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3
내가.”
“네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버리고 망가트려 온 것 또한 절대적이지 않겠느냐.””
내가, 버린 것들.”
솟구치는 구정물을 마주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아.””
아니로구나. 내 오라비가 그러모은 것은 내가 숙청했던 시정잡배들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들과는 다른 존재. 나로 하여금 짓뭉개지고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던 이들. 나의 수백 년 동안 오직 잃기만 했던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버림받은 땅의 주인.’”
마족이라 불리는 이들.”
인류의 주적이자, 아르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아종족. 아르카디아의 기실을 다지고 변수를 배제하기 위해 내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토벌해온 존재들.”
그들로 만들어진 독(毒)이 범람했다.”
범람하는 구정물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
하루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악취가 아니었다. 수년,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고인 것들에게서 풍기는 악취였다. 왕궁의 복도를 타고 흐르기 시작하는 구정물에선 목소리가 들렸다. 비명이 메아리쳤다.”
짓물러진 악의.”
끝을 알 수 없는 증오.”
원망, 원념, 혐오, 그리고 저주.”
자신들을 버린 별을 증오하고, 자신들을 비추지 않는 별빛을 갈망하는 원념 덩어리. 내가 지닌 축복과 별빛에 구정물은 반응했다. 왕성이 뒤흔들렸다. 아르카디아의 중심에 놓인 성이 뒤흔들리니, 나라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울렸다. 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내가 쌓아온 것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래도 너의 왕국이··· 너의 제국이 견고하더냐?””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가 비웃었다.”
비웃음과 함께 왕궁이 뒤집혔다. 뒤집힌 벽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 존재들. 오직 타인을 저주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 ■■■■■■■■, ■■■■■■■■■■.”
그들이 우짖었다. 비명이 메아리쳤다.”
메아리치는 비명에 구정물이 들끓더니, 이윽고 형태를 가졌다. 손아귀로 변한 구정물이 왕성의 벽을 할퀴고 잡아 뜯으며 밀려들었다.”
“어디 한번 발버둥쳐보아라, 누이야.””
구정물 사이로 그가 멀어졌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며 내가 이를 악물었다.”
“···전하!””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몸에 달라붙은 손아귀들을 뜯어내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흐릿했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니 그제야 앞이 보였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경이었나.””
구정물을 베어 가르며 내게 달려오는 그를 바라보며 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지닌 검(劍)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날카로운 검. 자신의 무력이 지닌 무게를 알기에 그 무엇보다도 무거운 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며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몸을 움켜쥔 손아귀를 뜯어냈다.”
“무사하십니까. 옥체가···.””
“무사하다. 경만큼은 아니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할 만큼의 무력은 지니고 있으니.””
거짓이었다. 검은 손아귀가 할퀸 곳마다 상처가 곪았다. 썩어 문드러졌다. 허나 참을만했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나는 이 나라의 국왕이다.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내가 흔들린다면 혼란은 더욱 커지리라.”
“우선 밖으로 나가지. 길을 열어주겠나.””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구정물에 뒤덮인 벽을 가르고 손아귀들을 쓸어 넘기며 나는 바깥으로 향했다.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랐다. 그리하여 도달한 곳에는 이미 나의 신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사함을 확인한 그들은 이윽고 보고를 올렸다. 그들의 보고를 들으며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아르카디아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무너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수로를 타고, 물길을 타고 구정물들은 아르카디아 곳곳으로 퍼졌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구정물뿐이었다. 왕국의 모든 곳에서 손아귀가 솟구치고 있었다.”
백성들의 비명이, 혼란이, 손아귀에 붙잡혀 짓뭉개지는 이들의 신음이 메아리쳤다.”
구정물들은 이윽고 하늘로 향했다. 왕도 곳곳에 퍼져있는 구정물이 모조리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거대한 구(球)다. 아르카디아의 상공에 아르카디아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검은 태양이 떠올랐다.”
“잿빛 마탑주.””
“예, 부르셨습니까.””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나?””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이 나라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이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또한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대답은 어디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왕도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현명한 이들이 모인 자리이거늘, 이들 중 그 누구도 저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완전한 미지(未知)가 해를 가린 채 아르카디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태동하고 있군. 박동하고 있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욱 거대해지고 있고.””
내가 구정물로 이루어진 구를 가리켰다.”
“터질 것처럼 보이는데, 그대가 보기엔 어떻지?””
“······.””
카르디 반 아르미엘이 잠시 숨을 삼켰다.”
고민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별빛이나 마나와는 정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무언가입니다. 그리고, 폭주하고 있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겠지요.””
“막을 수 있나?””
“···가진 모든 주문을 쏟아부어 봤으나, 효과는 없었습니다. 마나 자체를 흐트러트려 버립니다.””
마법으론 불가능하단 뜻이로군.”
“수호단장.””
“예, 전하.””
“벨 수 있겠나?””
“······.””
절그럭, 하고 가니칼트가 제 칼자루를 매만졌다. 답은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1초, 2초, 3초. 가니칼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시도 해보겠···.””
“아니, 관두어라.””
베어야 할 것이 있다면, 벨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었던 가니칼트다. 그런 그가 고뇌했다. 칼자루를 쥔 손이 흔들렸다. 그것은 확신이 없다는 뜻이요, 확신 없이 벨 수 있을 만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대도 벨 수 없는 게 있기는 하는가 보군.””
내가 쓰게 웃었다.”
“폭발한다면 범위는 얼마나 되겠나.””
나의 질문에 카르디가 답했다.”
“···절반입니다.””
“왕도의?””
“대륙의, 절반입니다.””
별과 같은 존재라고. ”
신(神)에 가까운 무언가라고 카르디는 덧붙였다. 저것이 폭발한다면 아르카디아는 물론이고, 인류의 대부분이 휩쓸려나가겠지.”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피? 어디로? 대륙의 절반이 삼켜진다고 말하지 않았나. 도망칠 곳은 없겠지.””
탁, 하고 내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방법은 있나.””
“······.””
“그대도 모르는 것이 있나 보군. 오늘 그대들의 새로운 일면을 자주 보는 듯해.””
농담하듯 중얼거리며 내가 카르디를 흘겨봤다.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답을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저 엘프가 언제나 추구하던 ‘최선’의 답이 아니었을 테니.”
그 답이 무엇인지 난 알 것만 같았다.”
‘누군가 희생해야 할 상황이로군.’”
정말이지 빌어먹을 오라비다.”
그가 내가 왕성에서 도망치도록 내버려 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언제나처럼 그는 내게 선택을 강요한다. 내가 고뇌하는 모습을, 내가 몸부림치는 모습을 어디선가 바라보며 즐기고 있으리라.”
···그런가, 여전히 그에게 있어 나는 유희거리에 불과한 건가. 수백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인가.”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나는 이 자리에 모여든 나의 신하들을 보았다.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모아온 인재들이다. 그때와 달리, 내 곁에는 나보다 유능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나의 시간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저들이 있다면···.’”
아르카디아는 끝나지 않으리라.”
저들이 살아남는다면, 아르카디아에게 다음은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걸로 족했다. 나는 고뇌했고, 고뇌 끝에 선택을 내렸다.”
“내 눈에는 답이 보이는군.””
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나의 신하들을 지나쳐 내가 앞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하였나.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라고 하였나. 내가 보기에, 저것은 자신을 담을 그릇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길 수 없으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니 범람하고 말겠지.””
그릇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자리에 필요한 것은, 저 구정물을 담아낼 그릇이로군. 신을 담아낼 그릇.””
내가 가벼이 웃었다.”
“마침 적합한 존재가 이 자리에 하나 있군.””
신하들이 나를 바라봤다.”
내 말뜻을 이해한 카르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별에게 축복받은 이. 가장 많은 별빛을 몸에 품은 이. 이미 신의 힘과 권능을 몸에 담아본 존재가 이곳에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