼트의 머리를 꽉 쥔 채 주사기를 칼트의 눈가에 밀어 넣었다.
“허어어억···!”
칼트의 괴상한 비명과 함께 주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회복까진 대략 열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승진 축하한다. 칼트.”
내가 웃으며 칼트의 등을 팡, 하고 후려쳤다.
“···선물 감사합니다. 진짜 이걸 고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제 눈가를 문지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칼트는 나를 슬쩍 흘겨봤다.
“선배님.”
“뭐.”
“저 은퇴할 때 수도 쪽에 건물 하나만 사주시면 안 됩니까? 제 꿈이 건물주라서···.”
“너 하는 거 봐서.”
그 꿈 아직 못 버렸나 보구나.
2.
가장 우선 해야 할 일인 칼트의 눈동자 회복은 끝마쳤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들은 그리 급한 일들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봐야 할 일이니까.’
일상적인 업무와 함께 처리할 일들이었다.
모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언제나처럼 아플리아에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수업을 진행하고, 과제를 낸다.
“질문 있으십니까?”
평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업이 끝날 때 내가 의례적으로 던진 말에 반응하는 학생들이 생겼다는 점 정도일까.
“저, 라니아 교수님. 방금 수업하신 부분에서 이쪽 파트가···.”
수업이 끝난 후, 내게 질문하러 오는 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여태까진 종이 땡 치면 강의실을 나섰던 나였지만··· 학생들이 질문하러 오는 만큼 몇 분 정도 더 강의실에 머물게 됐다.
“이건 이런 식으로··· 회로는 이렇게 새기면 됩니다. 다른 부분 더 있으십니까?”
“교수님, 저도 이쪽···.”
“예. 한번 보지요.”
그 덕에 교수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식사 약속을 한 스승님이 기다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했는데··· 스승님은 이 상황을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성장했구나, 라니아.”
“예? 뭐가요?”
“학생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건 좋지만, 완전히 신비로운 이미지는 좋지 않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버리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발전했구나.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게 됐으니.
그리 말씀하시는 스승님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인간다운 모습이요?”
“네가 2학기 초에 보인 모습들 말이다. 추하기 짝이 없어서, 내가 며칠간 고개를 못 들게 다녔던 그 사건들.”
“···아.”
낯 부끄러워지는 주제가 나왔기에 나는 황급히 주제를 돌렸고, 스승님은 ‘부끄러운 줄은 아는구나’ 라며 은근한 핀잔을 주셨다.
아무튼, 그런 식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슬슬 강의에도 익숙해졌고 학생들의 얼굴에도 익숙해졌다. 늦가을의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나는 아플리아의 인근에 위치한 숲으로 향했다.
일상적인 업무에 추가된 일··· 그러니까, ‘특별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와 있었네.”
숲에는 수강생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라크. 벨노아.”
성배의 시련을 경험했던 두 사람.
그리고, 내가 가르쳐야 할 게 많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내가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
“오늘도 시작할까.”
3.
“있잖아, 벨노아.”
“왜.”
“너 왜 삼일에 한 번씩 흙투성이가 돼서 돌아와? 메이드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찢어먹은 옷만 해도 벌써 세 벌이라는데?”
“···말 못할 사정이 있다.”
깊고도 깊은 사정이 있다.
어디 가서 말 못할 사정이.
벨노아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교육’을 받고 와서 그런지 온몸이 피곤했다. 팔이 잘 안 올라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말 못할 사정? 그게 뭐야?”
벨노아가 답해주지 않자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을 돌아봤다. 그녀의 옆에는 목덜미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 라크가 앉아 있었다.
“라크. 아는 거 있어?”
“말 못할 사정이 있다.”
“누구한테 맞은 거야?”
“······.”
라크는 침묵으로서 일관했다.
벨노아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트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거기까지 벨노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걔한테 물어봐도 말 못해.”
일단은 비밀리에 행하는 개인교습이었으니까.
벨노아는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안에 남은 감각이 거칠었다.
‘역시 아직 끌어내는 건 힘드나.’
시련에서 보았던 주술의 새로운 방향성.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분전하고 있긴 하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시련이 될게.」
라니아 교수님께서 봐주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 ‘시련’이란 것에 혹사당한 몸을 휴식하며 벨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렇게 벨노아가 온 세상 쓴맛을 다 본 늙은이처럼 한숨을 쉬고 있자니, 클로에가 찻잔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벨노아. 곧 마법사들의 밤이 열리잖아?”
“아. 열린다고 들었지.”
“벨노아는 예투알 아저씨랑 같이 마학연회에 참가하지?”
“일단은 수제자니까 그렇게 되겠지.”
“···역시 그렇지?”
클로에가 부러운 눈치로 벨노아를 바라봤다.
“라크도 그렇지?”
“음. 나도 스승님과 함께 참가하게 될 것 같군. 이번 기회에 왕도로 올라오신다고 하니···.”
“으응···.”
클로에의 어깨가 축 처졌다.
평소 같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보통 축제가 열리면 그 누구보다 즐거워해야 할 클로에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왜 그래? 너는 가지 말래?”
“···응. 예투알 아저씨가 축제가 개최되는 열흘간은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있으래.”
“갑자기?”
“모르겠어. 아저씨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면 안될 것 같다고 그러셔.”
클로에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대로이유가 있기야 하겠지만···.’
풀이 죽어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진 않았다. 축제라면 환장을 하는 클로에에게 축제 기간 열흘 동안 방에 처박혀 있으라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리라.
“고룡의 마법사님도 오신다는데.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궁시렁 대는 클로에.
내버려두면 축젯날 까지 저러고 있을 게 분명하기에, 보다 못한 벨노아가 입을 열었다.
“삼일, 사일 차는 안되고.”
“···응?”
“5일차에 잠깐 들려서 빼줄게. 같이 돌아다니면 별말 안 하겠지.”
“진짜?”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뭘.”
흑색 마탑주가 둘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려도 번번히 마탑을 탈출했던 두 사람이다.
‘이번에도 별일 없겠지.’
각지에서 마법사들이 모여드는 만큼 경비도 삼엄해지는 축제기간이다. 거리에 기사들이 쫙 깔려있는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심지어 고룡의 마법사님까지 오실 텐데···.’
신(?)과 같은 존재의 앞에서 헛짓거리하는 놈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진짜? 약속한거다!”
환호성을 지르는 클로에를 보며 벨노아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좀 번거롭긴 하겠지만, 저 애가 즐거워 한다면 그걸로 족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