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4
〈 274화 〉 성기사가 신을 안 믿음(4)
* * *
데스텔은 눈앞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봤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던 베르타 협곡은 이제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다. 재탈환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오래도 걸렸다.’
베르타 협곡은 전략적 요충지다.
인류가 아닌 마왕군에게 있어서 그렇다. 한때 베르타 협곡의 주인이었던 흑룡은 죽고 나서도 짙은 마기를 남겼다.
그리고, 마기는 사령술의 재료다.
재앙이 죽고 남긴 마기를 머금은 베르타 협곡은 사령술사들이 공방을 차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령술사들은 베르타 협곡에 수십 채의 탑을 세웠으니까.
탑에서는 매일같이 용골병들이 찍혀 나온다.
이미 죽어 두려움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 언데드 병사들이 양산된다. 쏟아지는 병사들을 상대로 동부전선은 소모전을 강요당해야 했다.
‘이제야 한숨 돌리겠군.’
하지만, 이젠 아니다.
베르타 협곡의 탑들은 무너트렸고, 밤낮으로 사제들이 정화 주문을 읊고 있으니··· 다시는 저곳을 공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리라.
섬멸전을 성공한 덕분이다.
오랜기간 세운 작전이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만큼, 데스텔은 조금의 달성 감을 느낀다.
“근데 말야.”
그렇게 달성 감에 미소 짓다 말고, 데스텔은 고개를 돌려 막사의 한구석에 앉아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넌 왜 아직도 여기 있냐?”
“라니아 교수님이 데스텔 님께도 배움을 청하고 오라 하셨어요.”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
그녀가 빛나는 눈동자로 데스텔을 바라보고 있다. 데스텔은 그 시선이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배교자를 연상케 하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한테 뭘 배우겠다고?”
“네.”
“배울 게 있나? 갈라할한테 충분히 배운 거 아니었어? 나보단 그놈한테 배울 게 더 많을걸.”
데스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그닥 많지가 않았다. 끽해봐야 잔머리를 굴리는 게 고작일까.
“너 참모라도 되려고?”
“아니요?”
“근데 왜?”
클로에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데스텔 님은 가장 현실적인 용사님이시잖아요.”
움찔, 하고 데스텔이 몸을 굳혔다.
‘현실적인 용사.’
한때는 그렇게 불렸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세간에서 데스텔은 비굴이란 멸칭으로 불릴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용사’는, 타협을 하면서도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므로. 더는 이상을 추구하지 않게 된 자신에게 어울리는 칭호는 아니었다. 데스텔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언제적 별명을···.”
“망루에서 이야기해주셨던 게 많은 도움이 됐는걸요.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됐어요.”
“···그게 도움이 됐다고?”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라는 건 마냥 동화 같지만은 않다는 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거.”
아직은 미숙한 소녀는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갈라할 님과, 데스텔 님을 지켜보며 조금은 알게 됐어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배워보려고요.”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는 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할 테니까.”
그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다.
각오를 다지고, 저 스스로가 걸을 길을 선택한 이의 눈빛이다. 흔들림 없는 시선 앞에 데스텔은 잠시동안 침묵했다.
막사에 맴돌던 침묵이 깨진 것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데스텔이 의자를 밀고 일어선 순간이다.
“······.”
데스텔은 말없이 막사의 한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옷걸이가 하나 놓여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옷 한 벌 또한. 그것을 향해 데스텔이 손을 뻗었다.
펄럭.
옷을 허공에 한번 털고, 데스텔은 외투를 닮은 옷을 어깨에 둘렀다.
“그래 뭐···.”
용사에게 지급되는 정복.
비굴이라 불리게 된 뒤로, 정복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데스텔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어깨에 두른 채 데스텔은 막사의 바깥을 가리켰다.
“알려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겠지만.”
그가 툭, 하고 클로에의 머리를 건드렸다.
“조언 정도는 해주마.”
2.
“근데 거기 아가씨도 강하나?”
갈라할과 대련을 위해 걸음을 옮기는 와중, 카리옷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싸울 만큼 싸웁니다.”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잿빛 마법사 그 녀석의 동생이라고 했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옷은 소리 내 웃었다.
“그럼 잘 싸울 만도 하지. 그래서, 아가씨 오빠는 잘 지내던? 은퇴했다는 소문만 들었지, 뭐 하고 지내는지는 들은 게 없어서.”
잘 지내냐, 라.
나는 쓰게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고, 그렇게 말하던데요.”
“새로운 직업이라. 뭐든지 할만한 녀석이긴 하지.”
“워낙에 유능하신 분이니까요.”
쿨럭, 하고 갈라할이 헛기침을 했다.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나를 흘겨보는 갈라할을 무시하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젊은 놈이 애쓰긴 했지.”
카리옷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재미 좀 보고 사나? 그녀석.”
“재미라뇨?”
“세상 재미없게 사는 놈이었으니까. 들린 소문으론 아랫도리 한번 못 놀려봤다면서.”
움찔, 하고 내가 몸을 짧게 떨었다.
카리옷이 쯧쯧, 혀를 찼다.
“뜨거운 밤을 보내본 적도 없는 놈이 현자라니.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아? 재미 좀 보고 살라고 해. 세상에는 즐거운 일이 많으니까.”
“···그럴 여유가 없는 분이라 그래요.”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못 한 거겠지.”
꽈아아아악.
움켜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다. 나는 카일처럼 천박하게 놀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럼 이제부터라도 즐기면서 살라 그래.”
“그런 게 아니라···!”
빽, 하고 소리를 지르던 나는 카리옷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아닌 먼 곳을 바라보며 카리옷은 쓰게 웃고 있었다.
씁쓸한, 그리고 아릿한 웃음.
“새파랗게 젊은 놈이, 해본 것 만큼이나 안 해본 게 많은 놈이··· 세상 다 살아본 듯한 표정 짓고 다니는 건 썩 볼만한 게 아니거든.”
3.
쿵!
카리옷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관을 내려놓자 땅이 얕게 울렸다. 십자 형태의 관을 카리옷이 발로 툭 건드렸다.
“내가 쓰는 무기가 좀 많아서.”
꺼내든 무기를 카리옷이 공중에 집어 던졌다. 공중에 떠올랐던 날붙이들은 칼날을 아래로 향한 채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푹.
날붙이가 부드럽게 지면에 파고든다.
그 깊이는 제각각이여, 얼핏 보면 난잡해 보이지만··· 바닥에 꽂힌 날붙이들 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카리옷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규칙이.
“그래, 성창의 용사님.”
카리옷이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었다.
뽑아든 날에는 피비린내가 짙게 풍겨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카리옷이 칼을 들어 올려 제 얼굴을 가린 순간 칼날은 백금색으로 빛난다.
신성(??).
신성이 깃든 칼날에선 더이상 피비린내가 진동하지 않는다. 빛나는 칼날로 제 얼굴을 가린 카리옷의 모습은 고결한 성기사와도 같다. 그 상반신에 가득한 흉터는 카리옷의 고결함에 작은 흠결조차 내지 못한다.
“한 수 부탁하지.”
그에 대응하듯, 갈라할이 성창을 양손으로 고쳐잡았다. 창날이 향한 곳에는 카리옷이 있다.
한 번의 시선 교환.
한 번의 깜빡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은 땅을 박차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쩌억, 소리를 내며 성창과 신성을 두른 칼날이 맞부딪친다.
신체능력은 갈라할이 우세한다.
창날을 휘두르는 속도도, 무기에 담긴 힘 또한 갈라할이 더 높다. 그러나, 창과 칼날이 맞부딪친 순간 갈라할은 직감했다.
물러서야한다.
오랜시간 전장에서 다져온 직감이다. 그리고, 그 직감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카리옷의 칼날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창대를 넘어 갈라할에게 향한다.
카앙!
창대를 빙글, 돌려 칼날을 후려친 갈라할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야.”
카리옷은 칼을 쥔 손목을 문지르며 감탄했다.
“역시 용사님이시군. 남달라. 초견(??)이면 한 번쯤은 통하는 기술인데.”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카리옷이 클레이모어를 갈라할을 향해 투창하듯 집어던졌다. 백금색의 칼날이 한줄기의 선을 그리며 갈라할에게 날아간다.
캉, 당연하게도 격추된다.
갈라할이 가볍게 창을 휘둘러 칼날을 쳐낸 순간, 카리옷은 이미 자세를 낮춘 채 갈라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양손에는 각기 다른 날붙이가 쥐여져 있다.
카카캉!
불똥이 튀어 오른다.
그마저도 막아낸 갈라할이 창대를 휘두르자, 카리옷은 양손에 쥔 날붙이를 교차해 창대를 막아냈다.
쩌적.
허나, 무기에 무리가 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갈라할이 쥔 성창은 별의 무구 중에서도 무겁기로 유명하다. 성창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 갈라할은 일 년에 가까운 단련을 해야만 했다.
그 단련의 성과는 갈라할을 배신하지 않는다.
파삭!
힘으로 찍어누른 창대가 카리옷이 쥔 날붙이를 박살 낸다. 그대로 카리옷의 어깨를 찍어누르려는 순간, 카리옷은 부서진 무기를 놓아버린다.
그리곤 빙글.
제자리에서 반바튀 회전하며 창대를 회피한다. 쩌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찍힌 창대를 카리옷은 제 발로 찍어눌렀다.
그러나 카리옷 또한 무기를 잃은 상태다.
반격이 오지 않으리라 갈라할이 예상한 순간, 카리옷이 등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멀리 떨어진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구웅.
바닥에 박혀있던 날붙이가 허공에 떠오른다. 떠오른 날붙이들은 일제히 카리옷을 향해 날아온다.
신성 주문, 인력.
본래는 가벼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는 마법이나··· 교황에 필적하는 신성을 가진 카리옷이 쓴다면 그 결과 또한 달라지는 법이다.
떠오른 날붙이가 한둘이 아니다.
열댓 개에 가까운 날붙이가 카리옷을 향해 날라오는 가운데, 카리옷은 가장 먼저 도착한 날붙이를 양손에 쥔다. 그 손에 쥐어진 것은 육중한 대검.
초 근거리에서 대검이 휘둘러진다.
대검이 짓쳐드는 가운데, 갈라할은 회피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창대를 옆구리에 끼운 채 캉, 하고 창대를 손바닥으로 찍어눌렀다.
쿠구구구궁!
바닥에 박혔던 창대가 튀어 오른다.
창대를 발로 짓밟고 있던 카리옷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그 틈을 노리고 갈라할이 즉시 반격을 가한다.
카리옷은 대검을 놓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무기들을 차례로 붙잡으며 반격에 맞선다. 캉, 카앙 하고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불똥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갈라할은 느낀다.
‘까다롭다.’
별빛을 쓰고 있진 않다고 하나, 까다로운 상대다.
전장에서 성기사들을 만나본 적은 제법 많으나, 눈앞의 상대처럼 다양한 무기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성기사는 본 적이 없다.
변칙적이다. 예상할 수가 없다.
얼핏보면 잡기술처럼 보이나, 무기와 무기 간의 연계가 부드럽다. 무기를 쥔 자세 또한 제대로 잡혀있다. 일격 일격이 까다롭다.
각이 잡힌 기술이 아닌 실전에서 단련된 기술이다. 무언갈 상대하기 위한 검이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한 검에 가깝다.
카앙!
공격과 공격이 오간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라니엘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까다로울 걸, 엄청.”
그녀 또한 카리옷과 붙어본 적이 있다.
카일과 카리옷이 맞붙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다.
‘까다로운 상대였지. 특히 그 십자가의 검은··· 진짜 성가셨고.’
성기사들의 올곧음이 카리옷에겐 없다.
카리옷의 검은 자유분방하다. 하나의 무구를 극한까지 다룬 게 아닌, 여러 종류의 무기를 골고루 다룰 줄 알기에··· 오히려 더욱 성가시게 느껴진다.
결정적인 일격은 없다.
그러나, 잔재주가 많다.
“뭣보다, 검만을 쓰는 게 아니니까.”
라니엘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다.
카리옷이 제 목에 차고 있는 십자가를 꾹, 움켜쥐었다. 그 순간 피어오른 신성이 부서지려는 카리옷의 검을 감싼다.
그리하여, 카리옷의 칼은 일격을 더 견뎌낸다.
일격을 견뎌내고 부서지는 칼을 버리고, 카리옷은 또다시 새로운 무기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를 향해 날라오는 날붙이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델로힘 교단의 무기, 기사들의 무기, 그리고 개중에는 마왕군에게서 노획해온 무기마저 있다.
카리옷은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듯 카리옷은 몇 번이고 무기를 바꿔가며 싸움을 잇는다.
캉, 카캉!
한참동안 싸움은 이어졌고, 바닥에는 박살 난 날붙이들이 가득하다. 이제 카리옷에게 남은 것은 십자가를 닮은 형태의 대검이다.
“휘유, 말도 안 되는 걸. 몇 번을 내려쳤는데 흔들리는 기색 하나 없다니···.”
카리옷이 쓰게 웃으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갈라할 또한 마찬가지다. 카리옷이 가진 무기가 다 부러질 동안 갈라할은 결판을 내지 못했다.
그 사실에 갈라할은 놀라움을 느낀다.
상대를 얕잡아 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치 못한 탓이다. 갈라할이 놀라움을 느끼는 가운데, 카리옷이 입을 열었다.
“사실 하나 더 남긴 했는데 말야.”
그는 제 손에 쥐어진 검을 가리켰다.
십자가 형태의 검. 피를 잔뜩 먹은 칼날은 흉흉한 검붉은 색을 띄고 있다.
“이게 내 원래 무기거든. 내 마누라가 축복을 꾹꾹 눌러담아 준 무기.”
“···부인분이 계셨습니까?”
“교단의 고위 사제였지. 멋진 여자였어. 지금은 죽었지만.”
갈라할이 턱, 하고 말문이 막힌 가운데 카리옷은 괜찮다는 양 칼을 고쳐잡았다.
“레어 메탈로 만든 거라 부서지진 않겠지만··· 이런 대련에서 쓰긴 좀 꺼림칙하거든. 결판도 이미 난 것 같고.”
카리옷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진 것 같지?”
더 하려면 할 수 있으나, 여기까지 하는 게 맞다.
카리옷은 그렇게 생각했고 결투를 지켜보던 라니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카리옷은 저 십자가의 검에 깃든 게 ‘축복’이라고 표현했지만··· 라니엘이 보기에 그것은 축복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다.
오히려, 저건 저주에 가깝다.
“휘유. 검 한번 싹 갈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좀 심한걸. 돈이 제법 나가겠어.”
바닥에 널브러진 날붙이를 발로 툭툭, 밀어 정리하며 카리옷이 갈라할에게 다가섰다.
“좋은 대련이었어.”
“저도 한 수 배웠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카리옷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한테 묻고 싶은 게 뭐지?”
잠깐의 고민 후, 갈라할이 질문을 던졌다.
카리옷이 초인이 되고 싶은 이유, 그리고 카리옷이 전장에 머무르는 이유에 관한 질문을.
“하인켈 녀석과 똑같은 질문인걸.”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카리옷이 뚜껑을 닫은 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싸우는 이유야 단순하지. 내가 믿는 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선, 내가 앞장서 싸워야 하니까.”
“신의 뜻, 말씀이십니까?”
“하하. 잘 모르겠단 얼굴이군. 하기야, 신의 사도라 불리는 용사님들이 보기에 나는 이상하긴 할 거야. 하지만 나도 성기사거든.”
신을 믿고, 신께 힘을 빌려 오는 성기사.
그리 중얼거리며 카리옷이 제 목에 걸어둔 십자가를 들어 올렸다. 십자가는 때 묻었으나 여전히 빛나고 있다.
“내 내면의 신께선,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거든. 어린놈들이 손에 파묻히는 건 더 싫어하고, 어린놈들이 죽는 걸 가장 끔찍하게 여기시지.”
후, 하고 짧게 숨을 뱉은 카리옷이 손가락을 뻗어 갈라할을 가리켰다.
“용사님 같은 어린놈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걸 보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껴. 언제나. 그래서 전장에 서 있는 거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예? 저는 그리 어리지 않은···.”
“용사님 올해 몇 살이지?”
“스물여덟입니다.”
“아직 애새끼잖아.”
“···예?”
카리옷이 시원스레 웃었다.
“나보다 어리면 다 애새끼야.”
폭력적인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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