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2
〈 42화 〉 수업 참관(1)
* * *
깨달음을 얻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타인의 가르침에서 답을 찾는다. 그러나, 종종 타인에게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미 자신의 마도(??)를 확립한 이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이들.
그 확고함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장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흔들리지 않아 파고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주관이 확고하여, 타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야겠지.’
로셀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런 별종을 키워본 적이 있었으므로.
“라니엘.”
로셀은 나지막이 자신의 제자를 불렀다.
“내가 이전에 말했던 걸 기억하느냐?”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플리아로의 출근을 앞둔 그녀는 양복 차림으로 자리에 앉아있다.
“흠.”
언제나 로브 차림이었던 제자의 변화에 로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썩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럴 줄 알았음 진작 사줄 걸 그랬어.’
단정한 옷차림, 가지런히 빗어 내린 머리칼.
로브 차림으로 돌아다닐 때는 학생들과 동갑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학생이라 오해받진 않겠군.’
이렇게 정장을 입혀두니, 자리에 걸맞은 관록이 붙은듯한 느낌이 든다. 한층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음.”
로셀은 만족스레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라니엘 네가 해야 할 건, 참관 신청을 해둔 교수들의 수업을 들으며 배우는 것이다.”
라니엘의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종이로 향한다. 종이에는 교수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본래, 조교수들이 본 교수의 수업을 참관할 때는 돌아다니며 교수들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러나, 라니엘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시판에 붙여놓은 지 하루 만에 저 정도라니.’
로셀은 신청서를 빼곡히 매운 교수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아플리아내에서도 이름 좀 날리는 교수들의 수업도 꽤 적혀있다.
‘이래서야, 누가 본 교수인지 모르겠군.’
꼭 자신의 경지를 자랑하고 싶다는 듯, 앞다퉈 이름을 적어둔 교수들을 보며 로셀은 쓰게 웃었다.
“아플리아에는 유능한 교수들이 많다. 오랫동안 교육자로서 일한 만큼, 무언갈 가르치는 행위에 있어선 일정 경지에 오른 이들이다.”
로셀은 말했다.
“그들의 수업을 들으며 라니엘 네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아래와 같다.”
로셀은 손가락을 쫙 펼쳐, 하나씩 접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가, 설명할 때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고 하는가, 학생들의 수준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가.”
그것을 써둔 종이를 자신의 제자에게 건넨다.
“중요한 건 위 세 가지지만, 다른 것들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음··· 가르치는 방식을 배워오란 거죠?”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신의 제자에게, 로셀은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의 수업을 네 방식대로 해석하거라. 무작정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로셀은 알고 있다.
자신의 곁을 떠난 5년간, 이 제자 녀석은 변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무작정 배우라고 해보아야 어설프게 흉내 낼 뿐이다.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짓거리다.
흉내를 내보아야, 진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예전하고 똑같이 가르쳐야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보단, 힌트를 주고 그곳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 그것이, 이 별난 마법사를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네 눈으로 보고, 네 귀로 듣고, 네 뜻대로 해석하거라.”
한마디를 덧붙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요?”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로셀이 엷게 웃었다.
“천천히 해보자고.”
라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감을 잡은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어느 교수님 수업부터 찾아가 볼까요? 스승님 수업부터?”
“아니. 내 수업은 마지막에 들르거라. 처음은 어느 교수가 좋을지 한번 봐 보자꾸나.”
로셀은 라니엘과 함께 종이를 살폈다.
교수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하나다.
전투 마법학 / 맥하트.
다른 교수들이 줄을 맞춰 반듯이 써놓은 것에 비해, 맥하트의 이름은 큼지막하게 쓰여있다. 그것도 다른 교수들의 이름 위에.
“무례한 건 여전하군.”
쯧, 하고 로셀은 짧게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해, 배울 건 하나도 없는 사내지만···.’
로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리곤, 이 제자 녀석이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을 떠올려 본다.
하면 되던데요?
왜 못해요?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죠.
그 말버릇은.
하면 되지 않나.
왜 못하나?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안되면 될 때까지. 그것이 전장의 기본이다. 기본조차 모르는 마법사에게 내가 가르칠 건 없다!
맥하트 교수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물론, 맥하트 교수의 말엔 악의가 담겨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겠지만··· 듣는 입장에선 비슷할 것이다.
‘어찌 보면, 첫 참관으로 좋을지도 모르겠군.’
반면 교사란 점에서 말이다.
“처음은 이 교수가 좋겠구나.”
“맥하트 교수님이요?”
“그래, 마침 전투 마법학이구나.”
“전투 마법학이면··· 그 듣보잡 클래스요?”
움찔.
로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보, 뭐?”
“듣도 보도 못한 잡 클래스요. 무근본 직업.”
“···그렇게 생각하느냐?”
“아니, 제가 클래스에 귀천을 따지진 않는데··· 그건 좀 근본이 없잖아요. 마법사가 육체 단련에 기본으로 둬? 어떤 미친놈이 그래요?”
네가 그러지 않느냐.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로셀은 참아냈다.
“으음···.”
뭐라도 덧붙일까 했지만, 로셀은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클래스의 창시자가, 그 클래스가 근본이 없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저 로셀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2.
전투 마법학 입문.
담당 교수, 맥하트.
배틀 메이지 클래스를 선택한 학생들은 맥하트의 수업에서 기본을 배우게 된다. 전투 마법학의 기본은 체술, 맥하트는 그렇게 말한다.
“배틀 메이지와 다른 클래스 간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체술의 운용에 있다.”
그가 강당에 모인 학생들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배틀 메이지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전장에서 배틀 메이지들은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후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은근히 팔뚝에 난 상처를 드러내며, 맥하트는 전장에서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또 저 이야기야?’
벌써 몇 번째 듣는지 모를 이야기다.
속으로 한숨을 참으며 학생들은 맥하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배틀 메이지는 전열, 혹은 급습부대에 배치되지. 대부분의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배틀 메이지의 장점이다. 위자드 클래스보다 화력은 딸리겠지만··· 그 유용성을 따지자면 배틀 메이지가 한 수 위라는 소리다.”
굳이 위자드 클래스를 언급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맥하트가 시선을 옮긴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라니아 교수?”
그녀를 바라보는 맥하트의 입가에는 은근한 비웃음이 묻어나온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맥하트가 알기로, 그녀는 위자드(Wizzard) 클래스로 등록된 마법사였다.
‘주 된 마법은 원소 마법이라던가?’
그 위력은 대단하나, 대단한 위력만큼이나 오랜 준비단계를 거치는 게 바로 원소 마법이다.
‘가장 실전성이 떨어지는 마법.’
사실상 배틀 메이지와는 상극에 놓인 클래스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맥하트는 코웃음을 친다.
“···?”
그러나, 정작 그 시선을 받는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자네는 위자드 클래스였지?”
“아, 네.”
그 대답에 몇몇 학생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위자드 클래스라고?’
그들은 테러 당시 주문 훈련실에서 있었던 이들이다. 라니아 교수의 전투를 목격한 이들이었다.
‘훈련실의 바닥을 맨손으로 때려 부수는 사람이?’
학생들의 반응이 그러든지 말든지, 맥하트는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뭐, 이번 수업에 참관하게 되었으니··· 배틀 메이지란 클래스가 어떤 건지 체험하고 가게나.”
“네.”
“우선 내려와 보겠나? 내 수업은 지극히 실전을 지향하니 말일세.”
맥하트는 ‘실전’이란 단어를 강조한다.
그 노골적인 도발은 학생들조차 눈치챈다. 그러나, 정작 도발을 받는 본인은 무표정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강당의 중심으로 걸어온다.
“흐음.”
그 여리여리한 체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맥하트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오늘 배틀 메이지의 체술에 대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겠네.”
3.
주술사 겸 배틀 메이지, 벨노아.
그는 맥하트 교수의 수업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흥미를 느낄만한 껀덕지가 없었다.
우선, 맥하트가 강조하는 체술.
‘기사들의 기초 교본이라고 하던가?’
벨노아가 보기에, 그건 그다지 도움이 될만할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보면서 의문이 들 뿐이다.
‘뭐하러 타격을 넣지. 그냥 관절을 꺾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슬럼가에서의 숱한 경험과 더불어, 카르디 영감이 구해준 고대 무술을 체득한 벨노아다.
그런 벨노아의 시선에 맥하트가 가르치는 체술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문의 스톡(Stock)이나 육체 강화 주문을 배우자니···.’
그걸 배울 거면 흑마탑주를 찾아가면 된다.
예로부터 주문의 스톡개념을 연구해 온 곳이 바로 흑색 마탑이었으니까.
‘속 시커먼 영감이긴 하지만···.’
적어도, 흑마탑주는 스승으로서의 의무는 다하는 편이다. 배우겠다고 찾아간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주겠지. 스승으로서의 흑탑주는 썩 괜찮은 인물이었다.
‘보증자로선 별로지만 말야.’
아무튼 간, 맥하트에겐 썩 배울 것이 없단 뜻이다. 하지만, 벨노아는 그 사실에 별로 불만을 느끼진 않았다.
‘몸 푸는 시간.’
딱 그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애당초부터 기대를 별로 하지도 않았고.
‘여태까진 그래왔는데···.’
오늘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뀔 것 같았다. 다름 아닌, 이 수업에 참관 중인 한 교수 덕분에.
힐끔.
벨노아는 맥하트 교수가 있는 쪽을 흘겨봤다.
평소에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훈수를 두던 맥하트지만, 오늘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학생이 아닌, 교수와 함께.
“다시.”
“···예?”
“그게 아닐세. 이렇게 하는 거라네. 발은 이렇게! 주먹은 이렇게! 조금 더 힘을 줘서! 기본일세!”
잿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자유 대련을 하고 있던 학생들도 자꾸만 그쪽을 힐끔, 쳐다본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에게 맥하트가 체술을 가르치고 있다.
기본(??)에 대해 논하고 있다.
“·····.”
라니아 교수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는 벨노아의 시선에, 그건 꼭 아이가 어른을 가르치려 드는 모습으로 보였다.
‘지하수로에서 보여줬던 그 움직임.’
벨노아가 기억하는 그 움직임은.
그가 보았던 그 어떤 배틀 메이지보다 깔끔하고, 효율적이었다. 맥하트의 조잡한 체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고 배울 게 있는 움직임이었다.
“으음.”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맥하트가 훈수를 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미묘한 심정이 든다.
‘···도대체 왜 참관한 거지?’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학생인 자신마저 배울 게 없다고 느끼는 수업이었으니까.
벨노아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맥하트의 훈수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해보게!”
“어? 이렇게요?”
“그게 아닐세. 이렇게 하란 말일세. 왜 못하나? 보여줬지 않나?”
맥하트는 라니아 교수의 옆에 딱 붙어, 그녀의 팔을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있다.
“이렇게 말일세!”
“·····.”
“자네는 기초가 없어도 너무 없군! 에잉 쯔쯧. 이래서 위자드들은···.”
이리저리 잡아 끌려다니는 라니아 교수의 얼굴에 조금씩 표정이 사라져간다. 차게 식어가는 그 푸른 눈동자에, 벨노아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으음.”
그때 문득, 누군가 짧게 신음했다.
벨노아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라크?”
“음, 벨노아인가.”
익숙한 백발의 소년.
라크가 몸을 부르르 떨며 벨노아에게 다가왔다.
“벨노아, 뭔가 춥지 않나?”
“춥다고?”
벨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운 것 같진 않은데.”
“뭔가, 뭔가 한기가 느껴진다.”
“···뭐?”
“춥,춥다. 왜지? 나만 추운 것인가?”
“지금 봄인데. 그리고 덥고.”
“추운 것 같다. 딱 저쪽에서 한기가···.”
한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손가락을 뻗던 라크가, 짧게 경직했다. 그 말을 멈췄다.
그 손가락이 향하는 곳.
그곳에는 무표정하게 지도를 받는 라니아 교수가 있다. 그 가느다란 팔이 맥하트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얼핏 보면 의욕이 없는 모습이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몰라도, 북방의 전사들 사이에서 ‘매의 눈’을 가졌다고 칭찬받던 라크의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
꿈틀.
미세하게 떨리는 라니아 교수의 눈썹과.
빠직.
이마에 도드라진 혈관이.
‘화, 화나 있다?’
라크는 숨을 헛삼켰다.
일전에도 저것과 비슷한 표정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자신의 스승의 이름을 물었을 때였을 것이다.
네 스승의 이름이 뭐더라?
그냥, 좀. 기억해 두려고.
마치 사냥감을 선정하는 맹수와 같은 눈빛.
그 눈빛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눈빛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꼭, 자신의 앞에서 깔짝이는 토끼를 보는 맹수의 눈빛이다.’
라크는 토끼가 호랑이 앞에서 깔짝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것도, 호랑이의 콧잔등에 발차기를 날리는 토끼의 모습을.
콰직.
그 뒤에 이어질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호랑이가 토끼를 물어 뜯는 모습을 상상한 라크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