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92
〈 292화 〉 예언은 죽음을 가리킨다(4)
* * *
델로힘 교단은 몰락했다.
정확하게는, 몰락하고 있다. 사라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랬다. 수백 년 전부터 델로힘 교단은 꾸준히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델로힘 교단의 위세는 대단하나,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교단의 높으신 분들께선 과거의 영광을 좇는다. 신의 위세를 빌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길 바란다. 국왕조차 교단 앞에 침묵해야만 했던, 건국 초기의 찬란한 과거를 그들은 바란다.
경험해 보지도 못하며, 닿을 수도 없는 과거를 꿈꾸니 그것은 망상이라 불러야 하리라. 본래라면, 그것은 단순한 망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새로운 성녀가, 교단의 향후 수 백년을 책임져줄 만한 인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아이는 신께서 내려주신 선물일세.」
「아이야, 네 이름은 이제부터 사라란다.」
「네가 교단의 대표가 될 것이야.」
신의 축복을 가지고 태어난 이.
수 백년의 역사 중, 이 소녀만큼 강력한 축복을 타고난 이는 달리 없었다. 그렇기에 교단은 소녀를 좁은 방에 가둔 채 교육을 거듭했다.
신자는 모두 신을 위해 존재한다.
너는 신의 사도이니, 신자들 또한 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마음껏 부려라. 그들은 너의 아이들이요, 너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
그릇된 신앙을 교육했다.
그릇된 신앙을 가진 귀족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늙어 노쇠해진 그들에게 사라는 축복을 베풀었다. 그로 하여금 교단은 권력을 키워갔다.
「이럴 순 없다.」
「이렇게 빼앗길 수는···!」
「카일, 카일 토벤!」
용사가 나타나기 전까진, 그리되었다.
카일 토벤. 강력한 별빛을 가진 그 용사가 나타난 순간부터 교단의 계획은 틀어졌다. 용사가 성녀에게 동행을 요청했을 때, 교단은 그를 거부할 수 없다.
수 백년간의 전통이 그리하기에.
교단이 아무리 부패했다 한들, 수 백년간 쌓아온 전통을 바꿀 수는 없으리라. 그리하여 용사의 여정에 사라가 동행하게 됐을 때 교단의 늙은이들은 사라의 귀에 속삭였다.
「사라, 저 용사의 정체를 아느냐? 저 용사는 본래 귀족의 노예였다. 귀족의 밑에서 잡일을 하던, 천한 인간에 불과하단 뜻이다.」
「그런 이가 신의 뜻을 참칭한다. 저자는 이단이다. 가까이해선 안된다. 내치고 내쳐서, 저자에게서 떨어져 교단으로 돌아오거라.」
그 말을 사라는 충실이 이행했다.
그렇게 여정의 초기에 무던히도 카일을 괴롭히던 사라는, 어느 날 그 일을 그만두게 됐다.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아···.」
자신의 실수로 마왕군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
그들은 사라를 바로 죽이지 않은 채, 신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골방에 가뒀다. 골방에서 사라는 겁에 질린 채 날밤을 새워야만 했다.
누구도 오지 않았다.
매일 같이 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라에게, 그 연결이 끊어짐은 처음 경험해보는 공포였다.
「델로힘, 델로힘, 델로힘께서.」
그렇게 공포에 질린 채 사라는 신을 울부짖었다. 그 목소리는 신에게 가닿지 않았다. 끝내 신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서걱.
한 명의 인간에겐 닿았다.
「구하러 왔다, 사라.」
자신이 구박하던 용사.
「잡아라. 빨리 탈출해야 하니.」
어둠 뿐이던 벽을 베어 가르며 제 앞에 나타난 카일을, 사라는 더는 내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사라는 카일이란 인간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흥미가 동했다. 관심이 생겼다.
그것이 연심으로 뒤바뀌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 *
“카일.”
사라는 제 앞에 선 인간을 본다.
자신을 둘러싼 벽을 부숴준 인간을. 자신이 가장 아끼게 된 인간을 사라는 본다.
“우리 여기서 손 떼요.”
제 안에서 델로힘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 카일 토벤을 바라보며 사라는 말했다.
“굳이 죽음의 칼을 상대할 필요 없잖아요? 이 정보를 알리고 북부에 대피령을 울리면 그만이에요. 굳이 이런 전장에 나서지 않아도···.”
예언은 반드시 일어날 미래를 본다.
예언자는 자신이 본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변수를 만들어내는 건, 그 미래를 보지 못한 다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그러니까.”
그러니, 지금 자신이 뱉는 것은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으리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사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카일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잖아요?”
“······.”
“그렇잖아요. 죽음의 칼을 도대체 누가 상대해요? 칼 한번 휘둘러서 협곡을 날려버리는 괴물을, 대체 누가 상대하냐구요.”
사라가 애원했다.
“헛수고에요. 가봤자, 그냥 죽는단 말이에요.”
“꿈속에서 내가 죽었나?”
카일의 말에 사라가 숨을 헛삼켰다.
카일은 말없이 사라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못이긴 사라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사라.”
“······.”
“사라, 하나만 더 묻지.”
카일이 사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 곁에 누가 있었지.”
“···그건.”
“나는 생각한다. 이 예언이 퍼지면, 죽음의 칼을 상대할만한 전력을 모은다면··· 그 녀석은 반드시 포함된다. 그 녀석은, 그곳에 반드시 나타난다.”
확신하는듯한 목소리.
“내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데스텔도, 그 어떤 초인도 그 자리에 오지 않아서, 승산이 아예 없어진다 한들··· 그 녀석은 혼자서라도 그곳에 갈 거다.”
그 녀석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한다.
확신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카일에게 사라는 일종의 광기마저 느낀다.
“라니엘.”
카일이 말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 녀석이 내 옆에 있지 않았나?”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방금 그 말에 긍정한다면, 카일은 기어코 그곳에 가버릴 것 같았으므로. 결국 침묵 끝에 사라가 고개를 가로저어 보나, 이미 사라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카일이다.
“역시 그렇군.”
그정도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도 간다.”
“카일···!”
사라가 언성을 높였으나, 카일이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사라는 카일을 본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탓에 카일이 사라의 속내를 꿰뚫어보듯, 사라 또한 비슷한 일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카일의 표정을 살핀 사라는, 제 입술을 꾹 깨물고 만다.
이미 결정을 내린 눈치다.
저 결정은 결코 번복되지 않으리라. 어느 부분에선 지나치리만치 완고한 것이 카일 토벤이었으니.
‘도대체 왜···!’
이해할 수가 없다.
어째서 제 손으로 내쫓아낸 뒤로도, 라니엘이란 존재에 저토록 집착하는지. 자꾸만 그 마법사의 행보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와중 카일이 말했다.
“나는 가야만 한다.”
카일이 제 칼자루를 매만졌다.
“녀석이 그곳에 간다면, 나도 가야 한다.”
선택이 아닌 의무.
마치 카일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2.
“너 대검은 안 쓰니?”
“예?”
“대검 말야, 대검. 커다란 검.”
“갑자기 대검은 왜···?”
라니아는 라크가 쥔 도끼를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에 막 좀 큰 무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은? 손에 잘 맞는 게 대검이란 생각은 안드냐? 사실 더 잘 쓰는 무기가 대검··· 이라던가?”
말 하면서도 그럴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 라니아는 뒷말을 흐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긴 하지만, 필요한 확인과정이었다.
“전 도끼를 제일 잘 씁니다.”
라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허리춤에 걸어둔 도끼를 꺼내 들었다. 한 바퀴 허공을 도는 손도끼를 잡아채는 손놀림이 퍽 화려했다.
“어렸을 때 처음 잡았던 무기도 도끼고, 칼은 뭔가 손에 안 맞습니다.”
라크가 머쓱한 듯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집어던지기도 좋고, 내려찍을 때 손맛이 제법 좋습니다. 도검류는 뭔가 깨부수는 감각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묻기도 그렇다.
라니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북부의 성지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려봤다. 호수의 중심에 놓여있던 구멍 뚫린 대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최초의 용사가 사용했을 성검(??).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한들 그 검이 지닌 별빛은 흐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북부의 탑에서 과거를 보았던 라니아는 그 검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무기인지 잘 알고 있다.
‘마(?)를 멸하는 검. 무슨 참마검이니 어쩌니 하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것 같긴 한데···.’
라니아가 보기엔 그런 단순한 게 아니었다.
검 자체가 별빛을 둘렀다. 무엇이든 베어내는 최초의 검성이 휘둘렀던 검(?)은, 날붙이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암만 봐도 네가 써야할 거 같은데.”
라니아가 슬쩍 라크를 흘겨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는 라크가 대검을 들고 휘두르는 장면은, 과연 라니아조차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라크를 위해 준비된 검이다.
가니칼트와 그레이스 가(家) 사이의 연관성.
라니아는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전까진 긴가민가했지만, 라크가 치른 시련 속에서 가니칼트가 나옴으로써 그 자질은 확실해졌다.
“이제부터라도 검 쓰는걸 가르쳐야 하나···.”
“그래서 절 부르신 겁니까?”
라니아가 옆을 쓱 흘겨봤다.
그곳엔 몹시 피곤해 보이는 칼트가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있다. 어찌나 피곤해 보이는지, 가서 자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넌 어째 볼 때마다 졸려 보인다.”
“실제로 졸립니다. 최근 왕도에 종말론자들이 들끓는데, 혼란을 틈타 왠 벌레 새끼들이 자꾸 숨어들지 뭡니까?”
갈라할의 죽음 이후로 불 꺼진 시대가 올 거라고 부르짖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이들이 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습니다. 이놈들이 절 피하겠답시고 해둔 짓거리를 보면 웃음만 나옵니다, 정말. 그게 효과적이라 더 문제고.”
“···도대체 뭘 했는데?”
“제가 마킹한 놈을 갈아버립니다.”
“갈아?”
“예, 문자 그대로··· 음. 학생분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라니아가 라크를 흘겨봤다.
그리곤 손가락을 까딱였다. 라크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 귀를 틀어막았다.
“이제 말해.”
“···저거면 됩니까?”
“어. 저거면 돼. 그래서, 갈아버렸다는 게 뭔 소린데?”
“갈가리 찢어다가 사방에 던져둡니다. 구석구석에 던져둬 버리니까 트래킹도 잘 안되고··· 갔다 해봐야 허탕이니 이거야 원.”
“···널 아는 놈인 거 같은데?”
“예, 그게 문제입니다.”
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수법은 실제로 칼트가 전장에 있을 때 마왕군이 활용했던 수법이다. 한번 마킹한 대상을 칼트는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점을 역이용해 칼트의 트래킹을 봉인하는 것.
“암만 봐도 뒤에서 일을 꾸미는 놈이 좀 이상합니다.”
칼트가 말했다.
“처음엔 혼란 좀 일으키려는 잡범이겄게니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쫓다 보니 생체실험 흔적도 나온데다가, 좀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바쁜 거고.”
“그렇구나.”
“그러다가 겨우겨우 쉴 틈이 나서, 밀린 잠이나 한번 자볼까 했는데···.”
칼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라니아를 흘겨봤다.
“선배님이 부르신 거고요.”
“그렇게 됐네.”
라니아가 머쓱한 듯 미소 지었다. 뭐라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열흘 동안 밤새봤는데, 생각보다 할만한···.”
“그걸 위로라고 하시는 겁니까, 설마?”
“아니, 뭐 난 그랬다고···.”
칼트가 한숨을 쉬며 라크를 가리켰다.
“그래서 저 애한테 검을 가르쳐보라구요?”
“응.”
라니아가 라크에게 손짓했다.
귀에서 손을 뗀 라크가 칼트 앞에 섰다.
“흠.”
칼트가 라크를 쓱 훑어봤다.
“몸은 완성됐고, 솔직히 뭘 쓰던 잘 다룰 것 같긴 합니다. 기본적인 체격이 되니까.”
“그렇지?”
“어디 한번 봐 봅시다.”
라크를 앞에 불러세운 칼트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라크에게 건넸다.
“명검 중의 명검이다. 절대 안 부러지니까, 있는 힘껏 휘둘러봐. 저기 저쪽 나무기둥에다가.”
“예, 알겠습니다.”
라크가 자세를 잡고 바로 섰다.
칼을 꽉 쥔 채, 평소에 도끼를 휘두르듯이 나무를 후려쳤다. 기세 좋게 휘둘러진 검이 나무에 퍽! 하고 틀어박혔다.
콰작!
칼날이 후려친 나무가 움푹 패였다.
베인 게 아니라, 패였다. 가만히 보니 검이 틀어박힌 곳을 중심으로 나무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와오.”
칼트가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하라 해도 못할 것 같은데.”
힘으로 휘두르기만 해도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손쉽게 베어내는 명검 중의 명검이다. 그런 검을 들고 장작 패듯 나무를 후려치고 있으니···.
“검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놀라우리만치 검에는 재능이 없다. 칼트는 저건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라크가 칼트에게 도로 검을 내미는 순간이다.
쿵, 쿠웅.
대뜸 나무 한 그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칼을 건네받던 칼트도, 라니아도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둘의 눈동자는 쓰러진 나무에 고정돼 있었는데, 문제는 그 나무의 위치였다.
검이 박힌 나무가 아니다.
멀찍이 떨어진 나무가 대뜸 기울더니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뒤이어 쿵, 쿠웅 소리를 내며 몇 그루의 나무가 더 쓰러졌다. 칼트와 라니아가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라크를 바라봤다.
“예? 왜 그러십니까?”
라크만이 영문 모른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멀찍히 떨어진 나무는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 * *
위대한 그레이스께선 검의 초인이셨는데, 그레이스께선 스스로의 실력을 감추곤 하셨다. 남들 앞에서 쉬이 검을 휘두르지 않고, 도끼 따위를 주로 사용하곤 하셨는데, 그 품위 없는 모습에 몇몇 전사께서 그레이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왜 검을 쓰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실 도끼의 초인이셨습니까?
그 어이없는 물음에, 그레이스께선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답하셨다.
‘내 스승께서 넌 검에 재능이 좆도 없으니, 빨리 검 따위는 내던지고 도끼나 잡으라 하신 까닭이다.’
도대체 어떤 용맹한 이가 그레이스께?
‘설산에 쌓인 눈만큼 많은 검사를 데려다 놔도,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정리하는 분께서 그러셨지.’
하지만, 하고 그레이스께서 말씀하셨다.
‘그분께선 기어코 내게 검술을 알려주셨지. 내가 매일같이 따라다니니 지치셨던 모양이야. 그리고, 내가 그 검술을 선보이자 스승께선 웃으셨다.’
아주 호쾌하게 웃으셨다.
‘무척이나 재밌는 것을 본 것처럼 웃으시며, 나를 자신의 첫 번째 제자로 삼으셨지. 그리곤, 남들 앞에선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경고하더군.’
어째서, 라고 전사들이 질문했다.
질문에 그레이스께선 쓰게 웃으실 뿐이었다.
‘한 번 보면 알 거다. 볼 테냐?’
그레이스께서 전사들에게 물으셨거니와, 전사들은 눈을 빛내며 그레이스를 따라 뒷산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밤 돌아온 전사들은 다시는 그레이스께 검술을 선보여달라고 묻지 않았다.
위대한 그레이스의 검을 본 전사들이 입 모아 말한다. 그분이 휘두른 것은 검이 아니었다고. 검을 들고 검술을 펼쳤지만, 그것은 검이 아니었다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백야성의 뒷산을 올라보니 일대의 나무가 뿌리째 뽑혀있다 하더라. 그곳에 남은 건 검흔이 아닌 난도질 당한 흔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