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7
〈 277화 〉 죽지 못한 인간(3)
* * *
카리옷의 검에 걸린 것은 본디 축복이다.
툭하면 만신창이로 돌아오는 카리옷을 보다 못한 그녀가 카리옷의 검에 걸어주었던 축복은, 본래 그리 큰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작해봐야 작은 생채기를 치료하는 게 고작인 축복. 그리 쓸만하진 않았고, 카리옷도 검에 걸린 축복을 크게 의식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축복은 변질되고 만다.
「카리옷, 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타들어가는 마을, 불타 죽은 아이들의 시체.
「구원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을 바랐던 삶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었던 거에요.」
그을린 인간의 시체를 끌어모은 채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신실한 신자였던 그녀는, 최후의 순간 배교의 길을 선택했다.
「델로힘, 무능한 델로힘. 그 누구의 구원도 바라지 않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신.」
「아아, 카리옷. 당신은 이단 심판관이었나요? 그렇다면, 저를 심판할 건가요? 그 검으로?」
타들어가는 마을, 죽음, 영혼의 변질.
죽음의 순간 신을 저주하며 세상을 할퀴었던 여인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우습게도 그녀가 제 남편에게 선물했던 십자가의 검이었다.
순백의 검은 붉게 물들었다.
백금색의 축복은 검붉은 저주로 뒤바꼈다.
「당신은 못 죽어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구원을 찾아 헤맬 뿐이에요.」
저주에 물든 검은 배교의 증거이자, 델로힘의 교리를 모독하는 섭리에서 벗어난 물건이다. 그러나 카리옷은 끝끝내 검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와 나누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을 신의 뜻을 찾기 위해서.
“미안한데, 쿤텔.”
카리옷은 저주를 감내했다.
“난 마누라 허락 없이는 못 죽거든.”
검에 깃든 저주는, 불사(死).
카리옷은 죽음으로 하여금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를 빼앗겼다. 온몸이 갈가리 찢겨도, 머리가 짓뭉개져도 37시간이 흐르면 육신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촤아아악!
쿤텔의 검이 다시 한번 카리옷의 몸을 베었다.
찰나의 순간 수십 번의 검격이 카리옷의 온몸을 난도질한다. 핏물이 튀어 오르고, 육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허나, 카리옷은 죽지 않는다.
쪼개졌던 육신이 한순간에 제 모습을 찾는다. 쏟아졌던 핏물은 시간이 되감기듯 카리옷의 몸으로 되돌아간다.
‘35초.’
카리옷은속으로 시간을 샌다.
저주를 두른 37초 동안은 ‘부활’의 과정이 지나치리만치 빠르게 일어난다. 37초가 지난 후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테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져가며 싸울 여유가 없다.
참격에 난도질당하며 카리옷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가락은 쿤텔의 너머에 있는 갈라할과, 라니엘을 향한다. 쿤텔의 검에 갈가리 찢기며 카리옷은 미소 짓는다. 목이 찢겨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카리옷은 입 모양으로 뜻을 전한다.
기회잖아, 이것들아.
짓쳐드는 참격의 폭풍을 향해, 카리옷은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불사자에겐 불사자 나름의 방식이 있으므로.
* * *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달려드는 카리옷의 모습은 아군의 시선으로 보아도 섬뜩하기 그지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를 북부에선 광전사라 부르던가?
두려움을 모르는 북부의 전사들마저, 광전사에게는 공포를 느낀다. 덮쳐드는 죽음을 향해 제 목을 들이미는 인간은, 이미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이므로.
기사들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성녀 사라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성녀님.”
그녀를 알아본 기사들이 물러선다.
물러서는 기사들 사이로, 사라는 소매를 걷어붙인다. 손을 맞붙여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상황은 짜증 나지만.’
이런 일에 휘말렸다는 사실도, 자신이 저 배교자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도 짜증이 나지만··· 그렇다 하여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수는 없다.
일단은, 성녀였으므로.
사라는 교단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책임을 다할 필요를 느낀다. 짧게 숨을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에 신성이 깃든다.
“신이여, 저들에게 축복을.”
별이 사라의 부름에 답한다.
“신의 가호가 저들과 함께하리라.”
사라를 중심으로 찬란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2.
하늘에서 빛 기둥이 떨어진다. 카리옷과 갈라할은 그것의 정체를 모르나, 라니엘은 알고 있다.
‘축복.’
터져나오는 빛은 최상위 축복의 흔적이다.
본래 고위 사제 여럿이 모여야 내릴 수 있는 축복이, 한번에 수십 개씩 쏟아진다.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을 딱 한 명, 라니엘은 알고 있었다.
성녀, 사라.
신에게 축복받은 성녀.
베베 꼬인 심성은 둘째치고, 그녀가 부리는 신성술 만큼은 성녀의 것이 맞다. 과연, 그 효과는 가히 기적이라 부를만 하다. 핏물이 쏟아지던 육체가 단숨에 회복되기 시작한다.
‘···축복, 카리옷의 불사, 그리고 갈라할.’
라니엘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계산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판단한다.
‘어쭙잖은 체술은 먹힐 리가 없다.’
자신에게 체술을 가르친 것이 쿤텔이므로.
‘주문은 가로막힌다. 견제용 주문도, 일대를 휩쓰는 주문도 전부 베여버리고 만다.’
극한에 이른 검술은 주문마저 베어버리므로.
라니엘은 쓸모없는 것들을 하나씩 소거해간다. 그러면서도 몸을 움직이며 전투를 속행한다. 그러던 도중, 라니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콱!
죽지 않는 육신을 앞세워 카리옷이 쿤텔의 검을 받아낸다. 검에 몸이 갈라지면서도, 끝끝내 손을 뻗어 쿤텔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마저 쿤텔은 순식간에 베어냈지만, 찰나의 순간 틈이 생겼다.
라니엘의 뇌리에 번뜩임이 스쳐 지나간다.
“갈라할.”
검을 피해내며 라니엘이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갈라할을 부르며 고개를 까딱였다. 무언갈 준비한다는 신호. 그것을 알아본 갈라할이 라니엘과 교대하듯 자리를 뒤바꾼다.
만들어진 잠깐의 여유.
라니엘은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천칭(Balance).”
그녀의 앞에 천칭이 떠오른다.
수평을 이루는 천칭에는 두 개의 개념이 담아져 있다. 하나는 육체에 걸리는 부담, 다른 하나는 라니엘이 가진 막대한 양의 마나다.
배틀 메이지의 극의.
강화주문으로 하여금 육체에 걸리는 부하를 마나의 소모로 대체하는 것. 완벽한 수평을 이루고 있는 천칭에 라니엘이 손을 얹었다.
천칭이 마나를 향해 기울어진다.
대량의 마나가 천칭의 균형을 박살 낸다. 어긋난 균형 속에서 라니엘은 제 심장에 손을 얹었다.
가속(Accel).
스톡해둔 모든 회로가 하나의 주문으로 뒤바뀐다.
‘어차피, 견제를 위한 주문은 통하지 않는다.’
그럴바에 전부 날려버린다.
가속(Accel)으로 뒤바뀐 수십 개의 회로가 라니엘의 육체를 뜨겁게 달군다. 기울어졌던 천칭은 다시 수평을 이루다 못해, 이제는 아예 반대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육체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라니엘의 몸에서 증기가 피어오르고, 그녀의 눈동자에 핏발이 선다. 눈과 코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대량의 마나가 미친 듯이 타들어 간다.
화아아악!
그녀의 몸 위로 잿가루가 터져 나온다.
일대가 잿더미에 휩싸인 가운데, 라니엘이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쿠웅.
본래대로라면 그것만으로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테지만, 사라의 축복이 라니엘에게 조금의 시간을 허락한다.
잿가루를 끌며 라니엘이 약진했다.
3.
카앙!
한번의 검을 막아낼 때마다 자세가 무너진다.
검이 무겁다. 너무나도 무겁다. 갈라할은 식은땀을 흘리며 짓쳐드는 검격을 향해 창대를 휘둘렀다. 캉, 소리를 내며 쿤텔이 쥔 검이 끊어졌다.
그러나 숨을 돌릴 여유는 없다.
가볍게 옆으로 도약하며 쿤텔은 바닥에 떨어진 기사들의 칼자루를 쥔다.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새로운 검을 계속해서 노획한다. 그 모든 동작이 부드럽기 짝이 없다.
새로운 검을 쥔 쿤텔의 팔이 잔상을 흩뿌리며 움직인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파파팡!
연속해서 내지른 찌르기에, 쿤텔에게 달려들던 카리옷의 육체가 터져나간다. 금세 회복하나, 찌르기에서 이어진 횡 베기가 카리옷의 육신을 날려버린다.
“···크윽!”
이윽고 쿤텔은 갈라할을 노리고 달려든다.
카앙, 소리를 내며 갈라할이 쥔 창대가 떨렸다. 창대를 쥔 갈라할의 손가락이 부러진다.
강하다.
말이 안 될 정도로, 강하다.
검의 초인, 쿤텔.
그가 제 일생을 바쳐 완성해낸 검술은 분명한 극한의 경지에 올랐다. 한 자루의 칼을 쥐고 그가 펼쳐내는 기술은 이미 검(?)이라는 날붙이를 초월한 경지에 이르렀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결과, 죽음의 칼에게조차 닿았던 기술.
그것이 지금 온전한 육체로 펼쳐진다.
노쇠하기 시작했던 쿤텔의 육신이 아닌, 전성기 시절 이상의 육체로 펼쳐지는 기술은··· 하나하나를 받아낼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득.
갈라할의 손가락이 끊어진다. 창대가 기울어지고, 갈라할의 어깻죽지를 칼날이 스치고 지나간다. 핏물이 터져 나오며 갈라할이 창대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쿤텔의 검도 부러지고 만다.
“후윽···!”
숨을 내뱉으며 갈라할이 창을 다시 고쳐쥔 순간, 갈라할은 옆으로 도약하는 쿤텔을 보았다. 그가 도약하는 곳에 무엇이 놓여있는가.
라니엘이 전투 개시와 함께 날려버렸던, 쿤텔이 본래 쥐고 있던 칼.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며 쿤텔은 기어코 이 위치까지 도착했다. 쿤텔이 손을 뻗어 바닥에 꽂힌 칼을 주워든다. 레어메탈로 만들어진, 본래 쿤텔의 검.
“···!”
갈라할이 황급히 창을 내질렀으나, 그 궤도를 읽은 쿤텔은 가볍게 창날을 피해낸다. 회피하며 칼을 고쳐 잡는다.
한순간, 공기가 뒤바뀐다.
부러지지 않는 검, 쿤텔의 기술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는 명검. 그것을 쿤텔이 쥔 순간 일대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갈라할은 무심코 숨을 헛삼켰다.
검로(??).
검이 움직일 길이 갈라할의 눈에 보인다.
죽음을 느낀 용사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며 한시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하여 보이는 미래는 절망적이기 짝이없다.
새하얗게 물든 일대가 전부 검로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길 모두가 갈라할의 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검은 한 개 뿐이다. 수천 개의 길을 검 하나로 그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검로는 다 무엇인가?
그 의문에 쿤텔은 답을 준다.
수천의 길이 하나로 합쳐진다.
합쳐진 길은 순백의 섬광과도 같다. 섬광을 따라 쿤텔의 검이 움직인다.
틱, 티디디딕.
닿는 것이 끊어진다. 공기가 갈라지고, 공간마저 비틀리기 시작한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진공이 발생한다. 갈라할의 본능이 경고한다.
검이 그리는 궤도도.
어느 곳을 노릴지, 어떻게 휘둘러질지도.
그 전부를 알고 있더라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고. 그렇기에 초인의 검이리라. 갈라할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죽음을 느낀다.
그 순간이다.
퍽, 하고 갈라할을 밀치며 카리옷이 검의 궤적에 제 몸을 밀어 넣는다. 쿤텔의 칼날이 카리옷의 몸을 갈라버리며 휘어진다. 카리옷의 몸을 베었음에도 검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핏물을 가르며 검이 갈라할을 추격한다.
허나, 그 칼이 갈라할에게 가 닿는 일은 없다.
화악!
갈라할과 쿤텔 사이를 한순간 터져나온 잿가루가 가로막았다. 미친 듯이 흩날리는 잿가루가 한순간이지만 쿤텔의 시야를 가린다.
아무리 초감각을 지니고 있다 한들, 시야를 가려버리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시야가 좁아진 쿤텔은 잿가루 너머에서 달려드는 라니엘의 모습을 뒤늦게 파악한다. 그 대응 또한 한박자 늦어진다. 쿤텔은 곧장 검로를 틀어 파고드는 라니엘의 정수리를 노리지만, 그보다 라니엘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
한순간의 움직임에 제 모든 것을 건 라니엘이다. 그녀의 움직임은 한순간이지만 쿤텔을 압도한다.
쿠웅.
한걸음 더 앞으로 내디디며 라니엘은 내려치는 쿤텔의 검을 제 어깨로 받아낸다. 동시에, 손을 뻗어 검을 휘두르는 쿤텔의 팔을 움켜쥐었다.
어깨에 박힌 검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전투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교착상태.
그러나, 균형은 곧장 깨지고 만다. 라니엘에게 손목이 붙잡힌 상태에서도 쿤텔은 기어코 검을 더 깊게 박아 넣는다.
그리곤 꾸욱.
라니엘의 어깨에 박힌 칼날을 비튼다. 그 순간 검의 끝에 순백의 검기가 터져 나온다. 검기가 라니엘의 어깨를 집어 삼키려는 순간 채엥, 하고 무언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빨리!”
갈라할이 내지른 성창이다.
비스듬히 내려 찍힌 성창이 방출되려는 검기를 막아 세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을 타 라니엘이 남은 한 손을 움직인다.
주변을 가득 메운 잿가루가 한곳으로 모여든다.
폭발적으로 솟아난 잿가루를 움켜쥔 채, 라니엘은 주먹을 휘두른다. 아무리 상대가 주문의 근간을 베어내는 초인이라 한들, 팔이 붙잡힌 상태로도 주문에 대응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모여든 잿가루가 화염을 토해낸다. 움켜쥔 라니엘의 손가락 틈새로 불길이 넘쳐 흐른다. 쿤텔이 황급히 라니엘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도약하려 하나, 그 발목을 붙잡는 존재가 있다.
콰직.
재생되다 만 육신, 반뿐인 얼굴로 카리옷이 쿤텔의 발목을 물어뜯고 있다. 그리하여 쿤텔의 회피는 한순간 늦어지고 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섬광이 쿤텔을 집어삼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