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6
‘증명한다.’”
증명하기 위해 칼트는 검을 휘두르고 있다.”
자신이 달려온 길이 유의미했음을, 쿤텔의 유지를 이은 자신의 검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죽음과 처음 마주했던 그날은, 두려움에 떨며 이를 맞부딪쳤던 칼트다. 일격을 흘려보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으며, 제 몸의 절반을 버려서 겨우 일격을 받아냈었다.”
‘아니, 받아낸 것도 아니지.’”
몸이 망가져 그대로 은퇴해야만 했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와 달리 칼트의 눈에는 보인다. 가니칼트의 검이 그리는 검로가. 가니칼트가 잡은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다음에는 어떤 궤적으로 검이 휘둘러질지··· 미약하게나마 보이고 있다.”
보이기에 쳐낼 수 있다. 흘려보낼 수 있다.”
지난 세월 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전투가 칼트의 움직임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쿤텔과의 일전을 떠올리며 칼트는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미끄러지듯 칼트가 가니칼트의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다. 기어코 거리를 좁힌 것이다. 그런 칼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가니칼트는 높게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일직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검.”
간결하지만, 간결하기에 무엇보다 무거운 검이다.”
단두대처럼 떨어지는 죽음 아래, 칼트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혔다. 칼트가 제자리에서 제 몸을 비틀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아래서부터 비스듬히 쳐올려 지는 칼트의 검이 그리는 궤적은 반월.”
갈라트릭 류, 개(改).”
제 6 식 월영(月影).”
달빛의 검기를 휘감은 검이, 달 그림자를 흩뿌리며 가니칼트의 검과 맞부딪쳤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맞부딪친 순간 칼트의 자세가 무너졌다.”
가니칼트가 휘두른 검에 담긴 무게를, 상대를 찍어누르는 검기에 떠밀려 칼트의 무릎이 서서히 낮아졌다. 그 무릎이 기어코 땅에 닿아, 죽음의 검에 칼트가 짓뭉개지려는 순간이다.”
키이이잉!”
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소음과 함께, 칼트가 검을 비틀었다. 달그림자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무릎이 땅에 닿을 듯한 불안정하고 낮은 자세로 칼트는 비틀어낸 검을 내려쳤다. ”
카가가가가각!”
내려친 칼트의 검을 따라 가니칼트의 검이 미끄러졌다. 미끄러진 검이 스겅, 하고 부드럽게 땅을 가른 순간이다. 검 끝에서 터져 나온 검기가 땅을 절단냈다.”
스겅.”
그 사실에 놀랄 틈도 없이, 땅에 파고들었던 가니칼트의 검이 비스듬히 땅을 파헤치며 튀어 올랐다. 분명 땅에 깊게 박혔음에도 검의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
급하게 검을 거두어 휘둘렀음에도, 검이 맞부딪친 순간 칼트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달그림자가 흩뿌려지며 공간을 왜곡시켜보려 하지만···.”
틱, 티디디디디디디디딕!”
가니칼트가 휘두른 검에 닿은 순간 달그림자는 맥없이 찢어지고 만다. 그렇게 칼트의 몸이 공중에 붕 뜬 순간이다. 가니칼트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그가 쥔 검이 흔들리며 여러 겹의 잔상이 흩뿌려졌다.”
“···아.””
칼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윽고, 흩뿌려진 잔상이 하나로 겹쳐지며 가니칼트가 공중에 뜬 칼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비스듬히 휘둘러진 검의 궤적. 칼트가 급히 검의 궤적에 제 검을 끼워 넣었지만··· 검과 검이 닿은 순간 칼트의 손가락이 우득,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갈라트릭 류, 제 6 식.”
자신의 방식으로 흉내 낸 것이 아닌, 원류(原流)의 6식이 칼트의 눈을 가득 메웠다. 공간의 비틀림을 만들며 뻗어나온 검격이 맞부딪친 순간, 칼트의 시야가 뒤집혔다. 상, 하, 좌, 우, 방향 감각이 모조리 박살 난다.”
“커흑!””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토해져 나왔다.”
땅에 처박히기 직전, 간신히 몸을 비틀어 칼트는 땅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검을 박은 채 그대로 쭉 미끄러진 칼트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큭!””
단 한 걸음 내디딘 것만으로 거리를 좁힌 가니칼트가 검을 휘두르고 있다. 잠깐의 숨을 돌릴 여유도 없다. 떨어지는 검 앞에 칼트가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르며 검을 뽑아들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검이 맞부딪친 순간 또다시 뒤로 쭉 밀려난다. 균형이 박살 났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칼트가, 아예 숨을 삼켜버린 채 이를 악물었다.”
탁, 하고 칼트가 옆으로 도약했다.”
땅 위를 미끄러지며 자세를 잡은 칼트가 곧장 눈을 부릅뜬 채 칼날을 낮게 끌었다. 땅에 닿을 듯 말듯, 지면을 긁으며 솟구친 검이 달빛을 흩뿌렸다. 새로운 검로(劍路)를 달빛이 만들어내고자 한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나, 죽음이 그리하기를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거세게 내려찍은 죽음의 칼이 달빛을 뭉개트렸다. 만월의 궤적을 그리려던 칼트의 검로를 박살 냈다. 만월은 반월도 채 되지 못해 헛것으로 흐트러졌다.”
계속해서 그런 식이다.”
기이한 궤적을, 기묘한 검술을, 변수를 끌어낼 검을 휘두르려 하나··· 가니칼트는 오롯이 정면에서 그 모든 것을 박살 낸다. 그저 올곧게 휘두를 뿐인 검에 칼트가 펼치는 모든 기술이 가로막힌다. 박살 나고 만다.”
‘하···.’”
칼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제 눈앞에 보이던 수많고 수많은 검로가, 이제는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모든 검로가 끊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노라면··· 이미 일대가 새까맣게 물들어있다. 새까맣게 물든 것은 모조리 죽음이 그리는 검로다. 그에 대응하는 자신의 달빛은 고작 몇 줄기뿐.”
···주변이 어둡다.”
밀려드는 어둠이 칼트를 집어삼키려는 순간이다.”
번쩍.”
불현듯이 칼트의 등 뒤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어둠을 몰아내는 섬광.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칼트는 저 섬광이 무엇인지 안다. 칼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칼트가 이를 악물고 힘을 쥐어짜 냈다. 눈을 부릅뜬 채 쿠웅, 하고 발을 내려찍었다.”
챠르르륵, 하고 귓가에 울리는 사슬 소리를 들으며 칼트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른 다음 내디딜 방향, 휘두른 검을 이을 방향, 그런 ‘다음’을 생각하지 않은 채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잠시나마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하지만, 한순간이나마 칼트는 가니칼트의 검을 받아냈다.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호각으로.”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진 못한다.”
균형은 무너지고 가니칼트의 검이 칼트를 집어삼키려는 순간이다. 챠르륵, 소리를 내며 뻗어온 사슬이 칼트의 팔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사슬에 붙잡힌 채 칼트는 가니칼트의 검로를 이탈했다.”
챠르륵.”
사슬에 붙잡혀 바닥을 나뒹굴듯이 전장을 이탈한 칼트가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숨을 몰아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거, 참, 빨, 리 좀···.””
“수고했다.””
칼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선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녀를 중심으로 공간에 거대한 구멍이 여럿 뚫려 있었다.”
“준비는 끝났어.””
거리를 두고 라니엘을 노려보던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땅을 뒤흔들며 쇄도하는 검기 앞에, 라니엘은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두 손바닥을 짝, 하고 맞부딪쳤다.”
“와라.””
그 순간이었다. ”
열린 공간이 한순간에 거대해진 것은. 열린 공간은 살아 있는 생명이 통과하기 위한 전송문이 아니다. 모든 물건을 옮길 수 있는 공간조차 아니다. 그저, 라니엘이 만들어낸 탑(塔)을 옮기기 위한 전이문.”
공간이 열리고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쏟아져 나온다.”
밀려드는 거센 검기와 공간을 넘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둥이 맞부딪친 순간 검기가 흐트러졌다. 가니칼트의 눈동자가 가늘어진 가운데, 라니엘이 길게 숨을 뱉었다.”
쿵, 쿠웅.”
검은 기둥은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열린 공간의 너머에서 기둥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기둥과 기둥이 공명하며, 쏟아지는 파편들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탑이다.”
쿵, 쿵, 쿵, 쿠웅.”
땅이 뒤흔들린다.”
죽음이 침묵하는 곳, 게헤테의 중심에 선 가니칼트를 에워싸듯 거대한 기둥들이 차례로 땅에 틀어박혔다. 틀어박힌 탑은 도합하여 37채.”
챠르르르르르륵!”
뻗어나온 수천, 수만 다발의 사슬이 탑과 탑을 잇는다. 37채의 탑의 한가운데 펼쳐진 사슬로 만들어진 거미줄. 그 줄의 위에 올라선 라니엘은 제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마치, 하늘을 움켜쥐듯이.”
그 순간이다.”
37채의, 마탑(魔塔).”
가니칼트를 가둔 마탑이 일제히 공명했다.”
마법사에게 있어 탑(塔)이란 상징적인 단어다. ”
마법사들은 자신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탑을 쌓는다고 표현하며, 자신의 마도 역시 탑에 비유하여 설명하곤 한다. 하물며 마법사들의 오랜 비원인 진리의 깨우침 역시··· 탑을 쌓아 하늘로 오르는 과정임을 감안한다면, 마법사와 탑은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리라.”
마(魔), 그리고 탑(塔).”
자신만의 마를 쌓아올려 만든 탑, 마탑(魔塔).”
그렇기에, 그런 마탑이야말로 비로소 마법사 자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수 있으리라. 자신의 내면에 쌓아올린 탑.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운 탑. 그런 마탑이야 말로 마법사가 걸어온 길이자, 그들의 삶이다.”
쿵, 쿠웅, 쿵!”
그렇기에.”
쿠웅!”
자신이 가진 37채의 마탑을 전부 드러낸 지금, 라니엘은 자신의 삶을 내보인 거나 마찬가지다. 드넓은 황야에 내리꽂힌 37개의 탑은 라니엘의 전력이며, 그녀의 최선이다. 37개의 탑이 황야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운데 라니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챠르르르륵!”