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3
〈 273화 〉 성기사가 신을 안 믿음(3)
* * *
카리옷이 대장간으로 향한 직후, 라니아는 턱을 괸 채 테이블에 놓인 성배를 매만졌다. 앞선 두 명의 도전자는 초인이 되지 못했다.
‘솔직히 나디온 님은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 머리가 새하얗게 센 노인이지만, 나디온은 언제나 높은 곳만을 바라봤다. 라니아가 보기에, 나디온은 초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벽을 보았다. 제 약함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고개를 숙이며 좌절했으나,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본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닿기를 소원한다.
그것이 초인의 근본(??)이며, 나디온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 나디온이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에 라니아는 씁쓸함을 느낀다.
나디온이 벽을 넘지 못한 이유가 너무나도 잔인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벽을 넘을 수 있었을 텐데, 이거 아쉽군요. 시간의 흐름이 야속합니다.」
노쇠(?).
나디온의 영혼은 강하게 있고자 하나, 나디온의 육신은 더이상 영혼의 강함을 따르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에 휩쓸린 육신은 이미 망가지고 말았으니.
‘···시간이 너무 흘렀으니까.’
역사 속의 영웅조차 나이를 먹고 노쇠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언젠가는 늙어 죽게 된다. 세상의 섭리를 곱씹다 말고 라니아는 문득 웃음을 흘렸다.
“너나 나나 늙어 죽을 일은 없겠네.”
섭리에서 벗어난 수단에 손을 댄 대가일까.
라니아의 말에 갈라할은 쓰게 웃었다.
“그건 그렇겠군요.”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평범한 삶과는 아득히 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늙어 죽는다는 평범한 결말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건 그렇고, 라니아.”
갈라할이 화제를 돌렸다.
“카리옷이란 그분, 어떤 분이십니까?”
“응?”
“분명 이명이 불사(死)라고 하셨죠? 저는 그분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으음.”
라니아가 턱을 매만졌다.
카리옷이 어떤 사람인가.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질 않는 인물이었으므로.
“카리옷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냐, 라. 솔직히 쉽지 않은 질문이네.”
“당신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보면··· 썩 마음에 드는 분이신가 봅니다?”
“응? 그건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니아에게 갈라할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답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던 욕부터 하고 보지 않습니까, 당신.”
“사람 같아야 사람대접을 해주지.”
갈라할의 말을 적당히 흘려넘기며, 라니아는 제 턱을 매만졌다.
불사의 카리옷, 혹은 모독의 카리옷.
그를 처음 마주한 건 델로힘 교단의 지원병력이 늦어진다는 전보를 받고, 교단의 부지로 향했던 때였다. 그때, 그곳에서 라니아는 보았다.
「비키게, 카리옷.」
「죽어도 못 비키지. 추기경 나리. 이건 양보 못하겠거든.」
교단의 군세를 홀로서 막고 있는 카리옷.
카리옷과 대치하고 있는 델로힘 교단의 병사들을.
「저런 애새끼들을 전장으로 보내느니, 여기서 다 때려눕히는 게 내 마음이 편해.」
···델로힘 교단에는 고아들이 많다.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들은 교단에 거두어져, 교단의 병사로서 길러진다. 그때 카리옷과 대치 중인 아이들 또한 그런 아이들이었다.
허나, 그걸 감안해도 너무나도 어리다.
지원병력이 ‘이딴’ 형태로 편성된 지 몰랐던 라니엘이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카리옷은 양팔을 벌린 채 소리 질렀다.
「죽이지는 않고, 딱 한 달 정도만 못 걸을 정도로 만들어주마. 이 아저씨는 자비롭거든.」
그 뒤로 카리옷이 추기경에게 뱉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라니아는 갈라할의 질문에 답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
그리 답하는 라니아의 말에는 확신이 없다.
갈라할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신을 믿지 않는··· 다고요?”
“어.”
“그분 성기사 아니십니까?”
“그렇지.”
“그런데 신을 안 믿는다니?”
“으음. 이게 말로 하면 좀 복잡한데.”
라니아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에겐 신앙의 대상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어려운 말이군요.”
“솔직히 나도 제대로 이해는 못 했어. 그냥 뉘앙스로만 이해했을 뿐이지.”
라니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 궁금하면 만나러 가볼까?”
그녀가 대장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만나보면 한번에 이해 갈 걸. 카리옷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말야.”
2.
신의 뜻은 무엇인가?
또한, 그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 물음에 사라는 눈을 깜빡였다. 당황해서 눈을 깜빡이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눈앞의 인물이 어이가 없어서 사라는 눈을 깜빡였다.
“몰라서 물어요?”
“내가 배운 게 없어서 그래. 똑똑한 성녀 아가씨가 이 아저씨한테 좀 알려주면 안 되나?”
카리옷이 멋쩍게 웃었다.
사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을 구원해라. 빛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해라. 구원이야말로 델로힘의 바람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절이잖아요.”
“성녀 아가씨는 거기에 신의 뜻이 있다고 보나?”
“그렇죠. 완벽하신 델로힘 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의 구원이니··· 구원이야말로 저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 아니겠어요?”
교단의 얼굴로서 군중의 앞에 서본 경험이 많은 사라다. 그럴싸한 단어와 단어를 이어, 애매한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사라의 특기였다.
“인간의 구원. 그게 신의 뜻이죠.”
사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허나, 그것이 카리옷에게 답이 되진 못한다.
“델로힘께서 구원을 바라신다, 라··· 그렇다면, 어째서 전지전능하신 별께선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시지?”
카리옷 또한 교단의 일원이다.
사라보다 훨씬 오랫동안 교단에 발을 들였던 카리옷은 사라에게 재차 질문한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임에도 구원은 오지 않아. 델로힘은 침묵해.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손 한번 뻗어주지 않지.”
카리옷이 무표정이 말했다.
“신께선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없어서? 수백 년 전이라면 그럴싸한 답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신과 같은 존재가 이미 이 세상에 독을 뿌리고 있잖아.”
마왕(?王).
“그런 존재가 있음에도, 여전히 신께선 침묵하시지. 언제까지 침묵하실지 모르겠군. 아예 이 세상이 끝장이 나야 입을 여실지도 모르겠어.”
“신께선 용사와 성녀들을 보내어···.”
“수백 년동안 반복된 역사이지. 어린 애새끼들에게 운명을 강요하는 아주 잔인한 짓거리야.”
아주 고약한 취미지.
그리 중얼거리며 카리옷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카리옷의 반응에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신론자와 같은 논지군요. 카리옷, 당신 무신론자였나요?”
“무신론자는 아니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신께 힘을 빌려 쓰는 성기사니 말이야. 신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생각이 없어.”
“그래요?”
사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런 것 치곤,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말들을 입에 담고 있는 걸요?”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아니야.”
카리옷이 툭툭 제 이마를 건드렸다.
“신의 완벽함을 의심하는 거지.”
“···뭐라구요?”
“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란 이야기지. 델로힘은 언제나 답을 점지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럴싸한 뜻을 내려주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지.”
그가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향하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의 너머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찬란한 별.
“신의 뜻은 어디에도 없어, 성녀 아가씨.”
그것이 정말 있다면, 하고.
카리옷이 제 머리를 가리켰다.
“이곳에 있겠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신을 믿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다는 행위를 한다면 그곳에 신의 뜻은 깃드는 것이겠지.”
“이단들이 좋아할 만한 논리군요.”
“하하. 그것도 맞지.”
카리옷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나 성녀 아가씨.”
“뭐를요.”
“신의 뜻은 언제나 옳지는 않다고.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신의 뜻을 수행하지. 그러나, 그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야. 성녀 아가씨가 말하는 이단은 그릇된 길도 옳다고 말하는 이들이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을 걸으며 이것이 신의 뜻이라 말한다. 그런 이들을 카리옷은 보았다. 제 손으로 묻은 적도 있다. 아주 많았다.
“그릇된 길을 걸으며 신의 뜻을 외치는 이들이 더욱 많지. 지금의 교단이 딱 그쪽이고 말야.”
“···왜 당신이 배교자라 낙인 찍힌 지 알 것 같군요. 들어주기 힘든 헛소리에요.”
슬슬 상대해주기가 짜증 난다.
사라는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카리옷을 노려보았다. 녹빛 눈동자로 바라본 카리옷의 육신은 사라가 보기에도 잘 단련되어 있다. 또한, 그 육신에는 신성이 함께한다.
실신한 신자들에게 깃드는 신성(??).
신을 믿으면 믿을수록 거대해지는 정체불명의 힘.
남자가 품은 신성은 교단의 그 어떤 성기사의 것보다 거대하다. 교황의 것에 비견될 정도로. 그 사실이 사라를 조금 더 짜증 나게 만들었다.
“그럼 당신이 믿는 신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데요?”
사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카리옷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손을 뻗어주는 신.”
눈물 흘리는 아이들에게, 부모 잃은 아이들에게, 망가져 버린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신.
“내가 품을 신의 뜻이 있다면, 분명 그것 하나뿐이겠지.”
그리 중얼거린 카리옷이 사라를 가리켰다.
“내가 보기엔 성녀 아가씨도 어려.”
“제가 올해 몇 살인지 알고는 계세요?”
“스물?”
“스물다섯이에요.”
“그럼 애새끼 맞네.”
카리옷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관을 짊어진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보다 어리면 다 애새끼야.”
3.
카테론 고성의 외곽에는 대장간이 놓여있다.
그 크기는 작으나, 이곳에 갖춰진 제련장비들은 어지간한 왕도의 거대 공방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한때 명장이라 불렸던 사람이 제 장비들을 다 옮겨놨다고 들었던 것 같긴 해.”
나야 대장간에 들릴 일 자체가 없고, 카일의 성검(??)은 애당초 정비가 필요 없어 대장간에 들릴 일이 없었지만···.
「카테론 고성의 대장장이라면, 스토스 님 아니십니까? 그분께는 신세를 참 많이 졌죠.」
칼트 녀석이 이 대장간을 애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칼트가 지금 쓰는 칼도 쿤텔 아저씨가 부탁해, 이 대장간 주인이 만들어 준 거라고 하던가.
“저도 소문으로만 들어보고 만나뵌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무기가 상하는 일이 없다 보니···.”
“용사들의 무기가 좀 말도 안 되긴 해.”
내가 곁눈질로 갈라할이 등에 메고 있는 성창을 바라봤다. 장창인걸 감안하더라도 그 창대는 과할 정도로 길다. 일반적인 창을 저따위로 만들었다간··· 몇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부러질 게 분명했다.
“그 기다란 창이 안 부러지는 게 말이 돼?”
“하하. 휘어지긴 합니다.”
“그래서 더 성가시잖아. 너 창 반동으로 뛰어오르고 막 그러지 않아?”
“그렇죠. 창이란 게 생각보다 다양한 일이 가능한 무기이다 보니.”
그런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대장간 앞에 도착해 있었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열기에 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캉, 카앙!
열려있는 문의 틈새로 쇠를 내려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소리를 따라 우리는 대장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캉!
후끈한 열기 너머로 상의를 탈의한 누군가 쇠붙이를 내려치고 있었다. 저 사람이 스토스 대장장이인가?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 보였다.
등짝에는 온갖 상처가 가득하다.
물어뜯긴 상처, 칼에 베인듯한 검흔, 불로 지져놓은 듯한 화상 자국까지.
등에 온갖 상처란 상처는 다 새긴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오, 뭐야.”
카리옷이었다.
그가 내려치던 칼날을 내려둔 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까 봤던 아가씨잖아. 그리고, 성창의 용사님까지 있네. 여긴 무슨 일이야?”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만나뵙게 된 것은 처음이라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갈라할이 멋쩍게 웃으며 카리옷에게 다가갔다.
카리옷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이거 영광인걸.”
손에 쥐고 있던 칼날과 망치를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제 앞을 다가온 갈라할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걸.”
“예, 조금···.”
“하지만 맨입으로 알려주긴 좀 그래.”
카리옷이 대장간 바깥을 가리켰다.
“한판 어때?”
“예?”
“성창의 용사님 실력이나 한번 보고 싶어서 말이지. 내가 젊은 놈들한테 싸움 걸고 다니는 게 취미거든.”
당황한 갈라할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대충 알겠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카일을 처음 만났을 때도 카리옷 아저씨는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뇨, 모르겠습니다만···.’
입 모양으로 그리 말하는 갈라할에게, 나는 미소 지었다.
‘이제 알게 될걸.’
불사의 카리옷.
마경에서 삼십 년을 살아온 성기사.
한번 붙어 보면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