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4
별에게 사랑받고, 별의 눈동자를 지닌 존재.”
“나만큼 적합한 이가 또 없겠어.””
이곳이겠구나.”
나의 시간을 마칠 장소가.”
“내가 그릇이 되겠다.””
그렇게 내가 모두의 앞에 서려는 순간이다.”
나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나는 모든 신하들을 지나쳐 가장 앞으로 향했지만, 그만큼은 내가 지나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별일이로군.””
언제나 나의 곁에서, 나의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지켜왔던 존재. 나의 나라를 수호하는 기사.”
“경이 내 앞을 가로막다니.””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
첫만남 이후로 언제나 내게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맹세했던 그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날처럼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아르카디아를 수호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으로 압니다.””
“그리 명했었지.””
“당신이 곧 아르카디아이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을 지켜야 합니다. 주인을 지키지 못하는 검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과연, 하고 내가 쓰게 웃었다.”
“백성 없는 국가란 있을 수 없는 법이라네, 경.””
“그, 건···.””
“권력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아르카디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겠지.””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비켜주겠나.””
꾸욱, 하고 가니칼트가 제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무력함에 분노하듯이. 불가능한 것이 없다 여겨 오만해졌던 검사가 자신의 무력함을 체감했다. 아마도,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겠지. 그 광경을 보지 못하는 게 아까울 따름이었다.”
내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나?””
“하명하십시오.””
“하명이 아니라, 그대와 오래 알고 지낸 친우로서 묻는 것이다.””
내가 가벼이 웃었다.”
“검에 담을 의미는 찾았나?””
“···찾았습니다.””
“신념은 가졌나.””
“가지게 됐습니다.””
가니칼트가 칼자루를 꾸욱, 하고 움켜쥐었다.”
내가 그에게 맡겼던 임무는 수호(守護)다. 인류의 방벽이 되어, 그는 인류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검에 무게가 더해졌으리라.”
“그런가. 의미가 있었군.””
내가 미소 지었다.”
“잘된 일이야.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대는 내게 과분한 검이었어.””
그를 지나쳐 내가 앞으로 향했다.”
가장 앞에 서서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니칼트, 그대뿐만이 아니지. 카르디, 벨리알, 글레리아, 아바돈, 루그란, 트리스탄···.””
이 나라에서 가장 빛나는 이들.”
내가 가장 아꼈던 신하들의 이름을 하나씩 입에 담으며 나는 아르카디아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그대들을 믿는다.””
무거운 짐이 되겠지만.”
“부디 아르카디아를 지켜다오.””
그게 나의 유언이었다.”
그릇된 신을 향해 내가 투신했다.”
여왕께서 희생하셨다.”
구정물에 삼켜진 여왕께선 구정물과 함께 지평선의 너머로 사라지셨다. 별빛이 닿지 않는 버림받은 땅으로. 모실 주인을 잃어버린 이들은 고뇌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가니칼트와 카르디였다.”
“원인을 찾겠다. 전하께선 언제나 말씀하셨다. 왕국에는 독(毒)이 있다고. 저 왕성의 깊은 곳에서부터 구정물은 시작됐다. 우선, 그것을 먼저 베겠다.””
아르카디아를 지켜다오.”
그것이 여왕의 유언이었으므로, 우선 아르카디아의 혼란을 수습해야겠다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카르디와 가니칼트, 벨리알, 글레리아는 왕도에 남은 구정물을 모조리 치우는 것을 우선으로 두었다.”
“나는 버림받은 땅으로 향하겠다.””
“나도 함께하지.””
아바돈은 사라진 여왕의 흔적을 뒤쫓겠다고 이야기하고선, 나무뿌리를 엮어 만든 창(槍) 한 자루만을 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태양을 형상화한 방패를 쥔 트리스탄은 아바돈의 뒤를 따랐다.”
“루그란.””
남은 것은 루그란 하나뿐.”
서기관, 루그란.”
너는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카르디가 질문했다. 그 질문에 루그란은 쥐고 있던 수기(手記)를 탁, 하고 덮었다. 깃펜을 내려놓고선 고개를 들었다.”
“전하께서 따로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가.””
“왕국의 바깥으로 망명할 생각입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지?””
“도망치기보다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것이지요.””
루그란, 왕가의 피를 엷게나마 물려받은 이.”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라. 전하께선 제게 그리 말씀하셨으므로.””
루그란 클렌 아르카디아가 말했다.”
낡은 수기(手記)에는, 한 명의 인간이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남들보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누군가가 발버둥친 역사가 박제되어 있었다.”
라니엘은 말없이 수기의 페이지를 넘겼다.”
어느 순간부터 수기의 필체가 바뀌어있었다.”
날카롭고 정갈한 필체에서, 딱딱한 벽돌과도 같은 필체로 변한 순간은 아르카디아에서 그늘이 범람한 시점이었다. 여왕의 필체가 아닌 다른 이의 필체로 쓰인 수기를 그녀는 계속해서 읽었다.”
「부디 아르카디아를 지켜다오.」”
「그것이 전하께서 남기신 유언이었다.」”
이 수기를 이어서 적은 이가 누구인가. 그 사실을 라니엘이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하께선 말씀하셨다. 자신이 더는 이 수기를 집필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다면, 이를 이어서 작성하라고. 후세에 물려주라고 내게 명하셨다.」”
수기의 대필을 명령받은 이.”
「본인은 루그란.」”
「루그란 클렌 아르카디아.」”
「아르카디아의 서기관이자, 전하와 같은 피를 타고난 그분의 혈육이다.」”
루그란 클렌 아르카디아.”
그 이름이 낯이 익었다. 어렸을 적 스승님께 카르테디아 왕국의 역사를 배울 때 들어 본 이름. 라니엘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성이 아르카디아는 아니었지만 말야.’”
루그란 클렌 카르테디아.”
만마의 주인과 그 휘하의 재앙들이 세상을 검게 물들이는 혼란의 시대에, 인류 최후의 보루인 카르테디아 국(國)을 건국한 시조의 이름이었다.”
나의 이름은 루그란이요, 내가 타고난 피의 이름은 아르카디아다. 왕가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본류(本流)와는 까마득히 멀어진 나머지, 나의 아비와 어미는 왕가의 일원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위치였다.”
나 또한 애매한 위치에서, 애매한 삶을 살다가, 그럭저럭 적당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었으리라.”
그런 나를 전하께선 당신의 곁에 두셨다.”
전하는 내게 서기관이란 직위와 함께, 당신의 일상과 아르카디아의 모든 것을 기록하시기를 명하셨다. 그 명령을 따랐다. 내게는 나도 모르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은 기록과 관찰이었다.”
전하의 곁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전하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관찰과 기록이란 그런 것이다. ”
관찰하기 위해선 아는 것이 많아야 했고, 기록하기 위해선 정리와 요약을 해야 했다. 자연스레 아는 것이 많아졌다. 대현자라 불리는 카르디 경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아는 것이 많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하께선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루그란.””
“예, 하명하십시오.””
“본녀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곱절은 긴 삶을 살았다. 아, 그야말로 세상만사가 질릴 정도로 오랜 삶을 살았지.””
“···그렇습니까?””
“이게 무슨 개 헛소리지, 하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로군. 그래, 보통은 그런 반응을 보이겠지. 뭐··· 믿어달란 말을 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할까 한다.””
“명령이십니까.””
“부탁이다. 부탁.””
그분이 품에서 낡은 수기를 꺼내 들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수기를 이어서 작성해주겠나? 그대의 눈으로 본 아르카디아의 다음을, 그리고 그대의 삶을 적어 주면 좋겠어.””
낡고 해진 수기.”
“언제나 최악에 대비하도록, 루그란.””
아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수기를 내게 넘기며 그분은 웃어 보이셨다. 이 수기야말로 자신의 보물이니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맡기는 것이라고. 나는 받아든 수기를 소중히 보관했다.”
수기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다. 내 눈에 수기에 적힌 글자들은 모조리 검은색 상자로 보일 뿐이었다. 아마도, 다른 조건이 필요한 것이겠지. ”
여왕께선 ‘나를 닮은 아이만이 읽을 수 있는 글이지.’ 라고 미소 지어 보이셨다. ”
그 말의 뜻을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