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7
···이 글을 읽는 네가 카르테디아의 이름을 이은 나의 후손일지, 혹은 그 시대를 향유하는 영웅일지, 그도 아닌 다른 존재일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그저 바랄 뿐이다.”
나의 발버둥에 가치가 있었기를.”
우리의 실패가, 부디 의미가 있었기를.』”
라니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명의 인간이 찾아낸 답, 그 답에는 신빙성이 있었다. 설득력이 있었다. 인간의 집념을 엿본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가능성은 있네요. 아니, 높습니다.””
그녀조차 상상치 못한 방식이다.”
아니, 상상치 못했다기보단 애초에 라니엘은 이 문제에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놀라웠다. 마학에 관해 무지했던 한 명의 인간이 내놓은 답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했으니. 한 명의 범인(凡人)이 제 삶으로서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놀랍네요.””
라니엘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런 방식으로 광인의 진체(眞體)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일라가 쓰게 웃었다.”
쓰게 웃으며, 그녀가 수기를 눈짓했다.”
“맨 마지막 장. 그곳 틈새를 뜯어보실래요?””
“···여기 말씀이십니까?””
라니엘이 수기의 마지막 장을 자세히 보았다. ”
자세히 보니 수기의 겉장과 마지막 페이지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이미 한 번 뜯어본 틈. 그 틈에 손톱을 집어넣어 조심스레 펼쳐보니, 그곳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크리엘 클렌 아르카디아.』”
『친애하는 나의 여왕에게.』”
이름이 쓰인 것은 여왕의 필체.”
이름 아래 쓰인 것은 루그란의 필체였다.”
“여왕의 본명인가 보군요.””
“그런 것 같아요.””
길고 긴 삶 속에서 몇 번이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뿌리에 위치한 것은 저 이름이었으리라.”
“여왕께선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생(生)이 될 거라고 짐작이라도 하셨는 듯, 마지막으로 쓰신 것도 저 이름이세요.””
아일라가 말했다.”
“그러니 아르카디아 최후의 여왕의 이름은 아크리엘 클렌 아르카디아에요. 최초의 여왕의 이름 또한 아크리엘 클렌 아르카디아고요.””
그녀 이전에는 여왕이 없었으니까.”
아르카디아 번창과 몰락을 함께 한 여왕의 이름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길게, 아주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카르디가 존경을 표할만한 사람이긴 했네.’”
자신의 동료를 제외한다면, 남을 좀처럼 고평가하는 법이 없는 카르디다. 그런 그가 자신이 마지막까지 모셨던 여왕을 향해선 존경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라니엘은 속으로 뇌까렸다.”
“그래서.””
라니엘이 탁, 하고 수기를 덮었다.”
“이제 다음을 이야기해 볼까요.””
과거에 얽힌 이야기는 보았다.”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를 보았다.”
다음으로 바라봐야 할 곳은 미래였다.”
“광인(狂人)의 토벌에 대해서.””
광인의 진체(眞體)의 특정.”
카르테디아를 건국한 시조, 루그란은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안했다. 그 답에 대해 오랜 시간 라니엘과 아일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은 깊었고 이야기를 끝마쳐야 할 시간은 금세 다가왔다.”
“남은 이야기는 그럼···.””
“예, 서신으로 나누도록 하죠.””
두 장이 한 쌍을 이루는 편지지를 건넨 뒤, 라니엘은 어깨에 숄을 두른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각, 소리를 내며 그녀가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아일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광인의 토벌전이 시작되면.””
그녀는 뒤를 돌지 않았다.”
라니엘만이 고개를 돌린 채 아일라를 흘겨봤다.”
“아마도, 레스티 양의 도움이 필수가 될 거에요. 본래는 하나였던 재능이 둘로 나눠진 거니까요.””
하지만, 하고 그녀가 물었다.”
“그녀를 이 일에 엮는 게 옳은 일일까요?””
아일라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라니엘은 모르지 않았다. 레스티는 광인에 의해 제 양아버지를 잃었다. 광인으로 하여금 레스티의 스승이자, 양아버지였던 잿빛 장로의 삶은 망가지고 말았다.”
그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게 옳은 일인가? ”
아일라는 그리 질문하고 있었지만··· 라니엘이 보기에 그것은 하등 쓸 곳 없는 걱정이었다.”
“글쎄요.””
라니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아이에게 있어, 그건 이미 극복한 상처일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그런가요?””
“예. 사실, 우려하는 것과는 반대로···.””
라니엘이 툭, 하고 내뱉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찾아와, 광인 토벌전의 선두에 서고자 할 겁니다. 그 아이라면.””
잿빛 마녀, 레스티 엘레노아.”
죽음을 맞이하는 장로의 앞에서 그녀는 맹세했었다. 당신의 삶을 망가트린 광인을, 최선을 다해 짓밟겠노라고. 그날의 약속을 레스티는 아직 잊지 않았으리라.”
“잿빛 마탑주에겐 협력을 요청해두겠습니다.””
“예, 부탁할게요.””
아일라가 질문했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제 무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이젠 전하께선 전하가 하셔야 할 일을 하십시오.””
저는, 하고 라니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해야 할 일을,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라니엘은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연회는 이미 끝이 나 있었고, 텅 빈 회장에는 칼트가 홀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땋아 내렸던 머리를 풀었다. 연회장의 바깥으로 나서며 라니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온 목소리는 딱딱했다.”
“할 일이 생겼다. 많이.””
“그렇습니까.””
“당분간 조금 더 바빠질 것 같다.””
배교자 토벌전의 끝. 막이 내린 연회.”
이제 나아가야 할 곳은 다음 장(場)이다. 하지만, 이는 본래의 계획과는 달랐다. 라니엘이 대비하던 다음 무대는 광인 토벌전이 아니었으니까.”
사락.”
숙소에 도착한 직후, 그녀가 드레스를 벗고 용사의 정복을 입었다. 머리를 한 갈래로 묶어 내리고, 백금색의 실로 자수가 놓인 로브를 가볍게 털었다. 장갑을 쭉 끌어내린 뒤,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원래 하루 이틀 정도 더 있을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었어. 당장 전장으로 가야겠다.””
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 또한 연미복에서 본래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였다. 칼트는 군말 없이 품속에서 마도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하운드의 수장직을 잠시 내려놓은 칼트지만, 그에겐 아직 하운드들과 연결된 통신 회로가 남아있었다.”
연결, 그리고 짧은 명령.”
하운드들을 시켜 급히, 비밀리에 마차를 매수한 칼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뱉으며 라니엘에게 질문했다.”
“어느 전장으로 향하실 생각입니까?””
“최전선. 잿빛 마탑의 제 0 지부.””
잿빛 마탑의 제 0 지부.”
용사,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맡긴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탑의 특별 지부. 최전선의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그곳의 정체를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델로힘 교단의 교황, 지타판.”
잿빛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흑색 마탑주, 예투알.”
백색 마탑주, 셀리 드벨라.”
그들 휘하의 극소수만이 제 0 지부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그들 중에서도 또다시 소수만이 제 0 지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 사이에 한 명의 엘프가 추가됐다.”
“이런 곳에서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나.””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배교자 토벌전의 종료를 기점으로 천 년의 이야기에 종점을 찍은 그였지만··· 카르디는 곧장 전장에서 떠나지 않고, 라니엘의 여정을 곁에서 돕기를 결정했다.”
「그날 우리가 닿지 못한 곳, 그곳에 네가 닿기를 바란다.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지. 네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나 역시 두 눈으로 봐야겠으니까.」”
「그럼 여기로 가봐.」”
그런 카르디에게 라니엘은 약도와 키 하나를 건넸다.”
「내가 뭘 바라고 있는지, 마지막에 뭘 선택하려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거기에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봐봐.」”
온갖 보안 절차를 거쳐 들어온 장소.”
별빛도, 신의 눈동자도 닿지 않는 숨겨진 곳. 그곳에 준비된 것은 거대한 연구시설이다.”
“···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