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5
* * *”
···그분께선 미래를 보기라도 하신 걸까?”
그분의 걱정은 실제가 됐다.”
왕국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정물에 뒤덮였다. 아르카디아의 모든 곳으로 구정물은 흘렀다. 구정물이 범람해 왕국을 집어삼킨 그날, 그분께선 제물이 되어 구정물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날 아르카디아는 태양을 잃었다.”
어쩌면, 인류가 태양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평선의 너머, 저주받은 땅에선 완전히 토벌됐다 생각한 마(魔)의 군세가 다시금 창궐했다. 과거와 달리 그들에겐 구심점이 있었다. 그들이 섬기는 주군이··· 델로힘 교단의 말을 빌리자면 그릇된 신이 나타난 것이다.”
만마의 주인, 마왕(魔王).”
그릇된 신이 인세에 강림했다.”
그것이 지나가는 길마다 죽음이 가득했다. 세상의 절반이 검게 물들었고,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크고 작은 국가들이 여럿 멸망했다. 그렇게 인류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끝이 났다 생각한 전쟁이 다시 찾아왔다.”
혼란의 시기였다.”
“집결하라.””
혼란의 시기였지만.”
“일어서라. 무기를 들어라. 긍지를 잊지 마라.””
그 혼란을 바로잡을 인재들이 아르카디아에는 많았다. 여왕께서 살아생전 거두었던 이들은 난세(亂世)가 오자 더욱 찬란히 빛났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아르카디아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었다.”
“나는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가 별의 축복이 담긴 성검(星劍)을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휘둘러지는 검이요, 인류를 수호하는 검이다. 내가 선두에 서겠다. 따라와라.””
어느 순간부터 그는 용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가니칼트를 필두로 수많은 영웅들이 궐기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빛나는 이들이 가니칼트의 이름 아래 집결하기 시작했다.”
용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용의 주술사, 벨리알 반 드라고닉.”
성녀,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
혼란 속에서 그들은 나아갔다. 인류에게 빛이 되어 주었다. 나는 먼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우리의 여왕이 계셨다. 그릇된 신에게 물들어버린 여왕이.”
* * *”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전쟁이 이어질수록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들려오게 됐다. 여왕의 뒤를 쫓겠다고 마경(魔境)으로 향했던 아바돈과 트리스탄과의 연락이 어느 날 갑작스레 끊어졌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낸 서신은 아래와 같았다.”
전하를 찾았다.”
모시고 돌아가겠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 뒤를 따라 천리를 읽는 점성술사, 아켈름이 마경 탐색을 나섰지만 그녀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됐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그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최악의 형태로.”
저주를 품은 토지의 거목, 아바돈.”
저주를 비추는 태양, 트리스탄.”
저주에 잠식된 호수, 아켈름.”
그들은 변질된 여왕의 아래 다시 충성을 맹세하였다. 인간이 아니게 된 모습으로. 그렇게 그들은 재앙이 되었고, 인류를 향해 악의를 드러냈다. 수많은 인간을 학살하고 여러 나라를 멸망시켰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온 세상에 널렸지만.”
그런 세상에도 빛은 있었다. 스스로 빛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다. 용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과 그의 일행이 그러했다. 그들은 그릇된 길을 골라버린 오랜 친우들을 베어 가르며 앞으로 향했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나아간다.”
여왕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 더는 선(善)하지 않게 된 여왕을 바로잡기 위해 마경으로 향했다. 그들의 여정을 나는 지켜보았다. 기록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들은 마지막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소식은 끊어졌다.”
그날이었다. 나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 * *”
무언가 나의 기억에 개입했다.”
오랜 세월 함께했던 친우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이 시대를 가로질렀던 영웅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위화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기억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여왕께서 내게 남기신 이 수기 덕분이었다.”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변질되어가지만 이 수기만큼은 불변했다. 이 수기에 내가 기록한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 수기를 계속해서 읽어가며 나는 나의 친우들의 이름을 곱씹었다. ”
가니칼트, 글레리아, 벨리알, 카르디······.”
아아, 아니었다. ”
모든 이름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카르디란 이름은 나 말고도 알고 있는 이가 있었다. 영웅으로서 그가 살아갔던 행적은 모두 지워졌지만, 마탑주로서의 카르디의 삶은 남아 있었다.”
그가 왕국으로 돌아왔단 소식을 들었다.”
먼곳에 망명 중이었던 나는 곧장 아르카디아로 향했다. 그에게 묻기 위해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걸려 아르카디아에 도달한 내가 보게 된 것은··· 결코 눈에 담고 싶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변질해버린 영웅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의 친우들이 그곳에 있었다.”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르카디아의 수호기사단장은, 자신이 수호했던 성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긍지 높았던 용의 주술사는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되어 왕국을 불길로 뒤덮었다. 생명의 존귀함을 부르짖었던 성녀는 생명의 가치를 모독하며 학살을 자행했다.”
아르카디아가 무너진다.”
아■■카■■가 무너진다.”
■■■■■가 무너진다.”
그 누구도 ■■■■■를 기억할 수 없게 됐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의 고국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었지? ”
루그란. 루그란 클렌 ■■■■■.”
기억이 지워진다.”
소중했던 것들이 잊혀진다.”
나는 미친 듯이 수기를 읽었다. ”
내가 써내렸던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문장을 읽은 순간만큼은 나는 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진 않았다. 하루가 지나면 나는 또다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망각, 그리고 복기의 반복이었다.”
수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한 대가였을까. 두통 속에서 나는 황무지를 걸었다. 멸망한 아르카디아에서 살아남은 소수를 데리고 망명 중에 봐두었던 개척지로 향했다.”
지난 수십 년 간 기반은 다져두었다.”
다져둔 기반 위에 국가를 세웠다.”
아르카디아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개명했고, 국가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카르테디아. 고대어로 ‘옛 왕국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이었다.”
카르테디아 국(國).”
루그란 클렌 카르테디아.”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순간부터 나는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의 고국은 멸망하고 말았는가. 나의 여왕은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하셨던 건가. 여왕께서 말버릇처럼 이야기하였던 독(毒)이란 대체 무엇인가?”
연구를 거듭하던 어느 날이다.”
보이지 않던 수기의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건을 충족한 것인가? 나는 나의 여왕이 남기신 문장을 읽었다.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뇌리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 이름이 있었다.”
광인(狂人).”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
라니엘이 수기의 끝자락을 펼쳤다.”
그곳에는 이 나라의 시조가 남긴 연구 결과가 적혀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여왕이 남긴 부탁을, 제 한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이의 집념이 그곳에 있었다.”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
루그란 클렌 카르테디아가 말했다.”
『최초의 광인.』”
『나는 나의 여왕께서 남기신 기록을 읽으며 고뇌했다. 어째서 그 존재는 여왕을 죽이지 않은 것인가. 어째서, 직접적으로 별에게 축복을 받았던 여왕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던 것인가?』”
이야기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여왕께선 그것이 광인의 단순한 변덕 혹은 유희거리라고 여기신 듯하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여왕께선 스스로를 광인의 대척점으로 여겼고, 별 또한 여왕이 광인의 대척점이 되기를 바란듯하였다.』”
그가 이야기를 이었다.”
『아르카디아의 역사를 뒤져보아도 그렇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나타난 것은, 왕국에 숱한 전염병과 재액이 덮쳤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것은 곧 광인이 모습을 드러낸 시기와 겹친다는 뜻이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스텔라(Stella).”
별의 맥락을 읽는 이, 와쳐(Watcher).”
여왕께서 지니셨던 이 두 가지 재능은, 다름 아닌 광인을 상대하기 위한 재능이다. 나는 이 재능을 연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운 좋게도, 나의 손녀는 두 가지의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여왕께서 별과 맺은 계약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 것일까. 아니면, 나의 왕국에도 독(毒)이 숨어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손녀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
와쳐와 스텔라가 지닌 재능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 본질과 활용법, 여왕께서 살아생전 보이셨던 기적과 같은 행위에 초점을 두었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한 결과 나는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라니엘이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인간이 집념으로서 찾아낸 답을 엿보았다.”
“『스텔라와 와쳐는 폰(pawn)이다.』”
『체스판의 끝에서, 그들은 여왕(Queen)이 된다.』”
『그것이 광인이 여왕을 살려둔 이유요, 광인이 두려워하는 변수이다.』”
인간이란 미련하고도 가련한 생물이다.”
사고(思考)하기에, 보잘것없는 몸으로 무언갈 이루려 하기에,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몰되기에 인간의 삶은 불행해지기 십상이다.”
“찾아야 한다.””
제 한 몸으로, 짧은 생(生)으로 이루지 못할 꿈을 좇기에 인간은 무력함을 느낀다. 무력함을 느끼기에 자책한다. 자책하기에 인간의 삶은 불행에 떨어진다.”
“나는, 찾아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