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12
“하지만, 왕녀님···.””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놓아줘라. 마음만 먹으면 그대들을 모두 제치고 왕성을 유유히 걸어 떠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놓아줘라.””
기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청년을 향해 질문했다.”
“저들을 모조리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구태여 이 자리에 끌려온 이유가 무엇이지?””
“충성을 바칠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검을 가르친 스승이 제게 말했습니다. 검에는 응당 휘둘러져야 할 방법이 있을진대, 네놈은 미련하고 올곧기만 해서 뜻을 한평생 찾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모실 주인을 찾아라. 그게 스승의 유언이었습니다. 유능하고 현명한, 그리고 선(善)한 주인의 아래서 대의가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검에 신념이란 이름의 무게를 더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뜻이니, 신념이니, 대의니.”
뜬구름 잡는 소리만을 늘어놓던 검사가 허리춤에 채워둔 검을 움켜쥐었다. 기사들이 아무리 빼앗으려 해도 빼앗지 못했던 검. 그가 칼자루를 움켜쥔 순간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곤 카카캉, 칼을 뽑아들었지만··· 나는 가벼이 손을 휘둘러 기사들을 제지했다.”
“그렇게 주인을 찾아 헤매니, 소문이 들리더군요. 아르카디아라는 나라에 현명한 왕녀가 계시더라. 장차 그 나라의 주인이 되실 분이신데, 신분의 고저를 가리지 않고 재능있는 이를 모두 거두어가시더라.””
청년이 허리춤에 매어둔 칼을 끌러 제 발밑에 내려놓았다.”
“실제로 마주하니 소문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나 또한 그에게 물었다.”
“이름은?””
“가니칼트 입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내가 왕성의 창문 바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반으로 쩍, 갈라진 성벽이 있었다.”
“도대체 저 성벽은 왜 부숴놨나? 본녀를 만나고자 한다면 방법이야 많았을 텐데. 저 성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는 있나?””
“아르카디아의 성벽은 버림받은 땅의 주인들, 마족에게서 인류를 보호하는 수호의 성벽이라고 들었습니다. 인류가 지닌 가장 굳건한 벽.””
“잘 아는군. 그러니까, 그 수호의 성벽을 도대체 왜 반으로 쪼개놨는지 묻는 것이다.””
가니칼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굳건한 성벽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 이유가 필요합니까?””
“과연···.””
미친놈이로군. ”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
요컨대, 그냥 가장 튼튼한 성벽이라길래 반으로 쩍 쪼개보고 싶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헛웃음을 흘리며 내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대가 부순 성벽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서, 가니칼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앞에 바로 섰다. 그가 바닥에 내려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니.””
들어올린 칼자루로 툭, 하고 가벼이 가니칼트의 어깨를 건드렸다.”
“이번에는 그대가 지켜봐라.””
고개를 세우고 있던 가니칼트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자리에 들어온 아래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아, 드디어 이곳까지 왔구나.”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엘프가 있다. 전례 없는 축복을 타고난 신의 대리인 성녀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실력을 지닌 검사가 있다. 충분한 인재들이 모인 것이다.”
그러니, 하고 내가 생각했다.”
이번 생이 나의 마지막 생이 되겠구나.”
* * *”
오랜 시간 인류와 적대하던 버림받은 땅의 주인인 마족들과의 전쟁이 끝이 났다. 여러 전쟁 영웅들과 함께 나는 종전을 선언했다. ”
모든게 끝이 났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마(魔)와의 전쟁도 끝이 난 것이다. 더는 인류를 위협하는 적은 없다.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 섰던 아르카디아는, 이제 인류를 대표하는 하나의 국가가 되어 있었다.”
전쟁 영웅, 벨리알 반 드라고닉.”
검성(劍聖),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성녀,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
빛나는 이들이, 장차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 아르카디아에는 가득했다. 금언과 금제 탓에 독의 존재를 저들에게 알리지는 못하나··· 나는 그들에게 꾸준히 경고했다. 왕국에 오랜 독(毒)이 있고, 그 독이 머지않아 아르카디아를 덮치리라고.”
“경애하는 카르디 경.””
“그리 부르시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부탁하려 하십니까?””
“별건 아니다. 내가 이 땅을 떠나거늘··· 다음 국왕을 잘 보필해달란 이야기다.””
“아직 자식도 보지 못하셨는데, 무슨 뜬구름을 잡는 소리이십니까?””
“자식은 없더라도 오라비가 있지 않으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에 비하면 조금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오라버니이지만, 그 역시 아르카디아의 핏줄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나는 단명하니 다음 왕위를 이을 인물은 오라버니가 될 터였다.”
아니, 더는 왕위가 아닐지도 모르지.”
이제 아르카디아는 왕국이 아닌 제국이 되리라.”
즉위식을 앞두고 나는 바삐 움직였다. 모든 것을 끝낼 시기가 왔다. 그렇게 제위에 오를 즉위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복도를 지나치다 나는 나의 오라버니와 마주했다.”
“드디어 꿈을 이루시는군요. 경하드립니다.””
나를 어려워하던 오라버니다.”
어려워하면서도, 나를 동경하던 오라버니답게 그는 밝게 미소 지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나 또한 미소로 화답하려는 순간이었다.”
···꿈을, 이뤘다고?”
내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꿈을 누군가에게 말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그곳에 서 있던 오라버니가 미소 지었다.”
“아르카디아를 제국으로 만든다.””
그것이, 하고 그가 말했다.”
“그것이 네 꿈이지 않았더냐.””
눈 앞에 있는 것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내 앞에서 네가 약속한 것이지 않더냐?””
이번 생을 시작하고 마주하게 된, 어리숙한 나의 혈육이 아니다. 나와 같은 시간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암약해온 존재.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드디어 오셨군요, 오라버니.””
“오랜만이구나, 누이야.””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타인의 껍질을 뒤집어쓴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가벼이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다. 왕성에 종소리가 메아리쳤다. 수많고 수많은 기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그 선두에 서 있을 수호기사단장의 발걸음 소리가 왕성의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돌아오는 날을 기다렸다.”
이날만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날이 오늘이 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이 기회에 독을 제거하고 아르카디아는 제국으로 발돋움하리라. 나의 오랜 숙원을 이루어내리라.”
“과연, 많은 것을 준비했구나.””
걸음 소리 사이로 그가 웃음을 흘렸다.”
“내가 버린 것들만을 거두어 나를 상대하던 네가, 이제는 빛나는 것들을 손에 넣어 나를 상대하는구나.””
“그때와 같지는 않을 겁니다.””
“나를 흉내 내 이리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야. 오직 너만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 오직, 너만이···.””
그가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네가 나를 흉내 냈으니.””
얼굴을 쓸어내린 그가 미소 지었다.”
“이번엔 내가 너를 흉내 낼 차례구나.””
왕국의 독,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가 손짓했다.”
그 순간, 땅의 깊은 곳에서 구정물이 치솟았다. 작은 틈이란 틈마다 구정물이 터져 나왔다. 솟구치는 구정물 사이로 나의 오라비가 광소했다.”
“네가 망가트리고, 네가 버려버린 것들을 마주해보아라.””
구정물이 범람했다.”
네가 버리고 망가트린 것들을 마주하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떠오른 것은 내가 숙청했던 간신배들이요, 이 나라를 좀먹는 벌레들이었다. 그딴 것들을 그러모아 아르카디아를 무너트리겠다고? 내가, 나의 수백 년으로 쌓아올린 성을 허물겠다고? 우스운 일이었다. 귀에 담을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였다.”
“어디 한번 무너트려보십시요.””
나의 수백 년이다.”
지난 수백 년의 세월 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빛나는 이들을, 찬란한 이들을 그러 모았다. 용의 주술사, 검성, 대현자, 성녀, 천리를 읽는 점성술사, 꿰뚫는 창, 끝자락의 사수, 태양의 기사···.”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처럼 나는 무력하지도,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어야 할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나의 수백 년은 견고하다.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 내가 확신하던 찰나다.”
“누이야.””
아크리타가 광소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오직 너의 시간만이 견고할 것 같으냐?””
그가 손짓했다. 그의 손짓을 따라 구정물이 솟구쳤다. 솟구치는 구정물이 범람했다.”
“시간이란 상대적이며 또한 절대적이다. 너의 시간이 견고하다면, 너의 대척점에 서 있는 나의 시간 또한 견고하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