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25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각자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걱정하기보단, 너희가 가야 할 무대를 봐.””
그것이 신뢰(信賴)고.”
그것이 최선(最善)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상을 말했고, 정신론을 이야기했으니, 남은 건 현실이지. 이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겠어?””
라니엘이 지도를 투욱, 하고 두들겼다.”
“지금부터 광인 토벌전, 가니칼트 토벌전의 개요를 설명한다. 귀 열고 잘 들어. 시간이 촉박하니까.””
작전의 개요와 세부사항, 그리고 상대의 전력에 관한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데스텔 역시 결국에는 라니엘이 짠 작전에 수긍했다.”
“원래는 벌써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본래 계획했던 가니칼트 토벌전에 쓸 수단이야. 이르긴 하지만 사용하는데 무리는 없겠지.””
라니엘이 가진 수를 깔 때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데스텔의 눈에도 미약하게나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확신하기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작전은 아니었다. 여전히 자기희생에 가까운 수단이긴 했지만, 앞서 말한 대로 라니엘에겐 목숨을 버릴 생각은 없는듯싶었다. 데스텔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데스텔도 알고 있다. 지금의 자신이 평소와 달리 지나치리만치 감정적이라는 것을. 라니엘의 이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
···젠장, 하필이면 그딴 걸 봐서.”
지난번 배교자 토벌전에서 미래의 자신과 마주한 이후로, 데스텔은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데스텔은 실패한 미래에 서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시간대의 데스텔로서.”
핏물, 놓아버린 것, 포기한 것들, 망가진 것들.”
실패한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그것은 끔찍한 악몽(惡夢)이었다. 꿈속에서 자신은, 아마도 미래의 자신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
「마녀.」”
「광인.」”
「실패한 용사.」”
「인류의 오점.」”
피로 물든 잿빛 머리칼.”
「마녀가 가는 전장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수많은 영웅들의 희생된다. 저자는 더이상 용사가 아니다. 사람을 쉽게 버리고, 쉽게 놓아버리는 이가 어찌 용사라 불릴 수 있겠는가?」”
「반푼이.」”
「저 자가 역천의 검을 죽이지 못했기에.」”
「망설였기에 인류는.」”
「저년이.」”
「괴물.」”
지탄받고, 규탄받으며 나아가는 이.”
「라니아 반 트리아스.」”
혹은, 라니엘 반 드라고닉.”
버리고 버린 끝에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려버린 광인(狂人). 데스텔은 실패한 미래의 자신이 되어, 그녀를 따라 기나긴 여정을 경험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악몽 속에서 데스텔은 라니엘이란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고,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런 미래를 보았기에 지금의 상황에 유달리도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이었으리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간. 영웅이라 불리기에 족한 인간. 그런 인간이 짓물러지는 광경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쯧.””
데스텔이 짧게 혀를 차며 제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어트렸다. 잠깐의 휴식 시간 동안 데스텔은 카테론 고성의 망루에 올랐다. 연초를 꼬나문 채 길게 숨을 빨아들였다.”
알고 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이런 방법밖에 없다는 것도, 이런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어야만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곤 하나, 쉬이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혹은, 이 실낱같은 가능성을 조금 더 확실하게 해 줄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데스텔이 연초를 잘근잘근 씹고 있을 무렵이다.”
“···휴식 시간도 끝이군.””
카테론 고성으로 접근하는 무리가 데스텔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마차. 그 마차에 새겨진 것은 잿빛 마탑의 문양과, 로얄가드의 문양이다.”
광인의 진체가 있는 곳.”
그곳을 특정하기 위해 보냈던 탐사대가 귀환했다. 작전의 개시에 필요한 정보를 들고서.”
대륙의 북쪽 끝과, 북서쪽 끝으로 향했던 탐사대가 돌아왔다. 추레한 몰골로 회의실에 들어온 그들은 퀭한 눈동자로 각자 모아온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저희 로열 가드는 대륙의 북쪽 끝을 조사했습니다. 얼어붙은 탑이라 불리는 곳. 오랜 세월 동안 눈이 쌓여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이라는 정보와 달리···.””
로얄 가드, 크레핀이 말했다.”
“그곳엔 드넓은 황야가 있었습니다. 설원이 아닙니다. 황야였습니다. 황야의 끝에는 문헌대로 탑이 한 채 놓여 있었고, 그 탑 방향으로 아티팩트가 반응했습니다.””
아일라와 레스티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아티팩트. 광인의 진체(眞體)에 반응하는 아티팩트가 신호를 울렸다는 것은··· 북쪽 끝에 위치한 ‘얼어붙은 탑’이 광인의 본진이란 뜻이었다.”
두 개의 선택지 중 정답이 나왔다.”
그것으로 더 전할 말이 없어야 했지만, 로열 가드들은 자신과 함께 카테론 고성에 도착한 잿빛 마탑의 마법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에게 무언가 들은 것이 있다는 것처럼.”
“······.””
보고를 마친 로얄가드 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물러선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잿빛 마탑의 마법사들이다. 허나 그들은 보고를 올리긴커녕 겁에 질린 채 딱딱딱, 제 이를 맞부딪치고 있었다.”
“···대륙의 북서쪽, 포투나 신전을 탐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대륙의 북서쪽에 있는 버려진 유적. 그 유적으로 향했던 잿빛 마탑의 마법사가 겁에 질린 채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티팩트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마나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전을 떠나려는 순간 저희는 그것과 조우했습니다.””
마법사가 겁에 질린 채 말했다.”
“마수의 왕.””
마수의 왕, 바르타와 조우했다고.”
마법사들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아래와 같았다.”
포투나 신전의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아티팩트가 요란스래 울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신호가 울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멈춘 곳은 무너진 신전의 기둥의 꼭대기.”
그곳에, 마수의 왕이 서 있었노라고 그들은 말했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재앙이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일대의 흐름을 찍어 누르는 존재다. 거대한 위압감 앞에 죽음을 직감한 마법사들이 겁에 질린 가운데, 마수의 왕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라크 반 그레이스.””
마법사는 말했다.”
마수의 왕이 자신에게 말한 것을.”
“라크 반 그레이스를 데려와라.””
싯푸른 안광, 섬뜩한 시선, 쭉 뻗은 손가락.”
그 순간 마주했던 재앙을 떠올린 듯, 마법사는 겁에 질린 채 같은 말만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라크 반 그레이스를, 데려와라.””
“···그렇지 않으면.””
겁에 질려 같은 말만을 반복하는 그를 대신해, 뒷말을 이은 건 다른 마법사였다. 그녀가 라크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북쪽의 끝에서, 너흰 그자와 함께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라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라크 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니엘이 제 미간을 꾸욱 눌렀다.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지랄을 하는군.’”
협박이었다, 이건.”
어찌 된 영문인지 마수의 왕은 광인의 존재와, 그 계획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물며 단순히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광인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라니엘의 표정이 구겨졌다.”
다루지 못한다고 여겼던 기물.”
그래서, 체스판 옆으로 치워놓았던 기물.”
그 기물들을 광인은 모조리 판 위에 올려두었다. 그 방법을 라니엘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왕을 어떻게 유도했는지, 긍지를 지닌 짐승을 어떻게 꿰어냈는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라니엘이 천천히 시선을 미끄러트렸다.”
흐른 시선이 멈춘 곳은 라크다. 라크의 흔들리는 시선을 확인한 라니엘은 짧게 숨을 뱉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 조사대원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려운 임무였을 텐데 수고했다.””
조사대원들의 어깨를 두들기며 짧게 인사를 건넨 후, 라니엘이 회의실에 앉은 인원들을 흘겨봤다.”
“다들마저 쉬고 와. 자리 좀 비워주면 좋겠고. 그리고···.””
라니엘이 라크를 바라봤다.”
“라크, 넌 여기에 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은 텅 비었다.”
텅 빈 회의실에 남은 것은 라크와 라니엘 둘 뿐이다.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라니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