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93
〈 293화 〉 예언은 죽음을 가리킨다(5)
* * *
가더(Guarder), 칼트.
재앙을 세 번이나 막아낸 공로를 인정받아 하운드의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 이 남자는, 동시에 검의 초인이기도 하다.
검의 초인.
검로(??)를 읽을 수 있으며, 주어진 정보로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시와 초감각을 지닌 이들. 아직 미숙하다곤 하나, 칼트 또한 분명한 검의 초인이다.
애송이가 휘두르는 검로를 읽지 못할 리가 없다. 검을 휘두름으로써 만들어질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야 할 텐데.
분명 그래야 할 텐데··· 예상외의 결과가 벌어졌다. 칼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라크를 바라봤다.
“···뭡니까?”
이 소년이 휘두른 검은 코앞에 있는 나무를 후려쳤다. 검으로 후려쳤다기보단, 도끼로 장작을 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일격이었다.
그 일격은 눈앞의 나무기둥에 흔적을 남겼다.
움푹 패인 흔적이 그것을 증거한다. 명검 중의 명검을 휘두른 것치고는 작은 흔적. 그러나, 그 흔적은 동시에 저 멀리 떨어진 나무에도 남아있다.
“······.”
칼트는 말없이 멀찍이 떨어진 나무를 흘겨봤다.
뿌리째 뽑혀서는, 산산이 조각나있는 나무.
그 나무 앞으로 다가가 칼트는 나무기둥에 남은 흔적을 샆폈다. 똑같다. 마치 도끼로 후려친듯한 흔적이 길게 남아있다.
조금 더 크고, 선명하게.
칼트가 제 턱을 매만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눈앞의 나무를 후려쳤는데, 저 멀찍이 떨어진 나무가 대뜸 쓰러진다니? 하물며 그 경로 상에 있던 나무들은 작은 상처 없이 멀쩡하다.
허나, 우연이라 치부하기도 어렵다.
“라크, 너 마법 썼냐?”
“예? 아뇨, 안 썼습니다.”
어이가 없기는 라니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떠한 마법적 간섭도 없으나, 이는 마법적 현상에 가까운 일이다. 라니아가 혀를 내두르며 칼트를 불러세웠다.
“칼트.”
“···예, 선배님.”
“이거 뭐야? 검으로 이런 것도 가능해?”
“이런 게 가능했으면 검의 초인들은, 초인이 아니라 검의 마법사로 불렸을 겁니다.”
칼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거기, 라크 학생.”
칼트가 라크에게 다시 검을 건넸다.
“한번 다시 해봐. 이번엔 제대로 봐볼 테니까.”
라크가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검을 쥐었다.
옆에 있던 라니아가 조언했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러 보라고.
“그럼···.”
라크가 제 심장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 순간 치이익, 소리를 내며 라크의 몸에서 열기가 피어오른다. 이제는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육체 강화계열 주문 가열(Heating)의 발현이다.
“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트는 짧게 감탄했다.
저 가열이란 주문에 대해선 칼트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저 주문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또한.
그것을 저 소년은 능숙하게 다뤄낸다.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뛰어다닌 노련한 전사조차 해내지 못하는 것을,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소년이 해낸다.
그 사실에 놀랄 틈도 없다.
뿌득, 소리를 내며 라크가 칼자루를 움켜쥔다. 팔뚝에 핏줄이 돋아나고, 두 손으로 칼자루를 붙잡은 채 라크가 검을 휘둘렀다.
후웅!
검이 은백색 궤적을 그린다.
칼트는 눈을 부릅뜬 채 그 모든 장면을 눈에 담았다. 그리곤, 아까와 같은 판단을 내린다.
‘몸은 완성돼 있다. 근력도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검이 어울리지는 않다.’
검에는 재능이 없다.
확실하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 호흡, 칼끝이 그리는 궤적. 그 모든 것이 눈앞의 소년에겐 검의 재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교정하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이미 저 소년은 제 무기를 도끼로 삼았다.
저 무지막지한 근력과 민첩성으로 도끼를 휘두를 때, 그 일격 일격에 실릴 파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단지 검(?)에 재능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칼트가 다시 한번 확신을 하려는 순간이다.
쿵, 쿠웅.
라크의 심장이 거세게 뛴다.
심장에 고인 피가 빠르게 육체를 순환하며, 피에 깃든 무언가가 라크의 몸을 움직인다. 난잡한 궤적을 그리던 검이, 조금 더 거칠게 변한다.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짐승의 발톱이 나무 기둥에 맞닿은 순간 움푹, 하고 공기가 일그러진다. 그것은 마치 공간의 찢어짐과도 같다. 찢어진 공간을 메꾸고자 질량이 밀려들고 일순간 진공이 발생한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휘몰아치는 질량이 난폭하게 일대를 할퀸다. 검이 맞닿은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고,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쿠웅.
뒤이어 나무가 쓰러졌다.
쓰러진 나무에 남은 것은 검을 휘두른 흔적이 아니다. 거대한 맹수가 짓이겨둔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
침묵이 감돌았다.
이 괴이한 현상을 칼트는 이해하지 못한다. 예측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라니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라니아는 이와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거···.’
라니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니칼트가 하던 짓이잖아.”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최초의 검성이었던 그가 휘두르는 검(?)은 공간마저 베어내곤 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찢어지고, 찢어진 공간을 메꾸기 위해 질량이 밀려들며 일시적인 진공을 만들어낸다.
물론, 라크에 비하면 그 규모가 남다르다. 위력 또한 비교할 바가 안된다. 가니칼트는 일격에 협곡을 무너트리고 최후의 벽을 박살 냈으니.
‘하물며, 가니칼트가 펼친 건 이렇게 거칠지도 않아. 그건 조금 더 갈무리 된듯한···.’
가니칼트의 검은 완벽한 선을 그었다.
그에 비해 라크가 보인 것은 삐뚤어진 선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라니아와 칼트가 눈을 부릅뜬 채 라크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선보인 검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 위해서.
“···어?”
그리고, 라크는.
“어, 어어···.”
검을 휘두른 제 손과, 제 앞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번갈아 보고 있다. 마치,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는 것처럼.
“교, 교수님.”
라크가 제 앞에 놓인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게 뭡니까?”
그건 라니아와 칼트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2.
그 뒤로 몇 번의 실험을 더 거쳤다.
처음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십 번을 휘두르면 한 번씩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멀찍이 떨어진 나무가 우그러지거나, 일대의 공간이 움푹 파이는 일이 낮은 확률로 발생했다.
“진짜,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칼트는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자세도 엉망입니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아닙니다. 저건 도끼질하는 자세고, 도끼를 휘두른다고 쳤을 땐 완벽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리 중얼거리며 칼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저도 못하는 일입니다. 쿤텔님이 살아 돌아 오셔도 ‘아, 이건 좀.’ 하고 고개를 가로저을 결과란 말입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검을 휘둘렀는데 공간이 쪼개진다니? 베어낸 것도 아니고, 쪼개진다. 마치 도끼질을 한 것처럼.
“검을 들고 검을 휘둘렀는데, 만들어진 결과는 도끼질한 결과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거냐?”
“이래서 마법사들은···!”
칼트가 제 가슴팍을 쿵쿵 쳤다.
“선배님이 화염구를 던졌는데, 맞은 놈이 얼어붙은 거랑 똑같은 소리란 말입니다!”
“말 같은 소리를 해. 그게 어떻게 가능해?”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단 말입니다···!”
칼트가 휙 고개를 돌려 라크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이랬지? 왜 검을 잡지 않고 도끼를 골랐지? 혹시 너도 초인이니?”
“예? 아, 아뇨.”
라크가 눈을 깜빡였다.
“어렸을 때 전사들을 따라 검을 쥐어본 적이 있긴 한데, 그때는 이런 일 없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도 검을 써본 적이 있긴 한데···.”
그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굳이 계기를 떠올려 보자면, 짐작 가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성배의 시련 이후로 종종 심장이 크게 뛰곤 합니다. 아까 검을 휘두를 때도, 갑자기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더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라크는 그렇게 증언했다. 실제로 검을 쥔 순간 라크의 심장이 조금 더 요란하게 뛰었다. 마치 몸에 흐르는 피가 무언가에 반응하듯이.
“라크.”
가만히 라크의 말에 귀 기울이던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제 입가를 매만지며 말했다.
“암만 봐도, 너희 가문 선조가 좀 이상하거든? 그, 나쁜 의미가 아니라··· 아무튼 간.”
“···에? 그레이스 님 말씀입니까?”
“어. 아무래도 좀 조사를 해 봐야 할 거 같다.”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아가 시선을 돌렸다.
쓱, 시선을 돌려 바라본 것은 칼트다.
“칼트.”
“왜 부르십니까. 꼭 일 시킬 것처럼.”
“잘 아네.”
라니아가 환히 미소 지었다.
“그레이스 가문의 시조. 그 사람 관련된 기록 좀 싹 모아주라.”
“···어느 시대 분이십니까?”
“수백 년 전? 건국 초기?”
“···건국 초기면 기록도 거의 안 남아 있어서, 금서들을 뒤지면서 마구잡이로 찾아야 하는 거 아십니까?”
“잘 알지.”
“그런데도?”
“그런데도.”
칼트가 웃었다.
요 며칠 밤샘 업무를 하여 눈 밑까지 내려온 그늘을 쓱, 문지른 칼트가 아주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저 때려치우면 안 됩니까?”
3.
칼트가 조사해온 자료를 펼쳤다.
라크가 북부 대공께 부탁해 모아온 관련 설화를 펼쳐둔 채, 나는 하나둘 확인하기 시작했다.
“벨노아는 주술의 계보를 이었다.”
그림자 용의 주술.
과거, 주술사 벨리알이 다루던 주술의 계보를 이은 것은 벨노아다. 주술의 체계에 스며든 벨리알의 의지는 그가 미래를 위해 안배해둔 것이다.
그 사실은 카르디에게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라크의 경우는 무엇인가?
라크의 시련에는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나타났다. 둘 사이에 무언가 연관 점이 있는 게 분명하나,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그레이스란 인물이 가니칼트의 수제자였던 점 하나뿐이다.
『그레이스.』
칼트가 정리해둔 자료를 펼쳤다.
그레이스, 수백 년 전 건국 초기 북부를 일통하고 북부의 주인이 된 남자. 백야성을 발견했으며, 북부의 성지를 만든 인물.
『그레이스는 검의 초인이었으나, 그가 검을 다루는 모습에 관해 남아있는 일화는 적다.』
사실이었다.
북부 대공 쪽에서 보내준 설화에도, 그 검을 다루는 방식이 놀랍다. 괴이하다. 그런 이야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레이스란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죄다 그런 식이었다. 속내를 모르겠는 인물. 무언가 이상한 인물. 기행을 즐기는 기인이었으며, 종종 옥좌를 비우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단 인물.
그렇게 기록을 뒤지고 뒤지다 보면.
어느샌가 그레이스의 마지막 행방에 대한 곳까지 내려와 있다. 그것은 수백 년전, 최초의 예언자에 대한 일화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최초의 예언자.’
그녀가 예언자인지, 단순한 거짓말쟁이였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나··· 아무튼 그녀와 연관된 이야기가 있었다.
『최초의 예언자는 북부, 케넬 설원에 죽음의 칼이 나타난다고 예언했다. 그레이스는 예언자의 말을 신뢰했다.』
모두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그 말을 믿었고 그날 케넬 설원으로 나섰다. 처음으로 전사들 앞에서 검을 들었다고 하는데···.
“···구멍이 뚫린 거대한 대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나는 글을 마저 읽었다.
『그것을 끝으로 그레이스는 모습을 감추었다.』
칼트가 조사해온 정보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북부에서 받아온 설화에는 뒷이야기가 조금 더 남아있었다. 나는 뒷이야기를 보았다.
『보름달이 뜬 깊은 밤, 케넬 설원에선 요란한 굉음이 몇 차례고 울려 퍼졌다. 그 어떤 전사도 그곳에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멀리서 그곳을 바라본 전사들은 두려움에 질린 체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그레이스께선 죽음에 맞서 싸웠다.』
『그리곤, 끝끝내 패배하셨으나 또한 승리하셨다. 그레이스께선 북부에 찾아온 죽음을 돌려보냈다.』
죽음이 있었다고, 설화는 말한다.
그리고 수백 년의 역사에서 형상화된 죽음이란 언제나 하나의 존재만을 가리켰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
최초의 예언자의 존재가 거짓인지, 혹은 진실인지 의견이 분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말로 북부에 죽음의 칼이 나타났다면, 북부가 지금과 같이 멀쩡한 모습이 아닐 거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아무리 검의 초인이었다 한들, 그레이스란 인물이 홀로서 죽음의 칼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이 일화는 그레이스의 실종 혹은 죽음을 북부에서 신성시하는 과정에서 와전된 일화다.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외쳤다.
“예언자, 죽음의 칼, 그리고 그레이스.”
내가 그 세 개의 키워드를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이다. 쿵, 하고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을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인물.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이 그곳에 서 있다.
“당신.”
옅은 분홍빛 머리칼과 녹빛 눈동자.
성녀, 사라.
지랄맞은 내 옛 동료이자, 지금은 전장에 있어야 할 그녀가 구두굽을 울리며 내게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흘러내리는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퀭하다.
“너 뭐냐?”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없는데. 당장 꺼···.”
“라니엘.”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때 눈치 챘던 거냐고, 그리 쏘아붙이려던 나는 사라의 다음 행동을 보고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녀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처음으로, 고개를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상황을 따라가질 못하겠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내 귀를 의심하고 있는 와중 사라가 머리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여태까지 내가 전부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녀가 내게 애원했다.
“북부로 가지 마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죽음의 칼을 상대하지 말아 주세요.”
그때였다.
통신용 마도구가, 기사단장과 이어진 편지가, 칼트와 공유한 마도구가, 그 모든 게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한 것은.
“제발, 가지 말아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