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6
〈 26화 〉 첫 수업(2)
* * *
“저 보고 가르치는 것 못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제가 강의를 맡아서 하라고요?’
“어려울 건 없지 않으냐.”
라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로셀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두 번째 수업부터는, 내가 말 한 것을 정리하고 시범을 보이는 정도로 끝날 것이야. 네가 맡은 수업은 어디까지나 내 보조이니 말이다.”
“음··· 그럼 첫 수업은요?”
로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첫 수업은 기본에 대한 수업이 되겠지.”
“기본?”
“네가 잘하는 것 있지 않으냐.”
그가 제자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 제스쳐에 라니엘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차기 마탑주 취임식 때 했던 그거요?”
“그래, 그것만 보여줘도 될 거다.”
로셀이 미소지었다.
“그것만 보여주어도, 너에 대한 의심은 사그라들 테니.”
2.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유능하다.
이제 와선 참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그의 유능함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전장의 기사단은 라니엘이란 이름이 가지는 견고함을 알고 있다. 마왕군은 그 이름이 들려올 때마다 전선의 후퇴를 고민한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그런 인물이다.
한 명의 마법사가 아닌, 하나의 상징이 된 인물.
넘을 수 없는 벽.
정점의 상징.
그의 앞에선 이제 갓 마도(??)에 오른 마법사든, 이미 경지에 이른 마법사든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재능의 총아(??).
시대가 낳은 천재.
그 천재는 누군가를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발표회도, 마법사들이라면 꿈꿀만한 연구의 시사회조차 제대로 열은 적이 없다.
그러나, 딱 한 번 있다.
그가 단상에 선 적이.
그가 잿빛의 차기 마탑주가 된 날.
그는 수많은 마법사의 앞에서 자신의 특기를 선보였다. 자신이 그 자리에 맞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론 학장은 있었다.
그때 보았던 마법을 아론은 잊지 않는다.
“·····.”
눈을 감고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리던 아론은,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는 자신의 친우가 있다. 시선을 돌리면, 잿빛 머리칼의 소녀가 서 있다.
“음… 뭔가 설명이 잘 안 된 것 같은데. 괜찮았나요?”
“···잘 안된 것 같다고?”
“뭔가 좀, 막? 이렇게? 하는 거 같은 느낌인데.”
소녀는 손가락을 꾸물거린다.
마나가 피어올랐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허어···.”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아론은 고개를 돌렸다.
“로셀, 방금 내가 본 게 무엇이지?”
“저 아이의 모의 수업이라네.”
“모의?”
“본 수업은 아니지. 첫 강의니 조금 더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릇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
여기서 더 뭘 하겠다고?
아론은 헛웃음을 흘렸다.
“로셀.”
“왜 그러는가.”
“내 본래 이럴 생각은 없었다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공문이 있다.
“외부에서 자네의 제자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네. 본래는 전부 거절할 생각이었지. 첫 수업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소란스럽기도 할 테고.”
“그래, 그래서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잠시 뜸을 들인 아론이 입을 열었다.
“생각이 바뀌었네. 공개하도록 하지.”
“···굳이?”
“나는 굳이, 이것을 보여야겠네. 한 명이라도 많은 마법사가 이 수업… 강연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론은 미소 지었다.
“그래도 되겠는가, 라니아양?”
“저는 상관없어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으니, 남은 건 스승이다. 로셀은 잠시 아론을 바라보다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내킬 대로 하게.”
“고맙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이 학장실을 뜬다.
학장실에 홀로남은 아론은 두 눈을 감았다.
‘이것이, 천칭의 기본입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발음되었던 기본(??).
그것을 떠올리며 아론은 잠시 여운에 젖었다.
3.
마나의 거래학(기초)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
얼마 전 아플리아의 게시판에 붙은 학사공지.
그것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외부에선, 잿빛 마법사를 키워낸 로셀 교수의 새로운 제자가 수업을 맡게 됨에 주목했다. 온갖 기관에서 아플리아의 방문 의사를 밝혔다.
그중 마학(??)을 조금이나마 배워본 이들은, 그녀가 맡았다는 수업에 주목했다.
마나의 거래학.
그 과목의 특수성을 아는 이들 또한 아플리아에 방문 의사를 밝혔다. 그곳에는 마탑주들 역시 섞여 있다. 흑색이 가장 먼저 방문 의사를 밝혔고, 그 뒤를 이어 백색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거절하겠지.’
그 입장문들을 보며 교수들은 생각했다.
학생들도 그리 여겼다.
아플리아에서 공개 수업이 진행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뒤 새로운 공지가 붙었다.
외부 인원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공지.
그리고, 마나의 거래학 기초가 공개 수업, 강연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공지였다.
교수들의 인내심이 툭, 하고 끊어졌다.
*
“이게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아론 학장!”
교수들의 반발이 들끓었다.
학장실로 찾아온 교수들이 이를 갈며 따져 물었다.
“조교수가 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이에게 수업을 맡기겠다니요?”
“그것도 말이 안 되거늘, 이 수업을 공개적으로 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외부의 인원을 받아들인다니! 아플리아의 망신으로 이어질 문제···.”
교수들은 기염을 토했다.
수업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아론 학장의 이름을 봐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개 강연은 다르다.
자칫했다간 아플리아의 망신으로 이어질 문제란 말이다. 신임 교수에게 맡기기엔 그 짐이 심히 무겁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본래, 아플리아의 교수들은 아론 학장을 존경한다. 그의 신념에 매료된 이들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 마저 지금은 존경심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아론 학장.”
그 질문에.
“나도 본래 이럴 생각은 없었네.”
아론 학장은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보았거든.”
“···예?”
“그 어린 친구가 하는 수업을 보았다고.”
“그게 무슨···.”
“자네들도 한번 볼 텐가?”
아론은 로셀에게 통신을 보냈다. 얼마 안 가 교수들이 모인 학장실에 두 명의 인물이 찾아왔다.
한 명은 이름 높은 로셀 교수.
다른 한 명은 소문의 소녀다.
이 논란의 중심이 되는 소녀.
라니아 반 트리아스.
교수들은 떨떠름한 눈치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불렀는가, 아론?”
“내게 보여줬던 그것, 있잖은가?”
“모의 수업?”
“그래, 그거 말일세.”
아론은 학장실에 모인 교수들을 가리켰다.
“그것을, 이들에게도 한번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아직 완성이 안 됐다만.”
“상관없네.”
로셀은 떨떠름한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좁군. 넓은 곳으로 가세.”
“···그리하도록 하지.”
교수들은 아론 학장과 로셀의 뒤를 따랐다. 복도를 일렬로 걷는 그들에게 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이윽고, 그들은 빈 강의실 하나에 찾아 들어섰다.
교수들은 빈자리에 앉았다. 로셀은 자신의 제자를 단상에 세워놓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침묵이 감돈다.
침묵 속에서 소녀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간단한 개요만 설명 드림 될까요?”
개요라니? 우리가 보려는 것은···.
그렇게 교수들이 답하는 것보다 먼저, 아론이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내키는 대로 해보게.”
교수들은 아론의 눈치를 살폈다.
꼭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다. 그것은 꼭 광신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확고한 믿음이 그 눈에 자리 잡고 있다.
저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었길래?
교수들은 더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들 또한 마법사다. 마법사란, 자신의 눈으로 관측한 것만을 신뢰하는 법.
‘보고 결정하겠다.’
교수들의 날카로운 논동자가 단상에 선 소녀에게 향한다. 하나의 실수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동자다.
“음.”
그 시선을 받는 소녀는 무덤덤하다.
“삼십 분 정도로 추리겠습니다.”
수업의 골자는 마나의 거래학, 천칭이다.
별과의 거래를 가능케 하는 주문. 모든 주문의 기초가 되는 그 주문의 원리가 무엇인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그 법칙은 이해하되 원리를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소녀가 입에 담을 것은 그 원리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소녀는 발음한다. 발음 하되, 발음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락.
소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훑고 지나간다.
그 손가락이 지나간 길을 따라 마나가 피어오른다.
“·····.”
5분이 흘렀다.
가늘었던 교수들의 눈동자가 조금씩 뜨인다.
“아.”
10분이 흘렀다.
누군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잠시.”
“나도 잠깐···.”
15분이 흘렀다.
교수들이 노트를 꺼내 들었다. 노트가 없는 이는 로브를 벗어 그 위에 필기를 시작한다.
“·····.”
“······.”
20분이, 25분이 흘렀다.
소녀의 목소리와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이상입니다.”
30분이 흘렀다.
“······.”
그 어떤 교수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의 눈동자는 얕게 떨린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이 소녀에게서 아론으로 향한다.
“보았는가?”
아론이 어깨를 으쓱인다.
“보았으면 알겠군.”
그가 말했다.
“내가 왜, 이 수업을 공개 강연으로 돌렸는지.”
그 말에 의문을 제시하는 교수는 아무도 없었다.
4.
강연 당일, 아플리아는 외부인들로 붐빈다.
그들은 기사들의 철저한 통제하에 대강당으로 향하는 길만을 허용받았다.
대강당에는 학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앞줄부터 자리 잡은 학생들의 뒤로 교수들이 자리 잡는다. 그 뒤로는 외부의 손님들이 자리한다.
아플리아의 대강당은 넓다.
그 넓은 강당을 빼곡하게 찬 마법사들은 강연의 시작만을 기다린다. 기자들은 로셀 교수의 양녀, 라니아 반 트리아스의 등장만을 기다린다.
웅성거리는 소음.
옷깃이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소음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들어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잿빛 머리칼이다.
잿빛의 마법사를 연상케 하는 그 머리칼.
그 머리칼로 향했던 시선은 뒤이어 소녀의 얼굴로 향한다. 새하얀 얼굴, 푸르른 눈동자. 단아한 인상의 소녀가 단상에 오른다.
그 움직임은 차분하다.
긴장한 기색은 없다.
단상에 선 그녀가 강당에 모인 이들을 쓱 훑어본다. 그 시선 또한 차분하다. 흔들림이 없다.
“반갑습니다.”
짧은 한마디.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조교수, 마나의 거래학 기초를 담당하게 된 라니아 입니다.”
확성 회로를 새긴 단상에 선 그녀의 목소리가 강당에 퍼진다. 그 목소리에, 이목이 쏠렸다. 침묵이 감돈다.
“지금부터.”
그 침묵 속에서 소녀가 입을 열었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짝.
한 번의 박수.
“천칭(Balance).”
별빛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