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79
〈 279화 〉 죽지 못한 인간(5)
* * *
지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밤의 초입에 카리옷은 성배 밖으로 나왔다. 튕겨져 나온 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서.
그것 하나로 많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가 벽을 넘었다는 것, 시련을 통과했다는 것, 도전의 끝에 결국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
백금색의 우물에서 빠져나온 카리옷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시원스레 웃었다. 오랜 고민을 해결한듯한,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카리옷이 입을 열었다.
“부부싸움 한탕 거하게 하고 왔다.”
* * *
라니아는 눈을 깜빡였다.
성배의 시련이 부부싸움이라니? 카리옷이 시련에서 무얼 만났는지 말해주지 않았기에, 라니아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부인분이시라면, 고위 사제분 아니십니까?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서 순교하셨다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카리옷이 쓰게 웃었다.
“내 마누라가 교단에서 워낙 이름 높고 신실하기로 유명한 사제라서··· 교단은 그 죽음을 포장했거든. 아마 성녀 아가씨는 알고 있을걸?”
“이스 사제님의 일이라면 알고 있어요.”
사라가 벌레 씹은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영향력 탓에 순교자로 알려지긴 했지만, 실은 이단으로서 심판당했지 않나요? 다름 아닌 카리옷, 당신의 손에 의해서.”
“그랬지. 사실 내가 죽였다기보단··· 내 마누라가 나한테 죽어준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두사람의 대화를 가만 엿듣던 라니아가 제 턱을 매만졌다. 고위 사제, 이스.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기에.
“아.”
라니아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미친 불의 마녀?”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카리옷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라니아가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으나, 뱉어진 말을 주워담을 순 없다.
미친 불의 마녀.
그녀와 엮인 사건은 라니아 또한 알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동하기 이전의 시대에 벌어졌던 사건이다. 미친 불의 마녀 토벌전으로 세간에 알려진 사건. 그 결말이 어떻게 됐던가?
‘초인 둘과 용사 하나가 투입되어, 초인 하나가 죽고 마무리됐다고 들었는데···.’
훗날 현자라 불리게 되고 나서야, 라니아는 미친 불의 마녀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미치광이 사제, 이스.
그것은 델로힘 교단의 역사상 탄생했던 세 번째 초인이요, 최악의 초인이었다. 별을 향한 증오와 광기로서 초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으므로.
‘그런데, 그 사람이···.’
라니아가 카리옷을 흘겨봤다.
카리옷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미친 불의 마녀, 확실히 그렇게 불렸었지. 그 토벌전에는 나도 참가했었어. 결과적으로 내 마누라의 심장을 뚫은 게 나였고.”
그가 등에 멘 십자가 대검을 매만졌다.
“내가 벽을 마주한 것도 그때였지. 내 마누라답게 장난 아니게 화끈하더군.”
“···그렇습니까?”
“그래, 원래부터 내 마누라가 신실함 하나만으론 교황에게도 안 밀리는 사제였는데··· 훼까닥하니 정말 말도 안 되더군. 도시 하나를 통째로 불가마로 만들었으니까.”
가벼운 목소리, 가벼운 말투.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카리옷의 표정은 딱딱하다.
“견딜 수가 없었던 거겠지. 그 아이들이 죽었던 게, 신이 기도에 답하지 않은 게, 그 어떤 구원도 찾아오지 않았던 게···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야.”
신께 기도를 올리던 사제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제 막 초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완숙한 초인조차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수많은 인간이 타들어 갔다. 잿더미로 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그녀는 마녀라는 멸칭이 붙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
“후회했지. 많이도.”
카리옷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내가 그녀를 더 빠르게 막았더라면, 그때의 내가 더 강했더라면, 그녀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더라면··· 언제나 후회했지.”
카리옷이 제 목에 걸린 십자가를 움켜쥐었다.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지. 내가 증명해야 할 과업이고.”
최후의 순간, 심장이 꿰뚫리며 그녀가 카리옷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십여 년의 여정 끝에 카리옷은 그 답을 찾은 지 오래다.
‘신의 뜻은 내게 있다.’
나의 모든 행위에 신께선 깃든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이 곧 신의 뜻이다.
허나, 그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답이다.
말뿐인 이상에는 가치가 없으므로.
이상은 말하는 게 아닌 행동함으로써 증명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삶으로 답을 증명하기 위해 카리옷은 초인의 경지를 바라왔다.
콱.
십자가를 움켜쥔 채 카리옷이 미소 지었다.
“이제는 증명할 수 있겠군.”
2.
카테론 고성을 떠나 다시 자신의 전장으로 돌아가기 전, 카리옷은 갈라할만을 따로 불러냈다. 부름을 받고 갈라할이 도착한 곳은 북부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들판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서 관짝을 짊어진 채 기다리고 있던 카리옷이 입을 열었다.
“하인켈에게 들었다.”
“···예?”
“용사님이 은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내가 당분간 용사님이 빠진 자리를 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그렇, 습니까.”
갈라할이 침묵했다.
그 표정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갈라할은 자신이 은퇴할 거란 소식을 들은 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썩 불편했다. 그들이 묻지는 않더라도, 궁금해하는 것은 하나뿐일 테니.
“은퇴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나?”
바로 저 질문이다.
갈라할은 거짓말에 능하지 않다.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고민하다가, 갈라할이 결국 결정하는 것은 대답을 아예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이번에도그래야 하는가, 고민하는 와중 카리옷의 쓴 웃음소리가 갈라할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라고, 물을 생각은 없지. 얼굴에 다 보이거든.”
“···다 보인다니?”
“마경에서 죽치고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개중에는 마기에 중독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놈들도 많지.”
갈라할이 흠칫, 하고 어깨를 더는 와중 카리옷이 질문을 던졌다.
“용사님, 그런 놈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둘 중 하나야. 아예 체념하고 퀭한 눈동자로 돌아다니거나, 남은 시간을 불태워 뭐라도 이루고자 눈을 부릅뜨고 다니는 놈들.”
그래서 용사님, 하고 카리옷이 말했다.
“너는 어떤 쪽인 것 같나?”
“······.”
“내가 보기엔 후자인 것 같은데.”
침묵을 지키던 갈라할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곤 있지만 답이 나오진 않더군요.”
“그래?”
흠, 하고 카리옷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남았지?”
이미 다 들킨 와중이다.
갈라할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삼 년입니다.”
“짧군.”
카리옷이 탄식했다.
탄식을 뱉으며, 그는 담배를 꼬나문 채 불을 붙였다. 그렇게 한번 연기를 빨아들인 뒤, 카리옷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웃음기는 남아있지 않다.
무거워진 목소리로 카리옷이 말했다.
“하나 묻지.”
“예.”
“이루고 싶은 건 있나?”
이루고 싶은 것.
“있습니다.”
“물어봐도 되겠나?”
고개를 끄덕이며 갈라할이 답했다.
“완벽한 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용사라··· 예를 들면 어떤?”
“동화 속 용사 같은 인물이지요. 모두의 앞에 서서,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그런.”
“그런가. 멋진 목표군.”
카리옷이 담배를 손등에 비벼 껐다.
그리곤 갈라할을 돌아보며 툭, 내뱉었다.
“그거라면 이미 이룬 것 같은데.”
“···예?”
카리옷이 갈라할을 가리켰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
그 누구에게도 붙은 적이 없는 이명이다.
“그렇게 불릴 정도면, 이미 이룬 것 아닌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닌 다른 분께서 이 힘을 받았더라면, 조금 더 많은···.”
“그건 아닐걸.”
카리옷이 딱 잘라 말했다.
“내가 네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고 하인켈에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뭘 생각한 줄 아나?”
카리옷이 갈라할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절대 못 채우지, 네 빈자리는.”
“······.”
“그건 단순히 네가 용사라서가 아니야. 너는 이미 하나의 상징이고, 네 빈자리를 채우는 건 그 누구도 할 수 없지.”
갈라할이 쌓아온 것은 결코 적지 않다.
“너는 이미 그런 존재다, 갈라할.”
수많은 사람을 구했으며, 전장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건··· 수많은 이들이 갈라할의 삶을 인정했단 뜻과도 같다.
“너는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아. 굳이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나?”
“그건···.”
“조금 더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단 소리다.”
자리에서 일어선 카리옷이 툭툭, 하고 갈라할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어깨에 힘도 좀 빼고. 힘이 너무 들어가 있으면 사는 게 피곤해, 이 젊은 친구야.”
갈라할이 침묵하는 가운데 카리옷이 걸음을 옮겼다. 그를 스쳐 지나가며 카리옷이 말했다.
“부족하겠지만··· 다음 용사가 나올 때까지, 네 빈자리를 메꿀 수 있도록 노력해보마.”
그러니 말이다, 하고 카리옷이 말을 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은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하고 싶은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고 싶은 거. 여자 좀 만나고, 즐길 거 다 즐겨보란 이야기지.”
카리옷이 뒤를 돌아보며 짓궂게 웃었다.
“아, 그렇다고 결혼은 하지 말고.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나처럼 꽉 붙잡혀 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 젊은이.”
갈라할이 쓰게 웃었다.
“경험에서 오는 조언입니까?”
“그런 셈이지.”
“명심하겠습니다.”
3.
동부 제 3 전선, 하프리온.
사건이 일단락되어 클로에를 데리러 하프리온에 도착한 라니아는 곧장 데스텔을 찾아갔다. 그와 나눌 이야기가 있는 까닭이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쿤텔 님이랑, 갑각룡에게 습격받았다지?”
“쿤텔 님이 아니라 언데드야.”
“···그건 그렇네. 이렇게 표현하는 건 쿤텔 님에 대한 모욕일 테니.”
집무실에는 데스텔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편지로 보이는 종이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편지에 새겨진 문양이 전부 달랐다.
그것을 가리키며 라니아가 질문했다.
“이게 다 뭐야?”
“그날, 카테론 고성과 함께 배교자의 마수에게 습격받았던 곳에서 온 편지야. 보고로는 모든 걸 알 수 없으니, 따로 편지를 보내서 정보를 얻어왔지.”
데스텔이 한숨을내쉬었다.
“저번에 나한테 물어봤지? 이 습격의 의도가 뭐일 것 같냐고.”
“그랬지.”
쿤텔에게 습격당했던 당일, 침상에서 일어난 라니아가 제일 먼저 확인한 건 클로에의 안부였다. 다행히도 하프리온에는 아무런 사건도 없었다.
「더 자세한 정보 있어?」
그때 편지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고, 데스텔은 자신이 따로 조사해보겠다는 답을 남겼다. 오늘은 그 답을 들으러 찾아온 것이다.
“발견한 건 있어?”
“아직은 없지. 조사단계니까.”
데스텔이 턱을 괸 채 라니아를 흘겨봤다.
“너, 배교자에 대해 얼마나 아냐?”
“미친년이란 건 알아.”
더 많은 것을 알지만, 데스텔에게 발설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기에 라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라니아가 현재의 배교자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과거뿐이지.’
그녀가 최초의 성녀였으며, 카르디 반 아르미엘을 닮은 잿빛에게 집착한다는 것. 라니아가 알고 있는 건 주로 배교자의 과거와 관련된 것이었다.
현재의 배교자는 어떠한가.
라니아가 마주했던 배교자는 그저 인간의 형상을 띈 광기에 불과했다. 속내를 읽을 수 없으며, 무엇을 꿈꾸는지도 알 수 없는 인물.
“미친년 맞지. 사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재앙이기도 하고.”
데스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수백 년간 배교자의 활동기록을 수집해봐도 마찬가지야. 그 존재 자체가 미지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움직이는지도 알 수 없지.”
하지만, 하고 데스텔이 테이블을 건드렸다.
“목적 없이 광기로만 움직이는 재앙은 아니야. 흑룡과는 다르다는 소리지.”
배교자와 마주한 적이 몇 번 있는 데스텔이다.
그녀에게 붙잡힌 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 데스텔은 딱 잘라 말했다.
“목적이 있고, 무언가를 노리고 움직여. 그 과정을 파악할 수 없다 뿐이지··· 배교자는 항상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어.”
“···그래서?”
“네가 습격 직후 내게 연락했다는 건, 그 목적을 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 아닌가?”
데스텔이 입을 열었다.
“클로에.”
배교자와 닮은 소녀.
“밤의 도시에서의 배교자 격퇴전. 거기에 동봉된 기밀 정보까지 파고들어 보면··· 클로에란 이름이 나오던데. 그거, 사실 구출작전이었다며?”
라니아가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맞아. 배교자가 그 애를 노리는 것도, 그 애에게 집착하는 것도 사실이야.”
“이유는?”
“알면 이러고 있겠어?”
배교자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다. 라니아는 그날 배교자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를 닮은 아이가 필요했던 건데···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네.」
마지막 기회, 그리고 자신을 닮은 아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침묵하던 데스텔이 입을 열었다.
“그럼, 왜 동부만 노리지 않았지?”
“···그게 의문이야.”
클로에를 노리면서, 배교자는 정작 동부만은 건들지 않았다. 배교자 본인이 나섰다면··· 아니, 그녀가 가진 마수를 풀기만 해도 클로에를 손에 넣는 것은 가능했다. 허나 배교자는 그리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조사해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데스텔이 지도를 펼쳤다.
그곳에는 카테론 고성이 무너졌던 날, 배교자의 마수에게 습격당한 거점들이 붉게 동그라미 처져 있었다.
“델타온 고성, 카르마트 협곡, 하텔 평야, 온펠슈타인 임시거점, 키멜트 거점.”
카테론 고성을 포함해 여섯 개의 거점이 습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배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갑각룡만이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갔을 뿐.
여섯 개의 지점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것을 잇는다 해서 무언가 모양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회로를 머리에 집어넣고 다니는 라니아가 보기에도 그것은 무언가 마법적인 문양은 아니었다.
“···도대체 뭐야 이게?”
“조사는 더 해봐야겠지만, 유의미한 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아. 그냥 빨리 왕도로 돌아가는 게 나아 보인다.”
데스텔이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바라봤다.
쭉 늘어진 여섯 개의 붉은 점.
그 모양이 낯설지만은 않은 까닭이었다.
* * *
“스케발.”
『무엇이지.』
“너, 한때 별을 연구했지? 진리에 근접하기 위한 방법이 별의 흐름을 읽는 것이라 소리치지 않았니? 내가 기억하기엔 그러한데.”
『오래전의 일이군. 우매한 인간이었을 시절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곤 했지. 별의 흐름을 읽는 것도 그중 하나···.』
“말이 많네.”
『······.』
“아직 읽을 수 있어?”
『읽을 수 있다. 지식은 있으니.』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 날짜, 시간까지.”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자.”
『···이 별이 하늘에 뜨는 날을 예측해 달란 건가?』
“어림잡아 계산하긴 했는데, 정확한지 알 수가 없어. 너라면 가능하지?”
『어려운 일은 아니군.』
······.
···.
············.
“아, 그리고 스케발.”
『또 무엇인가.』
“별의 흐름에 진리가 있다는 과거의 네가 했던 말, 그거 틀린 말은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라니?』
“교단에선 삼십칠이 완벽한 숫자라고 말해. 하지만 그건 조금 틀린 해석이야. 삼과 칠이 완벽한 숫자거든. 그래서일까.”
별에게 버림받은 여인은 미소 지었다.
“여섯은 완성을 앞둔 가장 불안정한 숫자야. 일곱이 되기 직전이 가장 흔들리는 법이거든.”
한때 별의 목소리를 들었던 여인.
별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는 사제.
“그래서, 비집고 들어갈 수가 있지.”
배교자(??者), 글레투스.
최초의 성녀는 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