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6
〈 276화 〉 죽지 못한 인간(2)
* * *
검의 초인, 쿤텔.
긍지 높았던 검사는 이미 죽었다. 이곳에 있는 건 썩은 내를 풍기는 언데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언데드는 악명높은 배교자(?者)가 만들어낸 것이다.
한낱 사령술사 따위가 만들어 낸 언데드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옛 용사들의 육신을 이어 만든 언데드는 스스로의 부상을 회복한다. 강건한 육체는 어떠한 신성 주문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 육신에는 쿤텔의 영혼이 더럽혀진 채 정착되어 있다.
영혼이 있기에 그것은 살아있다.
육신이 썩었기에 그것은 죽어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초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수로에는 물 흐르는 소리만이 메아리친다.
이곳에 살아있는 것은 없다.
그것을 확인한 쿤텔의 걸음이 멈췄다.
그 시선은 앞을 향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것은 지하수로의 천장. 두꺼운 벽을 바라보며 쿤텔이 검을 고쳐 잡았다.
그에게 검사로서의 긍지는 없다.
인간으로서의 이성 또한 없다.
본능과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인 인형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 칼날이 무뎌지는 일은 없다. 검의 초인이란 어떠한 순간, 어떠한 상태에서도 완벽한 검격을 선보이는 존재이므로.
스릉.
쿤텔의 검이 은백색의 궤적을 그린다.
궤적의 끝에 맺히는 것은 검기(??)요, 그것은 살아생전 쿤텔이 뽑아내던 검기보다 훨씬 거대하다.
···본래 쿤텔은 타고난 마나의 양이 적어, 검기를 거대하게 뽑아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크기를 늘리는 대신 쿤텔은 검기를 극한까지 날카롭고 얇게 벼려내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나, 죽고 다시 태어난 쿤텔의 육체에는 배교자가 주입한 대량의 마나가 잔존한다. 그것이 쿤텔의 검과 반응한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특대의 검기.
닿는 것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세찬 섬광이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빛이 범람했다.
2.
움찔.
카테론 고성 내를 거닐던 라니엘이 짧게 어깨를 떨었다.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소름 돋는 감각. 전장에서 종종 느꼈던 직감이다. 그리고, 라니아는 제 직감이 제법 잘 맞는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고개가 확, 하고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녀는 보았다.
땅 아래서 솟구치는 거대한 은백색의 검기를.
캉, 카앙!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영광입니다, 갈라할 님!”
“조금 조언을 드리자면, 거기서···?”
기사들과 대련을 하다말고, 갈라할은 고개를 휙 돌렸다. 용사의 육체를 지닌 갈라할이다. 초인에 가까운 감각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갈라할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나타났다.
재앙에 준하는, 무언가가 이 자리에 있다.
갈라할은 황급히 뒤를 돌아 기사들에게 외쳤다.
“당장 도망···!”
직후 섬광이 일대를 휩쓸며 하늘로 솟구쳤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악!
카테론 고성에 모여있는 기사들은 보았다.
땅 아래서 섬광이 솟구치는 장면을, 그 섬광이 일대를 휩쓸며 제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쿨럭, 컥, 커헉···!”
검기에 닿은 모든 게 무너져내려 주변에는 흙먼지가 가득하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는 성벽을 이루던 벽돌들.
그리고, 길게 이어진 핏자국.
섬광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이들은 시체는커녕 핏자국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육신의 일부만이 휩쓸린 이들 또한 있다. 남은 육신에선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피비린내와 함께 다른 악취 또한 풍겨온다.
그것은 시체 썩은내다.
방금 죽은 시체에서 썩은내가 날 일은 없다. 이 악취는 다른 존재의 등장을 암시한다. 악취가 풍겨오는 곳을 기사들은 바라본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의 너머, 그곳에 누군가 있다.
땅 아래에서 올라온 누군가는 손에 한 자루의 칼을 쥐고 있다. 서서히 흙먼지가 걷히고, 기사들은 그 존재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
그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다.
검(?)의 길을 꿈꾸었던 이라면, 눈앞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어야 할 존재가,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결코.
턱, 하고 쿤텔이 무너져내린 성벽의 잔해를 밟고 올라섰다.
그 누구도 감히 쿤텔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대를 찍어누르는 위압감에 기사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기를 들어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들의 윗니와 아랫니가 미친 듯이 맞부딪친다.
마치, 죽음의 칼이 나타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쿤텔 또한 그 죽음의 칼처럼 검을 들지 않는 이들은 죽이지 않는가?
스겅.
쿤텔은 검을 휘두름으로써, 그것이 헛된 기대임을 알렸다.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인 존재에게 검사로서의 긍지를 기대할 순 없는 법이다.
“커흑···.”
한번의 휘두름에 수십의 기사가 피를 게워내며 고꾸라진다. 쿤텔은 널브러진 시체들을 밟으며 잔해의 너머로 나아간다. 그곳에는 기사들이 모여있다.
그 수가 많다.
하나씩 일일이 베기에는 시간이 낭비될 뿐이다. 쿤텔에겐 주어진 임무가 있었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쿤텔은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은백색의 검신을 검기가 휘감는다.
그 검기가 다시 한 번 일대를 휩쓸려는 순간.
“갈라할.”
“예.”
두 명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땅 아래가 아닌 하늘의 위에서.
분쇄(Smash).
하늘위에서 무형의 충격파가 쏟아져나온다. 방사형으로 퍼져나오는 충격파는 쿤텔이 뽑아낸 검기에 충돌했다.
쩌억!
한순간검기가 찌그러지는 듯 싶었으나, 쿤텔의 검기는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린다. 주문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 잠깐의 시간은 유의미 하다.
뒤이어 내던져진 창이 땅 아래 도달할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냈으므로. 창과 함께 땅 아래로 착지한 갈라할이 있는 힘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아앙!
창대와 검기가 충돌한다. 갈라할의 팔이 삐걱거리고, 그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창대를 땅 아래 내리꽂으면서 갈라할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크윽···!”
모든 것을 베어내는 검기가 있다고 한들, 섭리를 초월할 수는 없다. 갈라할이 쥔 창은 성창이라 불리는 별의 무구다. 결코 꺾이는 일이 없는 무구.
성창을 앞세워 갈라할은 검기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갈라할의 열 손가락 중 절반이 부러졌다. 용사의 육신이 부러진 손가락을 회복하는 와중, 상대 또한 그것을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탁.
쿤텔이 땅을 박찼다.
땅을 박차는 소리는 가벼우나, 그 속도마저 가볍지는 않다. 한순간 코앞까지 다가온 쿤텔이 검을 내지른다. 매서운 찌르기.
그것이 갈라할의 목젖에 닿으려는 순간, 갈라할과 쿤텔 사이에 잿가루가 흩날렸다. 잿가루와 같은 색의 잿빛 머리칼 또한.
“비켜.”
갈라할을 밀쳐내며 라니엘이 쿤텔의 검을 받아냈다. 촤악, 하고 핏물이 튀어 올랐다.
3.
누군가에겐 검의 초인.
라니엘과 카일에게 있어선 스승.
자신과 카일을 살리기 위해, 죽음의 칼에게 제 목숨을 바쳤던 쿤텔의 모습을 라니엘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 삶이 그린 궤적을 라니엘은 존중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비원을 이룬 쿤텔을 존경했다.
존중하고, 존경했던 인물.
그 인물은 지금 최악의 형태로 자신의 앞에 서 있다. 라니엘은 이를 악물며 쿤텔이 내지르는 검을 향해 제 손을 뻗었다.
푸욱!
쿤텔의 검이 라니엘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그 즉시 쿤텔이 검을 올려쳐 손을 베어버리려는 가운데, 라니엘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검에 뚫린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드드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삐걱거리고, 핏물이 튀어 오른다.
눈앞에 불똥이 튀는 고통을 견뎌내며 라니엘은 끝내 검을 쥔 쿤텔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곧장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던 찰나다.
“커흑···!”
검을 놓아버린 쿤텔이 라니엘의 복부를 걷어찼다. 뒤에 서 있던 갈라할과 함께 날아간 라니엘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제 손바닥에는 검이 꽂힌 그대로다.
무기를 뺏었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라니엘은 쿤텔이 기사들의 시체에서 검을 노획하는 장면을 보고 표정을 구겼다.
하기야, 이곳엔 무기야 널리고 깔렸다.
저 정도 되는 검사의 손에 들리면 일개 병사의 칼조차 용의 목을 떨구는 명검이 되는 법이다.
‘염병, 진짜···.’
이제는 곧장 달려들지 않고 이쪽을 경계하는 쿤텔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식은땀을 흘렸다.
“당신, 손이···!”
“지금 이게문제가 아니야.”
라니엘은 신음을 흘리며 손바닥에 꽂힌 칼을 잡아 뺐다. 댕그랑,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검을 뒤로하고 라니엘은 앞을 바라봤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은 쿤텔이다.
검의 초인, 쿤텔.
죽음의 칼에게 닿은 유일한 인간이자···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강해져 있다.
‘밤의 도시 때와는 다르다.’
그때의 쿤텔은 약화되어 있었으나, 지금의 쿤텔은 아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배는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빠득, 하고 라니엘이 이를 악물었다.
전성기 이상이다.
육체는 살아생전보다 더욱 강건하며, 저 몸에는 죽음의 칼과의 접전에서 살아남은 초인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라니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스톡(Stock)된 주문들이 잇고 이어져 연쇄된 주문을 발현시킨다.
강타(Smite).
주문 다발(SpellBunch).
강화주문이 중첩된 수십 발의 강타가 쿤텔에게 쏟아진다. 수십 줄기의 섬선을 앞에 두고, 쿤텔은 가볍게 검을 휘두를 뿐이다.
스겅.
그것만으로 주문이 빛을 잃는다.
주문을 이루는 근간을 한 번에 베어버렸다. 전성기 시절 쿤텔이 그러했듯이, 눈앞의 언데드는 마법사와의 상성이 최악이다.
“···방금?”
“어지간한 주문은 안 통한다, 이거지.”
라니엘이 비틀거리며 자리서 일어섰다.
쿤텔은 기술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칼을 버리고, 새로운 칼을 주워들었다. 라니엘은 시선을 늘어트려 주변을 흘겨봤다.
‘···배교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빌어먹을 년이 나타날 때 주변에 깔리는 질척한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질척한 마나를 품은 마수 또한, 이 자리에는 없다.
쿤텔은 단독으로 쳐들어 온 것이다.
허나 그 사실에 안도할 수는 없다.
상대의 목적도 모를뿐더러, 지금의 쿤텔은 그 배교자가 걸작이라 부르던 사역마다. 라니엘이 말없이 제 뒤를 바라봤다.
성창, 갈라할.
지금 전력이 될만한 인물은 갈라할 밖에 없다.
성지를 뒤져보면 사라와 카리옷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자신에겐 없다.
지금 이곳을 떠나면, 이곳의 모두가 죽는다.
“···갈라할.”
“예.”
라니엘이 손목을 가볍게 털었다.
찢어진 살갗에서 핏물이 터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
“저 정신 나간 검기는 내가 못 막아.”
막을 수 있는 건 별의 무구 혹은, 별빛이 깃든 주문뿐이다. 수명을 태우지 않는 상태로 어떤 주문을 쓰던 검기에 휩쓸릴 뿐이다.
“부탁한다.”
갈라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라니엘이 제 손목을 풀며 덧붙였다.
“수명은 쓰지 마라.”
“···알겠습니다.”
갈라할이 성창을 고쳐쥔다. 라니엘은 마나를 더 빠르게 태우기 시작한다. 주변에 잿가루가 흩날리고, 갈라할을 기점으로 별빛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쿤텔은 검을 휘두른다.
덮쳐드는 순백색의 섬광을 향해 갈라할과 라니엘이 뛰어들었다.
* * *
검과 마법이 충돌한다. 열기가 일대를 휩쓰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증발한다. 별빛을 머금은 창날과 칼날이 부딪치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촤아아아악!
싸움의 여파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기사들은 넋 놓은 채 그들의 싸움을 지켜본다. 저곳은 이미 별세상이다. 자신들로선 껴들 수 없는 곳.
검기가 일대를 휩쓸며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다시 한번 은백색의 섬광이 가르고 지나간다.
몇번의 섬광이 번뜩인다.
찰나에도 수십, 수백의 주문이 쏟아진다.
그 누구도 감히 그곳에 다가갈 생각을 못하는 가운데, 기사들의 사이로 누군가 움직였다.
“비켜봐, 이것들아.”
기사들이 하나둘 물러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저들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인물을 흘겨봤다. 며칠 전부터 카테론 고성에 머무르는 인물.
불사의 카리옷.
평소와는 다르게 그는 관짝을 짊어지고 있지 않다. 그 손에는 흉흉한 붉은색의 십자가 검만이 쥐어져 있을 뿐이다.
기사들을 넘어 앞으로, 다시 앞으로.
카리옷은 일 초에도 몇 번씩이고 섬광이 휩쓰는 전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다. 전장을 향해 정면으로.
그가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이다.
기어코 갈라할과 라니엘을 떨쳐낸 쿤텔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다른 검을 움켜쥔다. 부러진 검으로도 둘을 밀어붙이던 쿤텔이다. 그 손에 다른 검이 쥐어진 순간, 라니엘의 동공이 크게 뜨였다.
새로운 검을 쥔 채 쿤텔이 기술을 펼친다.
리히테나류, 제 1식. 절검(??).
검기가 한계까지 농축된다.
농축된 검기를 머금은 칼날은, 더이상 끊어지지 않는다. 라니엘이 사방에 깔아둔 주문이 연달아 점멸하며 쿤텔의 검을 막아 세우려 하지만, 칼날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끊어낸다.
칼끝에 한계까지 농축된 검기는, 몸에 파고드는 순간 사방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오리라.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제 한쪽 팔을 희생하려 한다.
그 순간이다.
휘둘러지는 쿤텔의 검에 카리옷이 제 몸을 밀어 넣었다. 라니엘이 눈을 크게 뜨는 가운데, 쿤텔의 검이 카리옷의 심장에 파고든다.
그리고, 촤악.
내부서부터 터져 나온 검기가 카리옷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쏟아지는 육편과 핏물을 넘어, 쿤텔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이다.
카앙!
쿤텔의 등 뒤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온 칼날이나, 쿤텔은 그마저 막아낸다. 하지만 검을 쳐내는 순간 쿤텔의 미간이 한순간 좁아졌다.
갈가리 찢어졌을 카리옷이 멀쩡히 서 있다.
“미안한데, 쿤텔.”
흉흉히 빛나는 붉은색의 도신.
그 도신에서 뻗어나온 가시덩굴이 카리옷의 몸을 휘감고 있다.
“난 마누라 허락 없이는 못 죽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