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5
〈 275화 〉 죽지 못한 인간(1)
* * *
카리옷이 짊어진 십자가 형태의 관은 본래 한 자루의 칼을 위한 칼집이다. 검붉은 십자가 형태의 대검을 카리옷은 관 안에 수납했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말이다.”
관을 짊어지며 카리옷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나보다 유능한 놈들을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장에서 돌려보낼 수는 없잖냐. 실제로 젊었을 땐 그렇게 우겼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있거든.”
카리옷이 제 목에 걸린 십자가를 잡아당겼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기 위해선, 강한 힘이 필요하지. 힘없는 신념은 허구일 뿐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그게 내가 초인이 되려는 이유야. 용사님.”
초인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에겐 저마다의 신념이 있다.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누군가에겐 복수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며, 또 누군가에겐 재결투를 위함이다.
카리옷이라 하여 그닥 다르지 않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며,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 그 또한 무언갈 바라기에 초인이 되고자 한다. 카리옷은 십자가 장식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내가 초인이 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놈이 된다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가 피식, 미소 지었다.
“나보다 약하고, 어린놈들은 전장에서 썩 꺼지라고. 너희가 즐길 거 다 즐기고 올 때까진, 이 아저씨가 전장에 서 있을 거라고.”
카리옷이 지은 미소는 시원스럽다.
이십 년을 마경에서 보내온 군인이라기보단, 동네 아저씨 같은 웃음을 흘리며 카리옷이 말했다.
“그게 얼마나 멋진 삶이냐. 그게 내 꿈이다. 내 마누라랑 약속한 꿈이고.”
“···그렇습니까?”
“그런 거지. 그러니까 말이다.”
성큼.
한걸음 내디딘 카리옷이 팔을 쫙 벌렸다.
한쪽 팔은 갈라할의 목에, 다른 한쪽 팔은 라니아의 목에 두른 채 카리옷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놈들이 인생 다 산 것처럼 얼굴 좀 구기고 다니지 말란 소리다. 아직 인생도 제대로 못 즐겨 본 것 같은 놈들이, 곧 죽을 것처럼 인상을 팍팍 쓰고 다니면 이 아저씨 마음이 아파요.”
곧 죽을 놈들처럼.
그 말에 갈라할과 라니아가 침묵한다.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카리옷이 쓰게 웃었다.
“인생 뭐 별거 있냐.”
툭, 하고 가볍게 어깨를 두들기며 카리옷이 라니아와 갈라할을 놓아주었다.
“즐기면서 살아라. 즐기면서.”
2.
카리옷의 시련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진행됐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안한데, 이 검이 삼십칠 시간에 한번 밖에 못 쓰는 거거든. 말로 하면 좀 복잡한데···.”
“라니엘 오빠한테 들었어요. 그렇게 하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카리옷이 쥔 마검··· 그러니까, 본인은 성검이라 주장하는 그 십자가 검의 특성을 알고 있었으니까.
‘삼십칠 초, 그리고 삼십칠 시간의 제약.’
37초 동안 사용 가능한, 37시간의 주기를 가진 마검. 그 법칙은 절대적이어서 성배의 시련 속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가씨.”
“시련은 어때요?”
“음, 역시 쉽지는 않아. 결판을 낼 거면 37초 안에 내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
시련에 한번 도전하고 난 뒤 카리옷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보이는군.”
“그래요?”
“벽을 본지도 십 년 정도 됐고, 벽도 제법 허물어진 상태였으니 말야. 슬슬 초감각도 보이고.”
오랫동안 전장에서 살아온 만큼, 카리옷은 초인에 근접해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초감각에도 눈을 뜬 상태였으므로, 시련에 통과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시련의 형태는 어떻게 나왔어요?”
“음, 꼭 말해야 하나? 필요한 거면 말하고.”
내 질문에 카리옷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침해받고 싶지 않은 부분이란 듯한 반응이었기에,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배려 고마워, 아가씨.”
카리옷은 카테론 고성에 머무르는 동안 별 탈 없이 기사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종종 기사들과 대련을 치르기도 하며, 그 사이에 잘 녹아들었지만···.
“거기 당신.”
도무지 사람 새끼가 같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도 존재하는 법이다.
“잠깐 나 좀 봐요.”
성녀, 사라.
카리옷과 함께 분홍머리 걸레 짝이 카테론 고성에 찾아온 지 사흘 차. 그녀가 나를 따로 불러냈다.
* * *
“내가 개새끼냐? 니가 부른다고 가게?”
“누가 동정 마법사 제자 아니랄까 봐, 말하는 꼬라지가 왜 그렇게 천박해요? 입에 걸레 물었어요?”
나는 오른손으로는 중지를, 왼손으론 약지와 중지를 함께 세워 사라를 가리켰다. 심히 신성 모독적인 욕설을 담은 손동작이었는데, 그닥 효과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는 짓거리가 라니엘하고 똑 닮았··· 에휴, 됐다.”
사라가 피곤하다는 듯 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나도 당신하고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거든요?”
“근데 왜 부르고 지랄이야. 기분 더럽게.”
“카일이 당신한테 전하라고 한 게 있으니까요. 그것만 전해주고 갈 생각이에요.”
···카일 그 녀석이?
사라는 한숨을 쉬며 제 로브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낡은 줄 끝에 매달린 것은 녹이 슬은 동색의 장신구다. 빈말로도 세련됐다곤 말할 수 없는 오래된 장신구지만···.
그 장신구를 보는 순간,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걸 나한테 전하라고 했다고?”
“더 정확하겐 당신 스승인 라니엘한테요. 당신, 이게 뭔 줄 알아요? 카일이 차고 다니는 건 몇 번 봤는데···.”
물론 알고 있다.
고향이 불타 사라지고 몇 년 뒤, 우리는 다시 고향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날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타지 않고 남은 물건 몇 개를 건져냈고, 이 목걸이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유품이지. 아버지가 어머니께 선물했던 목걸이지만, 지금은 유품이 되어버렸군.」
카일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그을음이 남은 동색의 장신구에 줄을 달아 제 목에 걸었다. 그때 카일이 지었던 씁쓸한 표정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잊지 않겠다. 절대로.」
주어가 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 벌어졌던 참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
그때의 카일은 부모님의 유품을 목에 건 채 저 자신에게 맹세하는 듯 싶었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이제 와서 맹세를 번복하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자신은 잊었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면, 무슨 뜻인가.
그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사라를 바라봤다. 사라는 내 앞에 목걸이를 흔들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려요? 이게 뭔지 아냐니까요?”
“넌 몰라?”
“그야 모르죠. 카일이 아무런 설명 없이, 이 목걸이 하나만 건넸는걸요. 당신한테 전하라고.”
사라에겐 목걸이에 대해 말하지 않은듯싶었다.
나는 사라가 눈앞에서 흔들던 목걸이를 낚아챘다.
“흔들지 마.”
“···뭐, 뭐에요? 어차피 낡은 목걸이인데.”
“넌 진짜··· 후, 됐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다른 말은 없어? 전할 말이 있다던가.”
“아무 말 없이 목걸이만 건넸다니까요.”
“그럴 놈이 아닌데.”
생색내듯 뭐라도 한 마디를 붙이거나, 의미심장한 말을 던질 녀석인데. 내가 그렇게 목걸이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자니, 사라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당신.”
사라가 성큼, 내게 한걸음 다가왔다.
“당신 도대체 뭐에요?”
그녀가 손가락을 세워 나를 가리켰다.
“도대체 뭔데, 카일을 잘 안다는 듯이 말해요? 카일하고 무슨 사이길래?”
성녀로서의 가면은 집어 던진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날이 선 사라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감정이 묻어나왔다.
‘어째 그 귀쟁이년하고 치고받고 싸우던 여행 초기에 들었던 목소리 같은데···.’
사라가 카일을 사이에 두고 레미아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싸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사라가 레미아에게 내뱉었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지금 사라가 내게 뱉는 목소리는 닮아있었다.
‘···도대체 왜?’
영문을 모르겠어서 내가 눈을 깜빡였다.
짜증을 내는 거야 이해가 가는데,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건 명백한 질투였으니까. 자신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상대를 향한 질투.
질투를 왜 해, 나한테.
“아무것도 아닌 게, 그 동정 마법사 제자라는 이유 하나로··· 쯧.”
사라가 혀를 찼다.
“카일한테 꼬리 치지 말아줄래요?”
···뭐?
“뭐라고?”
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너 방금 뭐라 했냐?”
“꼬리 치지 말라고요. 도도하게 굴면 카일이 관심이라도 줄 거라고 생각해요? 하여간···.”
꼬리 치지 말라고?
내 고개가 조금 더 기울어졌다.
“내가? 꼬리를 쳐? 그 새끼한테?”
“아니에요?”
사라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던데.”
와.
“와··· 잠깐만. 와, 아니···.”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헛웃음이 짜증으로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진짜 미친년인가?”
너 일로와 봐, 씨발아.
3.
“으윽, 으으으으으으으윽!”
사라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며, 구두굽으로 바닥을 연신 내려찍었다.
“그 미친년, 진짜 미친년···!”
새하얀 피부에는 멍이 들어있으며, 윤기가 좔좔 흐르던 분홍빛 머리칼은 엉망이 되어있다. 이게 다 머리칼을 쥐어뜯고 대뜸 뺨에 주먹을 날린 그 미친년 때문이다.
꾸욱.
제 입술을 꾸욱 깨물며 사라는 신성 주문을 읊었다. 미용을 위해 개발한 치유마법답게, 붓기는 빠지고 머릿결에는 다시 윤기가 흐른다. 하지만 뭉텅이로 빠진 머리칼은 돌아오지 않는다. 빠진 머리칼은 성녀의 주문으로도 회복할 수 없기에.
“라니아, 라니아 반 트리아스···.”
소녀의 이름을 곱씹으며 사라는 이를 갈았다.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다. 성녀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개길 수 있는 인물이 라니엘 말고 달리 있던가?
“진짜 라니엘 아니야?”
진리에 근접했으나, 사라는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델로힘께선 영과 육의 변화를 ‘불가능’ 하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럴 일은 없다.
‘카일도 그렇고, 레미아도 그렇고···.’
저 소녀를 특별 취급한다.
최근에는 레미아 마저 ‘엘프의 은사께서 아끼는 인간이다.’ 라고 말하며 소녀에 대한 욕을 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 태도가 사라는 몹시 불쾌하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년에게 카일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년이 카일의 앞에서 도도하게 구는 것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짜증 나는 것은.
그 소녀와 만난 이후 이상해진 카일의 모습이다.
“후우···.”
사라가 제 미간을 짚은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카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렇게 연거푸 한숨을 내뱉다 말고, 사라가 숨을 헛삼켰다. 무언가 시야에 잡힌 까닭이다.
“······.”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은 비스듬히 땅 아래를 향한다. 별에게 축복받은 그녀의 눈동자는 불온한 것을 곧장 짚어내곤 한다. 녹빛의 눈동자에 보이는 것은 안개다.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
불온한 무언가가, 걸어나온다.
한 자루의 칼을 든 채 고요히.
* * *
카테론 고성에서부터 이어진 지하 수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문득 멀찍이서 들려오는 걸음 소리에 눈을 떴다.
“···걸음 소리 들리지 않아?”
“나도 들려.”
병사들이 하나둘 눈을 뜬다.
그들은 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귀를 기울인다.
‘한 명이다.’
한 명분의 걸음 소리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걸음소리가 가까워지자, 지독한 악취가 확 풍겨왔다.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수로에 비스듬히 세워뒀던 창칼을 집어들었다.
살이 썩는 냄새.
죽지도, 살지도 못한 존재의 악취.
이건 언데드의 악취다.
어디서 언데드 한 마리가 지하수로에 기어들어온 것일까?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다가오는 언데드를 시야에 담는다.
한마리 정도야, 별것 아니다.
어둠 때문에 언데드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 됐든 죽여야 할 대상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병사 중 하나가 앞장서 걸었다.
“빨리 죽여버리고 쉬게.”
그리 중얼거린 병사가 다가오는 언데드에게 창을 내질렀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떨어진 것은 병사의 목이다.
촤아아아아악!
피분수를 내뿜으며 병사의 몸이 옆으로 기울여진다. 그리고, 첨벙. 수로 속으로 병사의 몸이 가라앉는다.
“···어?”
병사들이 눈을 크게 뜬다.
뒤늦게 병사들이 창칼을 내질러 보지만, 늦었다. 이미 너무나도 늦은 뒤다.
툭, 그리고 첨벙.
가벼운 소리만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단칼에 목이 날아간 병사들의 시체가 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무, 무슨!”
병사들의 뒤에 서 있던 기사가 제 무기를 쥔 채 앞으로 달려나간다. 쓰러지는 시체들 너머로, 걸어오는 언데드의 얼굴이 기사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째서 당신이?”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기사의 얼굴은 공포로 물든다.
그걸로 끝이다.
다시 한번 툭, 하고 가벼운 소리와 함께 기사의 몸이 허물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초인의 검 앞에선 기사나 병사나 한낱 인간에 불과하므로.
검은 계속해서 휘둘러진다.
검기를 두르지도 않았으나, 그 칼끝은 지하수로의 벽을 가르고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가볍게 베어낸다. 칼이 그리는 궤적을 그 누구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므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요란하지 않다. 고요하다.
지하수로에 흐르는 물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다.
물은 어느샌가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물 위로는 인간의 시체가 떠내려간다.
툭, 또다시 툭.
연달아 울려 퍼지는 소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수로에 잠긴 채 흘러가는 기사는 공허한 눈으로 언데드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언데드라 부르는 것조차 모독이 될 인물의 모습을 본다.
고대 이후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 불린 인물.
죽음의 칼에게 닿은 유일한 인간.
검의 협곡의 마지막 생존자.
그러나, 이제는 영락해버리고 만 초인.
검의 초인 쿤텔.
그가 카테론 고성에 돌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