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5
〈 25화 〉 첫 수업(1)
* * *
재능있는 인물이란 등불과도 같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그 불빛은 더욱더 환하다.
“그러니, 나는 다만 바랄 뿐이다.”
나의 검이 이 시대를 밝힐 불이 되었기를.
방랑 검객 활극담 5권.
난세의 영웅 완(完)
“크으으···.”
아플리아의 학장, 아론은 탄성을 내뱉었다. 책의 마지막 장이 주는 여운에 잠긴 채 아론은 눈을 감았다.
‘재능 있는 인물이란 등불과도 같다, 라··· 멋진 문장이로군. 정말로 멋진 문장이야.’
그 문장을 곱씹으며 아론은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았지만, 지금은 저 산더미 같은 서류를 기쁜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대에 봉사할 수 있음은 기쁜 일이지.”
아론은 양손을 깍지껴 턱을 괴었다.
미루던 결정을 이제는 해야 할 때였으므로.
최근, 학사 내를 떠도는 소문이 있다. 소문이라기보단 사건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어쨌든 가벼이 넘길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천칭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것도, 조교수들 사이에서.
그 소문을 듣는 순간 아론은 어느 인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로셀의 양녀.
곧 두각을 드러내리라 예상은 했건만, 이렇게 빠르게, 또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천칭을 다룰 줄 안다니.’
그 소문이 가리키는 게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론 역시 헛소문이라며 웃어넘겼을 것이다. 천칭이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아론은 그 소녀의 재능을 알고있다.
마학회의 난제를 제자리에서 곧장 풀어내던 소녀의 모습, 그 모습은 아론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있다.
완벽한 회로의 해석.
군더더기 없는 마나의 운용.
가히 재능의 총아(??)라 불릴만한 소녀다.
‘그 아이라면, 마냥 뜬소문도 아닐 터.’
소문이 진실일 확률이 높다.
아론은 턱을 괸 채 툭툭, 테이블을 두들겼다.
천칭(Balance).
모든 마법의 기원이 되는 별과의 거래.
그것을 임의로 주선하는 최상급의 주문.
천칭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득한 재능의 영역이다. 아론도 모든 학생들이 천칭을 다룰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그 편린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주문의 기원이 되는 진리의 편린.’
그것과 마주한다면, 그들이 걷는 마도(??)는 보다 다채로워질 테니.
‘그래서 마나의 거래학을 필수 과목으로 넣은 것이지만···.’
정작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마나의 거래학, 천칭의 개념에 관해 설명하려면 소위 ‘현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쉽겠는가.
색을 부여받은 마탑에서 조차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게 바로 그 현인이란 존재들이다. 아론이 온 인맥을 동원했지만, 로셀 한 명 섭외 하는 게 고작이었다.
중요한 과목이지만.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흐음···.”
아론의 시선이 비서가 올린 보고서로 향한다.
마나의 거래학 3주차 수업 보고서.
그렇기에.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모의 천칭을 소환했다.
소환까지 소모된 시간은 짧다.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모의가 아닌, 순수한 ‘천칭’을 다룰 줄 안다고 보는 게 옳다.
이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흐음···.”
아론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그녀에게 담당 수업을 주는 게 옳은가?’
전례가 없는 사례다.
조교수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인물에게, 담당 수업을 주는 것은··· 잡음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사안이다.
“그래도 말이지···.”
아론의 시선이 책상의 끝자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두 장의 편지지가 올려져 있다.
수석 레스티.
차석 아일라.
수석과 차석, 이번 신입생들을 대표하는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다. 보내온 인물은 다르나, 그 내용은 같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교수님의 수업을···.
그분의 수업을···.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는 것.
그 열정 넘치는 편지에 아론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어지간히도 충격이 컸나 보군.’
아론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들어온 지 모를 자신의 친우가 앉아있다.
“로셀.”
“왜 그러는가, 아론.”
“외부의 시선에 휘둘려, 학생들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는 건··· 못할 일이지 않겠는가?”
그 말에, 로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 내킬 대로 하게나. 나는 신경 쓰지 않으니.”
“자네의 양녀가 음해에 시달릴 수도 있다네. 그래도 상관없나?”
“그런 걸 신경 쓰는 아이가 아니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아론은 결심을 굳혔다.
“그럼 그 아이에게, 간단한 수업을 맡겨봐도 되겠는가? 자네를 보조하는 수업이란 식으로.”
“내킬 대로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해해줘서 고맙네.”
아론은 문득 떠오른 문장을 입에 담았다.
“그 아이가 아플리아를 밝힐 등불이 되어 줬음 좋겠군.”
과연, 여운이 남는 문장이로다···.
아론은 만족스러운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말한거긴 하지만, 썩 괜찮은 대사가 아니었는가?
“아론.”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아론에게, 로셀이 툭 쏘아붙였다.
“쉰내 난다.”
“···자네까지 그러긴가?”
아론은 울상을 지었다.
2.
요즘 취미가 하나 생겼다.
아플리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생긴 취미인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
심히 고풍스러운 취미가 아닌가?
지난 5년간은 이런 개인적인, 차분하고도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적이 얼마 없었다. 그런 내겐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개인 시간이 이렇게나 중요해.’
사람이 이렇게 여유로워지잖아.
이런 개인 시간만 좀 있었어도, 그 미친년들의 지랄을 1~2년 정도는 더 참아줄 수 있었을 테지.
“으음.”
‘커피 맛이 참 좋아.’
그렇게 평소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어머.”
아쉽게도, 오늘은 불청객이 하나 있었다.
짤랑,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온 인물.
제 4 왕녀, 아일라.
그녀가 환히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아무리 봐도 우연은 아닌 것 같은데.
저 멀리서부터 눈을 마주쳤고, 숨길 기색도 없이 이쪽으로 곧장 걸어왔으면서 우연이라니?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학생이 교수를 만나는 데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리 말하며,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 행동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
슬쩍 몸을 빼려는데, 그녀가 의자를 끌어당겨 내 곁에 딱 붙었다. 그리곤 대뜸 내 로브를 가리켰다.
“로브, 입고 다녀주시네요?”
“보내주셨으니까요.”
“흐응.”
그녀가 눈웃음을 흘린다.
썩 만족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저번에 알려주신 풀이, 전장에 도움이 됐다네요.”
“다행이네요.”
“그렇게 한마디로 끝낼 만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엄청난 진보라고, 기사단에서 당신···아, 실수. 교수님의 신원을 몇 번이고 물어보고 있거든요.”
“기사단은 원래 오버가 좀 심합니다.”
옛날부터 기사단은 그랬다.
뭐만 하고 돌아오면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으니까.
“예..? 아니, 그런 뜻이 아닌데···.”
“네?”
“아뇨, 뭐···. 그런데, 교수님은 기사단을 잘 아시나 봐요?”
“···지인 중에 기사단 분이 몇 계십니다.”
“흐응.”
그녀가 쿡쿡, 웃음을 흘린다.
그 웃음이 뭔가 꺼림칙 해서, 나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옛날부터 느끼는 건데, 나는 이 4 왕녀님이 조금 불편했다.
‘감이 너무 좋아.’
가까이에 있으면 꼭 속내가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마나가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거리를 두시나요?”
“가까워서요.”
“너무하시네.”
아일라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턱을 괸 채, 나를 따라 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그냥,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들렸어요. 남들 앞에선 하긴 힘든 일이니까.”
“···감사요?”
“저번에 아카데믹 문제 풀이 건도 그렇고,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으니까요. 게다가···.”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나를 바라봤다.
“잘 보여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예?”
그리곤 미소짓는다.
“왕녀로서도, 학생으로서도. 라니아 교수님께는 배울 게 많아 보이니까요.”
“···그렇게 여겨주시니 감사하군요.”
“성의 없으셔라.”
아일라는 옷깃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때마침 점주가 그녀에게 커피를 가져오고 있었다.
“커피도 나왔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가게에서 안 드시고 가시나요?”
“어머, 그럼 마시고 갈까요?”
“·····.”
“···그런 표정 안 지으셔도 갈 거거든요?”
툴툴대면서 그녀는 커피잔을 받아든다.
“아.”
한 손에 커피잔을 든 채,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봤다.
“조만간 또 봬요, 라니아 교수님.”
“예?”
“이번엔, 강의실에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이 또 어딜 가시나?’
그런 말 없으셨던거 같은데.
나는 커피를 마저 마시고, 나는 스승님이 있는 교수실로 향했다. 혹시 또 대타를 맡기나 싶어서.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
자꾸만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인 시선이 쏟아진다. 평소에도 날 바라보는 시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조금 심했다.
‘···뭘 저렇게 꼬라봐?’
특히, 조교수들의 시선이 매섭다.
평소엔 마주 바라보면 시선을 돌리기에 급급했던 이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시선을 받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교무실의 근처.
학사공지가 붙는 게시판.
그 앞에 나는 멈춰 섰다.
그곳에 쏠린 인파가 길을 막아선 까닭이었다.
넓디넓은 복도가 무색하도록 모인 인파.
거기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터벅.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누군가가 나를 바라본다. 손짓한다. 옆에 있는 이를 건드린다. 그렇게, 시선은 점차 모여들었다.
수군거리는 소음 사이로.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저기에 붙어있는게 도대체 뭐길래?’
나는 게시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내 눈에 큼지막한 공지가 하나 들어왔다.
마나의 거래학(기초)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
뭐야 시발.
내 이름이 왜 저깄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