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6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므로.”
삶에 의미라는 게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완성되지 못하여 가치 없는 삶이 널리고 깔림을 알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삶은 그리 종결됨을 알고 있음에도.”
“답을.””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삶이 완성되길 바라는 존재이므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미련한 존재이므로 이룰 수 없는 꿈을 갈망한다.”
“답을 찾아서···.””
이곳에 한 명의 미련한 인간이 있다.”
그에게 무재(武才)는 없다. 마법적 재능도 없다. 천재라 불릴 만큼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타고난 정치가도 아니며, 달변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관찰과 기록하는 것을 남들보다 잘하는 인간일 뿐이다.”
“여왕께서 내게 맡기신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루그란 클렌 카르테디아.”
혹은, 루그란 클렌 아르카디아.”
“나의 삶이 끝나기 전에.””
그는 바라고 또 바랐다.”
자신의 삶에 무언가 의미가 있기를.”
* * *”
오랜 세월 연구를 거듭했다.”
허리가 굽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셌다. ”
손주는 어느덧 성인을 앞두고 있었다. 젊음은 내 곁을 떠난 지 오래요, 젊음이 떠난 자리를 꿰차고자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죽음 아래 나는 조급해졌다. 다급해졌다.”
무언가 결실을 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내게는 내가 모셨던 여왕과 같은 특별함이 없었다. 그분과 달리 내게 있어 삶이란 단 한 번뿐이었다. 그 한 번의 삶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이 있었다. 후세에 전해줘야 할 답이 있었다.”
‘최초의 광인을 죽이는 방법.’”
여왕께서 끝내 찾지 못하셨던 답.”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정무를 손에서 놓았다. 통치하기를 포기했다. 국왕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떠넘기고선 연구에 몰두했다. 건국 초기에는 현왕이라 불렸으나, 세간에선 지금의 나를 가리켜 귀신이 들렸다고 떠들곤 했다.”
그리 보일 만도 하지. 늙을수록 현명해지고, 여유로워져야 하는 법이거늘··· 나는 오히려 반대로 향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들이 뭐라 떠들던 상관 없었다.”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매일 같이 손녀 아이와 함께 스텔라와 와쳐의 특수성에 관해 연구했다. 여왕께서 남기신 글귀를 바탕으로 이 재능의 진짜 가치를 탐구했다. 연구를 거듭한 결과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쳐(Watcher)는 별의 맥락을 읽는다.”
보는 순간 이해하고, 본질을 꿰뚫어 파악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소유자의 뇌가 견딜 수 있는 한 모든 정보를 한순간에 ‘이해’한다.”
스텔라(Stella)는 지배자와 같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앞에서 모든 흐름은 다만 무릎을 꿇을 뿐이다. 지배하고, 억압하고, 제멋대로 휘두른다.”
여왕께선 두 개의 재능에 모두 통달하셨으나, 광인을 뿌리 뽑지 못했다. 그것의 진체를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계속해서 몸을 옮겨 살아날 광인의 불사성을 지워버릴 방도가 없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왜, 하고 나는 질문을 던진다.”
‘위협이 될 걸 알고도 왜 여왕을 살려두었지?’”
나는 주목했다.”
어째서 광인이 여왕을 살려두었는지를.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여왕을, 어찌하여 살려두었는가. 그것은 단순한 유희거리라 보기엔 어려웠다. 광인이란 철두철미한 존재였으므로.”
···애초에, 광인의 목적이란 무엇이지?”
광인은 만마의 주인을 탄생시켰다.”
이 땅에 그릇된 신을 불러들였다.”
그릇된 신의 목적은 저 하늘 위의 별을 떨어트리는 것. 별을 떨어트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서를 뒤졌다.”
금서(禁書)라 불리는 것들을 파헤쳤다. ”
엘프들이 지닌 고서를, 잊힌 도시에서 찾아낸 금서들을, 온갖 방식으로 수집했다. 수집해서 탐독했다. 그 결과 나는 광인의 목적에 근접했다.”
“아아···.””
깨달았다. 광인에게 있어서 여왕은 위험요소인 동시에, 자신의 계획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스텔라와 와쳐는 폰(Pawn)이었다.”
시작은 작은 체스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체스 말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체스판의 끝자락에 도달한다면 폰은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승격할 수 있다. 비숍, 룩, 나이트···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폰이 승격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말이자, 왕의 곁을 지키는 존재다.”
퀸(Queen).”
체스판의 끝, 세상의 끝자락.”
그곳에서 광인은 체스 말을 자신의 여왕으로 승격시킬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까이엔 이미 그 선례가 있었다. 나의 여왕이 그 예시였다.”
만마의 주인, 마왕.”
그 존재로 변해버린 나의 여왕을 이용해 광인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은 가니칼트를 비롯한 나의 친우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렇다면, 광인이 그곳에서 제 목적을 포기할 것인가?”
“그럴 리 없지.””
내가 나의 목적에 집착하듯, 광인 또한 제 목적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자그마치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리가 없었다. 하물며 이미 실현 가능성을 본 지금이라면 더더욱.”
광인의 목적을 깨달았다.”
목적을 깨달은 순간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광인을 죽일 방법을, 그 진체를 찾을 방법에 근접했다. 광인의 목적을 도리어 이용할 방법마저 깨달았다. 그렇게 답에 근접한 어느 날이다.”
“그림자를 보았어요.””
성인식을 앞둔 손녀 아이가 말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아이가 내게 호소했다.”
“그림자가, 그림자, 그림자···.””
카르테디아에도.”
나의 왕국에도 독(毒)이 스며들었다.”
“아, 아아, 아아···.””
손녀 아이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검은 피를 토하며 아이가 죽어갔다. 죽어가는 손녀 아이의 앞에 무언가 떠올랐다. 그것은 천칭이었다. 여왕께서 별과 맺었던 계약.”
출렁.”
쓰러진 손녀 아이의 몸에서 그림자가 새어나왔다. 새어나온 그림자는 하늘에 떠오른 천칭을 움켜쥐었다. 백금색으로 빛나는 천칭에 간섭해, 계약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끽, 끼기긱.”
계약이 비틀렸다.”
손녀 아이가 품고 있던 별빛이 두 개로 갈라졌다. 스텔라(Stella)와 와쳐(Watcher)의 재능이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재능 중, 눈동자를 닮은 별빛은 바스러져 어딘가로 사라졌다. 계약이 뒤틀린 것이다.”
···목적의 달성을 코앞에 두고,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 ■■■■. ■■■■■■■■.”
손녀의 몸에 깃든 그림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손녀 아이의 턱이, 몸이 들썩이며 기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웃음은 연구실에서부터 시작해, 복도를 타고 왕성에 메아리쳤다.”
뚜욱, 하고.”
웃음소리가 끊어진 순간 수많은 이들이 연구실로 몰려들었다. 나를 대신하여 정무를 맡고 있던 아들놈도 그곳에 있었다. 검은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한 손녀 아이를 본 순간, 아들 녀석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무슨 짓을.””
아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이미 그들에게 나는 반쯤 미쳐버린 노인네였고, 연구에 미친 노친네가 기어코 제 손녀를 망가트렸다고 그들은 여겼다.”
···더는 왕성에 있을 수 없게 됐다.”
유언을 남기고 왕성을 떠났다.”
왕가의 깊은 곳에는 독(毒)이 머문다. 그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카르테디아는 제국이 될 수 없다. 그리 유언을 남기고 나는 조용히 왕성을 떠났다.”
“······.””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도착한 곳은 나의 고국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은 이미 마경이 되어서, 더는 사람이 다가갈 수 없게 된 곳이었다. 아르카디아에 들어서진 못한 채 나는 그 인근을 배회했다.”
아르카디아 인근의 작은 마을.”
더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그 마을의 한구석에서 나는 마지막이 될 기록을 시작했다. 여왕께서 물려주신 수기(手記)를 펼쳐 들고 나는 깃 펜에 잉크를 먹였다.”
“나는, 실패했다.””
수기의 끝자락. 마지막 남은 한 장.”
연구 결과와 함께 그곳에 적혀있는 것은, 루그란 클렌 아르카디아가 후세에게 남긴 편지였다.”
『나는 실패했다.”
보다 정확하겐, 우리는 실패했다.”
여왕께선 우리를 믿고 맡기셨지만, 우리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바돈, 트리스탄, 아켈름, 가니칼트, 글레리아, 벨리알, 그 모두가 실패했다.”
아르카디아는 멸망했다.”
여왕께서 쌓아오신 수백 년이 무너졌다.”
아르카디아의 뜻을 이어 카르테디아를 세웠다고 하나, 이제는 그 누구도 아르카디아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고국은 모두에게서 잊히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했다. 처참히 실패한 나머지 여왕 전하를 볼 낯짝이 없지만, 짐을 떠맡기게 된 후세의 이들에게 우리가 있었다, 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감히 이야기한다.”
아르카디아란 나라가 있었다. 그곳에 인류사에 암약한 광인의 계획을 막으려던 여왕이 있었다. 그곳에, 여왕의 뜻을 이어 스스로 등불이 되길 바란 영웅들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여왕께 충성을 다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국 실패했을지언정.”
나는 그들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삶을 바쳤다. 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비루하지만, 나는 나의 방식으로 답을 찾았다. 이곳에 내가 찾은 답을 적도록 하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