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4
〈 314화 〉 막간(2)
* * *
왕도에 도착하면 할 일이 많으리라.
하지만, 그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고른다면···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다.
“우선 자랑부터 해야지.”
로셀에게 무사하다고 안부만을 전한 뒤, 라니엘은 곧장 왕도의 구석진 골목길로 뛰어갔다.
고대의 엘프를 만나러 가기 위해.
그리고 자랑하기 위해서.
“흥, 흐응.”
경쾌한 발걸음 소리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 * *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엘프, 카르디.
산전수전은 물론이요, 세상의 반을 뒤덮은 만마의 주인과도 싸워본 적이 있는 이 엘프는 어지간한 일에는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수백 년에 걸쳐 감정이 닳고 닳은 것도 있을 테며, 그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아무튼, 그렇기에 카르디는 언제나 여유롭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음’ ‘그렇군’ ‘과연’ 세 마디로 반응하는 게 고작이다. 최근 들어 종종 놀란듯한 반응을 보여 주곤 했지만···.
‘그마저도 드물긴 했지.’
그래도 이번에는 놀라지 않을까?
당황해서 말 더듬는 거 아닐까 몰라. 진짜로 그렇다면 재밌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라니엘은 카르디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 그렇게 된 거지.”
이야기를 마친 라니엘이 턱을 괬다.
카르디는 선반을 정리하느라 라니엘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등에서 감정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뭐 반응 없냐? 그 죽음의 칼에게 이겼다니까. 상처를 입혔다고. 피 흘리게 했다니까.”
“······.”
“야? 카르디? 야?”
“······.”
“뭐야?”
툭툭 건드려봐도 답이 없다.
‘하여간, 재미없는 엘프 같으니라고.’
그리 생각하며 라니엘이 ‘아무튼 그랬다.’ 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이다.
쨍그랑!
선반을 정리하던 카르디의 손이 축 처지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당황한 라니엘이 눈을 크게 뜨고 카르디를 보았다. 카르디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라니엘은 그날 처음 알았다.
“뭐?”
엘프의 눈동자가 저렇게까지 커질 수 있다는 걸.
“방··· 금, 뭐라고 했나?”
그 동공이 저렇게까지 요란스레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라니엘은 이 순간 처음 알게 됐다.
“가니칼트를 이겨? 이겼···다고?”
카르디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패배? 가니칼트가? 그 녀석이?”
카르디가 허리를 숙였다.
그가 자리에 앉아 차를 홀짝이던 라니엘에게 제 얼굴을 들이밀며 연달아 질문했다.
“피를 흘렸어? 그 녀석이 피를 흘렸다고?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고?”
“어, 어엉···.”
무척이나 부담스런 눈동자다.
라니엘이 말을 더듬으며 질문에 답했지만, 카르디의 질문은 끊이질 않았다.
“도대체 뭐로? 마법이 통했나 그 녀석이? 아니 그럴 일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아니, 내가 한 건 아니고. 카일 그놈이 검으로···.”
“···검?”
카르디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기울어졌다.
그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이미 한계까지 커졌다고 생각한 눈동자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라니엘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검으로 이겼어?”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저 문장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이 녀석이 미쳐버린 게 아닌가?
마치 눈빛으로 그리 말하는 듯한 카르디에게 라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검으로.”
라니엘이 말했다.
지나치게 당황하는 카르디의 모습에 처음에는 라니엘도 덩달아 당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라니엘은 이 상황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내가 대현자의 감정을 지배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엘프.
대현자이자, 잿빛 마탑의 초대 마탑주.
그만한 인물이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숨을 헛삼키고 있다. 자꾸만 씰룩이는 입꼬리를 턱을 괴는 척 가린 라니엘이 말을 이었다.
“같은 기술인 것 같은데, 카일이 밀어내더라. 칼로 갈비뼈를 그냥 쫙 끊어버리던데. 막 이렇게, 투두둑!”
“허어···.”
“막 검은 피가 후두둑 떨어지는데, 네가 그걸 봤어야 했다니까? 설원이 막 시꺼메지는데, 막 피가 이만큼···.”
카르디가 제 눈가를 쓸어내렸다.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카르디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놀랍군.”
카르디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놀라워. 아직 반백 년도 못 산 애송이들이 무슨···.”
허탈하게 중얼거리던 그가 이윽고 웃음을 흘렸다. 카르디가 소리 내 웃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혹은 즐겁다는 듯이.
“대단하군. 정말로.”
“이번엔 카일 녀석의 공이 크긴 하지.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진짜 해버릴 줄은 몰랐지. 이렇게나 빨리.”
라니엘이 엷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웃다 말고 라니엘이 아, 하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맞다, 카르디.”
“뭐냐.”
“카일한테 뭐 보여준 적 있어? 그녀석, 가니칼트가 최초의 용사라는 것까지 알고 있던데?”
움찔.
찻잔을 기울이던 카르디가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찻잔을 내려놓은 카르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 내가 보여준 것도, 내가 말한 것도 아니긴 하지. 녀석이 어쩌다가 닿았을 뿐.”
“닿았다고?”
“예전에 몇 가지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카르디가 선반의 가장 깊은 곳에 보관된, 먼지가 쌓인 마도구를 들고왔다.
“북부의 마탑에 있는 것을 기억하나?”
“그 기억을 기록해두는 마도구?”
“그래. 쿠락트 산맥의 특이성인, 시간의 꼬임을 활용해 만들어낸 마도구.”
카르디가 마도구를 툭툭 건드렸다.
“이것도 그것과 원리는 같다. 내 기억을 기록해서 언제든 열어볼 수 있게 만들어 둔 마도구이지. 이미 작동을 멈춰버린 마도구이기도 하고.”
라니엘이 마도구를 건드려봤다.
아주 오래전 기능이 정지된 마도구였다.
“수백 년 전, 아르카디아가 막 멸망했을 때 만들었던 마도구다. 적적할 때마다 마도구로 영상을 틀어놓곤 했지. 즐거웠던 기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으니까.”
카르디가 쓰게 웃었다.
“어찌나 많이 썼는지, 마석이 죄다 닳아버렸어. 본래 백 년은 갈 거라 생각했는데 일 년도 못 갔지. 아무튼, 이렇게 진작에 망가진 마도구인데 말이다···.”
카르디가 툭, 하고 테이블을 건드렸다.
“예전, 너와 카일 그녀석이 이 가게에서 머물 적의 일이다. 그때 카일이 이 마도구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내 정체가 궁금했는지, 가게를 뒤지고 있더군.”
“···그런 일이 있었어?”
카일이 카르디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 까지 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라니엘이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카르디가 말을 이었다.
“그래.뭐, 뒤져봐야 소용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 이 마도구도, 저 사진도··· 결국에 자격이 있는 인물만이 알아볼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하고 카르디가 말했다.
“카일 그놈이 마도구를 건드리는 순간, 멋대로 작동하더군. 이미 마석이 닳아 작동이 불가능한 마도구가, 자격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마도구가 말야.”
“그게 가능해?”
“불가능하지.”
카르디가 피식 웃었다.
“불가능한 일인데도 일어났어. 용사의 별빛에 마도구가 반응했는지 어쨌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고, 카일 그 녀석의 기억은 싹 날아갔다.”
카르디에 관한 것도.
마도구에서 보았던 것도.
그 모든 게 모조리 날아갔음을 카르디는 확인했다.
“그래서 카일을 쫓아낸 거다. 한 번 더 정보에 접근했다가 기억이 날아간다면··· 그때도 머리가 멀쩡할 거란 확신이 없었으니까.”
라니엘이 턱을 매만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근데, 카르디.”
“뭐지.”
“결국 그걸 볼 수 있다는 거, 별이 허락해 줘야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겠지. 별이 이 땅에서 지워버린 기억이니까.”
“그럼.”
라니엘이 툭, 하고 내뱉었다.
“별이 일부러 보게 한 거 아냐?”
“보여주고 기억을 지워버렸다고? 굳이? 무슨 이유로?”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냐 하는 생각이 든단 말야.”
“이상하군.”
카르디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별은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존재이지, 의도를 가진 지성체가 아닐 텐데? 네 말은 꼭 별이 의도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냥.”
라니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냥,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고개를 젖히고 창문을 바라보아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을뿐더러, 이곳에선 하늘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라니엘은 별을 더듬는다.
별이 위치할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별에게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목적?”
“규칙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닌 뭔가 다른 목적··· 그러니까, 뭘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단 말야. 그게 뭔진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라니엘의 말을 들은 카르디가 침묵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만일 정말로 별에게 목적이 있다면··· 라니엘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라니엘이 피식 웃었다.
“일단 봐야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목적이 듣기에 좀 좆같으면··· 뭐 별 수 있냐.”
그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뻗은 손가락으로 콱, 움켜쥐었다.
“끌어내려야지. 아래로.”
라니엘이 피식 웃으며 카르디를 보았다.
“너희가 했던 것처럼 말야.”
2.
수도에 도착한 뒤 라니아는 한동안 바삐 지냈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와의 전투에 대해 자세히 진술해야 했고 보고서를 올려야 했으므로. 거기에 더불어 ‘라니아’의 신분으로 싸움에 참가했으니 그에 관한 변명 겸 입장 또한 작성해야만 했다.
싸움을 가까이서 본 이는 없었고, 싸움의 흔적은 모조리 날아가 버렸으니 적당히 둘러대는 데 그치긴 했으나··· 의심은 피해 갈 수 없다.
소문은 퍼진다.
라니아란 인물이 라니엘과 관련이 있든 없든, 그에 준하는 마법사라는 소문이 커져만 간다. 그 소문을 라니아는 굳이 막지 않았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는, 라니엘 반 트리아스의 마도(??)를 물려받은 후계자다.』
오히려 공표하는 쪽을 선택했다.
단순히 같은 가문에 든 게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은 잿빛 마법사에게 마도 그 자체를 물려받았다고. 그것이 크고 작은 소란을 만들었다.
『잿빛 마법사에게 마도를 물려받았다.』
『그것은 곧 책임 또한 물려받은 게 아닌가? 그녀 또한 전장으로 향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가 돌긴 했으나, 금새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잿빛 마법사에겐 전장에 서야 할 책임도, 의무도 없었을뿐더러··· 그것이 후계에까지 이어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그리 지껄인 귀족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그가 머리 숙이는 가운데,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세운 업적이 차례로 알려진다.
그것은 세간에 숨겨져 있던 몇몇 사건들이다.
『밤의 도시, 카디낙의 배교자 격퇴.』
『북부, 죽음의 칼 격퇴.』
모두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몇 개의 사건만으로도 여파를 불러오긴 충분하다. 재앙을 격퇴해낸 그 위업에 세간은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가진 칭호의 의미를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현자, 그리고 인도자.
그 칭호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의무가 없음에도, 재앙을 막기 위해 인류에 제 몸을 헌신했다. 그만한 위업을 세우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수많은 사실이 연달아 공개되며, 라니아는 조금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예상은 했으나, 그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었군.”
제 1 왕녀 르뤼엘.
차기 국왕이나 다름없는 인물.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네.”
이 나라에서 그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앉은 여인.
그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는 일이 없을 르뤼엘 왕녀가 라니아를 향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가 말하지 않았나. 언제 한번, 그대의 공을 제대로 치하하고 싶다고. 거창한 자리에서.”
조용히 제 귓가에 속삭이는 르뤼엘 왕녀의 말에 라니아는 쓰게 웃을 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라니아는 왕녀에게 온갖 자리를 제안받았다.
라니아는 그 전부를 거절했다.
영지도, 명예로운 자리도, 그 무엇도 거절한 채 그녀는 다시금 아플리아로 돌아갔다. 르뤼엘 왕녀는 그리 할 줄 알았다는 듯이 라니아를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소문은 계속해서 퍼진다.
* * *
“기사 봤어?”
“라니아 교수님이···.”
“아니, 대단하신 분인 건 알았는데···.”
휴가를 냈던 라니아 교수가 아플리아로 돌아오는 당일, 아플리아는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로 소란스럽다. 당연하게도 그 주제는 라니아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북부에 간 것도 그럼···.”
“재앙을 상대하려고, 그것도 용사님과 함께.”
“···진짜 그 교수님이?”
“그 결투에서 패배, 아니 승리···? 아무튼 소리 지르시던 그 교수님이?”
“그건 라니아 교수님이고, 북부에 간 건 라니아 반 트리아스라는 위대한 마법사래.”
“···뭔 차이야?”
“큰 차이야.”
작년이었다면 소문을 듣고서도 그 교수님이라면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같은 반응이 돌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놔, 놔봐 씨발! 놓으라고!』
『너 와봐. 와봐 씨바알!』
『내가 진 거야. 내가, 내가 진 거라고.』
학생들의 뇌리에 각인된 사건.
작년 가을쯤에 벌어졌던 그 사건을, 학생들은 결코 잊지 못한다. 결투에서 승리 당한 라니아 교수님이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주먹질하던 그 모습은, 쉬이 잊혀지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아니, 진짜 좀··· 그 매칭이 안 되네.”
“동감이야.”
“특히 이 문구는 좀 그렇지 않아?”
누군가 신문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완전무결한 영웅, 라니아 반 트리아스.』
『잿빛 마법사의 뒤를 잇는···.』
『외모는 물론이고, 겸손함마저 겸비한···.』
신문이란게 으레 그렇듯, 과장되는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라니아 교수님과, 신문에서 묘사되는 인물 간의 괴리가 너무 큰 탓에 학생들은 웃음을 흘리고 만다.
또각.
그리고, 복도에서 걸음 소리가 울린다.
학생들은 웃음을 멈춘다. 신문을 접어 고이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걸음이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누군가 복도를 걷고 있다.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람에 잿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녀가 학생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처럼 그녀는 무표정하진 않다.
복도에서 학생들과 인사할 때 라니아는 종종 미소를 지어보이곤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학생들 곁을 지나갔다. 그렇게 또각, 다시 또각.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돼서야 학생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와.”
그가 감탄을 내질렀다.
“우리 좆됐네.”
“···응.”
“다 들으셨네. 무조건 들으셨어.”
“나 이제 라니아 교수님이 웃으면 무서워.”
···세간에선 엘프와 비견되는, 혹은 엘프보다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다. 그녀가 마지못해 짓는 마른 웃음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가 참가하는 행사마다 따라붙는 이들도 있는 마당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아니다.
학생들에게 있어 라니아가 짓는 환한 웃음이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지난 1년간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게 다 뭔가.
과제로 밤새고 핏줄 선 눈동자로 보면, 엘프가 아니라 마녀로 보일 뿐이다. 세간에서 온갖 칭송을 듣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이나, 학생들에게 있어 그녀는 악몽일 뿐이다.
아플리아의 악몽.
너무나도 두려운 악몽.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