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8
문득 카르디는 헛웃음을 흘렸다.”
현대 마학의 최전선이 이곳에 있었다. 청색, 적색, 백색, 녹색, 흑색, 그리고 잿빛 마탑. 각자 다른 색(色)을 가진 마탑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이뤄낸 정수.”
그 정수들을 라니엘은 이곳에 한데 모아두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마학의 정수를 끌어모아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가. 이곳을 돌아다니는 마법사 중 태반이 자신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르디 만큼은 아니었다.”
중앙에 위치한 아티팩트.”
아직 미완(未完)인 저 거대한 아티팩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카르디는 한눈에 알아차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대게 같은 장소였으므로.”
“바벨(Babel)···.””
“뭐야. 어떻게 알았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르디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라니엘이 있었다. 탁, 하고 그녀가 카르디의 옆에 바로 섰다. 한눈에 연구 시설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라니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떤 것 같아?””
“···저건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 아니었나? 증명도, 증명을 위한 실험도 불가능해 사실상 허구의 것으로 취급되는 아티팩트일 텐데, 저것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말야.””
라니엘이 난간에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초인이 되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니까··· 마냥 허구로 취급할만한 개념은 아니더라고.””
카일과의 결전에서 초인이 된 그날, 라니엘은 세상의 바깥을 보았다.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짜임새를 읽었다. 세상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곳에 있는 것은 마법사들이 그토록 꿈꾸던 진리였다.”
진리를 목격한 마법사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룡이 어째서 자신에게 인도자(引導者)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그때 느꼈던 충격을 곱씹으며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애초에 말야, 마법사한테도 이런 게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소리냐?””
“너도 가니칼트 봤을 거 아냐.””
라니엘이 손을 휘둘러 칼질하는 시늉을 했다.”
“경지에 오른 검사들은 칼 한번 휘둘러서 공간도 쪼개고, 거리도 무시하고, 공간을 찢고 이동하기까지 하고, 하다 하다 하늘까지 갈라버리는데···.””
라니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는 뭐가 없잖아.””
“······.””
저게 무슨 개가 짖는 소리인가.”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르디에게, 라니엘은 ‘아니 생각해봐’ 하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한참 동안 그 이야기를 들은 카르디는 떫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요점은 카일 그 녀석한테 쪽도 못 쓰고 된통 당했던 게 화가 나서 만든···.””
“아니, 그게 아니라.””
됐다, 말을 말자.”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엘이 눈짓했다. 그녀의 시선이 가리킨 곳은 연구시설의 중심에 놓인 파편이었다.”
“네 말대로야. 저건 바벨(Babel)이지.””
인간이 하늘에 닿기 위해 만들어낸 것.”
인류가 가진 것을 한데 모아 쌓아올린 것.”
“나의 방식으로 해석한 바벨.””
“···들키지 않을 확신이 있나? 고룡에게.””
“저번에 슬쩍 떠봤는데 모르는 눈치던데?””
그리고, 뭐···.”
라니엘이 중얼거렸다.”
“들키면 뭐 어때.””
“고룡과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냐?””
“필요하다면.””
“···이걸 써서 뭘 할 생각이지?””
라니엘은 답하지 않았다.”
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가니칼트와 카일이 도달한 경지는 역천(逆天)이야. 글레리아가 닿은 경지는 개천(開天)이고.””
길의 끝에 도달하는 곳.”
길의 끝에서 그들은 선택하게 된다. 저 위의 드넓은 하늘을 어떻게 해석할지. 가니칼트와 카일은 인간의 몸으로 신을 베기 위해, 하늘의 뜻을 거슬렀다. 글레리아는 규율을 바꾸기 위해 하늘을 열었다.”
“그리고.””
턱을 괸 채 라니엘이 말했다.”
“미래의 내가 선택했던 것은 등천(登天)이겠지. 그녀는 하늘에 올라 새로운 신이 되었으니까.””
“너도 신이 되고자 하나?””
“그럴 리가.””
라니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카르디.””
“말해라.””
“얼마 전, 광인의 목적에 대해 알게 됐어.””
“···광인의 목적?””
“어. 최후의 여왕과 카르테디아 국의 시조가 남긴 수기를 읽었는데··· 아, 설명하긴 복잡하네. 나중에 여왕 전하께 빌려달라고 해봐. 아무튼 그래서 말야.””
투욱, 하고 라니엘이 손끝으로 난간을 건드렸다.”
“우습게도 말야.””
건드린 손가락을 라니엘은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광인이나 나나 하늘을 해석하는 방향이 같은 것 같다. 아마 한 끗 차이겠지.””
루그란 클렌 카르테디아.”
그가 발견한 광인의 목적과 라니엘이 품은 목적은 큰 차이가 없었다. 둘 다 인도자의 적성을 지닌 이였던 까닭이었을까.”
“그래서 알겠더라. 그놈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라. 광인의 목적이 대체 무엇인데?””
카르디의 물음에 라니엘이 답했다.”
『이번엔 또 무슨 용건이지?』”
“오, 스케발 이 친구야. 용건이 있어야만 만날 만큼 우리가 그리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그리 날카롭게 날 쏘아보지 않아 주면 좋겠어.””
광인이 제 그림자를 툭툭 건드렸다.”
“이 빌어먹을 번개가 들러붙은 곳이 좀처럼 쑤셔야지 말야. 시선에도 반응하는 것 같거든.””
『···그건?』”
“빌어먹을 잿빛이지. 사랑스러운 후배의 짓거리야.””
『아무튼, 용건을 말해라. 너와 잡설을 늘어놓을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이것 참 너무하군. 오랜 친우가 찾아왔···.””
『아크리타.』”
스케발의 부름에 아크리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아크리타, 배교자가 토벌당했다.』”
구태여 스케발은 다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눈앞에 앉은 최초의 광인을 똑바로 노려보며 스케발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재앙이 또다시 토벌당한 것이다. 인류는 또다시 앞으로 진군하겠지. 그 빌어먹을 잿빛을 선두 세워서. 이제, 우리에게 더는 물러설 곳은 없다.』”
스케발의 안광이 검푸르게 번뜩였다.”
『우리의 왕께선 그날 불사성을 잃으셨다. 불완전에서, 이젠 불안정한 존재로 격하 당하셨지. 그분을 지키는 것은 오직 가니칼트 뿐이야. 우리의 모든 것이 가니칼트, 그 변덕스러운 검사에게 달려있음을 그대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알고 있지.””
『그러니 말이다.』”
콰직, 하고 스케발이 쥐고 있던 수정구를 박살 냈다.”
『네놈의 그 원대한 계획은 도대체 언제 완성되는 것이냐고, 나는 묻고 있는 거다.』”
스케발의 정신파가 거칠게 공기를 긁었다.”
『왕을 일으킬 계획이 있다고, 너는 말했다. 자그마치 수백 년 동안 내게 그리 이야기했다. 그 계획은 도대체 언제 완성되는 거지? 얼마나 또 기다려야 하는 거지? 아예 마의 군세가 모조리 쓸려나가야 완성된다고 말을 하지 그러나?』”
“어떻게 알았나?””
『뭐?』”
“정답이라네, 스케발.””
광인이 정말로 놀랐다는 듯 박수를 쳤다.”
짝, 짜악, 하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교자의 토벌로 하여금 균형은 무너졌다.””
그가 제 양팔을 쫙 펼쳤다.”
“용사, 라니아 반 트리아스로 하여금 이 세상을 이루는 무게추는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지. 그런데도 우리의 왕께선 나날이 허약해질 따름이야.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나?””
광인이 광소했다.”
“규율은 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로써, 우리에겐 명분이 생겼다. 이제야 생긴 것이지.””
규율을 무너트릴 명분이.”
『너.』”
스케발이 광인을 노려보았다.”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